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69화 (69/191)

< 음악의 전당 (2) >

언제부턴가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서바이벌이 필수 요소가 되었다.

대중에게 몰입감을 줄 수 있고, 제작진 입장에서도 스토리를 뽑기 쉬운 포맷이며, '경쟁'은 언제나 통하는 서사 구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무수한 음악 서바이벌이 뜨고 지는 가운데, <음악의 전당>만은 그 성세를 유지하며 어느덧 500화를 맞았다.

<음악의 전당>이 그토록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서바이벌 형식을 최대한 느슨하게 풀어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음악의 전당> 역시 관객 투표를 통해 경쟁을 유도하지만 그 방식에 매몰되지 않았다.

최종 승자만 공개할 뿐, 나머지 팀의 순위나 득표수는 비공개로 두었다.

그럼으로써 가수들의 순위 부담을 덜어주며, 창의적이고 다양한 무대를 꾸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음악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전당을 마련한 것이다.

물론 항상 대중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무대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수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며 신선한 무대를 만들었고, 덕분에 프로그램의 내용이 천편일률적으로 흘러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500화까지 오면서 무명 가수가 전설적인 무대를 만들어 이름을 날리기도 하였고, 무대에서 처음으로 장르의 틀을 깨고 성장한 가수도 있었다.

그런 가수의 스토리를 대중들이 함께 공감하는 것도 <음악의 전당>의 주된 즐거움이었다.

가수는 무대에서 성장하고, 프로그램은 그런 가수들 덕분에 시청률을 유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의 전당>은 특별한 프로그램이었다.

기념비적인 프로그램의 500화가 다가오면서, 시청자들은 이번에는 어떤 무대를 볼 수 있을까 기대하기 시작했다.

방송국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의 전당>이 장수하는 간판 프로그램인 만큼, 위쪽에서도 좋은 취지를 담은 특집을 기대한다며 부담을 팍팍 주고 있었다.

그래서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제작진은 회의에 들어갔다.

메인 피디가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걸 해야 할 거 같은데요."

원래 <음악의 전당>은 100화마다 역대 우승자들을 모아 왕중왕전을 펼친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특별한 걸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갑작스러운 노선 변경이었으나, 머리를 짜내다 보니 뭐라도 나오긴 했다.

"서바이벌을 완전히 빼버리는 건 어떨까요?"

"서바이벌을요?"

그럼 재미가 없지 않나?

피디가 탐탁지 않아 하자, 의견을 제안한 사람이 설명을 추가했다.

"서바이벌 대신 기부를 하는거죠. 무대에 감동받은 사람들이 버튼을 누르면 그때마다 얼마를 기부하는 방식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

듣고보니 괜찮네?

항상 있던 서바이벌 형식 말고, 긴장을 풀고 즐길 수 있는.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축제.

그러면서 기부를 할 수 있으니 의미도 있다.

한번 아이디어가 나오니 물꼬가 터졌다. 또다른 사람이 새로운 의견을 냈다.

"선배 가수와 후배 가수가 짝을 이루어서 무대를 하는 건 어떨까요?"

선배 가수가 후배 가수에게 멘토링을 해주고, 후배 가수는 경력이 있는 선배 가수에게 신선한 영감을 제공한다.

함께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자는 거다.

메인 피디는 무릎을 탁 쳤다.

“오 이것도 좋은데요.”

가수와 프로그램이 함께 성장하는 <음악의 전당>의 역사와도 딱 어울리는 테마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온 의견들을 모두 종합해버렸다.

투표로 줄 세우기가 아닌 기부를 한다.

선배 가수는 후배 가수와 짝을 이뤄 합동 공연을 한다.

관객들과 가수 모두 긴장을 풀고 즐기는 축제의 분위기를 만든다.

모두의 의견이 반영된 아주 민주적인 회의였다.

피디는 만족하며 구체적인 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그럼 멘토가 되는 선배 가수를 정해야 하는데요."

그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선배 가수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가수를 섭외하기로 했다.

<음악의 전당>에서는 100회차마다 왕중왕전을 벌인다.

지금까지 우승자들이 다시 한번 경연을 벌이고, 여기서 최종 우승한 사람은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500회를 앞두고 있는 지금, 총 네 명의 가수가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트로트 가수 김연준.

락 그룹의 보컬 이재현

3대 보컬리스트 나효범

한국의 디바 라희

그때 한 작가가 맨 마지막에 있는 이름을 보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라희 말이에요. 요새 많이 말이 많더라고요. 괜찮을까요?"

최근 라희는 소속사와 분쟁이 있었다.

라희가 데뷔 때부터 함께했던 소속사와.

발단은 정산 문제였다.

라희가 재계약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속사가 정산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소속사 대표와 한바탕 한 후 법정 공방 끝에 전속 계약을 해지했다.

문제라면 라희의 전 소속사 사장이 유명한 원로가수였다는 것이다.

그는 인맥을 동원하여 라희가 음악 관련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하지만 그 내막을 모두 알고 있는 메인 피디는 시큰둥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름값 있고 영향력 있는 원로가수라고 해도, 자신은 지상파 간판 프로그램인 <음악을 전당>의 메인 피디이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에 오른 사람이 딱 네 명인데, 거기에서 라희만 쏙 빼놓자니 모양이 빠진다.

