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썸머 페스타 (1) >
로페즈 회장에게 페니는 가장 신경 쓰이는 손가락이었다.
딸이 어렸을 때부터 재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딸이 그 재능을 완벽하게 펼칠 수 있도록, 남부럽지 않은 지원을 해주려고 했다.
음악적 소양을 갈고닦을 수 있는 커리큘럼, 최고의 트레이너, 경험을 쌓을 여러 무대.
완벽한 계획을 짜놨다.
그런데, 그 계획을 들은 페니가 말했다.
- 아빠가 정해준 코스? 그거 완전 재미없어!
아빠와 대판 싸우고는 집을 나갔다.
페니가 16살 때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화가 나기도 했고, 딸내미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도 금방 돌아오겠지.’
어려서부터 고생이라곤 해본 적 없는 녀석이었으니까.
걱정이 되니 사람 몇 명을 붙여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페니가 며칠 못 가서 집으로 돌아올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성인이 된 그녀는 혼자의 힘으로 대형 레이블과 계약하고 데뷔에 성공했다.
물론 그 데뷔 앨범은 대차게 말아먹었지만.
‘내가 그렇게 얘기해도 안 듣더니만.’
페니는 어렸을 때부터 화려한 사운드와 강렬한 비트를 가진 노래를 즐겨 들었다. 좋아하는 장르도 EDM이나 힙합 쪽이었고.
하지만 로페즈 회장이 생각하기에 페니의 장점은 매력적인 보컬에 있었다.
그 보컬을 살릴 수 있도록 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1집이 폭삭 망한 걸 보니 딸내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이번에는 고집을 꺾고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한 싱글을 냈다.
역시나 이번 곡은 지난 데뷔 앨범에 비해 훨씬 좋은 평가를 받는 중이었다.
‘하여간 아빠 말은 쥐똥으로 알고. 남의 말만 잘 듣는 건 만국 공통인 건지.’
속으로 푸념하면서도 로페즈 회장은 딸의 성공이 내심 기뻤다.
그래서 딸의 곡을 성공적으로 프로듀싱해준 천마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고집 센 녀석을 어떻게 설득한 거지.’
설득하는 과정을 찾는 건 쉬웠다.
천마의 채널, 컴백일지라는 콘텐츠에 천마가 딸을 설득하는 과정이 모두 나와 있었다.
천마는 한눈에 딸의 장점을 알아봤고, 거기에 맞는 노래를 능숙한 재단사처럼 만들어줬다.
그 모습을 본 로페즈 회장은 자연스럽게 천마에게 관심이 갔다.
표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작곡가이자 가수.
그러나 그 면면을 살펴보면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사람이다.
삽시간에 한국 차트를 장악한 천마는, 최근에는 그의 방송에서 뮤파이의 대표와 에보니 킹마저 한판 붙게 만들었다.
“확실히 물건은 물건이군.”
천마는 로페즈 회장이 본 한국 뮤지션 중 걸출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은 세계 음악 시장을 뒤흔들만한 인재가 나온 적은 없다.
종종 뛰어난 뮤지션이 몇 명만 세계 무대에 나올 뿐이지, 대부분 한국 시장에서만 머문다.
하지만 천마는 여타 한국 뮤지션들과는 달라 보였다.
더욱 중요한 건, 아직 천마라는 사람에 대한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평가된 상품에 투자하는 것.
그게 바로 기업인이 하는 일이다.
“마침 천마도 해외 진출에 의사가 있어 보이는데.”
가능성만 확실하다면 유통 계약을 맺고, 그걸 넘어서 대규모의 투자를 할 의향도 있다.
회장은 그 즉시 내부에 있는 리서치 팀에 천마신교 레코즈에 대해 분석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며칠 뒤 받아본 두꺼운 보고서는 천마신교 레코즈의 장점과 단점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먼저 장점이 적혀있는 페이지를 읽어보던 로페즈 회장은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수익 모델이 정말 이상적이군. 음원 수익이 기대 이상인걸?”
엔터테인먼트의 전통적인 수익 모델은 음원과 음반부터 굿즈, 콘서트, 행사, 광고 등이 있다.
