< 너가 왜 거기서 나와 (1) >
천마의 콘서트는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더 늦게 끝났다.
- 앵콜! 앵콜! 앵콜!
- 한곡만 더 불러줘
- 가지마!!!!!!!
2집 타이틀곡을 공개했던 무대는 엔딩 무대가 아니라, 2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무대가 끝나자 사람들은 더 뜨겁게 타올랐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천마는 그후 1시간은 더 앵콜 무대를 해주었다.
결국 끝난 건 11시가 다 될 무렵이었다.
직장인은 하얗게 불태운 채 나왔다.
‘와 어떻게 4시간을 있었는데 천마가 더 팔팔하게 뛰어노냐.’
오히려 관객이 더 지칠 지경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밤공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른 열기를 식혀 주었다.
아침에 줄을 설 때는 날이 엄청 춥다고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전혀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흥분과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2월의 추위를 쫓아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걸었다.
지금 이 시각에 지하철로 가는 사람은 천마 콘서트에 온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늘 무대에 대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 야 오늘 진짜 쩔지 않았냐?
- 그니깐 나 엔딩 무대 보고 지릴뻔.
귀를 쫑긋거리던 직장인은 다들 비슷한 감상인 걸 알고 미소를 지었다.
‘하긴 엔딩 무대가 진짜 좋았지.’
핑거스냅과 함께 무대 조명이 꺼질 때.
댄서들의 인영은 어둠 속에 잠겼지만, 그들의 몸에 묻은 야광도료는 빛이 나며 기하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천마를 중심으로 형형색색의 선이 뻗어 나가는 모습은, 노래가 아니라 한 편의 뮤지컬을 본 기분이었다.
앞으로 'Time Lapse'를 들을 때마다 이 순간이 생각날 것 같았다.
‘아 또 보고 싶다. VOD는 언제 나오냐. 꼭 사야지.’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직장인은 대학원생 친구를 힐끔 바라보았다.
친구 역시 여운에 잠겨있는 모습인지라, 직장인은 왠지 모르게 뿌듯해졌다.
천마의 공연이 마음에 든 게 분명했다.
그래도 친구의 입에서 직접 듣고 싶었어서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오늘 콘서트 어땠어?”
속이 뻔히 보이는 물음이었지만, 대학원생은 그래도 직장인 친구 덕분에 이런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게 고마웠다.
그래서 대답해줬다.
“천마 진짜 잘하긴 하더라.”
특히 마지막 Time Lapse는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놓고 계속 듣고 싶은 곡이었다.
친구의 대답을 들은 직장인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그렇게 두 사람은 무대에 대해 감상을 제각기 떠들어대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대학원생은 생각했다.
‘천마 콘서트 티켓팅이 어려웠던 이유가 있었네. 타 팬도 즐길 거리가 많잖아. 다음에 한번 더 올까?’
그때는 응원봉도 꼭 사서 가기로 다짐했다.
*
콘서트가 끝나고, 천마의 2집이 본격적으로 공개되었다.
당연히 반응은 뜨거웠다.
사람들이 먼저 놀란 것은 천마의 작업 속도였다.
1집 앨범을 낸 이후 4개월 만에 다음 앨범을 공개해버리는 미친 속도.
물론 2집 앨범은 타이틀곡 한개와 수록곡 3개로 이루어진 미니앨범이었지만.
그래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다.
- 벌써?
- 앨범이 또 나왔다고?
- 속도 쩐다 혹시 누가 가둬놓고 곡만 쓰게 하는거 아니야?
ㄴ 그게 사실이면 다음 방송에서는 당근을 흔들어주세요
- 히트메이커하면서 니 곡 쓸 시간도 있었냐;;;
- 헤르미온느세요? 몰래 시간 돌리고 있음?
- 근데 이게 말이 되는거냐? 원래 곡이 이렇게 금방 나와?
사실, 천마의 1집 이후 행보를 지켜봤을 때 상식적인 속도는 아니었다.
10월에 1집 앨범이 나왔다.
이후 11월까지 1집 활동을 하면서 윤재하에게 팬송을 써줬다.
12월과 1월에는 <히트메이커>에 출연하였으며 드라마 OST와 콘서트까지 준비했다.
누가 봐도 빡빡한 스케줄인데 어떻게 곡까지 뽑아낸건지 참.
신기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인 가운데, 악플러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 곡 내면 뭐해ㅋ퀄리티는···음
빠가 있으면 자연스레 까도 생기는 법.
천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뭘 하든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은 기어코 트집을 잡고 물어뜯었다.
- 이 정도면 혼자서 만든게 아닌거 같은데ㅋㅋㅋ
- 설마 고스트 라이터???
