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리 부는 사나이 (1) >
무대 위에 오르기 전 아발론은 심기가 불편했다.
도발하러 갔던 천마의 대기실에서 역으로 무시당한 것부터, 로페즈 회장에게 오해를 사며 찍혀버린 일까지.
천마가 연관되면 항상 일이 꼬이는 기분이다.
“아오, 로페즈 쪽이랑은 어떻게든 다시 이야기 해봐야 하는데.”
“회장은 만나주지 않을 게 분명해. 차라리 페니 쪽을 통해서 연락을 해보는 게 나을 거야.”
“그 방법밖에는 없겠지? 그 새끼 때문에 이게 뭐야!”
“진정하고, 일단 공연에 집중하자고.”
천마와 로페즈 회장에게 쪽을 당했지만, 그래도 아발론은 프로페셔널 했다.
감정은 묻어 두고 바로 무대에 몰입했다.
“R U GUYS READY!!!!!!!”
아발론의 외침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톰과 제리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은 언제나 짜릿하다.
방금까지 치솟던 짜증은 훌훌 벗어 던지고, 온몸에 활력이 차오른다.
두 사람은 능숙하게 호흡을 맞춘다.
“Come on, come on! Come with AVALON!”
“Drop the beat, BRO.”
아발론이 만든 히트곡들이 연신 흘러나오고, 두 사람은 비트를 주고받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관객들을 흥분시킨다.
“GOGOGOOOO!!!”
톰과 제리가 무대 가운데에서 어깨동무하며 비트에 맞춰 점프를 한다.
관객들도 어깨동무를 하고 뛰어오른다.
아발론이 오른쪽으로 손짓하면 관객들도 오른쪽으로 향하고, 왼쪽으로 손짓하면 그에 맞춰 왼쪽으로 움직인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같이, 대중을 손짓 하나로 조종하는 건 짜릿한 쾌감마저 느껴진다.
무대는 점점 더 뜨거워진다.
그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워터쇼가 시작되었다.
공연장의 양쪽과 DJ가 있는 무대를 향해.
시원한 물줄기가 발사된다.
관객들과 아발론을 흠뻑 적시며 열기는 더욱 고조된다.
아니, 그래야 하는데···.
“어푸푸푸.”
뜨거워진 몸을 시원하게 적셔주어야 하는 물줄기가, 얼굴만 향해서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What the fuck! 이게 무슨 일이야?”
“Stop it. 그만, 그만하라고.”
이상한 일이었다.
눈, 코, 입, 귀 가릴 것 없이 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물줄기의 강도가 강한 건 아니지만, 얼굴에 집중적으로 두드려맞으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발론은 양손을 허우적거리면서 스탭에게 사인을 보냈다.
“젠장. 장치가 고장 난 것 같은데 뭐 하고 있는 거야?”
“헤이! 빨리 여기 좀 와서 어떻게 좀 해봐.”
얼굴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서서히 약해지고, 스탭도 다가오자 두 사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새 디제잉 장비에서 손을 뗐던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세트리스트는 계속 플레이 되고 있었다.
‘잠깐만, 관객들이 이상한 걸 눈치채면 어쩌지?’
다행히 관객들의 분위기는 아직 뜨겁다.
마침 사인을 받은 스탭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톰이 말했다.
"내가 여기 맡을 테니까 가서 이놈의 물 좀 어떻게 해보라고 해봐. 이러다가 기계가 상하겠어."
"알았어."
스탭에게 다가간 제리는 마이크의 전원을 끄고 윽박질렀다.
“너 병신이야? 내가 디제잉을 못하는 상황이면 맞춰서 음악을 껐어야지! 누구 커리어 망칠 일 있어?”
그 순간, 그의 말이 스피커를 통해 공연장에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제리는 당황해서 마이크를 만져보았다.
분명 껐다고 생각한 전원은 어느새 켜져 있었다.
누군가가 탄지공을 날린 덕분이었다.
“씨발, 좆됐다.”
아발론의 페이크 디제잉이 온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
DJ와 친구는 썸머 페스타에 놀러 왔다.
일찍 도착해서 공연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맥주도 몇 잔 마시면서 열심히 즐기던 중.
대망의 공연이 다가왔다.
친구가 말했다.
“야. 아발론 공연 보려면 슬슬 준비해야 해. 안 그러면 맨 뒷자리에서 봐야 한다고.”
“아발론? 필요 없어. 난 그 시간에 천마 공연을 볼 건데.”
