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93화 (93/191)

< 피리 부는 사나이 (2) >

솔직히 DJ의 친구는 천마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메인 스테이지를 떠나더라도 천마의 공연을 볼지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같이 가볼래?' 한마디에 홀린 듯이 따라갔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천마의 공연장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과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다.

아발론의 공연에 실망한 사람들, 분노하던 사람들, 싸우던 사람들.

심지어 메인 스테이지 주변을 돌아다니던 사람들까지.

모두 천마에게 이끌려 따라왔다.

수백 명의 사람을 이끌고 공연장으로 향하는 천마의 모습은, 몇십 년간 개최된 썸머 페스타에서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었다.

그 행렬은 당연하게도 축제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이목을 단번에 끌었다.

“오? 뭐야? 퍼레이드 하는 건가?”

“다들 어디로 가는 거지? 뭐 재미있는 게 있나?”

“우리도 따라가 보자!”

볼 공연을 정하지 못해서 배회하던 사람들도 그 무리에 합류했다.

천마가 이끌고 온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불어났다.

천마와 그를 따르는 수많은 군중.

사람들은 이 모습을 찍어서 SNS에 올렸다.

#썸머페스타 퍼레이드 #썸머페스타 좀비군단 # 썸머페스타 피리 부는 사나이

등의 태그를 걸고서.

수시로 SNS를 확인하며 가장 핫한 무대를 찾는 사람들에게 천마의 공연장은 최고의 핫플레이스였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주최 측에서 메인 스테이지나 헤드라이너가 아닌, 규모가 작은 공연장을 배정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가수가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딱 그정도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주최 측의 판단은 완전히 틀렸다.

외곽에 위치한 소규모 공연장.

그곳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친구는 사람들로 가득 찬 관객석을 보고 얼떨떨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DJ도 황당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말도 없이 천마의 공연장에 온 친구를 보며 물었다.

“너 아발론 공연 본다는 거 아니였어? 여기는 왜 온 거야?”

“나도 모르겠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고 과정이 기억나질 않는다.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객석은 난장판이었다.

모든 인원을 수용할 수 없어 시큐리티들이 급하게 입구에 펜스를 쳤고, 그 펜스 너머에도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었다.

어찌 보면 어수선하고, 어찌 보면 혼란스럽게도 느껴질 수 있는 이 상황.

친구는 문득 의심이 들었다.

‘천마가 이 분위기를 휘어잡을 수 있을까?’

아직도 친구의 머릿속에서 천마는 이슈맨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과연 천마를 아는 사람이라곤 거의 없는 이곳에서, 그가 뭘 보여줄 수 있을까?

그때, 온 공연장을 휘감는 사운드가 울려 퍼진다.

두쿵- 두쿵- 두쿵-

처음에는 무거운 악기 소리인 줄로만 알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아니었다.

악기 소리보다 조금 더 근원적인 울림.

심장의 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내, 공연장의 주변은 짙고 어두운 푸른색으로 물들어갔다.

마치 바다 깊은 곳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두쿵- 두쿵-

아발론의 공연처럼 시작부터 관객들을 흥분시키고 날뛰게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사운드는 서서히, 더욱 확실하게 관객들을 장악해나간다.

그리고 그 가운데, 천마가 마침내 스탠딩마이크를 잡아챘다.

- Oh Holy

하지만 이어지는 사운드는 성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고동 소리는 묵직한 베이스로 바뀌고, 지잉지잉 울리는 일렉 기타가 고막을 긁어댄다.

킥 드럼은 두두두두 정신없이 변주되며 내달린다.

그와 함께 후킹 하는 코러스 파트가 초반부터 빌드업을 쌓아나간다.

- Holy Moly

Holy SHIT

속도를 조절할 생각조차 없이 마구 달려 나가는 사운드.

훅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부 한국어로 된 가사는 관객들의 이해를 아득히 벗어난다.

‘그런데 왜 한국어가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는 거지?’

케이팝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들어온 록 밴드 노래를 듣는 느낌이다.

친구는 모르겠지만 천마의 노래는 음공, 그러니까 '음의 파동'을 이용하는 무공에 기반하고 있다.

