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86화 (86/191)

< 배틀도 글로벌하게 (2) >

나는 평소처럼 방송을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많은 채팅이 쏟아진다.

- 분석글 보고 왔어

- 나도 분석글 보고 왔는데. 신곡 떡밥은 진짜 흥미롭더라

- 나는 안토니오 영상 보고 왔는데. 춤은 안 춰?

- 도네는 어떻게 해?

- 해외 팬을 위한 필독 공지가 있어! 읽고 오는 게 어때?

- 오! 고마워:)

해외 팬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정신이 없다.

한국어와 영어가 잔뜩 뒤섞인 채팅창, 방송 규칙이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까지.

방송 초창기 때 관리자가 없던 야생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래도 새로운 팬들과 소통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최근 외국인들이 많이 유입되었다는 걸 인지한 직원들이 미리 손을 써놓은 까닭이다.

영어 자막을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업체와 계약했고, 뉴튜브에서는 댓글 자동 번역 기능을 제공해줬다.

‘서로 익숙해지면 차차 나아지겠지.’

나도, 새로운 팬들도 서로에게 적응하는 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들이 익숙해질 것이다.

아직 불편한 것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화력 하나만큼은 엄청나게 늘었다.

라이브 방송을 튼 지 30분도 안 지났는데 벌써 동시접속자가 15만 명을 넘어가는 중이다.

그만큼 채팅이 올라가는 속도도 빨라진다.

나는 안력을 돋우어 1초에 수백 개씩 올라오는 채팅을 훑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역시 커뮤니티 발 분석글이었다

- 와 외국인도 그 글 보고 온거야?

- 영어가 반이네ㅋㅋㅋㅋㅋㅋ

- 근데 그거 좀 그럴듯하던데?

- 천마님 이거 사실이에요?

링크: https://yeontaeryang.net/square/240728536

- 사실이라면 ㅈㄴ 치밀하게 설계한듯ㄷㄷㄷㄷ 다들 곡 이렇게 쓰나?

“.......”

누가 썼는지는 몰라도,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요리조리 기가 막히게 엮어놨더라.

영어단어 공부를 하다가 만든 곡인데.

그 사실은 영원히 묻어두기로 했다.

그렇게 한창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을 때, 한 외국 놈이 분탕질을 치기 시작했다.

- 근데 이거 느낌이 쎄한게 노리고 바이럴 한 거 같은데ㅋㅋㅋㅋㅋ

이때를 노리고 있었는지 몇몇 놈들도 달려들었다.

- 맞네. 걍 이거 마케팅인 듯. 듣보가 빌보드 들 때부터 알아봤어

- 업체에 돈 주면 이런거 해줌ㅋㅋㅋㅋㅋ

- 돈밖에 없는 동양인이 뻔하지. 차트가 망가진 게 다 이런 애들 때문이야

갑자기 뒤바뀌기 시작한 분위기.

나는 혀를 찼다.

“하여간 분탕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는건지.”

해외 팬이 늘어나면서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틈타 어그로를 끌어보려는 모양인데, 계속 걸러내도 이런 새끼들이 종종 나온다니까.

“곡을 지난주에 썼는데 바이럴은 개뿔. 가뜩이나 갑자기 싱글 내서 바쁜 직원들인데 그딴 거 할 시간이 있었겠냐?”

그러자 옆에 있던 옥수진이 커피를 뿜었다.

“켁!”

뭐야? 쟤는 또 갑자기 왜 저래?

어쨌든, 내가 받아치니 팬들도 본격적으로 채팅을 쳐올렸다.

- 어휴ㅋㅋㅋ저런 거 가르치는 학원이라도 있나?

- 머갈텅텅이니 아가리밖에 못 털지

- 병먹금

어그로를 퇴치하자 방송에 평화가 찾아왔다.

당분간 분위기가 잡힐 때까지는 이런 일이 벌어지겠군.

그렇게 오늘의 방송을 마무리 지으려는데,

[MUPIE.OFFICIAL 님이 1,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천마 님. 뮤파이 대표입니다. 곡을 의뢰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면서요?

후원이 날아왔다.

“오? 오랜만이네?”

그동안 곡을 의뢰하는 후원은 뜸했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내 몸값이 너무 올라버렸으니까.

예전에 제이맨이 후원 금액을 100만 원으로 올려버리면서, 작곡비를 제하더라도 몇천만 원 정도는 써야 나를 섭외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누군가와 배틀을 붙는다면 그렇게 돈을 써놓고도 닭 쫓던 개가 될 수도 있고.

아무래도 한국은 시장이 작다 보니 거금을 들여놓고도 그만큼의 수익을 뽑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괜히 천조국이라 하는 건 아니지.

[MUPIE.OFFICIAL 님이 1,001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이쪽 가수인 페니 로페즈가 신곡을 내려 하는데, 천마 님께 곡을 맡기고자 합니다.

오랜만의 곡 의뢰 후원과 그 당사자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더해지면서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 천마 클라스 미쳤다!!!!!

