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뜻밖의 미국행 (1) >
천마의 회사는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시작은 성공적인 <천마의 음악 방송> 런칭이었다.
천마가 진성 아트 스퀘어를 대관한 건 신의 한 수였다.
거기에 진성 문화예술재단의 대표가 첫 방송에 참석했고, 천마가 국제 갤러리 전시회에 음악을 만들어준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 두 가지 외에는 천마와 진성그룹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천마와 진성그룹을 엮기 시작했다.
덕분에 가수들을 섭외하는 게 쉬워졌다.
방송국의 눈치를 보던 가수들은 조심스럽게 <천마의 음악 방송> 문을 두드렸다.
출연 문의가 쇄도하고 있었고, 가수 섭외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그리고 아티스트가 오면, 그에 딸린 팬들도 함께 이동한다.
음악 방송에 고정 시청자가 생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천마의 음악 방송>은 TV에만 나오지 않을 뿐이지, 정규 예능이나 다름없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프로그램이 히트를 치면서 천마신교 레코즈에도 일이 급격히 늘어났다.
“음악 방송 전담팀을 충원해야 해요. 사람이 부족합니다.”
“광고 문의가 오늘도 들어왔네요. 확인 부탁드립니다.”
“구독자 수가 400만 명이 넘었어요. 관리 인력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티스트 개별 전담팀도 만들어야 합니다.”
일이 늘어나면 직원이 필요한 건 당연지사.
천마신교 레코즈는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옥수진이 제안했다.
“이참에 유명현의 회사를 흡수하는 게 어떨까요?”
참고로 유명현의 회사는 망해가는 중이다.
유명현이 정산금을 지급한다고 개인 재산까지 처분했으며, 소속 아티스트들의 계약 해지 소송이 줄줄이 이어졌다.
거기에 대표가 각종 범법 행위로 수사를 받고 있으니 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리가 없다.
때문에 유명현의 회사 직원들은 졸지에 실직자가 되게 생겼다.
유명현의 회사를 흡수하면 귀한 경력직 직원을 손쉽게 채용할 수 있다.
천마는 옥수진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대신 면접은 제가 보도록 하죠.”
당연한 말이지만 무작정 직원을 채용할 수는 없었다.
천마는 섭혼술을 이용한 면접 신공을 발휘해, 이상한 놈들은 다 걸러내고 알토란 같은 직원들만 고용을 승계했다.
직원까지 충원한 천마신교는 쭉쭉 나아갔다.
이전까지는 그냥 뉴튜버 겸 가수가 차린 신생 회사라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규모가 있는 건실한 회사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천마신교가 가파르게 성장함에 따라, 총관인 옥수진의 업무는 폭증했다.
‘으아, 바쁘다 바빠.’
원래부터도 천마신교 내에서 업무량이 제일 많은 옥수진이었는데, 음악 방송을 기점으로 그 업무량이 확 늘었다.
지금은 전담팀이 따로 있지만, 음악 방송도 초창기에는 옥수진이 총괄했다.
전담팀을 신설하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 유명현 회사에서 새로운 인력을 데려왔다.
그러면 증원된 인력을 재교육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는데. 이것도 옥수진의 일이었다.
'여기까지만 하면 이제 진짜 끝이다!'
천마에게 인사 배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일어나던 그녀는 머리가 핑 도는 걸 느꼈다.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고 몸에서 힘이 쭉 빠진다.
미친 듯한 업무를 소화하던 총관은, 결국 쓰러졌다.
.
.
.
옥수진은 정신을 차렸다. 낯선 천장이 눈에 보인다.
‘여기는 어디지?’
옥수진의 속마음에 대답하듯 누군가가 말했다.
“병원이다.”
옥수진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차선우가 있었다.
“병원이요? 왜요?”
“과로라더라. 너 무리했어.”
옥수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학생 때는 전공 7개를 듣는다고 사흘 내내 밤을 새운 적도 있었는데.
“제가 과로라고요? 별로 무리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차선우는 그런 옥수진을 보고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옥수진이 쓰러진 데에는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했다.
옥수진이 쓰러졌을 때 어찌나 놀랬던지.
“절정 고수도 그렇게 일하면 못 버틸 거다.”
하지만 옥수진은 그런 차선우의 걱정을 알지 못하는지 헛소리를 해댔다.