일반적인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광고와 행사에서 수익을 얻는 반면, 천마신교는 거의 대부분의 수익을 음원/음반, 그리고 저작권료로 얻고 있었다.
그야말로 유통사와 찰떡궁합인 셈이다.
“또 다른 사업으로의 확장성도 좋아 보이는군.”
수익 모델이 지금까지 단편적이었기에, 로페즈 뮤직 그룹의 투자를 통해 다른 콘텐츠 사업으로 확장할 여지가 충분해 보였다.
로페즈 회장의 입장에서는 군침이 돌 만한 회사였다.
“하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크겠군.”
천마신교의 가장 큰 문제.
그건 바로 천마 원툴의 회사라는 것이다.
미니롱과 길성진이 소속 가수로 있다지만 천마에 비하면 영향력이 미미하다.
천마가 혹여 삐끗하기라도 한다면 회사는 순식간에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보면 천마가 세계 시장에서 먹히기만 하면 천마신교도 약진할 수 있을거고.”
로페즈 회장은 과연 천마가 세계 시장에서 어디까지 먹힐지 궁금해졌다.
최근 들어 빌보드에 그가 만든 노래가 오르내리고 있다지만, 그건 오롯이 천마의 음악적 역량 때문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안토니오 로시의 챌린지. 뮤파이와 에보니의 부부싸움.
음악 외적으로 개입한 게 많았다.
로페즈 회장은 생각했다.
“천마가 과연 세계에서 먹힐지. 그의 순수한 음악적 역량을 볼 수 있는 판이 있으면 좋겠군.”
그리고 로페즈 회장이 기다리던 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리게 된다.
*
아발론은 2인조 힙합 프로듀서 팀이다.
멜로디와 가사는 같이 짜고,
리드 파트는 톰이, 리듬 파트는 제리가.
척척 맞는 호흡으로 월클이 된 두 사람은, 지금 쌍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제리가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말했다.
“천마 그건 뭐하는 새끼인데 갑자기 끼어들어?”
그 덕분에 아발론이 세우던 계획이 모두 틀어졌다.
아발론은 이전부터 페니가 로페즈 회장의 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페니의 앨범을 프로듀싱 해주겠냐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바로 달려들었다.
페니의 앨범을 성공적으로 프로듀싱 해주기만 한다면, 로페즈 회장에게 직통으로 연결되는 인맥을 만들 수 있다.
뮤파이의 대표도 페니를 데뷔시킨 이후 그 덕을 봤으니까.
상황은 최고였다.
마침 페니도 아발론과 예전부터 작업을 하고 싶어 했고, 만들어둔 곡을 몇 개 보내 줬더니 모두 마음에 든다는 연락을 받았다. 심지어 페니의 데뷔 앨범도 아발론이 추구하는 스타일과 비슷해서 궁합도 잘 맞을 것 같았다.
이대로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그 순간.
천마가 등장해 페니를 낚아챘다.
톰도 화를 삭이는 표정으로 제리에게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야, 컴백 일지 봤냐?”
“컴백 일지? 그건 또 뭔데?”
“천마라는 놈이 하는 뉴튜브 코너인데, 여기서 우리랑 자기를 비교했네. 뻔뻔한 새끼.”
“What the!?”
톰은 제리가 말한 문제의 그 부분을 봤다.
영상은 페니의 인터뷰였다.
- 참고로 컨택하던 프로듀서 중에는 ‘팀 아발론’도 있었어요. 물론 전 천마를 선택했지만요.
페니가 작정하고 천마와 아발론을 비교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인터뷰를 하던 와중 이름이 흘러나온 것뿐이지만.
대중들은 옳다구나 하며 두 사람을 비교하는 중이었다.
- 솔직히 아발론은 이런 노래 못만들지ㅋㅋㅋㅋㅋ 이건 누가 봐도 천마 1승이다
댓글을 본 제리는 빡쳐서 소리를 질렀다.
“하, 음악이라고는 좆도 모르는 새끼들이. 감히 저딴 칭크와 우리를 비교해?”
“야야, 참아. 사람들이 뭘 알겠어. 저딴 식으로 지껄여 놓고 우리가 음원 발매라면 또 우르르 몰려와서 찬양할걸.”