- 이제 외국에서도 천마한테 의뢰를 하네 ㄷㄷ

- 뮤파이? 저기 ‘맥 로스웰’ 레이블 아님?

나도 이런 후원은 거의 일 년 만이었기에 관심이 갔다.

“페니 로페즈?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볼까?”

그때였다.

[EBONY KING 님이 1,01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잠시만요 천마 님! 제 제안도 한번 들어보시죠?

그렇게 글로벌 후원 배틀이 시작되었다.

*

에보니 킹.

그녀는 뮤파이의 대표와 이혼한 전 와이프이며, 미국의 가수이기도 하다.

몇 주 전 천마와 뮤지컬 작업을 한 음악감독의 여동생이기도 하고.

“Wow, it’s fucking crazy—-------!”

그 음악감독, 그러니까 그녀의 오빠는 지금 거대한 몸을 흔들며 광분하는 중이었다.

인별그램에 새로 산 가방을 올리던 그녀는, 괴성이 들려오자 놀라서 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 깜짝이야. 뭔데 그래?”

“내가 몇 달 동안 붙잡고 있던 부분이 뚫렸어!”

최근 그녀의 오빠는 뮤지컬 영화 넘버에 공을 들이는 중이었다.

원래 한번 막히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막히는 게 곡 작업인지라 그녀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줬다.

“잘됐네! 갑자기 영감님이라도 찾아온 거야?”

하지만 킹 감독의 입에선 생뚱맞은 이름이 튀어나왔다.

“아니, 그것보다 더 대단한 천마가 찾아왔지.”

“천마? 그건 또 누군데?”

“...너 진짜 몰라? 맨날 SNS만 하는 애가 천마를 모른다고?”

“알고리즘 모르냐. 원래 SNS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줘.”

“어휴, 너는 언제 철들래.”

킹 감독은 한숨을 쉬면서도 천마를 극찬했다.

언젠가 음악계를 사로잡을 천재라는 말부터, 곧 빌보드 차트에서 그 이름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등 온갖 닭살 돋는 멘트를 날렸다.

그녀는 소름 돋은 팔을 문지르면서도 천마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저 인간이 저런 식으로 칭찬하는 사람이 아닌데.’

아니, 오래전에 딱 한 번 저런 식으로 칭찬을 하긴 했지.

10년 전, 우연히 간 라이브 하우스에서 무명 가수를 보았을 때.

오빠는 그 사람의 노래를 듣고 지금 같은 칭찬을 날리며 그 자리에서 기획사와 연결해줬다.

그리고 그 가수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가수가 되었다.

오빠가 칭찬을 하는 모습에서, 꼭 옛날의 그 사람이 떠오른다.

우락부락한 이미지와는 달리 킹 음악감독의 평가는 꽤나 날카로운 면이 있다.

“나도 이제 슬슬 컴백해야 하는데. 곡이나 하나 맡겨 볼까?”

동생의 말을 들은 킹 감독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무조건. 너 가방 살 돈이면 정규 하나를 채울 만큼 받아 올 수 있겠다.”

그녀는 오빠의 팩트폭력에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천마의 노래를 찾아보았다.

“Nightmare? 이거 좋네?”

“Daydream? 이것도 괜찮은데?”

“Time-lapse? 와우. 멜로디 무슨 일이야?”

“DUM? 어? 나 들어본 거 같은데?”

천마가 만든 트렌디한 멜로디는 장르에 상관없이 귀에 착 감겼다.

이 정도면 수록곡 하나쯤이야 뭐, 맡겨봐도 상관없을 거 같기도 했다.

그녀는 천마에게 의뢰하는 방법을 검색했다.

가장 먼저 나오는 건 후원 배틀이었다.

수만 명의 시청자들 앞에서 돈을 쓰면서 천마에게 곡을 의뢰하는 것.

“오! 재미있겠는데?”

명품과 SNS를 좋아하는 그녀에게는 딱 맞는 방법이다.

옆에서 오빠가 제발 철 좀 들라고 하길래, 쇠질은 너나 실컷 하라고 쏘아붙인 뒤 곧바로 천마의 채널에 들어갔다.

마침 천마의 채널에서는 라이브 방송이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누군가 벌써 후원을 날리며 천마에게 곡 의뢰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뭐야? 뮤파이? 오피셜 계정?”

후원을 날리는 건 그녀의 전남편이었다.

순간 그녀는 알 수 없는 경쟁심에 불타올랐다.

“이건 절대로 빼앗길 수 없지.”

그녀는 재빠르게 후원과 함께 채팅을 날렸다.

[EBONYKING 님이 1,01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잠시만요 천마 님! 제 제안도 한번 들어보세요.

[EBONYKING 님이 1,011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설마 저 사람이랑 같이 작업을 할 건 아니죠?

.

.

.

한편 갑작스런 경쟁자의 등장에 뮤파이 대표의 눈이 뒤집혔다.

