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88화 (88/191)

< 배틀도 글로벌하게 (4) >

노래에 뼈대가 잡혀있었기 때문에 완성은 금방이었다.

천마는 피처링이 들어가는 벌스까지 마무리한 뒤, 본격적인 녹음에 들어갔다.

전문 작사가에게 맡기려고 했지만, 페니는 떠오르는 주제가 있다며 그 자리에서 가사를 적어냈다.

그렇게 탄생한 곡은 [The REAL]

대표도 완성된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

‘페니에게 이런 장르가 잘 어울릴 줄은 몰랐군.’

레이블 대표가 된 지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배울 게 많다는 걸 느꼈다.

젊어 보이기만 한 천마가 페니의 문제점을 단숨에 발견하고, 또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는데.

모든 일을 순조롭게만 흘러가고 있었다.

단 하나만 빼고.

‘이놈의 여편네한테 뭐라고 연락을 해야 하냐.’

에보니 킹을 섭외하는 것.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대표는 어쩔 수 없이 전 부인에게 연락했다.

‘이건 비즈니스라고.’

대표는 직원을 시켜 에보니의 소속사에 피처링 제안서를 보냈다.

사적인 감정은 전혀 드러나지 않도록.

아주 오피셜하게.

그런데 돌아오는 답장은,

- 에보니는 지금 여행을 떠나서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2주 뒤에야 돌아올 것 같은데, 개인 연락처로 연락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에보니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뭐야. 나랑 싸웠다고 피하는 건가?’

소속사 측에서는 여행을 갔다고 하지만, 대표의 입장에서는 피처링을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여행 핑계를 대는 걸로만 보였다.

결국 대표는 직접 에보니에게 연락을 했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받지 않았다.

‘이 여자가 진짜! 공적인 일에 사적인 감정을 섞다니!’

대표의 속은 타들어 갔다.

완성된 곡은 정말 좋았고, 피처링 벌스도 잘 뽑혔다.

천마의 말대로 에보니의 보컬만 들어간다면 완벽해질 것 같은데.

하루하루 죽상이 되어가는 대표를 보고 천마가 물었다.

“표정이 안 좋으신데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 그게요.”

대표는 한숨을 푹 쉬더니 했다.

“피처링 의뢰를 해야 하는데 에보니가 연락을 안 받네요.”

“그래요? 그럼 그냥 직접 찾아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직접 찾아가라고요?”

대표는 망설였다.

두 번이나 말했다가 까였는데···.

집까지 찾아가기는 좀 구질구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금 에보니는 미국에 있는데.

“아직 한국에서 처리할 일이 있어서, 지금 미국에 가면 일정이 좀 꼬여서요.”

대표의 말을 들을 천마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 에보니는 얼마전에 한국에 왔는데요?”

“네.?”

뭐야. 진짜 여행 간 거였어?

그런데 그걸 천마가 어떻게 알지?

*

에보니 킹은 얼마 전 한국에 왔다.

오빠인 킹 감독을 따라온 것이다.

킹 감독이 뮤지컬 넘버 마무리 작업 때문에 천마를 직접 만나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킹 감독은 짐을 싸면서 물었다.

“에보니, 너도 같이 갈래?”

“흥, 내가 왜?”

에보니는 심기가 불편했다.

물론 자신의 이혼 비하인드 스토리가 알려졌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킹 감독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에보니는 SNS나 뉴스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상황을 즐기기까지 했다.

다만 그녀의 기분이 나쁜 건, 천마가 자신이 아닌 전 남편을 선택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천마에 대한 호기심은 올라갔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그 냉정하고 계산적인 전 남편이 수만 달러를 써가면서 모셔가는지.

잠시 고민하던 에보니는 말했다.

“뭐 한국에는 한번도 안 가봤으니까. 이참에 관광이나 하러 가야지.”

