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75화 (75/191)

< 천마의 음악방송 (2) >

진명 엔터테인먼트 대표 유명현.

그는 국민 밴드 ‘딴따라’의 보컬이었다.

딴따라는 지금은 해체되었지만 한때는 80년대를 휩쓸었던 밴드로,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람 중 그가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성공적인 오랜 활동 덕에 인맥도 어마어마했고.

그래서 15년 전쯤 유명현이 밴드를 해체할 때, 기획사를 하나 설립했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유명현은 막강한 인맥을 바탕으로 소속 가수를 키웠다.

하지만 프로듀싱 능력이 좋은 건 아닌지 나오는 가수마다 줄줄이 말아먹었다.

그러던 어느날, 첫 대박이 터졌다.

라희였다.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한 소울 넘치는 목소리로 ‘한국의 디바’라는 찬사를 듣는 라희.

그녀는 첫 앨범에서부터 대박을 치더니 그 후로도 승승장구했다.

그녀 덕분에 유명현은 사옥을 세웠다.

지금 5억이 넘는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것도, 새 가수에 투자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라희가 돈을 벌어다 준 덕분이다.

그러나 라희는 이제 유명현의 곁에 없다.

그냥 나간 것도 아니고, 소송까지 걸고 갔다.

덕분에 밀린 정산금을 지급해야 하는 유명현은 기둥뿌리가 뽑힐 지경이었다.

유명현은 화가 났다.

‘망할 년. 주워다 놨더니, 감히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그깟 푼돈 때문에 고소를 해?

라희에게 정산금을 주고 싶지 않았던 유명현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우선 라희가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방송국 피디와 작가에게 연락을 쫙 돌려서 섭외 자체 막은 것이다.

물론 라희도 인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간간이 행사 스케줄에 얼굴을 비추기는 하지만, 그저 그뿐.

이렇게 계속 활동을 못 하다가는 대중에게도 점점 잊혀질거다. 라희도 점점 압박감을 느끼겠지.

그때 라희에게 접근해 방송을 풀어준다고 제안을 하는 것이다.

대신 정산금을 포기하라고 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상황이었는데···.

“천마는 뭐하는 놈이야?”

천마 때문에 그 계획이 박살 났다.

<음악의 전당>에서 천마와 레전드 무대를 만들어 낸 라희는, 집요한 방해에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대중의 인지도를 업은지라 더 이상 막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던 와중에 라희의 인스타에는 새로운 소식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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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라비들을 위해서 열심히 작업하고 있어요! 곧 만나요~

(천마신교에서 작업하는 인증샷)

#라희#신곡#천마#미니롱#같이_작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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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와 같이 곡 작업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시발··· 이러면 완전 나가린데.”

댓글을 보아하니 다들 기대가 된다면서 난리도 아니다.

이대로면 라희에게 제안의 'ㅈ'자도 꺼내지 못할 텐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른 놈들까지 라희 꼴이 나면 안돼.”

당장은 단도리를 쳐놨다지만, 라희가 잘나가면 소속사의 다른 가수들도 보고 배울 게 뻔했다.

- 나도 한번 확 들이받아 봐?

이런 불순한 생각들을 할 거란 말이다.

“그건 무조건 막아야 해.”

다른 가수까지 정산 문제를 걸고넘어지면 유명현은 진짜 끝장이다.

“아무래도 안되겠군.”

유명현은 문제의 근원인 천마를 불러서 한마디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소속 가수한테 하듯 협박을 할 수는 없다.

천마는 잘 나가는 작곡가이며 차트를 장악하고 있는 가수이다.

거기에 300만이 넘는 대형 뉴튜브 채널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대신 적당히 구슬려야겠군,”

천마가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아직 연예계 짬밥을 먹은 지 1년밖에 안 된 놈이다.

집구석에서 방송만 하며 사모임에도 나가질 않으니, 아직 연예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도 못 했겠지.

그런 하룻강아지에게 자신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보여줄 생각이다.

'그런 놈 하나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니지.'

생각을 정리한 유명현이 사람을 불렀다.

“야!”

호통 소리에 실장이 후다닥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천마한테 연락해서 내가 좀 보자고 한다고 해.”

하지만 그놈은 오란다고 해서 갈 놈이 아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읽씹이란걸 당한 유명현은 결국 무거운 엉덩이를 들었다.

*

<음악의 전당>이 끝나고, 라희는 다시 방송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었다.

하지만 소속사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소속사에 들어가려니까 유명현 그 새끼가 생각이 나서요. 당분간은 혼자 해보려구요.’

그래도 라희는 종종 우리 회사에 놀러 왔고, 마침 휴식기를 가지면서 놀고 있던 미니롱과도 친해졌다.

지난번에는 같이 방탈출을 갔다 왔다더라.