- 타이틀곡 어디서 들어본 거 같아요. 어디 무명가수꺼 훔쳐온 거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팬에게 금세 진압당했다.
특히 천마의 콘서트에 다녀온 팬의 기세는 평소보다 대단했다.
- 아 웃겼다ㅋㅋㅋ 우리 천마가 표절이라구요?
- 손가락정병들이 진짜. 의심이 가면 뭘 표절했는지 직접 말해보던가
- 얘들아 깔거면 곡은 듣고서 까자 제발
- 어이가 없다ㅋㅋㅋㅋㅋㅋㅋ천마 방송 한번만 보면 이런 말 안나올텐데
콘서트에서 천마에게 푹 빠진 팬들은 악플러들을 열성적으로 퇴치하면서, 끝에 콘서트 후기를 한두 마디씩 남겼다.
오프닝이 어땠고, 길성진이 저쨌고, 천마가 풍선이랑 뭘 했고···.
콘서트에 관한 각종 후기가 쏟아지면서 나중에는 이런 얘기까지 나왔다.
- 팬이벤트에서 길성진이 천마한테 선물을 줘서 둘이 풍선을 끌어안고 울었다는데?
그 댓글을 본 나는 할 말을 잃었다.
“······.”
이게 왜 이렇게 된 거지?
마침 나는 직원들과 2집 활동에 대해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콘서트 VOD 발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강여름에게 반응에 대해 듣던 중 황당한 댓글을 보았다.
이상한 루머로 와전되기는 했지만, 이만큼 말이 많이 나온다는 건 내 콘서트가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강여름이 동향을 말했다.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Time Lapse 무대를 보고싶어하는 팬들이 많더라고요.”
만약 Time Lapse 무대가 그저 그랬다면 아쉬워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무대는 역대급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평가받고 있고, 여러가지 이유로 콘서트에 가지 못한 팬들은 은근히 박탈감을 느꼈다.
나는 강여름이 말하는 요지를 파악했고, 동의했다.
“다같이 즐기자고 하는 건데 기분이 상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죠.”
그래서 이렇게 결정했다.
외주업체를 쪼아서 콘서트 VOD를 하루라도 빨리 발매한다.
Time Lapse 엔딩 무대는 신곡 홍보도 할 겸 오피셜로 뉴튜브에 풀어버린다.
덕분에 콘서트에 가지 못한 팬도 천마의 신곡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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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나도 콘서트 간거임
VOD 나오자 마자 샀다. 집에서 빔플 연결해서 틀어놓고 응원봉 흔드는중. 풍선도 준비함ㅇㅇ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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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흐름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팬들과 특별한 교감을 한 이후에는 팬들이 달아준 댓글을 보는 취미도 생겼다.
타이틀곡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 천마님이 주문 외는 거 듣고 이세계 잠깐 찍먹하고옴
ㄴ 미친놈인가ㅋㅋㅋ 가서 뭐함?
ㄴ 천마신교 화장실 청소하고옴
- 앨범에 주제가 확실하네요. 어떤 인생을 살아오신지 조금은 느껴지네요. 이런 노래가 나올때까지 얼마나 고통받고 방황하셨을지··· 언제나 화이팅입니다.
ㄴ 성인 되기 전까지 부모님 밑에서 평범하게 자랐다고 하는데;;;
ㄴ 영상편지 보니까 가정적인 분위기던데요?ㅋㅋㅋㅋㅋ
뉴튜버 시청자들은 라이트하지만, 그 숫자가 삼백만이나 된다. 거기에 내 팬들까지 더해지며 어마어마한 화력이 만들어졌다. 그 기세는 차트 성적에 반영됐다.
2집 앨범이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나자, 어느새 차트에 줄세우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기에 나는 홍보에 신경썼던 1집 활동과 달리, 이번에는 조금 더 하고싶은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음악 프로그램에도 나가고 싶고, 재미있는 예능도 많아 보였고, 하고싶은 일은 많았지만···.
"팬싸인회를 해볼까?"
당장은 팬싸인회를 하고 싶다. 콘서트에서 겪었던 팬뽕이 아직 마음 가득히 남아있었다.
나는 회의에서 그 얘기를 전달했고, 강여름이 눈을 반짝였다.
“팬싸인회요?”
왜 네가 좋아하는 거냐.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옥수진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반쯤 죽어가고 있었고, 강여름은 미덥지 않아서 이번 팬싸인회는 음반유통을 담당하는 김영훈에게 맡겼다.
회의실에 같이 있던 김영훈이 내 말을 수첩에 받아적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팬싸인회를 하려면 유통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니까 제가 하는 게 나을 듯합니다.”
