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의 음악방송 (1) >
무대가 끝났다.
나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에서 우아하게 퇴장했다.
그리고 무대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내 입에선 곡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빡세다 빡세.”
귀환 이후 수련을 거듭하여, 3시간짜리 콘서트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회복했다. 그런데 그걸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다 쏟아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공도 내공이지만 심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음공을 사용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와중에 역용술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아이들에게는 따로 음파를 집중해서 쏘아냈다.
세 가지 일을 동시에 마치고 나니 탈력감이 진하게 밀려온다.
첫 콘서트 이후 이 상태가 된 건 처음이었지만, 그래도 텅 빈 단전만큼 애들 상태가 좋아진 거 같으니까 뭐.
그렇게 대기실에 돌아오는 길, 내 옆에서 나란히 걷던 라희가 시원하게 웃었다.
“와 미쳤다! 사람들 다 일어나서 박수 치는 거 봤죠?”
이번 기회를 꼭 잡아서 재기를 노리겠다던 라희는 무대가 퍽 만족스러운 듯했다.
"이 정도면 슬슬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섭외가 올 거 같은데. 유명현 그 주옥같은 새끼 때문에 내가 고생한 거 생각하면 진짜···. 아 근데 천마 님."
한참 전 사장을 욕하던 그녀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아까 그건 어떻게 한거에요?”
“뭘요?”
“그거 있잖아요. 올라가면서 막 변신한거요. 원래 얼굴로 돌아올 때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요. 어떤 분장을 했길래 실시간으로 변한거에요?.”
"아 그거."
그때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강하게 비추면서 안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라희는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내가 역용술을 푸는 모습을 본 모양이다.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
내가 내공을 써서 한 일들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
천마인 걸 딱히 숨기려고 한 적은 없었지만,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었는데.
나는 최근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역용술 쓴 거에요. 그걸로 얼굴이랑 몸이랑 다 바꿀 수 있거든요.”
“아 진짜! 누가 천마 아니랄까봐. 컨셉 한번 지독하시네요.”
역시나 이번에도 먹혔다.
라희는 특수분장팀이 어딘지만 공유해달라고 꿍얼거렸지만, 나는 이미 진실을 말한걸.
라희는 결국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자신의 대기실로 돌아갔다.
나도 대기실에 거의 도착할 때쯤, 통로가 꺾이는 복도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튀어나왔다.
“어? 천마 님이다!”
진성 의료원에서 온 아이들이다. 공연을 본 아이들이 제작진의 배려로 대기실까지 온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우르르 달려오더니 순식간에 나를 둘러쌌다.
그러고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 잡동사니(?)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손때가 잔뜩 탄 장난감부터 인형, 다이어리 등등.
나는 눈앞에 불쑥 들이밀어진 물건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혹시 무대가 좋았다고 이러는 건가?
나름대로 보물이라고 생각한 걸 주는···
“여기에 사인해주세요!”
···게 아니구나.
"큼큼."
나는 헛기침을 하며 물건에 하나하나 사인을 해주었다.
한자로 멋들어지게 천마를 적어놓자 아이들이 신기했다.
“우와. 진짜 멋있다.”
“한자를 어떻게 그렇게 잘써요? 나는 내 이름도 못쓰는데.”
“천마가 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사인을 모두 받는데 성공한 아이들은 이제 다른 사람들을 찾으러 우르르 몰려갔다.
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잠깐 보다가 대기실로 들어갔다.
"나도 이제 좀 쉬어볼···음?"
방 안에 처음 보는 여자가 도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꼭 유명 세가의 여식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였다.
"누구시죠?"
여자는 아주 우아한 미소를 짓더니 악수를 청했다.
“저 김소현이에요. 반가워요.”
"?"
그래서 그게 누군데?
*
이번 천마와 라희의 듀엣 무대는 다양한 의미에서 뜨거웠다.
먼저 <음악의 전당>을 보는 고정 시청자 중에서는 천마를 잘 몰랐던 사람들도 있었다.