DJ가 아발론의 공연을 포기한다길래 친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DJ가, 아발론의 디제잉을 안 볼 거라고?”
“아발론 공연은 뉴튜브로 다시 보면 되지. 천마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거든.”
DJ는 예전에 천마가 버스킹을 했던 걸 떠올리며 대답했다.
마치 환상에 빠진 것처럼, 온 세상의 소리가 자신을 감싸는 그 느낌을 다시 한번 겪어보고 싶었다.
물론 둘 다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대가 애매하게 겹친다.
아발론의 공연은 7시부터 8시 반.
천마의 공연은 7시 45분부터 9시.
DJ의 말을 들 친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 그럼 각자 보고 싶은 공연을 보고, 끝나면 다시 연락하자고.”
두 사람은 각자 원하는 무대를 보기 위해 찢어졌고, 친구는 아발론의 공연이 있는 메인 스테이지로 향했다.
아발론의 공연이 시작되고, 친구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우와아아아악! 아발론!!!!”
아발론은 분위기를 띄우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초반부터 케이크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더니, 춤을 추기 좋은 신나는 음악을 빵빵 틀어줬다.
믹싱 실력도 뛰어났다. 생각도 못한 부분에서 트랙이 연결되면서도, 포인트는 또 기가 막히게 살린다.
친구의 디제잉을 자주 지켜봤던지라, 이런 정교한 믹싱과 비트 매칭이 얼마나 어려운 기술인지 알고 있다.
“선곡은 또 무슨 일이냐. 이 조합이면 그냥 뒤지는 거지.”
친구는 아발론의 디제잉을 보면서 날뛰었다.
초반임에도 분위기는 후끈 달아오르고, 흥분에서 옷을 집어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역시. 아발론 공연을 보러 오길 잘했다니까.”
절정은 무대 양옆에서 워터쇼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아발론이 믹싱하는 비트에 맞춰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몸을 흔들었다.
스크린을 보니 무대 위 아발론도 함께 물줄기를 맞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저 정도면 물줄기가 원한이라도 있어 보이는데?”
아발론이 허우적거리는 모습에, 그저 쇼인 줄 알고 낄낄거리던 친구는 이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아발론은 분명 물을 피하느라 양손을 모두 데크에서 뗐는데, 스피커에서는 완벽하게 믹싱된 소리가 흘러나온다.
“...설마?”
친구의 머릿속에 한가지 의심이 떠오른다.
페이크 디제잉.
친구는 주변을 둘러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대의 열기를 즐기기 바빴다.
정말 소수의 몇몇 사람들만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마침 친구의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발론 디제잉 안 하고 있는 거 같지 않아?”
“에이, 설마. 걸리면 나락인데. 그냥 워터쇼에 맞춰서 미리 녹음한 거 틀어놓은 거겠지.”
물론 사운드의 한계나 퍼포먼스 문제로 미리 믹스된 녹음을 틀 수는 있다.
저렇게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물폭탄을 받는 퍼포먼스를 준비했다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친구는 조금 의심이 었지만, 이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다.
그렇게 애써 합리화하려는 순간.
- 병신이야? 내가 디제잉을 못하는 상황이면 맞춰서 음악을 껐어야지! 누구 커리어 망칠 일 있어?
제리가, 무대 위에서 페이크 디제잉을 인정하는 발언을 해버렸다.
스피커에서 여전히 음악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 한마디에 분위기는 완전히 끝장나버렸다.
방금 전까지 내일이 없는 것처럼 뛰던 사람들은 조금씩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음악에 맞춰 열심히 몸을 흔들던 사람들은, 굳은 표정으로 무대 위의 아발론을 쳐다봤다.
싸늘하게 식은 분위기에 공연장의 온도가 몇 도는 낮아진 기분이다.
“뭐야? 저 새끼들 페이크 디제잉 하는 거였어?”
“공연이 좆으로 보이나. 관객을 농락해?”
“씨발, 이게 뭐야. 분위기 다 식었네.”
좆됨을 감지한 아발론은 장비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급하게 무대 뒤로 도망가버렸다.
난처해 보이는 주최 측 관계자가 사과하면서 머리를 조아렸지만, 이미 공연이고 뭐고 다 파투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천마 공연이나 보러 갈 걸 그랬나.’
짜증이 나다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관심도 없던 천마가 떠오르는 걸 보면.
