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91화 (91/191)

< 썸머 페스타 (3) >

8월의 무더운 햇빛이 천산빌딩을 내리쬐고 있었지만···. 회사 안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웬만하면 재택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썸머 페스타에 초청을 받았을 때가 7월 초였는데.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천마신교 레코즈.

5월에 첫 싱글을 낸 길성진은 이어서 미니 1집 앨범을 발매했다.

얼마전에는 활동의 마무리로 단독 콘서트도 열었고, 게스트로는 나와 미니롱이 참가했다.

휴식을 취하던 미니롱은 다시 곡 작업에 들어갔다.

라디오 진행은 꾸준히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광고와 행사들로 조금씩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옥수진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라는 거창한 이름보다는, 그냥 점심 메뉴를 고르다 회사 체급을 키워보자는 말이 나왔다.

“회사에 아티스트가 더 많아지면 좋겠어.”

“그건 저도 찬성이에요. 그런데 천마신교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가수는 많지 않나요?”

그건 그렇다.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성공하지 못한 가수는 없으니까.

소속 아티스트들은 내 곡을 받아서 음원차트 상위권에는 한 번씩 들어봤다.

그래서인지 사실 지금도 다양한 루트로 역 영입 제안이 오고 있기는 하다.

누구의 지인, 누구의 친구라는 사람들이 은근슬쩍 천마신교에 들어가면 안되겠냐고 부탁해온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영입하고 싶지는 않아서 내가 면밀히 검토해봤는데, 딱히 끌리는 사람이 없다.

무엇보다,

“기성 가수를 영입하는 것도 좋은데, 천마신교에서 한번 키워보는 건 어때?”

메이드 인 천마신교.

내가 직접 뽑아서 데뷔시키는 가수를 원한다.

“좋아요. 그러면 연습생을 뽑을 오디션을 해야겠네요. 준비해서 공고를 올릴게요.”

일단 천마신교에서의 일은 이 정도로 마무리 짓고.

나는 곧바로 미국으로 넘어갔다.

본격적으로 페니의 2집 앨범을 프로듀싱 해주기 위해서이다.

페니의 싱글은 꽤 잘나가고 있었다.

처음 발매 당시부터 화제를 업고 빌보드 100위 안쪽으로 진입했다.

지금은 쭉쭉 올라가서 40위 권에서 노는 중이고.

힘이 빠질 때쯤, 2집 앨범을 내고 그중 반응이 좋은 것을 싱글컷하기로 했다.

이번 앨범의 컨셉은 '진짜 페니란 누구인가'다.

그 하나의 모티브로 앨범 전체가 연결될 수 있도록, 곡 구성부터 녹음 전반 디렉팅, 심지어 비디오 컨셉까지 정해야 했다.

결정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 아예 내가 미국에 들어가서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페니의 프로듀싱까지 궤도에 올랐을 때.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일은 하나가 있었다.

“무대 세트 리스트를 어떻게 짜야 하지.”

얼마 전 주최 측에서 정해준 타임테이블을 전달받았다.

내 공연 시간은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7시 45분부터 9시까지.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나와 비슷한 시간에, 그날 가장 핫한 가수와 DJ, 밴드의 공연도 열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 무대는 메인 스테이지와는 조금 떨어진 곳이다.

요약하자면, 그 시간대에 메인 스테이지에 눌러앉은 사람들이 웬만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내 무대까지는 오지 않을 거라는 거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로페즈 회장의 의도가 분명하게 전해져 왔다.

'내가 이들 사이에서 얼마나 두각을 나타낼지 보려고 했던 거군.'

오랜만에 시험받는 기분이라 웃기기도 하고 승부욕이 일어났다.

좋지. 나도 시험 좋아하거든.

특히 출제자의 예상을 박살낼 때 그 기분이 끝내준다.

그럼 나도 특별한 준비를 해야겠는데.

“오프닝에 신경을 써야겠군. 관객들을 한 번에 사로잡고 몰입시킬 수 있도록 강렬한 게 좋겠어.”

그러려면 어떤 노래를 준비해야 하지?

편곡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문다.

미국에서 하는 무대인 만큼 영미 팝 느낌이 나도록 사운드의 질감을 바꿔야 하나?

축제인 만큼 일렉트로니카의 소스를 섞어볼까?