음악은 음계에 고정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소리는 연속적인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공을 대성한 천마는, 고정된 계이름을 넘어서 음악을 진동의 주파수로 인식한다.

서로 다른 파동을 듣기 좋게 조합하는 것.

그게 바로 천마가 가진 음악이다.

장르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조금 더 근원적인 소리에 도달한다.

인간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친숙함이 천마의 음악에는 있었다.

DJ와 친구는 그 분위기를 그저 즐겼다.

‘홀리 쉿! 누가 천마를 이슈맨이라고 하는거야!’

물론 방금 전까지 그도 천마를 이슈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실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워진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방금 보았던 아발론의 공연도 지워졌다.

‘그런 사기꾼들 따위, 이런 게 진짜지!’

노래에 몸을 맡기고 머리를 흔들었다.

벌써 네 번이나 반복된 코러스는 머릿속 깊숙이 각인된다.

다음 코러스가 나올 때, 친구는 자동반사적으로 외쳤다.

"홀리 몰리 홀리쉣!!!!!"

공연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천마의 목소리.

거기에 관객들의 떼창이 더해지며 온몸을 신나게 두들긴다.

천마는 목소리만으로 수천 명의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케이팝에 익숙하지 않아도, 한국어를 몰라도.

이 무대를 즐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든 걸 초월해서, 천마는 천마니까.

*

미국에서의 첫 무대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페스티벌은 내가 지금까지 했던 콘서트와는 다른 맛이 있었다.

규모도 규모였지만, 수천 명의 사람이 내 노래에 정신줄을 놓고 미친 듯이 몸을 흔드는 모습은 또 색달랐다.

그 열기가 아직까지도 피부를 후끈하게 만드는 기분이다.

“이러니까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데.”

한국의 팬들과도 이걸 함께 즐기고 싶다.

미국 팬들도 좋지만,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내 사람들을 만나는 건 큰 안정감을 주니까.

한국에 돌아가면 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벤트를 해 봐야지.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

바로 인터뷰.

예정되어있던 일은 아니지만, 이번 썸머 페스타가 예상외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오면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특히 아발론과 엮이면서 각종 루머들이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모니터링하던 강여름이 말했다.

“아발론 극성팬 사이에서 천마 님이 일부러 무대에 가서 관객들을 뺏어 왔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개소리하네.”

“그쵸? 진짜 웃긴 사람들 많다니까요. 심지어 천마 님이 일부러 장치를 고장 내서 아발론에게 물세례를 퍼부었다는 말도 있다니까요.”

“크흠. 그, 그래?”

“그거 보고 진짜 어이가 없더라고요. 이럴거면 페이크 디제잉 밝혀진 것도 천마 님 때문이라고 하지. 응? 천마 님 어디 가세요?”

“......”

어쨌든.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하니 인터뷰를 하나 하기로 했다.

강여름이 신경 써서 고른 '버라이어티'라는 매체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 곳에서만 하는 만큼, 공신력이 있고 개중 인지도가 높은 곳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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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발론의 무대에는 왜 가셨나요?

A. 아발론과 인연이 있어서요. 제 방송을 보시면 알겠지만 아발론이 저를 직접 게스트로 초대했었거든요. 그때의 인연으로 무대를 보러 갔습니다.

대기실에서 있었던 중간 과정이 많이 생략이 되었지만, 사실이니까.

리포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최근에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었다.

Q. 그렇다면 어쩌다가 아발론의 공연 도중에 직접 나서게 됐나요?

A. 사실 그때 제 공연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상황이 위험해 보이더라고요.

사람들은 서로 싸우기 일보 직전이었고, 몇몇 분들은 펜스까지 넘어서 무대에 난입하려고 해서요.

이대로라면 큰일이 날 것 같아서 나섰습니다. 안전만큼 중요한 게 없잖아요.

Q. 와우! 본인의 공연 보다 사람들의 안전을 더 중요시하다니. 희생정신에 감탄했습니다!

뭘 희생하려고 한 적은 없지만··· 일단 맞장구는 쳐주지.

A. 다친 사람 없이 잘 마무리가 되어서 다행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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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터뷰 내용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천마는 아발론과 본격적으로 비교가 되기 시작했다.

