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87화 (87/191)

< 배틀도 글로벌하게 (3) >

뮤파이 대표는 천마에게 곡을 의뢰하기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생각했다.

‘배틀? 재미는 있겠지만, 한국인 뉴튜버의 방송을 보는 미국인이 많을 것 같지는 않겠군.’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재미있는 건 국가를 초월해서 먹히는 법이다.

원래 천마는 매니아층에서만 알려진 편이었지만, 이번 배틀은 재미있고 자극적이었다.

케이팝에 관심이 없던 대중의 관심을 충분히 끌어들일 만큼.

소송도 없이 조용히 헤어진 줄만 알았던 두 사람.

갑자기 라이브 방송에서 배틀을 뜨며, 이혼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마침 천마 채널에서는 친절하게 영어 자막까지 실시간으로 송출했기 때문에, 번역기를 돌릴 필요도 없이 그대로 캡처해서 퍼 나르면 됐다.

[코리아 방송에서 ㄹㅈㄷ 부부싸움]

사람들은 이런 가십에 환장했다.

- 와우 배틀에서 이겨야 곡을 의뢰할 수 있어?

- 거기서 거의 3만 달러 태웠다더라

ㄴ(고개를 내젓는 이모티콘)

ᄂ 3만 달러? holy shit! 나 1달러만 주지

- 배틀은 언제 또 한대? 나도 가보고 싶어

- 어디 가면 볼 수 있어?

ㄴ 링크: https://www.newtube.com/watch?v=0gYTR

ㄴ thanks:)

하지만 처음에는 부부싸움에 관심을 가지던 사람들도 점차 ‘천마’가 누구인지에 대해 집중했다.

- 천마?? 걔가 누구야?

ㄴ 찾아봤는데 한국 프로듀서래

- 천마는 빌보드에도 있어! Nightmare라고 나의 최애곡이야:)

ㄴ ??? 이 노래 내 플레이리스트에도 있는데? 천마가 한국인이었어?

ㄴ Nightmare를 알면 daydream도 들어봐. 두 개는 한 세트거든 (분석글 링크)

ㄴ 고마워!

그렇게 사람들은 점점 천마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추세가 가팔라서 직원들이 호들갑을 떠는 소리가 천마신교 내에 울려 퍼졌다.

“인별 팔로워가 700만을 넘었어요!”

“뉴튜브 구독자도 490만입니다. 곧 있으면 500만이 돼요!”

“백일몽도 빌보드에 들었습니다. 이거 뭐죠?”

애초에 이번 싱글이 해외에서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빨리 내버린 거지만, 이렇게까지 핫해질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들 당황하면서도 물 들어온 김에 열심히 노를 젓는 가운데, 나는 고민에 빠졌다.

전 와이프인 에보니 킹.

전 남편의 소속 가수인 페니.

‘둘 중에 누구를 선택하지?’

방송 이후, 나는 두 사람에게서 어떤 노래를 원하는지에 대한 아웃라인을 비롯해서 대략적인 조건까지 전달받았다.

지금까지의 배틀에서 빠르게 결정한 것과는 다르게,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두 사람 모두 매력적인 아티스트였으니까.

그래서 두 사람의 노래와 라이브를 모두 들어본 결과, 나는 어느 정도 정리를 할 수 있었다.

먼저 에보니 킹.

‘자신이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지.’

킹 감독의 여동생인 그녀는 독특한 특색을 가진 가수였다.

20대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활동을 하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했다.

반면 페니는···.

‘...애매하단 말이야.’

나는 페니의 1집 앨범을 떠올렸다.

스케일이 큰 백사운드, 강한 비트를 타고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러면서도 파워풀한 보컬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이어진다.

문제라면 페니가 자신의 노래를 완전히 컨트롤해서 가지고 놀만한 역량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악기와 목소리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부딪히면서 쉽게 질린다.

너무 과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장르와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오히려 편안한 사운드 속에서 보컬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후, 나는 다시 선택지를 보았다.

에보니 킹.

페니.

에보니 킹은 쉬운 길이다. 이미 닦여진 길을 그대로 살려서 곡을 만들어주면 된다.

반면, 페니와의 작업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아티스트에 맞는 노래가 뭔지 고민도 해야 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아티스트와 부딪히기도 해야겠지.

그런데, 나는 그런 점에서 페니가 마음에 든다.