천마의 무대를 처음 본 그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 천마 님 목소리가 너무 고와요~ 두분 목소리가 대조적인데 어떻게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노래 같이 하시는 거 계속 듣고 싶네요^^~~~
- 이번 무대 존나 화려하네ㅋㅋㅋㅋ 성이 무너질 때 기절해서 지금 일어남
- 이 노래 어릴 때 진짜 많이 들었는데··· 아마 외계인도 들었을듯
- 나 음전 1화부터 꾸준히 봤는데 500화가 제일 레전드임
ㄴ ㅇㅇㅇ왕중왕전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제작진 측에서 빠르게 편집한 영상에 몰려온 사람들은 칭찬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칭찬도 잠시, 영상의 4분 12초가 지나는 순간 그저 물음표만 남길 수밖에 없었다.
회전 리프트가 올라가면서 천마의 역용술이 풀리는 바로 그때였다.
- ?
- ??
-ㄴㅇㄱ
-?!?!?1!?/
-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라희 같은 경우, 리프트가 회전하면서 관객석을 등지는 타이밍에 노파 분장 가면을 뜯는 모습이 확실하게 잡혔다.
하지만 천마가 변하는 전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리프트가 회전하는 동안 그냥 야수에서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가려 화면에 분명하게 잡히지는 않았지만, 분석에 미친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꼭 알아내야지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그들은 천마가 어떤 트릭을 사용했는지 영상을 수백 번 돌려보고, 화질도 바꿔보며 다각도에서 영상을 분석해보았다.
하지만,
‘어떻게 한 거야 이거. 진짜 마법인가?’
그들이 밝혀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설명할 수 있는 최선은 특수분장팀이 새로운 분장 기법을 사용했다거나, 아니면 카메라 특수효과가 대단했다는 것뿐이었다.
- 할리우드에서 특수분장팀 데리고 왔냐ㅋㅋㅋㅋ
- 뭐냐 진짜 이제 못하는 게 없네
ㄴ 나는 이제 천마가 무공 쓴다고 해도 믿어
ㄴ 천마 진짜 무공 쓰는 중이랍니다. 글 내려주세요
- 노래 하라고 했지 누가 마술쇼 하라고 했냐고ㅋㅋㅋㅋㅋㅋ
사람들이 여러모로 천마에게 놀라고 있는 사이, 뜻밖의 단체에서도 천마를 주목하고 있었다.
바로 진성 의료원.
소아 병동의 모 교수는 당황했다.
‘콘서트에 갔다 온 13명의 아이들이 모두 호전이 됐잖아?’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이들에 대한 걱정에서부터였다.
소아 병동에서 근무하던 교수는 혹시나 아이들이 무리해서 병세가 악화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아이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런데 상태가 악화되기는 커녕, 오히려 호전이 되었다.
심지어 잠시 동안 반짝 좋아진 것도 아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아이들의 건강 상태는 꾸준히 나아지고 있었다.
물론 완전히 치료가 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원인 발견과 치료가 어려운 난치병에서 이런 지표는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왜 콘서트를 다녀온 아이들만 건강해진거지?'
다른 아이들은 모두 그대로인데, 오직 콘서트에 다녀온 아이들에게만 변화가 일어났다.
‘분명 콘서트장에서 외부적인 요소가 작용을 한 게 분명한데.’
교수는 그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서 아이들이 병동에 나간 순간부터, 콘서트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돌아올 때까지 등등.
개입한 요소를 하나하나 분석하기 시작했다.
과연 교수가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있을까?
아직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
<음악의 전당> 500화 특집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4월 중순이 되었고, 그 사이 지옥 같은 천마의 트레이닝을 이겨낸 길성진은 마침내 데뷔할 수 있었다.
[Singing Night]
자작곡으로 만든 첫 싱글.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다.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렸으면 어쩌지?’
<히트메이커> 결승전이 끝나고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그사이 준우승을 한 서이안은 밴드 보이그룹으로 데뷔했고, 다른 본선 진출자들도 하나둘 데뷔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른 사람들이 화제성을 빨아먹으며 승승장구할 때, 자신은 연습이나 하고 있으려니 걱정만 쌓여갔다.
하지만 데뷔하고 2주 정도가 지난 지금, 길성진은 여유를 되찾았다.
'오늘은 몇 등을 했나 볼까?'
