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 더 쓰시죠? (2) >
첫 번째 사건은 바로 페니의 2집 앨범 대박이었다.
어쩌면 이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먼저 리드 싱글로 냈던 [The REAL]이 32위라는 성적을 냈다.
로페즈 회장은 예전에 페니가 좋은 성과를 거두면 전폭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래서 로페즈 회장은 페니의 2집 앨범에만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다.
미국 내에서도 시간당 수천 달러를 받는 세션 팀을 섭외했으며, 사운드 엔지니어는 그래미 수상자로 섭외했다.
사운드 메이킹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노래의 퀄리티이다.
하지만 이번 페니의 앨범을 프로듀싱 한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천마였다.
페니의 2집 앨범은 그녀에게 딱 맞는 곡으로 가득 채워졌다.
음악 외적인 요소들도 완벽했다.
빌보드에 들기 위해서는 음반 판매량과 스트리밍, 라디오 성적이 중요하다.
먼저 음반 판매량과 스트리밍을 잡으려면 팬덤이 필요하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않은 페니는 강력한 팬덤이랄게 없었지만, 천마가 썸머 페스타에서 화제가 된 덕분에 같이 업혀갈 수 있었다.
라디오는 뮤파이 대표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대형 레이블인 뮤파이의 대표는 라디오 쪽에 성공적인 영업을 하며 페니의 노래를 플레이 리스트에 추가했다.
음악적 요소와 비 음악적 요소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며 페니의 2집 앨범은 성공적인 결과를 맞이했다.
[The REAL]과 함께 신곡 [PENNY, more than £]는 빌보드에 나란히 줄을 서고 있었다.
깐깐한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페니의 앨범은 호평받으며, 프로듀싱 해준 천마 역시 주목받았다.
묻힐 뻔한 신인 가수를 완전히 부활시킨 사람으로.
그걸 보면서 로페즈의 회장이 중얼거렸다.
“이거 곤란하게 되었군.”
하지만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은 곤란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로페즈 회장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딸의 성공.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페니가 성공하면서 천마의 위상이 높아졌다.
천마신교 레코즈 내에서 천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 말인즉슨 천마의 몸값이 높아지면, 천마신교 레코즈의 가치도 덩달아 올라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천마는 이 모든 상황을 예측했는지 첫 번째 제안서에는 아직 답을 주지 않았다.
“2,000만 달러는 금방 상계할 수 있을 거 같고.”
로페즈 회장은 올해 한국 시장에 약 1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하려했다.
물론 그 금액의 대부분은 펄 엔터테인먼트와의 협업에 투자될 예정이었고.
계획된 투자금의 일부만 천마신교 쪽으로 돌리려고 했는데, 지금 천마의 폼을 보니 그 비율을 조금 더 올려도 될 것 같다.
“그럼 4천만 달러로 올려서 제안해야겠군.”
.
.
.
그 시각.
헌트의 대표도 로페즈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투자금을 올려야겠는데.”
아마 로페즈 회장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있을 게 분명하다.
회장이라면 대충 사천만 달러를 투자하겠지.
“그럼 우리는 사천만 달러에 수수료도 조금 낮춰주지.”
그렇게 수정된 제안서는 천마신교로 날아왔다.
옥수진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헐, 투자 금액이 사천만 달러? 헌트는 유통 수수료가 23%로 줄였어요!”
하지만 나는 그걸 보고도 피식 웃었다.
아직 한발 남았다.
*
닉네임 [빛천마]를 쓰는 직장인은 천마의 팬이다.
그녀는 요즘 해외에서부터 쏟아지는 천마의 소식에 얼떨떨해하고 있었다.
“천마가 해외에서 잘 나간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 정도였어?
한 달 전쯤 썸머 페스타에 초청받았을 때, 아발론과 로페즈 회장이 등장하면서 뉴스가 온통 천마의 이름으로 도배된 적이 있었다.
아발론이 한번에 이만 달러를 쐈다느니, 로페즈가 이런 식으로 초청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느니 하며 썸머 페스타에 참가하는 과정만으로도 난리였었다.
그리고 천마가 수천 명의 관객을 이끌고 썸머 페스타를 뒤집어 놓은 순간, 한국도 같이 뒤집혔다.
[(포토)썸머 페스타의 작은 공연장에 몰려든 인파]
[해외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한국 가수는··· 1위 천마]
[가수 천마, 썸머 페스타에서 국위 선양해]
[썸머 페스타에서 울려 퍼지는 한국어, 주인공은 바로 천마]
[왜 영어 가사를 쓰지 않았냐는 질문에, ‘나는 한국인이니까’]
누가 보면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줄로 오해할 정도로, 한동안 천마에 대한 이야기로 한국은 시끌시끌했다.
