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76화 (76/191)

< 천마의 음악방송 (3) >

결국 길성진이 나가기로 한 모든 방송은 취소됐다.

첫 음악 방송을 눈앞에서 모두 날린 길성진은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왜 나한테는 항상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숨고찾부터 시작해서 히트메이커.

그리고 이제는 데뷔 무대까지.

뭐라도 해보려고 하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

이쯤 되니 길성진은 자신이 불운의 아이콘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휴, 내 마이크는 언제 써보지?”

길성진은 속상한 마음에 괜히 마이크를 꺼내서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직원들이 길성진을 위로했다.

“에이,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요. 곧 축제 무대도 있잖아요.”

“맞아요. 거기도 규모가 큰 편이니까 힘냅시다!”

이 모든 소란에, 신곡을 다듬고 있던 나와 라희도 밖으로 나와보았다.

나는 직원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들었다.

볼 것도 없이 유명현의 짓거리이다.

함께 있던 라희는 괜히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어떡하지. 나 때문에 데뷔 무대를 망쳤네.”

“그게 왜 누나 때문이에요. 유명현이라는 놈이 이상한 거지.”

모두 침울해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그러다 결국 유명현 욕을 한마디씩 하며 애써 힘을 내려고 한다.

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어 대가리 같은 놈 하나 때문에 사무실 분위기가 이게 뭐야.

"자자, 여러분."

나는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사람들을 집중시켰다.

음악 방송에 못 나가게 한다고?

그러면 하나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이참에 우리도 음악 방송 하나 만들죠.”

내 선언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뭘···? 만드신다고요?”

“음악 방송을? 우리가요?”

“음. 웹 예능이라도 제작비가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만.”

혼돈과 물음표가 가득한 와중에 길성진은 혼자 감동한 눈치였다.

“천마 님···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실 줄이야. 만들어주시면 열심히 할게요!”

“......”

딱히 널 위한 건 아니었는데.

“어차피 콘텐츠를 새로 만들기로 했잖아요. 그 일환으로 음악 방송을 하는 거죠.”

지금까지 내 채널의 콘텐츠는 너무 한정적이었다.

라이브로 하는 고민 상담소와 주간 곡소리, 그리고 컴백일지까지.

이제는 레퍼토리를 좀 추가할 때가 되었다.

사실 새로운 코너를 추가하자는 말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몇 달 전 팬사인회가 끝난 직후, 나는 팬사인회 같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코너를 주문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음악 방송을 해보는 거지.

뭐,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스케일은 훨씬 커지겠지만.

내 말에 사람들을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모여있겠다, 그냥 이 자리에서 콘텐츠 회의까지 시작했다.

“뉴튜브 라이브로 생중계를 하고, 나중에 원본이나 편집본을 올리면 좋을 것 같아요.”

“다른 아티스트를 섭외하기 위해서는 우리 음악 방송만의 메리트가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독보적인 특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게 필요해 보여요.”

독보적인 특색이라.

맞는 말이다. 내 음악 방송은 다른 방송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걸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전부터 몇 가지 장치들을 생각해보았다.

음향을 최적화할 수 있는 공간 설계.

음파를 조정하여 사람들의 오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장치.

바로 음공을 이용한 기관진식이다.

아수라대환상진 같은 진법을 쓰는 건 불가능하지만, 현대의 음향 장비에 기관진식 몇 가지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독특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장치를 한번 설치하면, 해체 및 이동이 쉽지 않아서 아예 스튜디오를 매입하거나 장기 대관을 해야 하는데···.

이걸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적당한 곳이 없을까?

한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리며 문자가 왔다.

그 내용을 읽은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스튜디오 구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겠는데.'

그 밖의 자잘한 문제는 직원들이 알아서 하면 되는 거고, 이제 더 중요한 걸 논의할 때이다.

“자, 우리 유명현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모든 문제의 원인 제공자, 유명현을 조질 시간이다.

*

두 번째 회의가 시작되었다.

주제는 유명현을 어떻게 조지느냐였지만, 논점은 그날 찍힌 영상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차선우는 영상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기가 막히게 잘 찍어놨네.”

유명현이 갑질을 하는 모습부터, 방송국과 붙어먹었다는 내용이 하나도 빠짐없이 담겨 있었다.

“헤헿”

천마신교 레코즈 안에 있는 사람은 강여름의 카메라를 피할 수 없다.

그건 유명현도 예외는 아니었다.

차선우가 말했다.

“이 영상을 공론화 시키면 좋겠는데요.”

가장 쉬운 방법은 차선우의 채널에 그냥 영상을 올려버리는 거다.

300만 명이 넘는 구독자가 그 영상을 본다면, 10분도 안 돼서 연예면을 유명현의 기사로 뒤덮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김영훈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공식 계정으로 배포를 해버리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같은 법적 문제의 소지가 있거든요.”

그때 고민하고 있던 옥수진이 말했다.

“제가 방금 생각한 게 있거든요.”

옥수진은 기본적으로 김영훈과 입장이 같았다.

해당 영상은 사적 영상으로 볼 수 있기에, 천마가 직접 유출하면 분명히 문제가 생긴다.

물론 천마는 크게 신경 쓰지 않겠지만, 실무를 처리하는 옥수진은 천마신교에 괜한 잡음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았다.

“우리가 영상을 유포했다는 것만 모르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옥수진은 우회적인 방법에 대해 설명했고, 그 의견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한 글이 올라왔다.

해당 커뮤니티는 직장 인증을 해야지만 활동할 수 있는 곳인데, 그래서 다른 커뮤니티보다 정보의 신뢰도가 높은 편이었다.