나는 얼마 전 킹 감독과 뮤지컬 넘버를 만들며 골몰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렇게 공들여서 노력했던 게 얼마만이었던지.

확실히 나에게는 골몰할 거리가 필요하다.

조금 더 어렵지만 짜릿한 작업이.

어쩌다가 자체적인 하드모드에 갖다 박는 걸 즐기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뭐.

피할 수 있음에도 들이박다보면, 결국에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를.

*

뮤파이의 대표는 페니 로페즈와 함께 한국 공항에서 수속을 받고 있었다.

여권을 가방에 집어넣은 페니가 불쑥 물었다.

“보스! 근데 진짜 바이크 사려다가 사기당했어요?”

“...그건 5년 전 일이야. 사기꾼도 잡아서 손해배상까지 받아냈다고.”

전 세계에 사기당한 사실이 알려진 대표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그래도 쪽만 팔리고 지는 것보다는 낫지. 이번 승리로 얻은 게 많으니까.’

천마의 방송이 이렇게까지 뜨겁게 연예면을 달굴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화제성은 천마가 직접 빌보드 차트에서 증명하고 있었다

나이트메어의 순위가 훌쩍 오르고, 백일몽도 차트에 진입한 것이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덕분에 페니가 신곡을 낸다는 것까지 덩달아서 홍보가 되고 있으니’

이왕 분위기를 탄 김에 빠르게 리드 싱글을 내고 그 화제성을 이어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마의 방송 효과를 얕보고 있던 대표는 상상 이상의 효과가 나자 그 ‘뽕맛’에 취해버렸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천마와 함께하는 걸 기대하는 중이었다.

‘곡만 잘 나온다면 차트 상위권도 노려볼 만 할 것 같은데.’

그리고 여기, 대표가 페니의 성적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이유가 있다.

페니는 바로 글로벌 유통사인 로페즈 회장의 딸이다.

페니 본인은 집안의 힘을 빌리기 싫어서 가출을 한 모양인데, 그녀의 집안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로페즈의 회장이 페니를 영입한 날 말했던 게 떠오른다.

페니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달라고.

만약 페니가 성공한다면 뮤파이에 투자와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회사를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천마가 만들어 줄 성공이 로페즈 회장의 마음에 들기를, 바라고 있었다.

*

페니 로페즈는 로페즈 유통사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있던 그녀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너는 최고의 가수가 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님이 정해주는 코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16살에 가출한 그녀는 노숙을 전전하다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 같이 음악을 하게 되었다.

남자친구는 DJ가 되었고, 그녀는 버스킹을 하다 지금의 대표를 만나 데뷔를 했다.

‘거봐. 백그라운드? 그런 거 없이도 난 성공할 수 있어.'

하지만 막상 1집 앨범을 내보니, 그녀가 원하는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페니는 1집 앨범에 달렸던 댓글들을 떠올렸다.

- 한마디로 요약할게. IT’S TOO MUCH

- 팁: 목소리를 빼고 인스트루먼트 트랙으로만 들어봐

- 여러 번 들으니까 질린다

매니저가 모니터링을 막아서 수위가 쎈 악플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격이었다.

페니는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뭐 만만치 않은 시장이니까.’

아빠한테 도움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란 듯이 증명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입안이 썼다.

그래서 이번 2집 앨범은 AR 팀으로 들어오는 노래를 직접 들어보고 뛰어난 프로듀서를 구하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천마를 알게 된 것이었다.

‘천마라면 분명 나에게 맞는 노래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얼마 전 봤던 천마의 영상을 떠올렸다.

맞춤 정장처럼 가수에게 꼭 맞는 곡을 재단해주는 모습.

마침 도착하기 전에 천마에게서 곡을 미리 만들어 놨다고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천마가 어떤 노래를 만들었을지 기대하며, 오랜만에 경쾌한 발걸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천마가 있는 곳은 천산 빌딩이었다.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흠칫한다는 현판 옆에서 셀카를 찍은 후, 페니는 천마를 만날 수 있었다.

천마와의 간단한 아이스 브레이킹 이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페니는 신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벌써 곡을 만드셨다면서요? 여기 오면서 딱 나이트메어 같은 스타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천마는 통역사의 말을 전해 듣고는 딱 한 마디를 했다.

“It’s too much.”

“...!”

이어 설명하려던 천마는 부족한 영어 실력을 깨닫고 통역사에게 부연 설명을 전했다.

