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79화 (79/191)

< 천마의 음악방송 (6) >

진성 의료원의 소아과 전문의 박 교수.

기부 콘서트에 다녀온 아이들이 모두 호전되었다.

이는 난치병 치료에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박 교수는 실마리를 찾는 데 몰두했다.

그리고 얼마 전, <음악의 전당> 제작진에게 부탁하여 그날 콘서트의 영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콘서트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특이점은 천마의 무대였다.

눈에 띌 정도로 변화를 보이는 아이들.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는 교수마저 '천마가 뭔가를 했나?'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영상 증거는 뚜렷했다.

음악 혹은 음파 치료는 현재에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분야이다.

콘서트 무대가 치료 효과를 내는 건 논리적인 비약이지만 그래도 유일한 단서였기 때문에, 교수는 천마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기로 했다.

천마의 콘서트 및 각종 무대 후기 찾아본 결과, 다른 가수에 비해서 유독 많은 '체험' 후기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일명 '안마송'에 대한 재미있는 게시글도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천마의 노래에 대해 음파 분석까지 진행한 후, 교수는 가설을 하나 세웠다.

'혹시 천마의 노래에 담긴 특유의 파장이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건가?'

본격적인 검증에 들어가기 전에, 교수는 천마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고 직접 체험해 보기로 했다

마침 인터넷을 찾아보니 <천마의 음악방송>에서 방청을 받고 있었다.

교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청을 하였고, 운이 좋게도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방청에 성공했다!

<천마의 음악방송> 당일.

진성 아트 스퀘어 별관에서 교수는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대표님? 여기는 어쩐 일이신가요?”

진성문화재단의 대표이사 김소현이었다.

클래식 애호가로 정평이 난 그녀가 연주회가 아닌 음악 방송에 올 줄은 몰랐다.

김소현은 빙긋 웃었다.

“저는 초청을 받아서 왔죠. 천마 님이 저랑 직접 계약을 체결했거든요. 그런데 교수님이야말로 여기는 어쩐 일이신가요?”

김소현의 물음에 교수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난치병 치료의 실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어머?"

"아직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천마의 노래에 담긴 음파가 치료에 적합한 속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교수는 자기가 생각한 가설을 설명했다.

논리에는 허점이 많고 허무맹랑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소현은 뭔가를 떠올렸다.

'그때 그 환상···.'

얼마 전 천마를 만났을 때, 그녀는 노래를 들으면서 환상을 봤었다.

하지만 김소현은 교수처럼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천마가 나에게 환상을 보여준다니. 말도 안 되지.'

자신이 천마의 노래를 듣고 그런 감상을 떠올린 것뿐이라고 판단했다.

그게 더 상식적이니까.

그래도 천마의 노래가 특별하다는 건 확실했다.

“연구에 꼭 성과가 있으시면 좋겠네요.”

김소현은 교수를 격려하다가 문득 그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교수님, 그런데 천마 님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 오신거죠?"

교수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김소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천마의 음악방송>이기는 하지만, 천마는 호스트이지 게스트가 아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오늘 무대에는 천마가 안 나오는데요?”

“?!”

교수가 당황했다.

그것도 잠시, 이내 불이 꺼지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천마가 준비해놓은 진법이 가동되었다.

"!"

아무것도 바뀐 건 없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교수는 뭔가 달라졌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넓은 초원 위에 있다가 어두운 동굴 속으로 옮겨진다면 누구라도 그 변화를 눈치챌 수 있듯이.

그를 둘러싼 공기 자체가 달라졌다.

분명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교수는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 공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길성진은 무대 위에 섰다.

음방이 취소된 날, 천마는 음악방송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을 위해서 음악방송까지 만들어주는 천마에게 고마워서, 길성진은 그때까지 마이크를 봉인하겠다고 다짐했다.

중간에 기다림이 길어져 힘들긴 했지만, 마침내 무대 위에 올라오니 그간의 고통이 자신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된 거 같아 뿌듯했다.