아무렴 500화 기념 방영인데.

“그냥 그 네 명에게 섭외 연락 돌리는 걸로 하죠.”

다음으로는 멘티가 될 후배 가수를 정할 차례.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데뷔한 지 1년 언저리의 가수가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500화 특집인데, 인지도가 있는 사람을 뽑아야죠."

"선배 가수랑 듀엣으로 부르는 만큼, 밀리지 않는 노래 실력도 필수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작진은 위의 조건들을 고려하여 후보 리스트를 쫙 뽑아보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만장일치로 한 사람이 뽑혔다.

“나는 천마 님 한표.”

"천마 님은 무조건 섭외하죠."

섭외 리스트 최상단에 오른 건 천마였다.

작년에 혜성처럼 등장해 음원 차트를 꽉 틀어쥔 가수.

인지도나 실력이나 뭘 보더라도 천마는 최고의 픽이었다.

"근데 천마는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센 거 아닌가?"

이런 우려도 있었지만,

"서바이벌 할 것도 아닌데, 잘하면 잘할수록 좋죠. 섭외만 되면 땡큐지."

그리고 다음으로 후보에 오른 건 박희찬이었다.

킹 오브 트롯에서 우승한 박희찬은 작년 10월에 데뷔한 이후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중이었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서바이벌에서 우승을 할 정도의 탄탄한 실력.

4050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팬덤.

그리고 무엇보다 명예의 전당에 있는 트로트 가수 김연준과 만들 수 있는 케미까지.

"그럼 박희찬 님도 섭외하는 걸로 합시다."

천마와 박희찬.

확실한 두 명을 정한 제작진은, 남은 두 자리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젤리크러쉬 메인보컬은 어때요? 티키티키 할 때 보니까 노래 잘하던데."

"그쪽도 좋고, 에이클라스 쪽도 한번 고려해보죠."

"얼마전에 히트메이커 준우승자도 데뷔했어요. 그 친구가 노래 하나는 기똥차더라고요."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다양한 후보가 나왔다.

몇 시간에 걸친 토론으로 최종 명단을 정한 피디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거 멘토 멘티 짝을 짓는 과정부터 재밌겠는데?"

그는 확신했다.

이번 500화 특집은 분명 대박이 날 거라고.

*

한편 그 시각.

천마신교 레코즈의 연습실에서는 사람이 죽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길성진에게 말했다.

"다시. 거기서 플랫이 되면 안 되지."

"마음에 안들어."

"힘든 척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라."

"연습 한 시간 추가다."

"...이러다 나 죽어."

결국 길성진은 연습실 바닥에 엎어져 숨을 골랐다.

길성진은 이번 4월 말 데뷔를 목표로, 트레이닝을 받는 중이었다.

정식으로 천마신교에 입단한 만큼 <히트메이커> 때와는 차원이 다른 트레이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바닥에서 꼼지락거리던 길성진을 바라보았다.

"안 일어나냐?"

그러자 길성진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천마 님, 그런데 이번에 <음악의 전당> 500화 라인업 보셨어요?"

···말을 돌리는 게 다 티 났지만, 힘들어하니 한번은 봐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길성진은 옳다구나 떠들었다.

"라인업 장난 아니더라고요. 히트메이커 준우승한 사람도 나오는 것 같던데. 그 사람은 벌써 데뷔도 하고··· 진짜 부럽다."

길성진은 내 눈치를 보다 한 마디 추가했다.

"나는 언제쯤 앨범을 내려나···."

나는 황당한 얼굴로 길성진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럼 누가 곡을 그렇게 쓰래?

천마신교 레코즈에 들어온 후, 길성진은 선언했다.

'저도 자작곡으로 앨범을 채워볼래요.'

나는 물론이고 미니롱도 직접 자신의 곡을 쓴다.

길성진은 그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겉멋에 들어 한 말은 아니었는지, 나를 몰래 부르더니 수줍게 말했다.

"제가 예전부터 준비한 곡인데요. 천마 님이 한번 봐주실래요?"

길성진은 나름대로 작곡에 재능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곡은 괜찮긴 한데···.

그와 별개로 어렵고 멋져보이는 걸 다 때려 박아서 난도는 굉장히 높았다.

'이걸 완창하면 무대에서 엄청 멋져 보이겠지?'

라는 자아도취가 눈에 뻔히 보이는 곡이다.

나는 친히 원곡자의 의도를 200% 살려 편곡을 해주었다.

원곡자가 원하는 대로 화려하게.

하지만 그게 너무 과해서 촌스러워 보이지 않도록.

"괜찮아졌지?"

길성진은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

"우와! 제가 원하던 게 바로 이런 거예요."

하지만, 완성된 곡을 몇 번 돌려 듣던 길성진은 물었다.

"...근데 이거 부를 수 있는 곡이 맞아요?"

"내가 해보니까 되던데?"

"...!?"

대신 바뀐 노래는 200% 더 어려워졌다.

