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73화 (73/191)

< 음악의 전당 (6) >

“와, 진짜 재미있다.”

전주호가 감탄했다.

올해 열한 살이 된 그는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였지만, 학교 근처에도 가본 적 없었다.

난치성 신장 질환이 있는 주호에게는 병원이 학교고 집이었다.

그리고 지쳐 가는 투병 생활에 콘서트는 단비와도 같았다.

그것도 병원에서 하는 미니콘서트가 아니라, 병원 밖에 콘서트장에 직접 가는 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 콘서트장.

오랜만에 하는 외출에 마음은 더욱 설렜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무대장치가 요란한 빛을 뿜어대고, 스피커에서는 연신 신나는 사운드가 흘러나왔다.

옆에 있는 친구들은 무대가 주는 흥분에 차올라 조잘댔다.

"방금 무대 쩔지 않았냐?"

"그니깐. 사람 목소리가 저렇게 올라가는건 처음 봄.”

조금 전에는 락 무대가 있었는데, 끝없이 소리 지르는 걸 들으니 자기까지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오프닝 무대를 열었던 젤리크러쉬 가은이 누나도 예뻤고, 트로트는··· 음, 보호자로 함께 온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셨다.

“친구들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전주호는 그나마 상태가 좋은 편이라서 콘서트에 올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병실에 남아서 무대를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병원에서 생중계를 해준다지만 직접 와보니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과 열기는 특별했다.

그는 병실에 남은 친구들의 부탁을 떠올렸다.

'나 가은이 누나 싸인 받아줘!'

'나도 나도!'

친구들은 사인을 받아달라며 각자 소중한 물건들을 건네주었다.

사인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주호는 왠지 모를 사명감을 느끼며 알았다며 물건을 챙겨왔다.

자신은 운이 좋게 콘서트에 왔으니까, 못 온 친구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그런 각오였다.

그리고 그 순간, 전주호가 가장 기대하던 천마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와! 천마다 천마!”

병실에서 누워있을 때마다 천마의 채널을 챙겨보던 전주호다.

사람들은 천마가 음악적으로 얼마나 대단한지 떠들어댔지만, 전주호는 그런 건 잘 모른다.

그냥 천마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편안해져서.

하루에도 몇 번씩 고통이 느껴질 때마다 버릇처럼 그의 채널에 들어가서 천마의 노래를 듣곤 했다.

사실 지금도 조금 피곤하긴 했다.

오랜 외출을 견디기엔 전주호의 몸이 너무 약했다.

하지만 전주호는 정신을 차리고 무대에 집중했다.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 순간.

- 옛날 옛적 한 젊은 왕이 있었습니다.

나레이션이 흘러나왔다.

“어? 이건 뭐지?”

불은 여전히 꺼져 있고, 오로지 천마의 목소리만이 텅 빈 어둠을 채운다.

낮고 부드러워서 사람을 안정되게 만드는 목소리는, 노파와 야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어쩌면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 흔한 이야기를 특별하게끔 만들었다.

흥분으로 들떠있던 몸이 편하게 이완된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전주호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 잊혀진 오래된 성에서 야수와 노파가 만났습니다.

나레이션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은은한 불빛이 빛무리가 무대 한켠을 비춘다.

층고 높은 천장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그 아래에 유럽의 고성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세트장이 있었다.

빛바랜 성벽은 현실감이 넘쳤고, 그 가운데에서 외롭게 서 있는 야수는···

"...!"

더욱 현실감이 넘쳤다.

'와 씨 깜짝이야!'

전주호는 흠칫 놀랐다. 주변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고릴라, 아니면 곰 같은 동물과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덩치.

살기 어린 눈빛과 언뜻 보이는 송곳니가 리얼 했다.

천마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야수 그 자체.

전주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분장 뭐야. 완전 진짜 같네. 저게 특수분장이라는 건가?’

그리고 천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순간, 놀람은 더욱 커졌다.

"!!!!"

상처 입은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낮은 소리가 무대의 온도를 낮춘다.

나레이션 할 때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Old King who became the Beast

야수가 된 오래된 왕

두상이 바뀌었으니 목소리가 바뀌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전주호는 고개만 갸웃했다.

‘목소리도 변장이 되나···?’

대신 저 목소리가 가진 힘은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몸 구석구석을 일깨우는 흉포한 목소리.

전율이 돋으며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전주호는 누군가가 병든 부위를 깨끗하게 도려내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노파 분장을 한 라희가 나와 함께 노래를 시작한다.

노파와 야수가 티격태격하듯이.

두 사람의 목소리는 꼬리를 물기도 하고, 바싹 들이밀어 붙이기도 하며 싸우는 것처럼 대비됐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전주호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묘하게 맞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박자씩 맞아가던 두 사람의 목소리는 어느새 하나 되어,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Shadow of love waves secretly

남몰래 사랑의 그림자가 일렁이네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

마법이 풀리는 그 순간.

"흐어어억"

전주호는 기겁하고 말았다.

쿠구구궁

빛바랜 성벽이, 오래된 성이 무너지고 있었다.

잔해들이 빠르게 구석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배경이 나타났다.

강한 햇살이 내리쬐는 울창한 숲.

1층에는 무대에는 무용수들이 군무를 추기 시작하고, 천마와 라희는.

"오, 올라간다!"

천천히 회전하는 리프트를 타고 2층 무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리프트가 회전하는 그 순간, 천마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

깜빡깜빡

내가 잘못 봤나?

스포트라이트가 순간적으로 강해져서 헛것을 봤을지도··· 라고 생각했지만, 주위에서도 헉 하며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리는 걸 보니 제대로 본 듯했다.