아니면 즉흥적인 느낌이 나도록 여러 개의 패턴으로 변주를 보여줄까?

썸머 페스타를 뒤집어놓을 수십 개의 방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그걸 모두 털어냈다.

무림에서 경지에 오르며 깨달은 게 있다.

“사실 가장 어려운 건, 이런 쓸데없는 것들을 덜어내는 거지.”

미국 시장이니까 거기에 맞춰야 한다?

영미 팝 느낌이 나게 포장해야 한다?

이건 그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포장지에 열광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반응하는 건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이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진실만을 남기자고."

중요한 건 나.

페니에게 [The REAL]을 찾아준 것처럼.

가십맨이니 배틀맨이니 하는 수식어를 떼고 오롯이 천마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썸머 페스타의 셋업 리스트를 꾸리는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

시간은 흘러서 썸머 페스타의 시작이 다가왔다.

나는 축제 첫째 날 저녁 시간을 배정받았다.

무대도 점검하고 분위기도 익힐 겸, 나는 미리 축제 장소에 도착했다.

옆에 있던 강여름이 조잘거렸다.

이번 미국행에는 강여름이 VJ 겸 매니저로 따라왔다.

“와, 날씨 진짜 덥네요. 더운 게 아니라 뜨거운 건가?”

그래도 사막 기후다 보니 습하지 않아서 그늘에 들어가면 바로 시원해진다.

우리는 관광객과 스탭들로 복작복작하는 인파를 뚫고 대기실에 도착했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세트리스트를 확인하며 준비해둔 AR을 점검하고, 관계자와 만나서 진행 사항을 확인하고, 곳곳에는 촬영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때, 잠깐 전화를 받고 온 강여름이 소리쳤다.

“헐, 천마님!!!! 로페즈 회장이 잠깐 들른다는데요?”

“그래요? 잠깐 무대를 보고 오려고 했는데. 언제 온대요?”

“그게 잠시만요···.”

강여름이 확인하려는 순간 대기실 문이 벌컥 열렸다.

‘로페즈 회장인가?’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로페즈 그룹의 회장이라면 이렇게 예의 없이 들어오지는 않겠지.

역시나. 들어온 사람은 50대 중년 남성이 아닌, 아직 30대로 보이는 2명의 남자였다.

저들끼리 영어로 지껄이면서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누군지는 몰라도 좋은 의도로 오지 않은 놈들이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나는 최근 열심히 공부한 영어를 이용해 물어봤다.

“그쪽은 뭐하는 새끼들이냐?”

상대는 당황했다.

“우리를 모른다고?”

“내가 알아야 하는 사람인가? 혹시 여기 스태프?”

그러자 강여름이 내 귀에 속삭여줬다.

“그 사람들이에요. 2만 달러.”

“아! 2만 달러.”

그제서야 나는 놈들이 아발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진이라곤 찾아본 적이 없으니 얼굴을 알 리가 있나.

내 눈에는 외국인들 생긴 게 다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아발론은 기가 찬다는 듯이 말했다.

“하, 2만 달러나 받아놓고 우리 얼굴도 모르는 게 말이 돼?”

내가 이제야 정체를 눈치챘다는 걸 안 아발론은 본격적으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놈들은 과장되게 코를 잡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었다.

“어후, 이게 무슨 냄새야? 마늘 냄새인가?”

“방은 또 왜 이렇게 좁아. 화장실만한데?”

“뭐 어쩌겠어. 초대받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읍읍?”

“운 좋게 초대는 받았는데 관객은 없어서 어쩌냐. 사람들이 그쪽··· 읍읍!?”

나는 일단 입부터 막은 다음, 이놈들을 쫓아낼 방법을 여러 가지로 고민해보았다.

‘멱살을 잡고 끌어내 줘? 아니면 축제 한복판에서 스트립쇼라도 시켜야 하나?’

여러 방법이 머릿속을 오가는 사이, 이쪽 대기실로 다가오는 기운이 느껴졌다.

흠.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나는 아발론의 아혈을 풀어주고 비뚜름하게 웃었다.

“쯧, 페니를 빼앗겨서 그러는 거냐? 배 아파서? 아니면 뭐 나한테 경쟁의식이라도 느끼나?”