시간을 확인하니 천마의 공연이 시작하까지는 아직 20분 정도 남아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맨 뒤쪽에 있는 사람들부터 슬슬 메인 스테이지에서 빠져나가는 분위기였다.
“걍 딴 거 보러 가자.”
“근데 한 시간 뒤면 맥 로스웰 공연도 있는데. 존버 할까?”
친구도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메인 스테이지에는 그가 보고 싶은 다른 무대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맥 로스웰부터 그 뒤로 쭉 이어지는 라인업을 버리고 가기엔 아쉬웠다.
아발론의 페이크 디제잉은 제쳐두더라도, 이후의 재미는 보장이 되기에 일단 여기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때, 무대 쪽에서 소란이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딴 거 보려고 온 줄 알아? 당장 티켓값 내놔!”
“아발론 새끼들 나오라고 그래! 퍼킹 라이어들.”
아발론을 보기 위해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이기에, 그 실망감은 더 컸다.
사람들은 물건을 던지면서 욕설을 내뱉었고, 몇몇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아발론을 변호하며 맞불을 놓았다.
당장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흥분한 사람들이 펜스 너머로 넘어가려고 시도하고, 그걸 시큐리티가 막으면서 난리가 났다.
메인 스테이지는 혼돈 그 자체였다.
‘어휴, 그냥 다른 데나 가야지.’
이런 분위기는 질색이다.
그렇게 마음을 굳히는 순간, 저 앞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자, 다들 진정하시고.”
묘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목소리다.
친구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대와 관객석을 가로지른 펜스 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거리가 있어서 흐릿하게 윤곽만 보였지만, 카메라맨이 그 순간 남자의 모습을 잡았다.
“천마?”
친구는 입을 벌렸다.
바로 오늘 오전까지도 DJ에게 주입받은 천마의 얼굴이 대형 스크린에 잡히고 있었다.
그런데 천마가 왜 지금 여기에 있지?
이유는 별거 없었다.
자신이 벌인 일이 생각보다 커질 기미가 보이자,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선 것이다.
천마는 펜스를 넘어오는 사람들을 객석으로 휙휙 돌려보내며 말했다.
"빡친다고 몸부터 나가면 쓰나. 헤이, 캄 다운."
절반은 한국어라서 이해하지 못할 법한데도, 사람들은 유순한 양처럼 말을 들었다.
내공의 영향권에 있던 친구 역시,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차분해졌다.
평온을 찾으니 알겠다.
자신은 흥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음속으로는 깊이 화가 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천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듯했다.
사람들도 순식간에 진정되었다.
천마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럼 재미있게 놀아라. 나는 간다.”
그리고 펜스에서 훌쩍 뛰어내리는 천마에게 누군가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야? 어디로 가는 거지?”
아마 그 사람은 천마가 초청받은 가수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천마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는 내 무대를 하러 가야지.”
그러면서 되물었다.
“왜? 나랑 같이 가볼래?”
*
강여름은 천마를 찾고 있었다.
“어디 가신 거람.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는데.”
잠깐 밖을 둘러보고 오겠다던 천마는 공연이 5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히 앞 타임의 밴드가 앵콜곡을 불러주어 조금의 여유가 생겼지만, 난처한 상황임은 분명했다.
“천마 님이 말도 없이 약속 시간을 어길 분은 아닌데.”
강여름은 천마에게 다시 연락하려고 휴대폰을 들었다.
그때, 스탭 중 한 명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혹시 이 사람이 천마 아닌가요?”
“헐!? 허얼?? 허어어어어얼ㄹ!!!!!”
스탭이 보여준 건 SNS에 올라온 영상이었다.
삽시간에 엄청난 추천을 받은 짧은 영상이었는데,
천마가 여기 있네?
“아니, 왜 저기에, 지금 뭘 하는···!”
강여름은 황당해하면서도 영상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배경은 아발론이 공연을 하던 메인 스테이지였다.
천마는 무대와 객석을 가로지르는 펜스 위에서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이 사람이 진짜! 위험하게 저기서 뭐하는 거야? 안되겠다. 당장 데리러 가야지. 여기서 메인 스테이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어디에요?”
스탭은 흥분한 강여름은 툭툭 건드렸다.
“이봐, 진정하라고. 천마라면 저기 오고 있는걸.”
“으잉?”
강여름은 스탭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 천마가 수천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공연장으로 오고 있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 피리 부는 사나이 (1) > 끝
ⓒ 연태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