괴물 같은 얼굴은 원래의 아름다움을 되찾는다.

이어서 목소리도 본래의 미성으로 돌아갔다.

-Begin a little miracle

일어난 작은 기적

눈앞에서 일어나는 분명한 기적은 뇌리에 생생히 박힌다.

전주호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마법이야. 천마가 마법을 부렸어.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대박 신기하다!!!'

그는 그저 신기해했다.

자신에게도 똑같은 기적이 일어난 지 아직 모르는 채로.

*

천마의 무대 10분 전.

음악의 전당 피디는 생중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첫 커트는 3번으로 갈게요. 두 사람 얼굴부터 잡을게요."

"스탠바이, 하이. 큐!"

원 컷, 투 컷···파이브 앤 스탠바이. 다시 원 컷.

바쁘게 지시를 내리는 피디.

그리고 시청률을 집계하던 사람이 외친다.

"방금 최고시청률 돌파했습니다."

세 번째 무대가 끝나고 마지막 무대가 준비되는 사이, 피디는 VCR을 재생한 후 막간을 이용해서 시청률을 확인했다.

"와우!"

실시간으로 시청률이 집계되는 프로그램 차트에는, 우상향하는 그래프가 뚜렷하게 보인다.

평소 화에 비하면 거의 두 배···까지는 아니더라도 훨씬 높은 시청률이 나오고 있었다.

피디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다른 사람들도 들떠서 말했다.

“지금 시청률 대박이죠? 심지어 계속 오르고 있어요.”

“1부가 워낙 재미있어서 2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역시 천마를 섭외하길 잘한 것 같아요.”

일등 공신은 역시나 천마였다.

1부에서 방영된 천마와 라희의 즉흥연주.

현재 '주간곡소리_지상파버전' 이름을 달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그 영상은, 사람들에게 신문물을 접한 듯한 충격을 선사했다.

제작진은 이 영상을 셀링 포인트로 잡아 기사를 뿌렸고, 거기에 커뮤니티의 입소문까지 더해져 지금의 시청률이 나왔다.

'천마 덕분에 새로운 시청자도 유입된 거 같고.'

500화가 넘어가면서 시청자층이 고착화되었는데 천마 덕분에 다시 한번 탄력을 받았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특집이다.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여기 계셨군요, 피디님."

피디가 뒤를 돌아보았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캐시미어 코트를 어깨에 걸친 여자가 서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는 단순한 행동에도 교양이 서려 있는 사람이었다.

메인 피디는 화색이 되어 인사했다.

"이사님! 오신다고 연락 주셨으면 제가 미리 마중 나갔을텐데요."

진성 그룹의 셋째 딸 김소현.

재단 이사이면서, 평소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이번 자선공연의 후원자이다.

김소현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 웃었다.

"어머, 피차 바쁜걸요. 지나가던 길에 잠깐 들렀어요. 잘 되고 있나요?"

"물론이죠. 다 이사님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입니다. 여기 화면을 보시면 지금까지 카운트된 기부금을 보실 수 있는데···."

피디의 설명을 들으며 김소현은 기부금 화면을 보았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관객들이 의자에 달린 버튼을 누른 횟수가 카운트 되고 있다.

18,814

19,350

19,999

실시간으로 빠르게 올라가는 숫자.

무대에 감동받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버튼을 누르며 기부금이 목표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옆에 모니터에는 특별초대석이 잡혔다. 아이들이 웃는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자 김소현도 작은 미소를 지었다.

‘제작비를 지원해주길 잘했네.’

<음악의 전당>에서 재단에서 운영하는 의료원에 기부한다길래, 그녀가 강하게 밀어붙여 제작비 지원을 해주었는데.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뿌듯했다.

그녀가 병을 치료해 줄 수는 없지만, 그녀는 훌륭한 예술이 아이들의 삶에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김소현의 미소를 본 피디는 제안했다.

“마지막 무대가 하나 남았는데 괜찮으시면 보고 가시겠습니까? 저희 쪽에서 제일 기대하는 무대이기도 하거든요.”

무대 준비 과정을 전부 지켜봤던 피디는 천마의 무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제작비를 지원해 준 김소현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제안했다.

김소현은 무대가 나오는 모니터를 힐끗 보았다.

마침 무대 하나가 끝났는지 이전에 쓰던 장치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배경을 채워가는 모습이 잡혔다.

'뭐가 저렇게 화려해?'

스테인드글라스에 유럽의 고성 같은 무대 배경이 나오는데, 무슨 드라마나 영화의 세트장을 만드는 줄 알았다.

그래서 잠깐 흥미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저 그뿐.

김소현은 우아하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피디님도 참. 제 취향 아시면서요.”

“하하, 그러고 보니 이런 장르보다는 클래식을 좋아하시죠?”

김소현이 클래식 마니아 라는건 업계에서는 유명했다.

진성 메가 콘서트에서 종종 클래식 거장을 초청하는데, 그 뒤에 김소현이 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완곡하게 거절한 김소현이 돌아갈 준비를 하려는 찰나,

-Old King who became the Beast

야수가 된 오래된 왕

야수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낮게 으르렁거리는 맹수의 목소리에 김소현은 발걸음을 멈췄다.

회사에 가봐야 하는데, 그냥 잠깐 들른 것뿐인데.

다음 일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무대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정신을 차린 순간 그녀는 이미 빈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은 채, 무대가 나오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수.

고상한 클래식이 아니라 날 것의 무언가가 마음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사로잡힌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옆에 있던 화면에는 기부금 숫자가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 음악의 전당 (6)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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