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썸머 페스타 (2) >
이번에 미국 여행을 하고, 뮤파이와도 작업을 하면서 확실히 느꼈다.
세계 음악 시장은 광활하다.
처음 내가 천마신교 레코즈를 만들었을 때는 세계 최고의 회사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가야 할 길이 한참 남았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중원 일통을 하던 때가 떠오르는군.’
저기 천산에서 시작한 정벌행은, 중원의 끄트머리부터 차근차근 집어삼켰다.
그리고 결국 구파일방을 비롯한 무림맹과 사황성까지 모조리 신교의 앞에 꿇렸다.
뮤파이를 중원 세력에 비교하자면 아마 구파일방쯤 될 거다.
‘천마신교 레코즈는 한 지역의 패자도 못 되겠군.’
아직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단순히 음원 성적을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다.
한국에서 내 노래가 각종 차트를 장악한 지는 오래됐다.
그러나 천마신교는 회사로서 세력이 일천하다.
'천마'라는 아티스트가 없으면 임팩트가 없다.
나는 내가 만든 이 회사가 국내에서 최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4대 기획사를 넘어, 대한민국 최고의 레이블이 되기를.
‘그러려면 새로운 아티스트도 더 영입하고, 회사의 체급도 키워야 하는데.’
이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 내가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미국에서 이런저런 일을 벌여놓으면서 만든 기틀을 확실하게 다지는 것.
안토니오와의 나이트메어 챌린지, 페니의 신곡 발매 때 있던 부부싸움 해프닝.
여러 사건이 겹치면서 미국에서의 내 인지도가 높아지기는 했다.
그에 따라 해외 팬들도 조금 생겨났지만 지금 내가 받는 느낌을 설명하자면,
‘거품이 낀 거지.’
- 안토니오와 같이 댄스 했던 걔?
- 부부싸움 했던 걔?
이런 거품 따위'로만' 나를 판단하는 건 싫다.
단순히 가십이나 해프닝이 아니라, 순수하게 내 음악으로 나를 각인시킬 수 있는 그런 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판은 누군가가 돈까지 싸 들고 오면서 마련해주었다.
.
.
.
여느 때처럼 방송을 하던 어느날.
[팀 아발론 님이 2,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지난 컴백일지 재미있게 봤어. 노래 좋던데?
갑자기 터지는 거금의 후원이 화면을 화려하게 물들인다.
그런데 후원자 아이디가 팀 아발론?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무림에서 70년을 살다가 돌아와서 그런지 남들이 다 알만한 뮤지션도 종종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기억의 잔재가 남아있는 걸 보면 분명 유명한 녀석일 텐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발론이 누구였지?”
잠깐 정적이 흐르더니 채팅이 다다다다 올라왔다.
하나하나 2,000달러의 후원을 담아서.
[팀 아발론 님이 2,001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하하하 페니한테서 얘기 못 들었나?
- 내가 원래 프로듀싱 해 주려고 했는데, 너무 바빠서 작업을 못 해 줬거든
- 다행히 그쪽이 괜찮은 곡을 만들어 줬다면서.
- 이번에 빌보드에 들었다며?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축하해! 하핫!
“.......”
자동으로 번역되는 채팅에서는 쿨한 척을 하려는 뉘앙스가 물씬 풍긴다.
그리고 한편에 보이는 채팅창에서는 내 방송의 시청자들이 난리가 났다.
- ㅋㅋㅋㅋ아발론 의문의 듣보행
- 방금 천마 질문에 발끈한건가?
- 8,000달러 벌기 쉽네
- 미국 갔다 왔으면 아발론 정도는 알아두자
아발론 본인의 설명과 사람들의 호들갑 덕분에 이제 누군지 확실히 기억이 났다.
컴백일지 페니 편이 나갔을 때, 페니가 잠깐 언급했던 유명 프로듀서 팀이다.
‘그런데 얘네가 내 방송에는 왜 온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시 인터뷰에서 페니가 나랑 비교하는 뉘앙스로 말한 걸, 뮤파이 대표가 홍보로 알뜰하게 써먹었다고 들었는데. 분명 나를 싫어하면 싫어했지, 방송에서 쎄쎄쎄 할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슨 용건인데?”
[팀 아발론 님이 2,005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뭐야? 바로 본론이야?
- 어차피 우리도 바쁘니까 잘됐네.
- 이번에 우리와 함께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서보지 않을래?
뮤직 페스티벌?
무슨 꿍꿍이를 숨겼을 줄 알고.
나는 당연히 거절했다.
“싫어. 바쁘다.”
내 단호박 같은 거절에 아까부터 팝콘통을 흔들고 있던 시청자들은 낄낄 웃었다.
- 바.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교주야 그래도 예의상 고민은 해줘야 하는거 아니냐
- 존나 단호하네ㅋㅋㅋㅋ 이정도면 아발론 상처받았겠는데
- 아발론 뜻밖의 2패
나는 아발론에게 신경을 끄고 하던 방송이나 계속하려고 했는데, 아발론은 끈질기게 후원을 날리며 물었다.