결국 에보니는 오빠를 따라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 도착한 킹 감독은 천마를 만나서 뮤지컬 넘버 작업을 마무리했고, 그 사이 에보니는 맛집 탐방을 하고 쇼핑을 하며 온 사방을 쏘다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마를 만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바로 그날, 천마신교에 도착한 에보니는 전남편과 만났다.

.

.

.

에보니가 소리쳤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

그러자 대표도 마주 소리쳤다.

“나는 비즈니스 때문에 온 거라고. 그러는 당신은 왜 연락을 안 받아!”

그렇게 시작된 부부 싸움 2탄에 차선우는 한숨을 쉬었다.

옆에 있던 킹 감독은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어릴 때부터 맨날 저러고 싸웠던 놈들이니까.”

대표와 에보니 역시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싸움을 이어 나갔다.

“내가 몇 번이나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걸 다 씹어?”

“바보냐? 당연히 차단했으니까 그렇지.”

“뭐? 나를 차단했다고?”

대표는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고, 에보니는 스팸 메시지 함에 들어가 대표의 문자를 확인했다.

“어이구, 많이도 보냈네. 우리 결혼기념일에도 일한다고 전화 한 통 없던 사람이.”

“야, 너 자꾸 옛날이야기 꺼내는 거. 그거 병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사과했잖아. 진짜 중요한 계약을 하는 중이었다고.”

“아 됐고, 그래서 무슨 일인데.”

대표는 분노를 삭이고 본론을 꺼냈다.

“후···. 천마 님이 페니에게 신곡을 만들어 준 거 알지? 당신이 그 노래에 피처링을 해 줬으면 해.”

대표의 말을 들은 에보니의 입에는 승리자의 미소가 피어났다.

그녀는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Hmm···. 내 피처링이 필요해서 그렇게 연락한 거였어?”

“그래. 곡도 잘 빠졌으니 너도 마음에 들 거다. 페이도 제대로 계산해주지.”

대표는 에보니의 치켜 올라간 턱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꾹 참고 말했다.

하지만 에보니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10만 달러 주면 생각해볼게.”

10만 달러는 탑티어 가수의 피처링 비용이다.

대표는 펄쩍 뛰며 말했다.

“야! 니가 뭔데 10만 달러를 받아!”

“너니까 10만 달러 받는 거지. 다른 사람이면 그냥 해줄 거거든.”

“하! 돈 밝히는 건 여전하구나?”

“돈 밝히는 게 어때서. 그리고 진짜 돈 밝히는 건 너 아냐? 전에 돈 벌겠다고 주식에 꼬라박았던 건 기억 안 나?”

“그 주식 추천해준 게 너거든. 너야말로 5년 전에 비트코인 빼지 말라는 거 뺐었지? 그게 지금···.”

“너는 7년 전에···.”

“그러는 너는 10년 전에···.”

차선우는 짜게 식은 눈으로 두 사람을 봤다.

‘이러다가 태어났을 때 일까지 나오겠네.’

아무래도 상황 정리가 필요해 보였다.

“에보니, 잠시만요. 내가 당신을 피처링에 추천했어요.”

싸움을 멈춘 에보니는 입술을 삐죽이며 물었다.

“이제와서요? 그나저나 왜 절 선택하지 않은 거죠?”

“에보니 당신은 제 도움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거든요. 당신은 이미 완성된 아티스트인걸요.”

차선우의 칭찬에 에보니는 어깨를 으쓱였다.

“엣헴. 내가 뭐 그렇기는 하죠. 그렇게까지 말하니 곡이 뭔지 한번 들어나 볼까요?”

차선우는 완성된 곡을 들려주었다.

페니의 녹음을 끝낸 원본이었다.

당연히 곡은 에보니의 마음에도 쏙 들었다.

“와우! 노래 끝내주는데요?”

페니의 보컬로만 가득 차 있다가 갑자기 비어있는 벌스가 나왔을 때.

에보니는 이게 자신을 위한 자리라는 걸 바로 깨달았다.