“푹 자서 그런지 몸이 진짜 개운한데요? 얼른 돌아가서 하던 일이나 마무리해야겠어요.”
"......."
차선우는 옥수진의 지독한 일 사랑에 할 말을 잃었다.
‘몸이 개운한 건 내가 추궁과혈을 해줘서 그런거고.’
절대로 회복이 되어서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차선우는 몸을 일으키려는 옥수진의 어깨를 눌러 다시 침대에 눕히며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일주일은 업무 금지다.”
“엥? 아직 일이 좀 더 남아 있는데요?”
“그래? 그럼 한 달 금지야.”
어차피 음악 방송은 벌써 3회차 방송이 끝나고 안정기에 들어갔다.
얼마 전 충원한 직원들도 경력직인 만큼 능숙하게 일처리를 하고 있었고.
회사 초창기부터 모든 일을 도맡아 하던 옥수진은 모든 업무를 자신이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본인이 일일이 체크하지 않아도 회사에는 문제가 없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이참에 옥수진을 회사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아야겠다.
그래서 차선우는 말했다.
"아예 해외로 보내버려야겠군."
일은 쳐다보지도 못할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
사이먼 베일리.
본업은 영화감독이지만 평론가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평론하는 실력으로 영화를 찍었다면 벌써 오스카상을 탔을 거라 말하곤 했다.
그 말을 내심 신경 쓰고 있던 사이먼 감독은 절치부심하여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시나리오는 꽤 괜찮았고, 운 좋게 거액의 투자를 받아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이먼 감독은 오늘도 회의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매일매일이 회의라니. 피곤하군.’
아직 프리프로덕션 단계인 만큼 회의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안무가 안토니오 로시와의 미팅이 있을 예정이다.
미팅 장소에 먼저 도착한 사이먼은 휴대폰을 들었다. 잠시라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영상을 볼 생각이었다.
뮤지컬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그는 뉴튜브를 통해서도 다른 무대를 많이 참고해왔다. 그래서인지 알고리즘 추천 목록에는 뮤지컬이나 노래와 관련된 영상이 많았다.
사이먼 감독은 스크롤을 내리다가 우연히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The Hall of MusicㅣCheonma X Rawhi - Old and the Beast]
"미스터 천?"
대한의 검성 OST를 워낙 인상 깊게 들었던지라 그 이후로도 종종 천마의 노래를 찾아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가 새로운 무대를 한 모양이었다. 알고리즘은 그 영상을 추천해주고 있었다.
마침 'Old and the Beast'는 그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주제가였기 때문에, 사이먼 감독은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영상을 클릭한 순간 그는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다.
두 사람의 뛰어난 보컬과 화려한 무대장치, 그리고 안무팀의 군무까지.
모든 요소가 잘 어우러져서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본 것 같았다.
"역시 천마가 노래를 잘 부르기는 하는군. 이런 스타일도 잘 어울릴 줄은 몰랐는데."
무대는 뮤지컬 풍이었다.
정통 뮤지컬은 아니었지만, 그 느낌을 잘 살려서 관객들이 보기 편한 무대를 만들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편곡을 잘했군."
자신의 뮤지컬 영화도 이런 식으로 듣기 좋게 만들어지면 좋을 텐데.
편곡자가 누군지 궁금해진다.
어느새 무대 영상은 끝나고 다음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다음으로 나오는 영상은, 천마가 라희와 함께 편곡을 진행하는 파트였다.
“?!?!”
곡을 이렇게 만드는 게 가능한 건가?
아니지. 그것보다 천마가 이 노래를 편곡한 거였어? 이런 스타일도 할 줄 아네?
이쪽은 노래 하나를 만들려고 피똥을 싸는데, 저쪽은 화장실 한번 갔다 올 시간에 뚝딱 나오다니!
사이먼 감독이 천마에게 빠져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천마를 탐구하는 사이, 안무가인 안토니오 로시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어? 그 영상은?”
안토니오는 사이먼이 보는 영상의 정체를 한눈에 파악했다.
벌써 다섯 번은 돌려본 영상이기 때문이다.
“OHHHHH!!!! Do you know Cheonma?!”
안토니오는 평소에도 텐션이 높은 사람이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광기가 느껴졌다.
사이먼은 격렬한 반응에 당황했지만, 일단 침착하게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해주었다.