“이, 이, 도움도 안되는 여편네가!”

수십 번의 대화가 오갔고, 후원 금액은 대표가 예상했던 액수를 훌쩍 넘었지만.

여기서 물러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천마에게서 곡을 받아오려고 했으니까. 이참에 천마에게 앨범 전체 프로듀싱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페니도 그걸 더 좋아하겠지.”

다 예상했던 범위 안이라고. 이 정도 투자는 괜찮다고.

열심히 합리화했다.

“내 후원은 저 여편네의 채신머리 없는 행동과는 다르지. 이성적으로 계획을 다 한 거니까.”

물론 대표의 행동도 전혀 이성적이진 않았다.

*

나는 방송에서 갑작스레 시작된 부부싸움을 지켜보았다.

- 에보니 킹: 하, 옛날에는 바쁘다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더니. 여기에 만날 줄은 몰랐네?

- 에보니 킹: 요즘 한가한가 봐?

- 뮤파이 대표: 나는 비즈니스를 하러 온 거고

- 뮤파이 대표: 그쪽이야말로 쇼핑한다고 외국에 나가느라 바쁘지 않나? 쇼핑중독에 SNS 중독이라니.

- 에보니 킹: 뭐? 나도 일하러 온 거거든?

- 에보니 킹: 너도 되도 않는 바이크를 사 모으다가 사기까지 당해놓고

- 뮤파이 대표: 그건 옛날에 해결된 일이잖아. 그리고 그 일을 지금 왜 꺼내? 당신이야말로 나한테 말도 없이···.

“······.”

후원 배틀은 순식간에 키보드 배틀로 변했다.

내 방송에서 옛날 일을 끄집어내며 키배를 뜨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팝콘을 흔들며 쏟아지는 후원을 구경했다.

- 아ㅋㅋㅋㅋㅋ꿀잼이다

- 더 싸워라 더 싸워ㅋㅋㅋㅋㅋ

- 그래서 천마의 픽은?

- 잠시만 배틀 멈춰봐. 나 팝콘 가지고 와서 보게.

나는 일단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정리를 했다.

두 사람의 후원 채팅과 사람들의 채팅을 종합해보니 결과는 금방 나왔다.

두 사람은 작년에 이혼했다.

미국치고는 소송도 위자료도 없는 깔끔한 이혼인 모양이었다.

내친김에 두 사람에 대해서도 찾아봤다.

에보니 킹은 미국의 가수다.

국내 인지도는 크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독특하고 개성 있는 스타일로 확실한 팬덤을 구축한 가수였다.

뮤파이의 대표는 말 그대로 레이블의 사장이다. 이번에 소속 가수 하나를 본격적으로 키울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파악한 나는 일단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여기서 스톱. 더 싸우면 둘 다 퇴장시킨다.”

그러자 두 사람이 싸움을 뚝 멈췄다.

그래. 지금까지 태운 3만 달러를 날리기 싫으면 싸움을 멈춰야겠지.

“서로에게 사과하고.”

[EBONYKING 님이 1,161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미안. 내가 말이 좀 심했네.

[MUPIE.OFFICIAL 님이 1,162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크흠. 나도 사과하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대통합의 현장ㅋㅋㅋㅋㅋ

- 야 이걸 진짜 하네

- 안하면 쫓겨나니까ㅋㅋㅋㅋ

- 아씨 꿀잼이었는데 왜 멈춰

나의 중재(?) 덕분에 두 사람은 진정했다.

“정리해 보지. 대표님은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기고 싶다고 했지?”

- 맞습니다. 저희 쪽 소속 가수가 천마님을 열렬하게 원하네요.

“그리고 에보니 씨는 곡 하나를 달라는 거고?”

에보니는 갑자기 말을 바꿨다.

- 아니요! 저도 그냥 천마님께 프로듀싱을 받고 싶어요. 우리 오빠가 천마님 칭찬을 그렇게 하더라고요.

나는 고민에 빠졌다.

현실적으로 앨범 두 개를 동시에 프로듀싱 할 수는 없으니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데.

내가 고민에 빠진 사이, 사람들은 저들끼리 내가 누구를 선택할지 떠들어댔다.

- 천마 커리어에는 에보니가 낫지 않나?

- ㅇㅇㅇ 뮤파이 대표가 말한 가수는 처음 들어봄

- 뮤파이 규모가 있어서 작정하고 밀어주는 거면 ㄱㅊ을듯?

- 누굴 선택해도 꿀잼

- 천마야 그래서 누구 고를거냐

나는 채팅을 보며 씩 웃었다.

“자 내 선택은···.”

이제 익숙해질 때가 되지 않았나?

오랜만에 배틀 봤다고 감 떨어진 건 아니지?

- tlqkf

- 천마쉐ㄱ 또!

- 야 그 손 멈···.

“일챗 보내드릴게. 내일보자”

[BJ음공천마 스트리밍이 종료되었습니다.]

< 배틀도 글로벌하게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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