마치 정중앙의 한 조각만 비어있는 퍼즐처럼.

미완성의 마지막 부분을 채워 넣으면, 어떤 노래가 완성될지 궁금해졌다.

“좋아요. 피처링 할게요. 대신 나중에 나랑도 같이 작업해요.”

그리고 에보니의 말을 들은 대표는 황당해했다.

‘...이럴거면 나는 왜 그 고생을 한 거지?’

*

천마의 음악 방송 애청자인 알바생이 있다.

그녀는 지금 야간을 뛰는 중이었다.

원래는 야간까지 하진 않았지만, 한 명이 그만두면서 대타로 들어가게 되었다.

시급을 더 주겠다는 제안을 무시할 수 없는 탓이었다.

다행히 번화가 근처가 아니라 취객을 상대할 일도 거의 없고, 심야에는 사람도 많지 않다.

방금 매대 정리까지 마친 알바생은 카운터에 앉아서 조금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컴백 일지나 볼까.”

천마의 채널로 들어가는 알바생의 입에는 절로 미소가 걸렸다.

요즘 천마의 채널은 제철을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순간 외국인들이 늘어나더니, 천마에게 프로듀싱을 해달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렇게 와서는 또 치고받고 싸우더니, 이번에는 그렇게 싸우던 사람들이 같이 일을 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에보니 킹, 전 남편의 소속 가수에게 피처링을 해줘]

알바생은 생각했다.

“역시 미국인들은 다르구나. 이혼한 사이인데, 정말 쿨하게 같이 작업을 하네.”

어떻게 같이 작업할지 궁금했는데, 마침 천마가 컴백일지를 하겠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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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좌다.

컴백 일지 미국편 나온다.

그럼 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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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공지 글에는 댓글이 좌르륵 달렸다.

- 내가 이거는 꼭 본다

- collaboration with ex-wife? FXXK

- 존나 비즈니스 마인드네

- 나라면 전 여친이랑은 못할 듯

수많은 영어 댓글 사이에서 한국어 댓글을 골라 읽던 알바생은 생각했다.

‘영어 댓글 엄청 많다. 이번 컴백 일지로 해외 팬들은 확실하게 잡아둘 수 있겠는데?’

소속사가 물 들어올 때 노를 힘껏 젓는 게 눈에 보인다.

또한 알바생이 보기엔 천마에게만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에 천마와 같이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도 한국에서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여러모로 양쪽 모두에게 이득인 부분이었다.

그렇게 분석을 한 알바생은 기대하며 컴백 일지를 재생했다.

그리고 당황했다.

[에보니 킹 : 아 진짜 말이 안 통하네. 너는 무슨 말만 하면 꼬투리를 잡아?]

[대표 : 그러는 당신은 말만 하면 감정적으로 받아치지.]

[에보니 킹 : 잘났다 잘났어. 맨날 혼자만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

[대표 : 됐다. 그냥 말을 말자. 너랑은 진짜 말이 안 통하네.]

“···?”

두 사람은 전혀 쿨하지 않았다.

얼마 전 알바생이 힐끔힐끔 직관한 커플 싸움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그런데 또 재미있네.’

컴백일지가 아니라 시트콤을 보는 느낌이다.

‘부부 싸움 현장을 직접 촬영하지는 않았을 거고. 대본을 쓴 모양인데?’

알바생의 추측은 맞았다.

이 상황은 옥수진의 제안으로 꾸며진 콩트였다.

에보니는 환영했고, 대표도 이렇게 된 거 마케팅이나 제대로 해보자며 찬성했다.

두 사람은 감정을 듬뿍 담은 연기를 펼쳤고, 역시나 먹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부부 싸움이라니. 이건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

먹힌 건 외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 인간은 왜 혼자서는 외롭고 둘이 되면 빡치는가

- 연예인들도 이렇게 싸우는구나

- Itss so fun to see couples fighting

- @IVana   wow it’s us

알바생은 방금 매대에 채워놓은 팝콘을 결제해서 뜯었다.