그녀의 보컬은 악몽보다는 백일몽 같은 노래가 어울린다는 둥, 설명이 이어졌지만···이미 페니는 충격을 받아버렸다.

Too much.

그녀가 봤던 댓글이 오버랩 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한다고 믿어왔는데.

이걸로 성공해서 가족들에게 증명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그게 계속 부정당하니 반사적으로 반발심이 올라왔다.

“아니요. 저 잘할 수 있는데요.”

천마는 빙그레 웃더니 영어로 짧게 말했다.

“[자신감은 좋네요.]”

칭찬인데도 페니는 괜히 불편해졌다.

깊숙이 숨어 있는 그녀의 불안감을 꿰뚫은 것 같아서.

페니는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럼 어디 한번 들어봐요. 누가 맞을지 보죠.”

이윽고 노래가 흘러나왔다.

처음에 나오는 건 경쾌한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

‘포크 팝? 언제적이야.’

10년 전부터 주구장창 쏟아지던 이런 스타일은 요즘 미국에서 너무 흔하다.

잘 뽑아내지 못하면 몰개성이라고 엄청 두드려 맞을 거다.

그녀는 이런 노래를 부르는 걸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한 거 맞아?’

페니가 불퉁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천마의 가이드가 시작되었다.

따로 녹음을 한 게 아닌, 즉석에서 불러주는 가이드였다.

가사도 없이 그냥 어떤 느낌으로 불러야 하는지만 제시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드라마틱한 변화 없이 단조롭게만 느껴지던 노래가 바뀌었다.

‘노래가 좋네? 이게 왜 좋아지지?’

텅 비어서 심심해 보이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가득 차 있다.

꽉 차 있지만 넘치지 않고 절제되어 있다.

그래서 더더욱 보컬이 돋보이게 되는 그런 노래였다.

그런데 천마의 가이드를 듣다보니 어딘가 익숙하다.

‘뭐야? 내 창법을 그대로 하잖아!’

발성, 호흡의 연결, 끝처리, 바이브레이션, 보컬의 톤 등.

천마는 지금 페니를 그대로 따라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멜로디에 자신의 목소리가 입혀지는 상상이 떠오른다.

보컬이 노래의 주인공이 되어 노래를 이끌어간다.

최소화된 사운드는 오롯이 가창자의 흡입력에 집중하게 도와준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녀의 노래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울림이었다.

페니는 감동받았다.

‘그 짧은 동안 나에 대해서 정말 많이 연구하고 곡을 써주셨구나!’

조금 전에 자신에 대해 파악을 못 했다고 혼자 투덜거렸던 게 미안해질 정도다.

세상에 그런 오해를 하다니!

천마는, 의심할 여지 없이 완벽한 프로듀서다.

페니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가 끝나자 그녀는 열렬히 박수를 쳤다.

“천마 님이 맞았어요. 불러보지 않아도 알겠는데요? 그냥 나한테 완전히 fit 되는 느낌? 완벽해요!”

페니는 100% 만족한 모양이지만 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직접 가이드를 해보니 확실하게 느껴졌다.

“아니, 마음에 안 들어. 이걸로는 부족하단 말이죠.”

“이게 부족하다고요?”

천마가 말했다.

“역시 긴장감이 조금 떨어지네요. 피쳐링이 필요하겠어요.”

천마의 말을 들은 대표는 반색했다.

피쳐링은 마케팅적으로 봤을 때 괜찮은 아이디어다.

다른 팬덤의 화력을 이용하기 제일 좋은 방법이니까.

“피쳐링 좋죠. 혹시 생각해놓은 사람이라도 있으신가요?”

잠시 고민하던 천마는 말했다.

“일단 목소리에 개성이 있는 여성 보컬리스트면 좋겠고,”

대표의 머릿속에 천마의 조건에 맞는 가수들이 떠올랐다.

“억세면서도 보이쉬한 성량으로 페니와 대칭을 이뤘으면 하네요.”

방금 떠올랐던 후보 중 몇 명이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

“마지막으로 살짝 비음이 섞이면서도 그루비한 느낌이 살면 더 좋겠네요.”

그 말까지 더해지자, 대표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후보만 남아있었다.

“...설마?”

천마는 대표의 물음이 맞다는 듯 씩 웃었다.

“에보니 킹. 피처링으로 데려올 수 있죠?”

대표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일그러졌다.

< 배틀도 글로벌하게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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