천마신교 레코즈의 이름을 달고 있는 글은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수천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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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ㅁㅎ 갑질 오지네

얼마전에 ㅇㅁㅎ 쳐들어 왔는데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음

막 자기가 ㄹㅎ 망하게 했다고, 신생 회사 망하게 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협박하는데···

근데 대표님이 존나 쿨하게 내쫓아서ㅋㅋㅋ 지금 소속가수 음방 다 막힘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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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ㅁㅎ? 설마 딴ㄸㄹ의???

ㄴ 이거 맞는듯 얘 원래 논란 많아

- 근데 ㅇㅁㅎ이 그정도 힘이 있어? 피디들도 막 조종하고 그래?

ㄴ ㅇㅇㅇ매니지먼트 쪽에 힘이 강해서 예능국이랑 친함

ㄴ 라희 최근에 방송에서 못본 거 같은데 겁나 싸하네;;;;;

- 야 그러고 보니까 길성진도 이번에 방송 안나오네? 걔도 천마신교 소속 아님?

ㄴㅇㅇ 팬들이 서포터즈 해 주려고 물어봤는데 취소됐대

-방금 sns 확인해봤는데 얼마 전에 첫 음방에서 마이크 개시할 거라고 엄청 자랑하고 다녔네

- 이거 진짜면 개불쌍하다ㅠㅠㅠㅠ

- 저는 중립기어 박습니다. 증거가 없네요.

ㄴ 2222 영상이나 녹음본같은거 나오기 전에는 못믿지

원래 연예계 사건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십거리다.

거기에 원로 가수 갑질과 최근 핫하던 천마까지 언급되자, 해당 글에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몇몇 사람들은 게시글을 다른 커뮤니티에 퍼 나르며 사건은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관심이 절정에 다다를 무렵, 강여름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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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신교 레코즈 직원이에요

진짜 고민 많이 하고 올리는 건데···

요새 유명현 갑질 논란 많더라고요

(캡처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는데 영상 찍었어요

많이 고민하고 올려 봅니다

지금 길성진 활동 막혀서 엄청 속상해하고 있는데, 그 모습 볼때마다 화나네요

많은 사람들이 유명현의 실체에 대해서 알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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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된 영상은 강여름이 찍은 원본은 아니었다.

먼저 영상의 길이를 짧게 줄였다. 특히 천마가 유명현을 쫓아내는 장면은 의도적으로 자르고, 유명현이 갑질을 하는 모습과 소리를 지르는 장면만 강조했다.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화질도 낮추고, 앵글도 몰래 찍은 것처럼 비뚤게 바꿨다.

거기에 손떨림까지 추가하자 10초 남짓한 영상에는 현장감이 물씬 풍겼다.

정말로 직원이 유명현 몰래 찍은 듯한 급박함이 영상 너머로 느껴지고 있었다.

- 중립기어 풉니다 유명현 개새끼

- 진짜 피디들이랑 짝짜꿍하는게 있었구나.

- 2023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네

- 나 라희 진짜 좋아하는데. 방송 안나와서 무슨 일인가 했어

- 유명현 인성은 레전드다

그리고 커뮤니티에서만 돌았던 글들이, 강여름의 영상을 기점으로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딴따라의 보컬 유명현··· 갑질 의혹에 휩싸여!]

[신인가수 길성진의 음악 방송 취소, 그 진실은?]

[가수 유명현, ‘영상은 조작되었다’... 법적 대응 예고해]

유명현이 죽지 않으려고 아득바득거리는 모양이지만, 차선우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유명현을 쫓아내면서 차선우는 분명 경고했다.

수작 부리면 죽여버리겠다고.

그리고 천마는 뱉은 말을 꼭 지키는 사람이다.

유명현의 엔터테인먼트 건물 앞.

차선우가 도착했다.

*

유명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천마 이 미친놈이 지금 무슨 짓거리를 한거야.”

대체 저 영상이 어디서 흘러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10초짜리 영상 하나 때문에 그가 이룬 모든 게 위험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명현은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생각이 없었다.

명함책을 뒤적거리며 열심히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 먹여놓은 게 있어서인지, 그가 돌린 수십 통의 전화는 그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흥, 증거도 없는데 잡아떼면 그만이지.”

이제 몇 달 조용히 지내면 될 것이다.

그럼 대중들은 분명 다 잊을 테니까.

하지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유명현이 씩씩거리며 핸드폰을 거칠게 내려놓는 순간, 그의 사무실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바로 천마였다.

유명현은 천마를 보자 머리끝까지 올라와 있던 화가 폭발했다.

이 상황을 만든 놈. 모든 일의 원흉.

그래서 평소 부하직원에게 하듯이 샤우팅 한발을 날리려고 했지만, 천마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화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오싹-

무심한 듯 낮게 가라앉은 눈동자.

사람의 것이 아닌 듯한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머릿속을 파고든다.

“아둔한 놈. 내가 분명 경고했건만.”

“너, 너, 이···.”

“닥쳐라.”

목소리가 콱 막혔다.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말하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네가 저지른 일이니 직접 수습해야겠지.”

그 말을 끝으로 마치 영혼이 빨려가는 느낌을 받으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

.

.

1시간 후, 소속사 가수는 유명현의 부름을 받고 도착했다.

그는 이번 분기에도 정산을 받지 못했다.

매니징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적자가 난 탓에, 정산을 해줄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정산 얘기를 꺼내려면 유명현은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오늘은 웬일로 먼저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이참에 정산 문제를 매듭지을 생각이었다.

가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장님 부르셨나요?”

정면에는 텅 빈 눈동자에 동공이 풀린 유명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

천마가 함께 앉아 있었다. 시원한 미소와 함께.

< 천마의 음악방송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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