웬만한 일에도 긴장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무대는 그를 떨리게 했다.

소속사에서 처음으로 런칭한 음악방송의 오프닝 무대였고,

또한 진성 아트 스퀘어를 자신의 첫 무대로 삼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으니까.

길성진은 하늘색 커스텀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내뱉는 숨결에 떨림이 묻어나온다.

기분 좋은 설렘이 몸을 감싸고 이내 반주가 흘러나오는 순간.

"?"

길성진은 뭔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연습 때부터 조금 전에 리허설을 할 때까지.

수천 번은 들었던 데뷔곡 반주인데 지금은 낯설고 새롭다.

단순히 무대가 달라서, 아니면 자신의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다.

사운드의 수준이 달라졌다.

마치 매일 쌩얼만 보던 여자친구가, 오랜만에 풀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미고 나왔을 때.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생소하게 보이는 느낌이랄까.

'아트 스퀘어가 다르긴 하구나. 음향이 넘사네.'

노래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멜로디가 몸을 톡톡 건드릴 때마다 짜릿함이 올라온다.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꿈틀거리며 감각이 뚜렷하게 살아난다.

컨디션이 최고로 올라왔다.

이대로라면 뭘 해도 잘 될 거 같은 느낌이다.

길성진은 노래를 시작했다.

-Singing night

I sing in this night

‘와!’

첫 소절을 내뱉은 길성진이 속으로 감탄했다.

‘내 목소리 미쳤는데?’

자신이 부른 노래가 인이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들려오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다.

평소에도 자신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지만,

자기 노래에 감동을 받은 건 또 처음이었다.

마치 목소리가 그림을 그리는 듯 풀려나온다.

비 오는 어두운 밤, 그 아래서 고독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천마의 진법이 보여주는 효과 중 일부이다.

진법을 타고 흐르는 내공은 음파를 증폭시키고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하여, 그들을 현실 너머의 차원으로 이끌어준다.

영향을 받는 건 관객뿐만이 아니다.

인이어를 끼고 실시간으로 자신의 노래를 모니터링하는 가수들 또한 진법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다.

하지만 길성진은 대단한 착각을 해버렸다.

‘아무래도 무대 체질인가봐. 무대만 서면 노래가 잘 나오네.’

자신이 첫 무대에서 레전드를 찍고 있다고!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올라선 첫 무대.

그곳에서 역사를 써 내려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대단한 것이었다···!

길성진은 정신줄을 놓고 그 모습에 심취할 뻔했지만, 들려오는 멜로디가 그의 멱살을 잡아서 끌고 갔다.

길성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방청객은 그저 생동감 넘치는 무대에 감탄하기만 했고, 그건 방청하는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던 알바생.

그녀는 천마의 팬이었다.

사실 그녀는 오늘만큼은 알바를 하지 않고 <천마의 음악방송>에 가려고 계획을 다 세워놨었다.

일정이 공개됐을 때부터 사장님께 말하고 대타까지 구해놨지만···.

방청에서 떨어지면서 모든 계획이 무산되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천마의 채널에서 해주는 스트리밍을 라이브로 보는 중이었다.

다행히 그녀가 일하는 편의점은 사람이 많은 곳은 아니라서 적당히 눈치를 보며 영상을 볼 시간이 있었다.

“와!”

그리고 조금 전에 길성진의 무대가 끝났다.

“진짜 잘하는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길성진의 데뷔곡인 ‘Singing Night’는 어렵기로 유명하다.

끊임없이 변주되는 리듬, 한강만큼 넓은 음역 폭, 돌고래에 빙의한 듯한 고음부까지.

그런데 길성진은 라이브로 그 무대를 완벽하게 해냈다.

노래와 혼연일체가 된 길성진을 보니, 알바생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라이브를 이렇게 잘하기가 쉽지 않은데.”

실시간 스트리밍인데도, 음원을 듣는 것처럼 음질이 깨끗했다.