길성진은 콧노래를 부르며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음원 차트의 순위를 확인하는 건 최근 생긴 취미이다.
위에서부터 쭉 내려오니 금방 그의 곡을 찾을 수 있었다.
메인 페이지 HOT100 차트 30위 권에 있었으니까.
“오! 순위가 하나 올랐네? 이러다가 10등 안에 드는 거 아냐?”
물론 거기에 진입하려면 천마의 노래를 여덟 곡쯤 제쳐야 하지만, 등수가 한 계단 올라갔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길성진은 다음 취미 생활로 넘어갔다.
바로 포털사이트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는 것.
[히트메이커 우승자 길성진, 차트 40위 장벽을 뚫다!]
오늘 새로 나온 기사였다.
기사 내용은 대충 넘기고 아래 댓글을 확인해보았다.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다.
- 오올 길성진 노래 잘부르네?
- 우승자가 다르기는 다르다
- 와 연습 많이 했나 봐ㄷㄷㄷ히트메이커 때보다 더 잘하는듯
- ㅅㅂ 노래 존나 어렵네ㅋㅋㅋ
ㄴ 나도 쉬워보여서 노래방에서 부르려고 했는데 난이도 미쳤던데
ㄴ 길성진 엄청 편하게 부른다
- 자작곡이라는데 곡도 좋네
길성진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천마 님 회사에 들어오기를 잘했다니까.'
천마가 곡의 난도를 미친 듯이 올렸을 때는 울뻔 했지만, 결과적으로 천마가 편곡한 게 훨씬 좋았다.
덕분에 노래 실력도 엄청 늘고, 데뷔 하자마자 30위라니!
'이러다가 신인상까지 받는거 아닌가?'
길성진이 히히덕거리다 보니 어느새 천마신교 레코즈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옥수진에게 음방 스케줄을 확인하고, 이후에는 무대 연습을 할 예정이었다.
멋들어진 현판을 지나 사무실로 가는 길.
그 사이에 있는 회의실에서 라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라희 누나도 컴백 하려나 보네.'
라희가 전 소속사 사장 때문에 방송도 끊긴 채 고생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상한 사장 밑에서 돈은 돈대로 떼먹히고, 방송도 못 나가고.
여튼 이번에는 잘되면 좋겠다.
'그 사장이라는 놈도 이상해. 어떻게 남 회사에 와서 깽판을 칠 생각을 하지?'
며칠 전에 소속사 사장이 천마신교 레코즈에 와서 난동을 부리고 갔다는 소식도 들었다.
천마랑 한판 했다는데··· 무슨 일인지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 아무튼 세상에는 미친놈들이 참 많다.
길성진은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바쁘게 전화를 하는 옥수진이 보인다. 아마 향후 활동 스케줄을 잡는거겠지.
당장 다음 주부터 음악 방송이 잡혀 있다고 들었다
'드디어 마이크를 개시할 수 있겠다!'
길성진은 지난번 천마의 콘서트에서 선물받은 마이크를 떠올렸다.
색상부터 장식 하나하나까지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사용하지는 못했다.
원래는 쇼케이스 무대에서 쓸려고 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마이크를 챙기는 걸 까먹었던 것이다···!
'이번 음방 무대에는 꼭 챙겨가야지.'
그리고 새 마이크로 자신의 첫 노래를 불러야지.
천마처럼 개쩌는 무대를 만드는 상상을 하며 옥수진에게 다가가는데, 옥수진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피디님! 길성진 씨 출연이 취소되었다고요? 갑자기 이러시는 법이 어디 있어요.”
"???"
길성진이 멈칫했다
갑자기 음악 방송이 취소 되다니?
문득 <히트메이커>에서 사고 친 프로듀서 때문에 나락 갈 뻔했던 일이 떠올랐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음악 방송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옥수진의 전화가 끝나기 무섭게 직원들이 앞다투어 다가와서 말했다.
“뮤직센터에서도 길성진 님 스케줄을 취소하겠답니다.”
“음악뱅크에서도 오지 말라고하는데요. 이거 어쩌죠?”
그 얘기를 코앞에서 듣던 길성진이 울상을 지었다.
'내 인생··· 왜 이러지?'
< 천마의 음악방송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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