그러다 얼마 전.

나와 미니롱 그리고 라희가 한자리에 모이게 됐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우리는 그냥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미니롱은 둘이서 보드게임을 했고, 라희는 들고 온 기타를 조율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건반을 두드리며 악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가볍게 코드를 몇 개 돌리는 와중에, 현을 뜯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미료처럼, 경쾌한 플럭 사운드가 내가 만들어진 멜로디 위에 뿌려진다.

두 소리는 서로 어우러질 때도 있고 불협화음을 내기도 하며 서서히 얽혀나갔다.

그때 보드게임을 하던 롱서아가 냅다 외쳤다.

“저도 할래요!”

"...?"

같이 보드게임을 하던 작민지가 당황했다.

하지만 롱서아는 말릴 틈도 없이 베이스를 잡았다.

화음 사이에 절묘하게 자리 잡은 베이스는, 멜로디의 중심을 잡아주며 곡의 틀을 만들기 시작했다.

결국 작민지도 고개를 내저으며 즉흥적인 합주에 참여했다.

네 가지 악기가 자유롭게 섞인다.

한 사람이 치고 나가자 다 같이 우다다 따라붙기도 하고,

지휘자의 손끝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오케스트라 같은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그저 각자의 마음이 가는 대로 풀어냈건만, 막상 결과물을 보니···.

“...괜찮은데? 잘 발전시키면 작품 하나 나올 것 같은데.”

“그쵸그쵸? 저도 연주하면서 느낌이 딱! 오더라고요.”

“같이 작업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나 역시 이 곡이 마음에 든다.

그렇게 만장일치로 우리는 공동으로 작업을 하기로 했다.

마침 우리의 즉흥 연주가 강여름이 설치한 카메라에 담겼기 때문에, 이참에 곡을 만드는 과정을 내 채널에 올리기로 했다.

며칠 뒤, 같이 모여서 작업을 하기로 한 날.

우리는 회의실에 모여 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좋았다.

그동안 각자 생각한 것들이 많았는지, 아이디어는 끝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강여름은 눈을 빛내며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곡이 거의 다 완성이 되어갈 즘이었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며 갑자기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사장이 여기에 있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웬 되다 만 대머리가 서있다.

난 저런 사람을 초대한 적이 없는데.

남의 집에 갑자기 쳐들어온 주제에 기세가 등등한 게 심히 거슬린다.

“넌 뭐냐?”

“뭐? 나를 몰라?”

"내가 알아야 해?"

남자는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황당한 게 누군데.

저놈의 등장으로 흥겨웠던 분위기가 모두 식었다.

방금 전까지 같이 웃고 떠들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미니롱은 당황해서 발을 동동 굴렀고, 강여름은 토끼 눈이 되었다.

그리고 라희가 벌떡 일어났다.

“야 유명현! 너,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내가 다시 만나면 남아있는 머리털 다 쥐어 뜯어버릴 거라고 했지?”

그녀의 말을 듣고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이 유명현 대표군.’

유명현은 라희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허 참. 소속사 대표한테 이 새끼 저 새끼라니. 이봐 천마, 자네 정말 저딴 년이랑 일할 거야?”

“뭐? 저딴 년? 이게 뒤질라고 진짜.”

라희가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려는 걸 미니롱과 강여름이 겨우 막았다.

“잠깐만요. 라희 씨!”

“지, 진정하세요!”

유명현은 붙잡힌 라희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하여간 건방진 년이.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같은 계집애는 발도 못 붙이게 할 수 있어.”

그러면서 자신이 음악계를 꽉 잡고 있다느니, 피디들도 자기 말이면 껌뻑 죽는다느니 등의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어찌나 의기양양하게 말을 하는지, 이 방에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건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한창 거들먹거리던 그는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을 쓱 훑어보았다.

라희와 미니롱을 지나, 상황을 지켜보던 나에게까지 시선이 닿았다.

그는 가르침이라도 내려준다는 듯이 운을 뗐다.

"이보게 천마 양반. 자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년이랑은 일하는 거 아니야.”

나는 비뚜름하게 그를 쳐다봤다.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개념도 같이 날아가 버린 건가?”

“뭐, 뭐? 머리가 어째?”

흥분한 유명현은 나에게 삿대질을 했다.

이 싸가지 없는 놈이?

나는 그 손가락을 잡고 한줄기의 내공을 불어넣었다.

“누구 앞에서 손가락질이야.”

음공은 음파를 매개로 하기에 나의 내공 역시 파동의 성질을 띤다.

충격파가 관절 마디마디를 휘젓고 다니자, 유명현은 얼굴이 빨개진 채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너 이 새끼 이거 폭행으로 고소할 거야.”

나는 코웃음을 쳤다.