거기에 라이브 특유의 현장감과 풍성한 공간감까지 느껴져서, 5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콘서트장에 갔다 온 기분이다.

편의점 계산대는 콘서트장 좌석이 되었고, 화면 속의 가수들이 그녀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돈 좀 썼겠는데. 장비가 얼마나 좋으면 이런 느낌이 나지?”

물론 진실은 알바생이 생각하는 것과는 멀었지만, 그녀가 거기까지 알 수는 없었다.

오프닝 무대가 끝나고, 그제서야 후원 채팅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 천마재림! 만마앙복!

- 와··· 사운드 미쳤다 천마 이번에 돈 좀 썼나 보네

ㄴ 2222ㄹㅇ 나 콘서트 온 줄 알았음

- 다음 방청 존나 빡셀 거 같은데;;;;

- 길성진이 노래를 원래 저렇게 잘했나요? 음원 들을 때보다 훨씬 좋은데

- 방송사들 지금 이거 보면서 오열하고 있겠네 ㅋㅋㅋㅋㅋㅋ

- 무지성 까들 어디갔냐ㅎㅎㅎㅎ 영상 좀 보고 말하쥬?

평소에는 후원 채팅을 잘 남기지 않는 알바생도 오늘은 후원을 쐈다.

“이런 무대를 공짜로 볼 수는 없지. 뭐,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사실 알바생은 요 몇 주간 커뮤니티에서 어그로를 끌던 분탕들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나있었다.

천마가 음악방송을 만드는 걸 응원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어떻게든 천마를 깎아내리려고 기회를 보던 악플러 새끼들은 논란이 일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 뉴튜버가 음악방송?ㅋ

- 좀 컸다하면 문어발 확장ㅉㅉ 수준 나오죠

- 무대랑 음향 장비가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니고 무대 연출을 해본 적도 없고···. 천마 때문에 직원들 갈려 나갈 게 눈에 뻔히 보인다 에휴

비슷한 내용이 복붙한 것처럼 돌아다니는 걸 보니, 어딘가에서 사주를 받았나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내용 자체는 설득력이 있었다.

천마신교 레코즈는 레이블이지 전문적으로 방송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회사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누가 선동을 시작하자 우르르 몰려들어 우려 섞인 비아냥을 토해냈다.

그런데 웬걸.

뚜껑을 열어보니 걱정할 필요가 없네?

<천마의 음악방송> 퀄리티는 기존 방송국들이 만들던 음악 방송에 비해 전혀 꿀리지 않았다.

카메라 워크부터 무대 세트, 음향까지.

깔끔하고 흠잡을 곳이 없었다.

물론 몇몇 악플러들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시비를 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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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화제성은 좋겠다만 가수들이 여기에 나오려고 할까?ㅎㅎ

천마가 방송사랑 척을 진 건 다 알고 있는데. 방송국에 찍히면서까지 천마 채널에 나오지는 않을 듯ㅠㅠ

어떡하냐 가수가 나와야지 유지가 될 텐데···.

지금 무대 보니까 돈 진짜 많이 쓴 거 같은데 제작비 회수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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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짧은 게시글을 본 알바생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뭔 개소리야. 여기 음악방송에 진성재단 대표까지 찾아왔는데.'

<천마의 음악방송>을 하는 장소가 진성 아트 스퀘어이고, 재단 대표까지 첫 방송에 직접 찾아왔다.

이쯤 되면 방송사의 눈치를 보던 가수들도 흔들릴 것이다.

분명 천마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치밀하게 움직였으리라.

거기까지 생각하던 알바생은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편의점에 들어온 손님이 카드를 들고 바라보고 있었다.

“저 계속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셔서요. 이거 계산 좀 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알바생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계산을 해주었다.

아무튼 천마의 음악 방송은 성황리에 끝난 것처럼 보인다.

.

.

.

한편, <천마의 음악방송>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천마신교 레코즈.

갑자기 미국행이 결정되었다.

그 일의 발단은···.

< 천마의 음악방송 (6)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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