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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으로차트올킬-84화 (84/191)

< 뜻밖의 미국행 (5) >

나의 짧은 미국 여행은 당초 계획과는 다르게 강렬하고 임팩트 있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우연히 한 버스킹에 해외 팬들이 유입되고, 놀러 간 할리우드에서는 뮤지컬 영화에 참여하고.

외국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고 싶기는 했지만···.

‘...이런 경험을 생각했던 건 아니었는데.’

버스킹은 그렇다 치고, 그놈의 할리우드가 문제였다.

뮤지컬 넘버를 만든 걸 기점으로 나는 그냥 관광이라는 글자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이렇게 된 이상 미국 여행의 마지막은 안토니오 로시와 함께 보내기로 했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작업을 하면서.

안토니오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결국 일만 하다가네.”

“이게 누구 때문인데.”

그놈의 액션스쿨에 데려가지만 않았더라면.

내 눈빛을 본 안토니오는 움찔하더니 말을 바꿨다.

“놀고 싶으면 그냥 놀자. 내가 죽이는 클럽을 알고 있거든. 작업은 나중에 하면 되지.”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한데.

사실 이번에 새로운 노래를 하나 만들어서, 그 노래에 안무를 입혀보면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 전부터 안토니오가 같이 작업을 하자고 조른 것도 있고.

“다음 앨범에 넣을 새 노래를 만들었거든. 비트도 잘 뽑히고 리드미컬한 곡이라서 같이 작업하기에 딱 좋을 거 같···.”

신곡이 나왔다고 하니 안토니오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펄쩍 뛰었다.

“뭐? 벌써 또 노래를 만들었다고? 얼마전에 버스킹 하면서 ‘백일몽’을 만든 지도 얼마 안 됐잖아. 미국에 놀러 와서 도대체 몇 곡을 쓰고 가는 거야?”

그놈의 백일몽.

백일몽을 부른 버스킹 영상이 어떻게 퍼진 건지 몰라도, 그거 때문에 오늘 아침에 곤욕을 치뤘다.

우리 회사 직원들이 전부 나에게로 와서 일하지 말기로 해놓고 설마 신곡을 쓴 거냐고 묻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우연히 버스킹을 하다가 만들었다고 말했는데. 그 이후에 새로운 곡을 또 만든 건 비밀로 했다.

이번에 만든 신곡, Nightmare.

백일몽과 정반대의 테마를 가진 이 노래를 만들게 된 계기는 어처구니없겠지만··· 영어 공부를 하면서였다.

‘영어 단어를 외우다가 곡이 나올 줄은 몰랐지.’

가사를 쓰거나, 팝송을 들으면서 기초적인 수준의 영어는 알고 있지만, 내 영어 실력은 빈말로도 좋지 않다.

이번에 외국인 친구들도 생기고, 방송에 외국인 시청자가 늘어나면서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어디선가 단어를 외우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최근 사용한 단어들을 모아서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옆에 있는 발음기호가 눈에 들어왔다.

daydream [ˈdeɪdriːm]

그리고 문득 든 생각.

이 발음기호를 거꾸로 해보면 어떨까?

[m:irdɪed`]

미-얼-데드

me dead 혹은 we’re dead 처럼 들리기도 했다.

죽음이라.

백일몽을 뒤집으니 악몽이 되는군.

그걸 시작으로 단어 공부를 때려치우고 새로운 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악몽을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단지 직접 느낄 수 있게 해줄 뿐.

나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면서 곡을 재생했다.

악몽이 흘러나오는 순간, 안토니오는 눈앞에서 환상에 빠져들었다.

.

.

.

짙은 어둠이 온몸을 감싼다.

환각제를 먹은 것처럼 기이하고 뒤틀리는 감각.

그때 어디선가 손뼉 소리가 들려온다.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짝

수백 개의 하얀 손들이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박자에 맞춰서 경쾌하게 손뼉을 치는 소리.

허공에 손만 둥둥 떠다닌 채 박수를 치는 건 퍽 기괴한 광경이지만, 그 박수 소리는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몸을 춤을 추기에는 클랩 소리만으로는 약하다 싶었는데.

이런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곧바로 따라오는 스네어와 킥이 교차하면서 감각적인 드럼 비트가 만들어진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이게 악몽이라도 상관없다.

“Holy Shit! 존나 중독적이잖아!”

안토니오는 당장이라도 몸을 움직이고 싶은 강한 갈증을 느꼈다.

그렇다면 움직여야지.

가볍게 느껴졌던 톤이 점점 바뀌면서 사운드가 점점 육중해진다.

느릿하게 울리는 베이스는 날카로운 신디사이저와 섞이면서 후렴구를 꽉 채운다.

