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77화 (77/191)

< 천마의 음악방송 (4) >

다음날, 뉴스의 연예면이 시끌시끌해졌다.

[유명현 대표, 자필 사과문으로 모든 잘못 인정··· 은퇴 선언]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지금까지 올라온 영상은 모두 조작됐다고 잡아떼던 사람이, 돌연 모든 잘못을 인정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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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명현입니다.

가장 먼저 저의 잘못으로 많은 분들께 피해를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한 회사의 대표이자, 같은 아티스트로서 후배 가수들을 키워내는 게 저의 책임이었는데 미숙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먼저 정산금은 어제 지연이자까지 포함하여 모두 지급하기로 서약했습니다. 추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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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소속 가수들에게 주어야 할 정산금을 조작해서 줄이거나 지급을 미뤄왔다.

그 과정에서 소속 가수들을 협박하고 괴롭게 했다.

그래서 그 책임을 느끼고 연예계에서 영영 은퇴하겠다.

첫 단락을 요약하자면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특이한 점은 사과문치고 내용이 상당히 디테일했다는 것이다.

첫 단락만 A4 용지로 10페이지는 넘어갈 정도로.

유명현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누구의 정산금을 얼마나 조작했는지 상세하게 적어놓았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에 사람들은 ‘개꿀잼!’을 외치며 유명현의 반성문을 읽었다.

당연히 유명현을 욕하는 건 빼놓을 수 없었다.

- 와 레전드 가수는 정산금도 레전드로 떼먹네

- 유명현 소속사 건물 올릴 때부터 이상하기는 했음. ㄹㅎ말고는 뜬 사람도 없는데 사옥을 올리나 했는데

ㄴ 2222 차도 페라리 타고 다니더라 그게 다 지 돈이 아니었다는 거네

- 여기 매니저도 이상하잖아 신인 가수들 길들이려고 손찌검도 한다던데

- 이제 유명현은 끝이네 아무도 안불러줄듯

ㄴ ㅋㅋㅋㅋㅋ감빵에서 불러줄듯

그렇게 유명현을 씹으면서 열심히 사과문을 읽던 사람들도 중반부쯤 이르러서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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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저는 방송사 PD들과 유착하여 다른 소속사 가수들의 기회를 빼앗았습니다.

연예부 기자들과 방송계 관계자들 역시 이 일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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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사이즈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개인의 일탈에서, 조직적인 범죄로.

이후 이어진 내용에는 유명현이 자신의 인맥을 이용하여 다른 소속사 가수들의 자리를 빼앗은 일부터, 누구와 어떻게 붙어먹었는지, 돈은 얼마가 오갔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이 정도면 자필 사과문이 아니라, 검찰에서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나서 쓴 진술서 수준이었다.

- ??? 이게 진짜라고 ???

- 유명현 개쓰레기네 얘네들 때문에 피해 본 애들은 무슨 죄냐

- 사과문인줄 알았는데··· 자폭선언문이었네

- 걍 다 같이 뒤지자는 건데ㅋㅋㅋㅋ 지금 이름 나온것만 10명 넘었음

경악의 연속이었다.

자필 사과문에서 쓰여있는 내용도 충격적이지만,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면면 또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방송가의 수많은 관계자부터, 연예부 기자, 매니지먼트의 대표까지.

가히 연예계 게이트라고 불릴 수 있는 정도의 폭탄이었다.

유명현이 쏘아 올린 폭탄은 방송계로 날아가 뻥! 터졌다.

일명 '유명현 리스트'에 적힌 사람들은 예외 없이 대중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이건 모함이다!’라거나, ‘증거가 있냐!’라며 잡아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은 더 세게 맞을 뿐이다.

특히 그중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피디들, 그것도 음악방송의 PD였다.

사과문에 정산금 다음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그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음악방송 쪽은 이전부터 갑질로 말이 많이 나오곤 했는데, 이번 기회에 그동안 쌓였던 일이 다 터지면서 대중들의 뭇매를 맞았다.