"천마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 OST를 참 좋아했거든요."
"한국 드라마? 설마 대한의 검성?"
사이먼 감독은 이 사람의 입에서 '대한의 검성'이 튀어나올 줄 몰랐다. 매니악한 장르라서 대충 한국 드라마라고 뭉뚱그려서 말한 건데.
"아, 예. 그렇죠. 당신이 그 드라마를 알 줄은 몰랐는데요."
안토니오가 눈을 찡긋거렸다.
"사실 드라마는 안 봤어요. 하지만 천마가 부른 OST는 알죠."
"천마를 잘 아시나보군요."
그렇지는 않다. 안토니오는 천마를 직접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Of course. He is my Muuu-se! 제가 천마랑 작업을 몇 번 했거든요."
정확히는 같이 작업을 하지 않았고, 천마에게 허락을 받고 노래를 가져가서 안무를 만들었던 거지만.
그 안무 영상이 안토니오의 채널에도 올라가 있다.
그래서 사이먼 감독은 두 사람이 서로 굉장히 잘 아는 사이라고 착각했다.
"대단한 사람이군요. 저도 한번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사이먼 감독은 안토니오만큼 빅팬은 아니지만, 천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긴 했다.
그 말을 들은 안토니오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참에 한번 연락해볼까요?”
마침 천마에게 메시지를 보낸지 2주는 지난 것 같았다.
슬슬 쿨타임이 찼다.
안토니오가 평소처럼 채팅을 여는 순간, 평소와 다른 일이 벌어졌다.
- 미국 갈 건데 한번 볼래요?
천마에게서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HOLY MOLY!”
*
“다들 휴식이 필요하긴 했지.”
작년 8월에 회사를 만든 이후, 천마신교 레코즈 직원들은 쉴 틈 없이 달려왔다.
나는 앨범을 2개나 만들었고, 미니롱와 길성진도 미니앨범을 하나씩 발매했다.
거기에다 막판에는 그놈의 음악 방송을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마침 길성진의 첫 활동도 마무리 단계였고, 미니롱은 휴식기이다.
나도 늘 하던 방송만 하면 되고.
그래서 결정했다.
“우리 이참에 워크숍이나 가죠.”
물론 말이 워크숍이지, 그냥 여행을 가자는 거다.
직원들은 모두 환호를 보냈다.
“와 워크숍!”
“장소는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양평에 있는 리조트는 어떨까요.”
“국내가 아니라 해외로 갈 겁니다.”
이어지는 내 말에 환호는 괴성 비슷한 걸로 바뀌었다.
“우와아그와아악!”
“해외 워크숍이요! 얼마나요? 어디로요?”
그래서 정말 필요한 인력만 남기고 우리는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비행기표부터 숙소, 여행 경비까지. 비싸기는 했지만 돈 많이 벌었으니까 팍팍 써재꼈다.
"혹시 워크숍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편하게 말해주세요. 강요 안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형식적인 워크숍 일정이 있긴 했지만, 특별히 단체 관광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큰 의미는 없었다.
회사 측에서 정해주는 건 항공권과 숙소 정도이고, 미국에 가서는 개별적으로 보낼 예정이다.
참고로 출발 당일, 옥수진은 몰래 서류를 챙기다 나에게 걸렸다.
“여름 님, 일 못하게 철저하게 감시해 주세요.”
“넵! 알겠습니다.”
강여름은 옥수진을 잡아끌어 면세점으로 향했다.
신나는 발걸음의 강여름은, 오늘따라 믿음직해 보인다.
오랜만의 여행이라서 그런가?
내 기분도 설렜다.
‘이게 얼마만의 여행이지.’
무림에서는 중원 정벌을 하러 나갔던 이후로는 거의 돌아다니지 못했던 것 같은데.
나는 지난 10월부터 거의 2주 간격으로 연락을 해왔던 안토니오에게 조만간 보자는 답장을 하고는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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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나는 해변 근처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5월 말이라서 그런지 날씨는 정말 맑았다. 직원들에게 알아서 놀라고 한 다음 나는 호텔 근처에 있는 공원에 산책을 하러 갔다.
공원에는 관광객도 많고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저 새끼 잡아!!!!"
···소매치기도 많았다.
< 뜻밖의 미국행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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