짧지만 충격적인 인트로가 끝나고, 본격적인 방송이 시작되었다.

[전 남편과 전 부인이 어쩌다가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을까?]

[◁◁◁ 2주일 전 ◁◁◁]

[페니와 천마의 첫 만남]

[안녕하세요, 저는 penny에요. 난 지금 한국에 온 지 2주가 됐는데 I like Korea 마음에 들어요.]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페니는 어설픈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한 후, 천마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었다.

[Q. 어쩌다가 천마에게 연락을 했나요?]

[A. 나는 최고의 프로듀서를 찾고 있었어요. 매일같이 비트를 받고, 곡을 들어봤죠. 그러다 우연히 천마의 노래를 듣게 되었어요. 참고로 컨택하던 프로듀서 중에는 ‘팀 아발론’도 있었어요. 물론 전 천마를 선택했지만요.]

[Q. 팀 아발론 이요? ‘맥 로스웰’의 메가 히트곡 ‘code 7’을 만들었던?]

[A. (웃음) 맞아요. 마침 제가 맥과 같은 레이블이라서 소개받았어요. 하지만 전 천마와 함께 하자고 고집을 부렸고, 고집부린 걸 후회하지 않아요.]

인터뷰를 본 알바생은 감탄했다.

‘뭐야? 그럼 지금 아발론을 재끼고 천마를 선택한 거야?’

아발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듀서 팀이다.

그들이 프로듀싱 한 앨범은 무조건 빌보드에 들었고, 피처링 진도 최고였다.

하지만 댓글에서 사람들은 페니의 선택을 칭찬하고 있었다.

- 아발론을 까고 천마를 골랐다고??? 천마 클라스 미쳤네

- 아발론 스타일 생각해보면 데뷔곡이랑 비슷했을 듯

ㄴ 안 들어도 어떤 노래일지 뻔함ㅋㅋㅋㅋ

- ㄹㅇ 천마 선택한게 신의 한 수

심지어 추천순으로 보니 ‘맥 로스웰’도 노래를 칭찬하고 있었다.

- this song is 'REAL’ you. See on Bill. (이게 'REAL’ 너지. 빌보드에서 보자고!)

ㄴ 헐 진짜가 나타났다!

ㄴ 형이 왜 여기서 나와···.

ㄴ 댓글 내리다가 깜짝 놀랐네;;; 왜 여기에 있냐

ㄴ 교주야 빨리와서 고정 좀 시켜줘

알바생은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모두 칭찬을 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법이다.

‘도대체 어떻게 바꿔놓은 거지?’

솔직히 페니의 데뷔곡은 알바생의 스타일은 아니었다.

천마에게 곡을 받는다길래 궁금해져서 들어봤지만, 산만하고 질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알바생은 페니의 신곡을 재생해보았다.

시작은 가벼운 포크 기타.

버스킹을 하는 것처럼 기타와 보컬로 이루어진 노래였다.

다소 나른하게 들릴 수 있었지만, 전반부를 지나자 페니가 허밍으로 가볍게 공간을 채워나가며 에보니 킹의 피처링이 들어가는 순간.

노래의 텐션이 확 살아나며 순식간에 빠져든다.

이전처럼 강렬하게 내지르지 않는데도 노래가 짧다고 느껴질 만큼 몰입감이 엄청났다.

알바생은 플레이리스트에 [The REAL]을 넣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잘하는데, 데뷔곡은 왜 그렇게 한 거람.’

.

.

.

한편, 미국 로페즈 뮤직 그룹의 회장.

그도 컴백일지를 보며 어느 편의점에 있는 알바생과 똑같이 말했다.

“진작 이렇게 할 것이지. 프로듀서 이름이 천마라고 했나? 이거 보는 눈이 있군.”

회장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드러나 있었다.

< 배틀도 글로벌하게 (4)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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