[팀 아발론 님이 2,008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바쁘다고? 야 이거 좋은 기회야. 아무한테나 제안하는 게 아닌데
“앨범 준비 중이라서 바쁘다. 내 입장은 알았지? 그럼 이만 가라.”
하지만 아발론은 구질구질하게 매달렸다.
뭔가 계획대로 되어가지 않는 사람처럼.
[팀 아발론 님이 2,009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또 앨범을 낸다고?
- 아 그러고 보니까 내가 어떤 페스티벌인지 말을 안 했구나
- 그러면 거절할 수 있지. 이해해.
- 내가 말한 건 썸머 페스타라고. 세계적인 페스티벌이야.
이렇게 징징 매달리니 대체 무슨 페스티벌인지 궁금해지는데.
‘무슨 페스티벌이길래 이렇게 난리지’
방송을 하다가 깨달은 건데, 모르는 게 있으면 대충 채팅창을 보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알아서 설명해 주고 있다.
- 헐 지금 천마가 썸머 페스타를 깐 거?
- 그거 다음달에 열리는 거 아님? 맞나?
- [트리위키 복붙] 썸머페스타는 8월 첫째 주에 열리는 축제로 작년 기준 89명의 아티스트와 50만 명이 관객이 왔다
- 정보 ㄱㅅ
50만명이라.
확실히 대단한 규모이다.
딱 내가 방금전까지 고민하고 있던 부분을 긁어줄 만한 판이기도 했다.
“흠···.”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아발론의 꿍꿍이가 뭔지 모르겠다는 건데.
놈들의 속내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덥석 물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잠시 고민하는 중, 새로운 후원이 도착했다.
난생처음 보는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로페즈 뮤직 그룹 님이 10,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로페즈에서 후원하는 Summer Festa 말하는 건가?
뭐? 만 달러 후원?
깜짝 놀라서 다시 확인했다.
진짜 만 달러가 맞네. 그런데 그 앞에 후원한 사람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로페즈 뮤직 그룹? 페니의 아버지인가?'
당연히 채팅창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
-!!!!!!!!!!
-anjdi
-내가 지금 무러ㅏㅚ노로ㅓ
-ㅁ니미미친
아주 정신을 못 차리는구만.
그래도 조금 시간이 흐르자 다들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 아니 회장님 이렇게 불쑥 들어오시면
- 로페즈? 로페즈? 로페즈 뮤직 그룹?
- 진짜 회장님 등판ㅋㅋㅋㅋㅋ
- 나도 반의 반의 반만이라도 주라
- 와 씨 개부럽다
- 회장님이 어쩌다가 이 누추한 곳에
시청자들은 서서히 정신이 든 모양인지 진작 물어봤어야 할 질문을 던졌다.
왜 로페즈의 회장이 여기에 왔는가?
짐작 가는 이유가 하나 있기는 하다.
‘자기 딸 앨범을 프로듀싱해준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겠지.’
하지만 이 정도 거물이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오지는 않았을 테고.
나도 흥미로운 눈으로 로페즈 회장의 본론을 기다렸다.
이윽고 로페즈 회장이 후원과 함께 말했다.
[로페즈 뮤직 그룹 님이 10,001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이렇게 된 김에 정식으로 썸머 페스타에 초대하지.
[로페즈 뮤직 그룹 님이 10,002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우리는 세계 각지에서 유명한 아티스트를 초청하는 중이고, 자네라면 그 자격이 있으니까
아발론의 무대에 게스트로 서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매력적인 제안이다.
그런데 이 회장님도 계획적으로 나를 초청한다는 느낌은 아니고.
‘말이 나온 김에 그냥 질러보는 것 같은데?’
나한테서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이런 제안을 던진 건지는 몰라도, 뭐 상관없지.
썸머 페스타가 내 고민을 해결하기에도 적합한 무대라는 생각도 들고.
“딜. 썸머 페스타에 가보죠.”
그때였다.
[팀 아발론 님이 20,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뭐야? 나한테는 바쁘다고 안한다며?
“???”
뭐지? 금액이 올라갔는데?
.
.
.
그 시각, 팀 아발론의 방.
“야 뭐야? 2만 달러나 보내면 어떡해?
“몰라 시발. 0 하나 잘못 눌렀어.”
*
이번 천마의 방송은 이슈몰이를 단단히 했다.
아발론이 이 점을 노리고 후원을 날리며 온갖 똥꼬쇼를 펼치긴 했지만, 그 영향력은 훨씬 더 거대했다.
로페즈의 회장이 한국 방송에 나타난 건, 심지어 3만 달러를 투척하면서 천마를 섭외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으니까.
온갖 기사가 터져 나왔다.
[천마와 로페즈 회장의 인연,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가]
[아발론부터 로페즈까지, 이들이 천마를 찾은 이유는?]