글쎄. 내공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입만 열면 오물만 나오는 하수구 같은 주둥이는 쓸모가 없어 보이는군.”

"오, 오ㅁ···."

유명현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방금 전 유명현의 몸속에 심어둔 내공을 움직였다.

몸속을 한참 돌아다니고도 남아있던 내공은 유명현의 혈을 자극하여 강제로 그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으브브! 으ㅡ?ㅡㅡㅡ?”

아마 한동안은 말하기 힘들 거다.

나는 그대로 유명현의 목덜미 옷깃을 잡았다.

“···켁!”

유명현은 버둥거렸지만 제압하는 건 힘들지 않았다. 내공을 조금 쓰자 그대로 질질 끌려서 나온다.

문을 열고 유명현을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그대로 돌아서려는데, 유명현이 갑자기 달려든다.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얼굴이 빨개진 채로 소리를 지르는데,

“ㅡ ㅡㅡㅡ! ㅡㅡ ㅡㅡㅡ?”

말소리는 안들리지만 대충 뭐라고 하는지 알겠다.

이럴 때는 지금이 현대사회라는 게 조금 짜증이 난다.

‘무림이었으면 그냥 모가지를 비틀어버리면 되는데.’

아쉽지만 다른 방법을 쓰는 수밖에.

나는 목소리에 내공을 담았다.

마치 초저주파처럼, 내 목소리가 유명현의 귓가에서 스산하게 울렸다.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었으면 그냥 집에 가서 발이나 닦고 자. 사람 여럿 귀찮게 하지 말고.”

유명현이 웅얼거리는 입을 닥쳤다.

“그리고 수작질하면 내가 너는 죽인다.”

이건 진심이었다.

*

온갖 병원에 다녀봐도 차도가 없던 유명현은 사흘이 지나고 나서야 목소리를 되찾았다.

퇴원한 후, 그는 씩씩거리면서 회사로 돌아왔다.

“감히! 어린 새끼가 싸가지 없게! 머리가 어쩌고 어째?”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며 화를 내보았지만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천마의 눈을 마주친 순간, 그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드는 순간.

마치 심장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애송이같은 놈에게 압도당했다는 게 너무나도 분명해서, 더 분했다.

“듣자하니 그쪽 신인 가수가 이번에 데뷔했다고 했지?”

유명현은 책자를 하나 꺼냈다. 커다란 앨범만큼 두꺼운 책자는 모두 명함으로 채워져 있다.

이건 유명현의 전재산이나 다름없다.

지금까지 라희 말고는 대박 난 가수가 하나도 없지만, 이 업계에서 버티고 살아남게 해준 인맥.

40년 동안 유명현이 쌓아둔 인맥이 모두 여기에 있다.

유명현은 먼저 음악 방송 피디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에요. 성 피디님.”

- 유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어요?

“나야 잘 지냈지. 오늘 한 잔 어때요?”

- 아이고. 서로 바쁜 거 다 알면서. 무슨 일입니까?

“하하. 우리 피디님은 말이 잘 통해서 좋다니까. 내가 작은 부탁이 하나 있는데 말이에요.”

유명현은 기름기가 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천마신교에서 신인 하나가 방송에 나가죠? 내가 그놈들 보고 왔는데 아주 싹수가 노랗더라고. 선배에 대한 예의가 없어, 예의가.”

유명현은 천마신교의 험담을 열심히 늘어놓으며 방송 출연을 못 하게 부탁했고, 피디는 흔쾌히 수락했다.

사실 피디도 천마를 고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음방에 나오라고 했는데 모조리 퇴짜를 놓았다.

'1년밖에 안 된 신인 주제에 PD한테 인사도 안 와? 싸가지 없는 놈. 이참에 천마 놈도 길들여야겠군.'

길성진의 빈자리쯤이야 언제든지 채울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 PD가 점찍어둔 사람이 있었다.

- 그럼 당분간 천마 소속사 가수들은 나오지 못하게 해놓겠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혹시 요즘 걸그룹 중에 '홀리데이즈'라고 아시나요?

"알다마다요. 거기 소속사 사장이 내 친한 후배인데."

- 그래요? 그럼 어떻게 섭외를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그럼요. 내가 곧바로 그쪽에 연락 넣어보겠습니다."

그 후로도 유명현의 통화는 몇 번이나 이어졌다.

긴 시간에 걸친 전화 끝에, 유명현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흐흐흐. 두고 보자.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

.

.

하지만 천마는 콧방귀를 뀌었다.

“음방? 그게 뭐 대수라고. 내 뉴튜브 조회수가 더 잘 나오는데.”

방송에 나오지 말라고?

그럼 내가 만들지 뭐.

그렇게 음공의 묘리를 한 술 곁들인, 천마의 음악방송이 시작되었다.

< 천마의 음악방송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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