여기에 사람의 감정을 격동시키는 내공을 살짝 담아줬다.

내 말을 들을 아발론은 조금 전까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도 잊고 그대로 급발진했다.

“뭐? 페니를 빼앗겨? 그년은 우리가 버린 거야.”

“페니랑 작업한 곡이 잘나가서 뭐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인데, 그년이 우리랑 같이 하고 싶어서 존나 매달렸다는 건 아냐?

그래. 아주 잘하고 있다.

나는 허공섭물의 묘리를 이용해 대기실의 문을 살짝 열었다.

그다음 아발론의 목소리가 특별히 잘 들릴 수 있도록 음파를 증폭시켰다.

“솔직히 페니도 그래.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큰 티가 딱 나지 않아? 성격도 제멋대로에 싸가지 없고.”

“맞아. 그런 년한테는 동양인이 잘 어울리지. 동양인이 비위 하나는 잘 맞춰주···.”

실컷 떠들어대던 아발론은 문득 주변이 조용해진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묘한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발론의 바로 뒤를.

아발론은 황급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헉!?”

“회장님이 왜 여기에···?”

로페즈 회장이 차갑게 말했다.

“왜? 축제의 후원자가 아티스트를 만나는 게 이상한가?”

눈빛에서 당장이라도 아발론은 찢어버리겠다는 살기가 뚝뚝 떨어졌다.

면전에서 딸 뒷담화를 들었으니 엄청 빡치겠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청산유수로 씨부리던 아발론은, 더듬더듬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 그게 회장님. 방금 말을 오해가···.”

“앞으로 그 오해를 풀 기회는 영원히 없을 것 같군.”

로페즈 그룹이 후원하는 축제에서 아발론이 설 자리는 없을 테니까.

결국 로페즈 회장에게 찍힌 아발론은 우물쭈물하다 도망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

로페즈 회장과는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다.

그냥 페니의 신곡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과, 축제가 끝나면 셋이서 같이 식사를 하자는 정도.

용건을 마친 로페즈 회장은 금방 돌아갔고, 나는 원래의 계획대로 축제를 둘러보기 위해 대기실에서 나왔다.

페스티벌을 하는 장소는 거대했고, 무대 말고도 각종 음식을 판매하는 부스부터 응원봉 같은 굿즈를 판매하는 샵도 있었다.

비어존에서는 사람들이 맥주를 들이켜며 왁자지껄 떠드는 중이었다.

“오 이제 아발론 공연 시작하겠다.”

“벌써? 지금 메인 스테이지 앞자리 꽉 찼을 텐데.”

“아 그러니까 술은 좀 이따 마시자고 했잖아.”

“아발론 다음에는 맥 로스웰인데. 지금이라도 빨리 가보자.”

그들이 정확히 뭐하고 말하는지는 몰랐지만, 아발론이나 메인 스테이지 같은 특정 단어들은 귀에 들어왔다.

‘지금이 아발론 공연 시간인가?’

나는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내 공연까지는 아직 조금 시간이 남아있었다.

‘이제 대가를 치러야지.’

천마신교의 은원은 확실하니까.

나는 메인 스테이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메인 스테이지는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공연은 이미 시작되었는지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아발론은 무대 위에서 음악을 주고받으며 디제잉을 하고 있었다.

놈들은 곡의 템포를 올리며 능숙하게 관객의 호응을 유도했고, 관객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열심히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공연장에서 뿜어지는 에너지가 몸 전체로 느껴져 사람을 끓어오르게 만든다.

‘새끼들이 인성이 글러 먹어서 그렇지, 실력은···.’

···?

잠시만.

나는 놈들의 공연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이거 싱크가 안 맞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아니 숙련된 뮤지션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미세한 간극이었다.

전광판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어서, 나는 은신술을 쓴 뒤 무대가 잘 보이는 근처 구조물에 올라탔다.

여기서 보니 확실하네.

핸드 싱크가 맞질 않는다.

힙합 특성상 컷 커브가 빠르고 믹싱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는데, 그럴 때마다 페이더의 오차가 조금씩 보인다.

나는 피식 웃었다.

“이 새끼들 봐라. 페이크 디제잉이잖아?”

장난질하면 손모가지 날아간다는 거, 확실히 가르쳐줘야겠군.

< 썸머 페스타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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