- 저정도 문제있으면 음방 피디는 짤라야하는거 아님?

- 이유가 뭐든 같은 소속사 다 출연 막은 건 갑질이지

- 하여튼 방송국 놈들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갑질만 오져

ㄴ 시청률 1퍼센트 따리로 별 지랄을 다하네

- 솔직히 피디들이 제일 악질 아니냐?

- 결론적으로 피디들이 음방에서 장난질 안했으면 이런 일 없는거잖아

- 2023년에 가수들 줄 세워서 인사시키는게 말이 되냐ㅋㅋㅋㅋ

사실, 가수 입장에서는 뮤비 말고는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음악방송밖에 없다.

인기 가수는 각종 예능이나 자작 콘텐츠를 통해서 팬들과 만날 수는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명확하다.

그리고 신인가수나 중소기획사의 가수는 음방을 제외하고는 얼굴을 비출 만한 프로그램을 잡기도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피디들의 요구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알게 된 팬들의 입장에서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갈 뿐이었다.

자기 가수를 볼 수 있는 무대가 음악방송뿐인데, 피디라는 놈은 이걸 이용해서 무리한 요구를 해대니···.

그동안 쌓인 피로가 터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 나 이제 음방 안봄

ㄴ 22 나도 이제 마음 편하게 못보겠다

ㄴ 피디들 나와서 사과 박기 전까지는 안봄

ㄴ 나는 사과 박아도 안볼래

- 근데 음방 말고 무대 볼 수 있는 곳 없나?

- 솔직히 다른 음악 프로그램 노잼이라서ㅠㅠㅠㅠ 음방 만한게 없긴한데

ㄴ 나도··· 본진이 망돌이라 인기 프로에서는 안불러줌ㅠㅠㅠ

- 소속사 같은 곳에서 안만들려나··· 지금 나오면 무조건 갈아타는데

ㄴ 일해라 소속사!

대중은 음악방송의 대체재를 원하기 시작했다.

기존처럼 가수들의 무대를 볼 수 있으면서도, 또 이런 구설수가 나오지 않는.

그런 방송을 원했다.

.

.

.

한편, 천마신교 레코즈 사람들은 의욕에 넘치고 있었다.

주구장창 어깃장만 놓던 유명현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혼자만 간 게 아니라, 주변의 쓰레기들을 모두 떠안고 가버렸다.

유명현이 갑자기 왜 자폭했는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천마신교 레코즈는 파티 분위기였다.

먼저, 라희가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말했다.

“유명현이 도움이 될 때도 있네요.”

라희는 아직 천마신교 소속은 아니지만, 이번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같이 일하고 있었다.

유명현의 비보에 그녀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얼마전에 정산금도 제대로 입금했더라고요. 이자까지 쳐서.”

바득바득 우기던 유명현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였다.

또한 길성진.

음방이 잘리고 침울해하던 그는 희희낙락해서 말했다.

“저도 다시 방송에 나와달라고 연락을 받았어요.”

유명현과 작당한 피디들이 모두 물갈이된 후, 길성진에게 섭외 연락이 쏟아졌다.

아마 여론을 의식한 방송국 측에서 부랴부랴 연락을 한 듯싶었다.

물론 길성진은 음악방송에 나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눈이 퀭해진 옥수진 역시 에너지가 급격하게 차올랐다.

“이대로라면 우리 음악방송이 좋은 대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중들이 기존의 음악방송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천마의 음악방송>은 회사가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변했다.

직원들은 부지런하게 <천마의 음악방송> 제작에 들어갔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 법이라고, 지금은 음악방송을 발표하기에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천마신교 레코즈의 직원들은 노가 아니라 모터를 장착하고 일했다.

마지막으로 천마.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천마는 음악방송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진성 그룹이라···.”

얼마 전 문자를 보낸 사람.

음악방송을 할 무대, 진법을 이용한 공간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

바로 진성 그룹의 김소현이었다.

*

김소현은 클래식 애호가이다.

그녀가 클래식을 좋아하는 확실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클래식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바로 불변성.