확실히 믿음직스럽다. 나는 안도했다.
‘별 일 없겠지?’
하지만 너무 이른 안도였다.
*
천마의 팬싸인회는 곧바로 준비되었다.
응모권 추첨은 유통사에서 한 후 회사로 명단을 넘겨준다. 그래서 천마신교 레코즈에서는 팬싸인회의 식순과 구성만 준비하면 됐다.
응모는 일반적인 방법인, 앨범을 구매하면 응모권을 주는 방식을 따랐다.
그러자 팬싸인회를 노리고 여러 장의 앨범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덕분에 천마의 앨범 판매량은 늘어났다.
그리고 여기 천마의 앨범 판매량을 늘려주는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강여름은 30장, 옥수진은 20장의 앨범을 구매했다.
사실 앨범은 사무실에 수십 장씩 쌓여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직접 구매한 것은 바로 천마의 팬싸인회에 응모하기 위해서였다.
옥수진이 조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이거 응모 해도 되는거겠죠?"
하지만 강여름은 걱정 없다는 듯 말했다.
"뭐, 우리가 이상한 짓 하는것도 아니고. 정정당당하게 하는건데!"
참, 옥수진과 강여름은 사석에서 편하게 말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같은 대학교 선후배 사이에, 2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비슷한 연령대.
그리고 천마의 팬이라는 공통사 덕분에 두 사람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옥수진은 언니에게는 존대가 편하다며 고집했고, 결국 강여름만 말을 놨지만.
어쨌든 다시 팬싸인회로 돌아오자면.
천마를 매일매일 보며, 팬클럽에서는 덕업일치라며 부러움을 사는 천마신교 레코즈 직원.
그런 사람이 왜 팬싸인회에 응모를 하나 의문이 들 것이다.
강여름에게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직원으로는 만족을 못 해. 팬으로서 천마 님을 만나고 싶다고!”
강여름의 강력한 주장이 옥수진에게도 그럴듯하게 들렸다.
“팬으로서 천마 님을요?”
“응응 수진아. 생각해 봐. 천마 님에게 아기호랑이 머리띠를 씌우면 귀엽지 않겠어?”
옥수진은 ‘아기호랑이 머리띠’라는 말에 눈빛이 흔들렸다.
강여름이 다시 한번 사심을 주장했다.
"커뮤니티에서 봤는데 누가 한태영 군대 가기 전에 팬싸에서 손깍지를 꼈다더라. 나도 해봐야지!"
“손깍지도···?”
옥수진은 천마가 해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홀라당 넘어갔다.
결국 퇴근 후, 두 사람은 옥수진의 원룸에서 배달 온 50장의 앨범을 나누었다.
응모권을 추출한 후 남은 앨범은 주위에 나눠주기로 했다.
주섬주섬 앨범 포장을 뜯으면서 옥수진이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이번에 사람이 많이 몰렸다던데 이 정도로 괜찮겠죠?”
이번 팬싸인회에 작은 무대가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콘서트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전직 홈마였던 강여름은 큰소리를 탕탕 쳤다.
“괜찮아. 언니만 믿어! 그날 연차 쓰고 간다!”
강여름이 앨범에 들어있던 응모권을 차곡차곡 모아놓으면서 말을 이었다.
“솔직히 수진아 너 요즘에 무리했잖아. 좀 쉬어야지.”
옥수진은 희미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좋아서 하는 건데.”
“야, 그래도 몸 좀 신경쓰면서 해.”
강여름은 항상 피곤해 보이는 옥수진이 걱정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안색도 안 좋아 보이고, 피부랑 머릿결도 푸석푸석해졌다.
강여름이라면 적당히 넘겼을 사항을, 옥수진은 항상 꼼꼼하게 체크했고 그래서 늘 업무량이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총관님이라고 부르는 건가?’
무튼 둘은 소소한 대화를 나누면서 50장의 응모권을 모두 사용했다.
그리고 며칠 뒤, 유통사에서 당첨자 명단을 받은 김영훈은 그사이 끼어있는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저···. 이거 천마 님께 말씀드려야하지 않을까요?”
두 직원은 결사반대했다.
“안돼요!”
“그날은 직원이 아니라 팬으로 가는 거라고요.”
절차상의 문제는 없다.
추첨도 유통사에서 한 거고, 두 사람 다 본인 돈으로 앨범을 구매해서 응모했다.
당일 행사를 담당할 직원도 다른 사람으로 정해진지라, 두 사람의 연차 사용에도 문제는 없었다.
그래서 김영훈은 알았다고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
.
.
그리고 팬싸인회 당일,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난 천마가 당황했다.
"...너가 왜 거기서 나와?"
< 너가 왜 거기서 나와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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