그때 들려오는 사이키델릭한 목소리

-me dead in the nightmare

-we’re dead in the nightmare

백일몽을 백마스킹한 이 가사는 후킹 하면서도 감각적인 느낌을 부가했다.

육감적이고, 야생적이다.

날것 가득한 느낌은 안토니오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그래 이거지!’

이게 나의 뮤즈다.

끝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며 끓어오르게 하는 원동력.

안토니오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싶었지만 노래는 금방 끝나버렸다.

왜 노래는 3분에서 끝나는 걸까. 실컷 춤을 추게 3시간 길이로 만들어줬으면 좋을 텐데.

안토니오는 진한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숨이 가빠져 헉헉 몰아쉬었다. 그는 천마에게 말했다.

“둠둠둠이랑 비슷하면서도 노래에서 환각이 느껴지기도 하고. 천마, 혹시 너 약했어?”

“이게 돌았나?”

한참을 낄낄거리던 안토니오는 내게 툭 던지듯이 말했다.

“너도 한번 춰봐.”

“추긴 뭘 춰?”

“뭐긴 뭐야. 당연히 춤이지. 이런 노래를 듣고 몸이 들썩이지 않는 건 문제가 있는 거라고.”

뭐, 몸이 들썩이는 건 모르겠고.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생각나는 무공이 있기는 하다.

아무래도 안토니오는 무공을 볼 때마다 영감을 얻는 것 같으니까.

‘이참에 한 수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

내가 사용할 무공은 수라환영보.

천마신교 교주 직속 부대인 수라대에게만 전해지는 무공이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발놀림은 상대방의 정신을 쏙 빼놓고, 수라의 환영에 넋이 나간 상대의 목숨을 앗아가는 보법이다.

나는 가볍게 보법을 밟았다.

팔괘를 짐작할 수 없게 움직인다.

왼쪽으로 가나 싶었는데 어느새 오른발이 뻗어나가고, 앞으로 다가오나 싶다가도 순식간에 뒤로 빠진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흐릿한 환영과도 같은 모습이 펼쳐진다.

내친김에 양손에서는 권장술의 묘리도 몇 개 섞어서 보여준다.

역시나 안토니오는 감탄했다.

“oh my muuuuuse! U R genious!”

그러면서 바로 떠오르는 영감이 있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거 완전 허를 찔린 느낌이야. 그 스텝에 나도 모르게 정신을 빼앗기게 되네.”

···그렇겠지. 상대방의 정신을 빼앗고 허를 찌르기 위해 만든 보법이니까.

여기에 안토니오의 설명이 더해진다.

“me dead in the nightmare 여기에서 마지막에 n박이 더 들어갔네.”

일반적으로 박자를 셀 때 에잇으로 끝난다.

원투쓰리포-파이브식스세븐에잇.

이런 식으로.

그러나 여기는 마지막 ‘에잇’ 이후에 n박이 나왔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 순간 짠하고 나타나면서 ‘어?’하는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거랑 수라환영보는 별 관계가 없는···.

“그런데 그게 네 스텝이랑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느낌을 준단 말이지!”

“.......”

혼자서 신이 난 안토니오는 목에 핏대를 올리며 떠들었고,

‘그래. 너 알아서 해라.’

나는 그냥 생각을 그만뒀다.

*

Nightmare를 들은 그날, 안토니오는 급발진해서 모든 안무를 후루룩뚝딱 만들어버렸다.

물론 Nightmare는 미발매곡이기에 1분 남짓한 후렴구만 뉴튜브 채널에 올렸고, 그 가운데서 하이라이트를 따로 편집해서 쇼츠로 만들었다.

안토니오는 워낙 유명한 인플루언서였기 때문에 반응은 핫했다.

- 간지나는 댄스뮤비네

- 카메라워킹, 동선, 연출이 너무 완벽해! 왜 1분밖에 없지?

- 남자 댄서의 강한 힘과 코어를 잘 살렸어. 역시 토니!

ㄴ근데 크레딧에는 공동저작자로 천마도 있던데?

ㄴ???걔는 누구야?

ㄴ 토니 옆에 있는 애. 케이팝 가수래

- 이 노래가 K-POP이라고? 존나 힙한데?

수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클릭하고 좋아요를 눌렀다.

그리고 그중에는 DJ의 여자친구도 있었다.

[Toni X Cheonma - Nightmare Choreography]

오랜 안토니오의 팔로워이기도 한 그녀는, 예전에 히트했던 ‘둠 챌린지’로 천마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잊었지만, 최근에 유난히 천마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남자친구의 마이크를 되찾아준 사람이 천마고,

해변공원에서 ‘퍽킹 핫 버스킹’을 만들어서 소소하게 화제가 된 사람도 천마고.