수백 년을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수천 년은 거뜬하게 이어질 장르.

수십억의 사람들이 향유하여도 닳지 않는, 어쩌면 가장 오래된 건축물보다 더 길게 이어질 역사.

변하지 않고 영속하는 아름다움에, 김소현은 매력을 느꼈다.

그렇게 평생 클래식만을 들어오던 그녀는 최근 일탈을 시작했다.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

차량 이동 중에는 언제나 클래식을 들었지만, 오늘은 그녀의 손이 자연스럽게 뉴튜브 채널로 향했다. 이내 태블릿 화면에 떠오른 건 천마의 채널이었다.

‘흐응, 오늘은 뭘 들을까?’

처음에 천마의 채널을 찾은 건 단순한 이유였다

기부 콘서트에서 들었던 노파와 야수 공연을 다시 보기 위해서.

그때 작은 모니터 화면으로만 무대를 봤던 게 아쉬워서, 딱 그것만 다시 볼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그녀는 매일같이 이동할 때마다 천마의 동영상을 보는 중이었다.

며칠 동안 인기 영상들은 쭉 섭렵했고, 최근에는 직캠 위주로 찾아보고 있었다.

지금 보는 건 첫 콘서트의 엔딩 무대였다.

‘연주회랑은 또 다르구나. 2집 타이틀 곡이 타임랩스였던가? 현대예술을 보는 것 같네.’

천마를 만나기로 한 오늘도 그녀는 천마의 영상에 푹 빠져있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주는 것도 모른 채.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

“저, 대표님?”

“.......”

영상에 집중한 김소현은 대답도 하지 못했다.

결국 기사는 김소현을 부르는 걸 포기하고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까, 대표님이 영상을 다 보고 나면 부를 생각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서야 정신을 차린 김소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곤 약속 장소에 도착한 걸 깨닫고는 화들짝 놀랐다.

“어? 벌써 도착했나요?”

“네. 몇 분 전에 도착했습니다.”

“...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니까. 도착했으면 말하지 그랬어요.”

“말씀드렸습니다만 대답이 없으셔서요.”

천마에게 푹 빠져있는 모습을 들킨 것 같아서 괜히 무안해졌다.

김소현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태블릿을 덮었다.

“흠흠. 요즘 알고리즘은 별걸 다 보여주네. 아직 늦지는 않았죠?”

기사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지금 나가시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김소현은 옷깃을 깔끔하게 정돈한 다음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오늘 김소현이 천마를 만나자고 한 이유는 그녀가 하는 문화예술 사업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진성 국제갤러리에서 주관하는 국제 전시회.

정확한 날짜가 나오진 않았지만 늦어도 올해 말에는 열릴 예정이다.

한국을 포함한 5개의 국가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전시회에 참여하며, 전 세계를 순회하며 전시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해당 전시회에서는 단순히 전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작품을 테마별로 나누고 거기에 맞는 음악을 곁들일 예정이다.

마치 영화에서 배경으로 깔리는 스코어가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처럼.

미술 전시회도 음악을 접목해서 관람객들이 쉽고 친숙하게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대중을 사로잡는 것이, 그녀가 이번 전시회에서 특별히 신경 쓰고 있는 포인트였다.

그리고 김소현은 그중 하나의 테마를 맡길 인물로 천마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노래는 완벽하지.'

단순히 곡을 잘 쓴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 점의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섬세하게 사운드를 배치하고 결합한다.

극도로 정제되어 예술성마저 느껴지는 노래는 주제를 정확하게 통찰하고 표현해낸다.

이는 김소현이 클래식에서 느꼈던 매력과 일통했다.

그래서 직접 만나보고 싶었고, 동시에 궁금하기도 했다.

'과연 천마가 예술작품을 보고도 같은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 바쁜 와중에도 직접 시간을 내서 천마를 보러 온 것이다.

또각 소리를 내며 걷던 걸음이 문 앞에서 멈췄다.

커다란 문이 열리고, 마침내 천마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천마의 음악방송 (4)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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