[아발론이 후원한 마지막 2만 달러의 의미··· 로페즈 회장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한국 뉴스는 물론이고, 해외 뉴스에서도 방송에서 있었던 일을 퍼다 날랐다.
페니의 남자친구인 DJ도 천마의 방송을 직접 보았다.
버스킹을 직관한 DJ는 그 후로 천마의 팬이 된 상태였다.
물론 아직 기타는 돌려받지 못했지만.
그는 속으로 감탄했다.
‘와우, 어제 도대체 얼마를 번 거야?’
종종 다른 스트리머의 방송에서도 거액의 후원이 터지기는 하지만, 이 정도 스케일은 미국에서도 보기 힘든 금액이었다.
아니, 후원은 둘째치더라도, 아발론과 로페즈가 동시에 방송에 나오다니.
‘이건 정말 레전드로 남을 만한 방송이다.’
영상은 24시간 만에 6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입소문을 타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벌써 2,000만을 향해 가고 있었다.
- 이게 그 영상이야?
- 3:33 전설의 등장
- 만 달러 후원쯤은 나도 할 수 있어. 어디보자··· 이제 9999달러만 더 모으면 되겠다
- 근데 아발론은 갑자기 왜 2만 달러를 후원한거야?
ㄴ 로페즈가 3만 달러 후원했잖아. 그거랑 총 금액 맞추려는 거 아닌가?
ㄴ 이게 맞다. 아발론 가오가 있지
댓글을 보던 DJ는 영상을 한 번 더 돌려보았다.
아발론의 등장부터, 로페즈 회장의 후원, 마지막으로 아발론의 2만 달러 쾌척까지.
완벽한 기승전결이었다.
'이건 다시 봐도 재밌네.'
낄낄거리던 DJ는 이어서 재생되는 천마 움짤을 보았다.
만 달러 후원이 터져도 표정 하나 변화 없는 움짤은, [만 달러 후원을 받은 스트리머의 흔한 반응]이라는 이름을 달고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이번 영상과 관련된 콘텐츠를 끊임없이 탐사하고 있는데, 누군가 DJ를 뒤에서 건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오늘 만나기로 한 친구가 와있었다.
“뭘 보길래 불러도 대답이 없냐.”
“아, 미안. 재미있는 게 있어서. 너 천마라고 알아?”
“알긴 하지. 아직도 연예 뉴스에 엄청 뜨던데. 아직 영상은 안 봤는데 개쩔었다며?”
“아발론이랑 로페즈가 썸머 페스타에 초청하려고 난리였지.”
DJ는 괜히 으쓱해져서 말했다.
썸머 페스타 초청은 같은 아티스트로서 영예로운 일이었다.
DJ도 그런 페스티벌에 가서 디제잉을 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들은 친구가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마가 썸머 페스타에?”
조금 떨떠름한 뉘앙스인지라, DJ도 약간 방어적으로 말했다.
“왜. 천마가 어때서?”
"아니, 뭐. 나쁘다는 게 아니라. 천마가 그정도 레벨은 아닌 거 같아서. 걔는 그냥···."
적당한 단어를 고민하던 친구가 말을 이었다.
“가십맨이잖아.”
가십맨.
미국인들의 천마에 대한 인식이다.
페니의 신곡을 제외하면, 빌보드에 올라간 천마의 노래는 모두 한국어로 된 것들 뿐이다.
그래서인지 기본적으로 천마의 노래에는 진입 장벽이 있다.
따라서 천마의 노래보다는, 그가 일으킨 사건만 아는 사람이 더 많았다.
부부싸움 메이커
아발론을 제친 프로듀서
방송에 아발론과 로페즈 회장이 나타난 최근 일까지.
이런 사건이 천마를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가수'로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게 천마가 본인의 인지도를 거품이라고 표현하며 이번 썸머 페스타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어쨌든.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친구는 화제를 돌렸다.
“참, 그런데 썸머 페스타 타임테이블 나왔다고 하더라.”
“벌써? 하긴 라인업은 거의 완성되어있었으니까.”
그들은 썸머 페스타의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타임 테이블을 확인했다.
"와우. 맥 로스웰도 오네?"
"아발론 무대가 바로 그다음이야. 이때 메인 스테이지는 미어터지겠군."
화려한 라인업에 감탄하던 DJ는 천마의 이름을 찾아봤다.
의외로 천마는 저녁 시간, 괜찮은 시간대를 배정받았다.
하지만 괜찮은 건 그것뿐이다.
먼저 천마는 공연하는 그 시간에,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그날 가장 핫한 아티스트가 공연한다.
심지어 천마가 받은 스테이지도 메인 스테이지에서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유명가수와 동 시간대 공연에, 동선을 생각하더라도 쉽게 발걸음을 옮기기 어려운 곳.
DJ는 타임테이블을 보면서 생각했다.
‘천마가 묻힐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천마는 이번에도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그걸 제공한 건 아발론이었다.
< 썸머 페스타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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