이번에는 마침 그녀가 구독하는 안토니오의 채널에도 ‘그 천마’의 영상이 올라왔네?

여자친구는 안토니오와 천마가 공동으로 만들었다던 안무 영상을 클릭했다.

‘이번에도 둠 챌린지 같은 느낌이려나?’

아니었다.

둠둠둠이 패도적이고 강하다면, Nightmare는 원초적이고 와일드하다.

처음 카메라 앵글에는 댄서들의 박수치는 손만 잡혔다.

이후 드럼 비트가 들어오면서, 풀샷으로 모든 사람이 화면에 들어왔다.

검은 옷을 입은 천마와, 흰옷을 입은 안토니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대비되는 모습이다.

두 사람은 마주 본 채로, 서로 싸우듯이 춤을 시작한다.

연습실 바닥 위에서 맨발로 펼치는 무빙은 날것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천마의 춤이 괜찮다는 것이었다.

유명 안무가인 안토니오가 옆에 있는데도 천마의 존재감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천마가 이렇게 춤을 잘 췄나?’

그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이 안무는 천마의 무공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춤을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70년 동안 무림에서 몸을 쓰다 온 천마의 몸놀림은 예사롭지 않았다.

‘묘하게 자꾸 시선이 가네.’

수라환영보의 묘리를 살린 안무는 예측불허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긴장감이 더해지며 천마에게 더욱 집중하게 된다.

영상은 짧았고, 그녀가 본격적으로 영상에 빠져들 때쯤 노래는 끝났다.

‘왜 이렇게 짧은 거야. 아쉽게.’

드라마를 보던 중 클라이막스에서 아빠가 뉴스를 본다며 채널을 돌려버린 느낌.

아쉬운 마음에 안무 영상을 계속 돌려보던 그녀의 눈에 동작이 익자, 이제는 노래가 귀에 들어온다.

‘아무리 들어도 딱 내 취향인데.’

그녀는 힙합/알앤비를 기반으로 한 댄스 가수였다.

둠둠둠이나 나이트메어 같은, 트렌디한 힙합 비트를 기반으로 한 댄스곡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다.

노래만 따로 듣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밑에 상세정보를 봐도 곡 정보가 도통 나오지 않는다.

혹시라도 댓글에 사람들이 그 정체를 써놓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얼른 댓글창에 내려가 봤다.

춤에 대한 찬양 사이로 종종 노래를 궁금해하는 댓글이 보인다.

- 이거 어느 나라 노래야? 누가 곡 정보 좀

ㄴ 토니 옆에서 춤을 추고 있는 천마가 만들었어. 그는 케이팝 가수야

ㄴ 둠 챌린지도 천마 노래야

- 인별그램 토니가 아직 미발매곡이라서 1분으로 잘랐다더라

ㄴ 미발매곡이라고??

ㄴ 발매 일정이 언젠데?

- 이게 케이팝인 줄 몰랐어. 나 케이팝 좋아하네?

결국 그녀가 원하던 정보를 찾을 수 있었지만, 아쉬움을 해결해 줄 순 없었다.

방금 들은 곡은 미발매곡이었다.

아쉬움을 한참 곱씹던 그녀는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천마와 함께 작업해보는 건 어떨까?’

여자친구는 자신의 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초등학교 장기자랑에서 재능을 발견했을 때부터, 유명 레이블에서 먼저 컨택을 받았을 때까지.

하지만 작년에 데뷔한 이후, 앨범의 성적은 그녀가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다.

데뷔곡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찍었다는 어느 유명 가수처럼, 그녀도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역시 이곳은 만만치 않았다.

- 한줄로 요약해줄게. 투 머치.

- 목소리에 너무 힘이 들어가있네요.

- 쉽게 질리는데;;;

그래서 이번 앨범에는 특별히 신경을 쓰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유명한 프로듀서들을 섭외해주기로 했지만, 그래도 천마만은 못할 거 같았다.

그들이 과연 ‘둠둠둠’이나 ‘Nightmare’같은 곡을 뽑아낼 수 있을까?

이런 곡들로 앨범을 꽉꽉 채운다면 무조건 대박일 텐데.

‘보스한테 한번 말해볼까?’

회사에서 그 의견을 받아들여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지금 천마에게 꽂혀버렸다.

그녀는 소속사 대표에게 말하기 전, 천마와 컨택을 하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혹시나 컨택을 안 받는 작곡가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인터넷에서 굉장히 자극적이고도 신박한 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작곡가에게 곡을 의뢰하는 흔한 방법.jpg]

“What the!?”

< 뜻밖의 미국행 (5)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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