톰의 만류에 제리는 대댓글을 작성하던 걸 지웠다.
일단 말리니까 참기는 했는데,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를 제일 열받게하는 건, 사람들이 하는 소리가 사실은 전부 맞는 말이라는 점이다.
아발론이 생각하기에 페니의 데뷔 앨범이 망한 이유는 단지 곡이 좋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이전보다 더 좋은 곡을 써주기만 한다면 페니가 성공할 거라고 믿었다.
페니가 하던 장르와, 그녀의 보컬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천마는 해냈다.
장르를 뛰어넘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팀 아발론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심지어 노래도 잘 뽑혀서 벌써 차트에서 순항 중이었다.
톰과 제리는 연예 뉴스를 보았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 어찌나 빨리 퍼지는지, 타블로이드지에는 벌써···
[팀 아발론, 동양인에게 패배하다?]
[페니 ‘팀 아발론? 제 선택은 천마에요’]
···따위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찍어내는 중이었다.
물론 대중들이 저 기사만 가지고 천마가 아발론을 이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거 뮤파이 대표가 우리랑 엮어서 언플하는거지?”
신인을 띄우기 위해 유명인과 엮는 건 흔한 전략이니까.
하지만 당하는 아발론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짜증이 났다.
둘은 한 가지 결론에 동의했다.
이대로 천마를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제리가 말했다.
“좋은 방법이 없나? 우리가 팬들을 선동하면 저 동양인 SNS나 뉴튜브는 바로 폭격당할 텐데.”
하지만 톰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좋은 방법이 아냐. 그렇게 했다간 우리 스스로 천마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인정해버리는 거라고.”
“그럼 뭐 방법이라도 있어?”
“일단 판을 뒤흔들어야지.”
톰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웃었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경쟁 구도부터 바꿔버리는 거야.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천마에게 손을 내미는 척하는 거고.”
“뭐? 내가 저 동양인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제리, 표면적으로만 그러는 거야. 마침 Music Festival 하나 있잖아. 거기 천마를 초대해보자고.”
Summer Festa. 여름에 열리는 미국 음악 페스티벌이다.
그리고 제리는 나쁜 일이라면 찰떡같이 알아차렸다.
“선심 쓰는 척하면서 천마를 우리 무대 게스트로 초대하고, 거기에서 개쪽을 줘버리자는 거지? 좋은 아이디어인데?”
저 건방진 동양인이, 세계 무대에 나왔을 때 얼마나 자신이 하잘것없는지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발론은 대인처럼 천마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미지 메이킹도 하고, 천마에게 빅엿도 먹이고.
일거양득이다.
“좋아. 이 계획은 사람들이 많이 알수록 좋겠군.”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천마가 쪽이 팔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
아발론은 그래서 일부러 천마의 방송에 직접 찾아갔다.
그들이 후원을 날리면서 페스티벌에 초대한다면 그건 분명 기사화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새끼 방송을 우리가 뒤집어 버리자고."
“근데 천마 방송에서 요청을 하려면 후원이 필수라고 하더라.”
“그래? 후원 금액이 얼만데?”
“지난번 뮤파이 대표랑 에보니가 싸울 때 1,000달러씩 후원한 모양이야.”
“겨우? 그정도면 하루 밥값도 안 되는군.”
“우리 체면도 있으니 2,000달러로 가자고.”
합의를 마친 아발론은 자신만만하게 천마의 채널에서 후원을 날렸다.
[팀 아발론 님이 2,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안녕 천마! 지난 컴백일지 재미있게 봤어. 노래 좋던데?
[팀 아발론 님이 2,012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이번에 우리와 함께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서보지 않을래?
후원을 마친 팀 아발론은 맥주를 마시며 화면을 응시했다.
천마가 미끼를 물기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잠시 뒤, 입질이 왔다.
하지만 미끼를 문건 천마가 아니었다.
천마보다 훨씬 더 거대한, 대물이 미끼를 물어버렸다.
[로페즈 뮤직 님이 10,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뮤직 페스티벌? 로페즈에서 후원하는 Summer Festa 말하는 건가?
팀 아발론은 마시던 맥주를 뿜었다.
< 썸머 페스타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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