일단 음역의 폭을 개울물에서 한강 정도로 넓혀주었다.

0옥타브 파에서 3옥타브의 미까지.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게 마치 롤러코스터 같은 느낌이다.

심지어 고음부를 유지할 때는 두 가지 발성을 번갈아서 써야 한다.

나는 어설펐던 곡의 구조 또한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리듬과 박자, 멜로디가 맞물리며 그중 하나라도 놓치면 엄청 못 부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길성진이 울상이 되어 말했다.

"이거 조금만 쉽게 바꿔주면 안될까요?"

"바꾸려면 니가 직접 바꾸던지.''

길성진은 끙끙거리며 고쳐보았지만, 그게 될 리가 있나.

내가 만든 곡은 촘촘한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리는 구조다.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진다는 말이지.

며칠을 부여잡고 끙끙거리던 길성진은 항복을 외쳤다.

"저 못하겠어요···."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었다.

"그래? 그럼 연습이나 시작하자."

"이 악마!"

"악마가 아니라 천마다."

나는 길성진이 이 노래에 맞는 기량을 가질 수 있도록 상냥하게 도와주는 중이었다.

길성진이 징징거렸다.

"이 부분은 진짜 아무리 해도 안 되는데요. 너무 어려워요."

고음부에서 두 가지 발성을 섞는 구간이다.

흉성과 두성을 자유자재로 번갈아 가면서 고음을 유지해야 하는 부분인데, 며칠째 그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흠, 어쩔 수 없나."

한번 느낌을 기억하면 잘할 거 같은데.

아무래도 직접 체험을 시켜줘야겠다.

나는 길성진의 뒷목을 잡고 말했다.

"지금, 다시 해 봐."

동시에 길성진의 몸속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길성진의 몸속에 들어간 내공은 소리가 나야하는 길을 강제로 열어젖히며 가이드를 해준다.

- Singing night

I sing in the night

수십 번을 해도 계속 실패했던 구간이, 내공의 도움으로 한번에 성공할 수 있었다.

"기억했으면 이대로 다시 연습해라."

막혀있는 길을 강제로 뚫었으니 고통이 있을 텐데도, 길성진은 처음으로 성공했다는 기쁨에 호들갑을 떨었다.

"헐? 뭐야? 이게 왜 되지? 천마 님, 어떻게 된 일이에요?"

그렇게 물어보면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지?

"내공을 몸속에 집어넣어서 소리가 지나가야 할 길을 강제로 열어준 거다."

그리고 길성진은 믿지 않았다.

"아씨 내가 바본 줄 아나. 내공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아니, 이거 진짠데···.

그래도 한번 소리가 가는 길을 익힌 길성진은 감을 잡고 연습에 매진했다.

그쪽은 알아서 연습하라고 둔 다음, 나는 <음악의 전당> 무대 준비를 시작했다.

'왕중왕전 우승자들이 다 나온다고 했지?'

이들과 듀엣으로 무대를 꾸미는 건 재미있을 것 같다.

뉴튜브 외에 방송 활동을 거의 안 하다 보니 나는 다른 가수들과의 소통이 없는 편이다.

이번 기회에 그 교류의 장을 만들어야겠다.

다양한 장르의 기성 가수들이 어떻게 노래에 접근하는지 나눠보고 싶기도 하고.

내가 제작진 측에 참가 의사를 밝히자 그쪽에서는 간단한 미션을 하나 주었다.

- 다음주에 사전 미팅을 할 건데, 그때까지 무대에서 부르실 노래를 선곡해주세요. 편곡까지 해주시면 더 좋고요.

선곡한 노래의 앞 한두 소절 정도를 들려주고, 전대 우승자들은 마음에 드는 곡을 선택해서 짝짓기를 한다는 모양이다.

이미 정해둔 곡이 있기에 프로그램을 켜서 바로 편곡 작업에 들어갔다.

그때 옆에서 길성진이 빼꼼 등장했다.

"천마 님 뭐하세요?"

"넌 연습 안하세요?"

그러나 이 새끼는 들은 척도 안하고 뺀질거린다.

"오오 이게 <음악의 전당>에서 부르실 노래구나. 근데 이거 어디서 들어봤는데?"

노래를 곱씹던 길성진의 표정이 이상해진다.

"??? 진짜 이거 할거예요? 이건 너무 뜬금없는데."

"너 이 노래 몰라?"

"아니, 알긴 아는데···."

관객들도 모두 알 것이다.

아마 길성진의 어머니도, 막내 사촌 동생도 들어본 노래이지 않을까?

나는 씨익 웃었다.

주간곡소리에서 굴렀던 게 이제야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

.

한편 제작진은 원하던 섭외를 마쳤다.

그리고 한 스탭이 조금 전 완성된 선곡 리스트를 보고 당황했다.

"천마 님이 이걸 골랐네?"

피디는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뭘 골랐길래요?"

"그게, 디···."

스탭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리스트를 넘겼다.

디가 뭐길래?

궁금해하며 리스트를 본 피디는 똑같이 당황했다.

"?"

< 음악의 전당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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