- 무대 하다가 튀어버린 누군가랑은 마인드부터가 다르네

- 아발론은 쫄아서 무대 끝나기도 전에 런했죠?

- 근데 누구 말이 맞는거임? 아발론은 SNS에서 천마가 자기 관객 훔쳐갔다고 주장하던데

물론 아발론도 천마의 인터뷰를 보고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그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그저 기계의 문제였다고 해명하며 빠르게 무마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발론의 행동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그날 현장에서 그 상황을 목격한 사람만 만 명이 넘었다.

- 나 현장에 있었는데 팩트만 정리해줌

: 아발론이 페이크 디제잉 들키자 바로 무대 뒤로 도망갔고, 그 난리 수습한 게 천마였음. 천마 아니였으면 공연장 ㄹㅇ 개판 났을거다.

ㄴ 이게 맞네.

- 무대 앞쪽에 있던 사람인데 분위기 난리도 아니였음. 천마가 나서지 않았으면 무조건 사고났음

- 무대 버리고 도망가놓고, 이제와서 우리 관객 ㅇㅈㄹ

논란이 정리된 것과는 별개로, 천마의 영상은 여전히 인기몰이를 했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영상은 일명 파이퍼(피리 부는 사나이) 영상이었다.

[사람들을 끌고 가는 파이퍼_현실판]

- 나 이거 퍼레이드인 줄 알았어

- 네크로맨서가 좀비 군단 끌고 가는 거 아니냐?

- 나도 저 무리 안에 있었는데 따라가길 잘한 듯. 아발론 무대보다 훨씬 나았음

ㄴ 아발론보다??? 그건 상상이 안가는데

ㄴ 직접봐봐 (링크)

- 그래서 저 가수 이름이 뭐라고?

ㄴ 천마

ㄴ 발음 어렵네. 그냥 파이퍼라고 부르자

천마는 의도치 않게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사람들은 저렇게 많은 관객을 끌고 간 천마가 어떤 무대를 보여줬는지도 궁금해했다.

- 그래서, 천마가 그렇게 잘해?

사람들의 의문을 해소해주기라도 하려는 듯, 적절한 타이밍에 천마의 무대 풀영상이 공개되었다.

천마의 내공이 그날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영상만으로 특별함을 느낄 수 있기에는 충분했다.

- 시작부터 가슴이 웅장해진다

- 나 현장에 있었는데 무대 처음 봤을 때 짜릿함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어

- 케이팝이 다 이래?

ㄴ 아니 천마만 이래···.

- 난 케이팝 쥐뿔도 모르는데 조오오오나 멋있다. 그리고 잘한다. 딱 이거네

- 그래서 이 곡 제목이 뭐임?

ㄴ 홀리몰리

ㄴ 홀리 쉿

ㄴ 홀리몰리 홀리쉿

ㄴ 미친놈들아 노래 제목 좀 알려주라고

- ···아니 제목 제대로 아는 사람 없어?

ㄴ 여기 인터뷰에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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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미발매곡 'holy'를 과감하게 오프닝으로 사용하셨는데요. 발매 예정이 있으신가요?

A.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서 팬들에게도 곡을 들려준 다음에 발매하려고요.

Q. 오우. 새로운 앨범을 낼 건가요?

A. 정규 앨범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첫 정규다보니 힘을 많이 주게 되네요.

Q. 미국 내에서의 인기가 심상치 않으신데요, 혹시 미국 유통도 생각이 있으신가요?

A. 그렇지 않아도 유통 관련해서 여러 가지 제안이 오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께 제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Q. 혹시 그 안에 로페즈도 있나요?

A. 하하, 그건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좋은 파트너를 구하는 중이라는 것까지만 말씀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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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는 확실하게 미국 시장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이 상황을 유심히 보는 음반사들이 있었다.

로페즈 뮤직 그룹과 함께 빅3 라고 불리는 음반사.

헌트 뮤직 그룹도 느긋하게 인터뷰를 읽고 있었다.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로페즈도 간을 보고 있나 본데 나도 한번 찔러볼까.”

하지만 헌트 뮤직은 그렇게 여유롭게 생각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 시각.

로페즈 회장이 본격적으로 천마에게 침을 바르고 있었으니까.

< 피리 부는 사나이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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