몇몇 국뽕 뉴튜버들을 말도 안 되는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이번에 천마가 쩔었다는 사실을.
국내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뉴스는 천마가 관객들을 이끌고 행진하는 것이었다.
그 짤은 온갖 재생산을 거치며 공공재처럼 모든 커뮤니티에서 돌아다녔다.
한 명의 팬으로서 사람들이 천마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댓글을 보는 건 중독적이었다.
직장인은 내친김에 다시 뉴스에 달린 댓글을 정독했다.
-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람이 나왔다고?
- 나는 아직도 천마 인기가 실감이 안나. 데뷔한지 1년도 안 된 신인 아니냐?
ㄴ 천마가 인기 있는 거 제일 안 믿는 사람이 한국인인 듯
- 천마 두유 노우 클럽 입성 가능한 부분이냐?
- 그런데 천마 노래는 왜 아직 빌보드 70위권 밖에 못했나요ㅠㅠ
ㄴ스트리밍+음원+음반+라디오까지 잘해야지 빌보드 등반이 가능한데 천마 라디오 점수가 안좋아서 그럼ㅠㅠ
ㄴㅇㅇ라디오는 보수적이라 한국 가수가 들어가는게 쉽지 않아.
직장인은 천마의 노래가 좋은 것에 비해 순위가 낮은 게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 원래 그쪽 시장이 만만치 않음. 해외 진출할 때는 외국 대형 레이블이나 유통사 끼고 프로모션 빵빵하게 넣는다는데, 천마는 그런 거 안하잖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번 천마의 해외 진출이 의도치 않게 일어난 부분이라서 준비가 완벽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말은 순수하게 노래 하나만으로 빌보드를 뚫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직장인의 어깨가 괜히 으쓱해졌다.
“우리 천마가 이 정도라고.”
가수가 잘 나가니 확실히 덕질을 하는 맛이 있다.
그렇게 댓글들을 보며 힐링을 한 후,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점심시간이 되어버렸다.
직장인은 동료들과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오늘의 대화 주제는 최근 개봉한 영화였다.
“다들 ‘팬텀 스틸러’ 봤어요?”
“응 나 봤어요. 뮤지컬 영화라서 잔잔할 줄 알았는데, 액션이 박진감이 넘치던데?”
“진짜요? 뮤지컬 영화 보면 막 노래 나오는 부분에서 오글거리는? 그런 거 싫어해서 안 보고 있었는데.”
“아, 뭔지 알겠다. 근데 이거는 그런 장면 거의 없더라고요. 딱 최소한만 넣어놔서 신나요. 몰입도 잘되고.”
“그럼 나중에 넷플렉스에 나오면 꼭 봐야겠네요.”
“아냐아냐. 이건 꼭 사운드 빵빵한 영화관 가서 봐야해요. 노래가 진짜 좋다니까?”
“인정. 우리 딸도 그거 보고 와서 하루종일 ‘Steal Your Heart’ 부르고 있더라. 영어공부를 그렇게 하지.”
직장인은 적당히 대화에 참여하면서 생각했다.
‘다들 그 영화 본 모양이네?’
한국에서 뮤지컬 영화는 메이저한 장르는 아니다.
종종 흥행에 성공하는 것들이 있다지만, 레전드 가수의 노래로 만들었거나 디즈니 고전을 실사화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팬텀 스틸러는 두 가지 경우가 아님에도 인기를 끄는 중이었다.
물론 입소문을 타게 된 계기는 이번에도 천마였다.
천마가 썸머 페스타에서 활약 중일 때, 미국에서는 팬텀 스틸러의 시사회가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천마와 관련된 것들은 뭐든지 잘 팔렸고, 누군가 천마의 정보가 나왔다며 시사회 영상을 가지고 왔다.
천마가 직접 시사회에 온 건 아니고, 시사회장에서 천마의 이름이 나온 것뿐이지만.
이건 이거대로 대단했다.
================================
- 요즘 핫한 가수인 천마가 이번 영화에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는데, 무슨 역할을 했었나요?
사이먼 총 감독 : 천마 덕분에 마지막 클라이막스의 연출을 훌륭하게 뽑아낼 수 있었죠.
무술 감독 : 천마는 뛰어난 무술가입니다. 마지막 액션씬은 그 덕분에 탄생했습니다.
킹 음악 감독 : 천마는 천재 작곡가죠. 영화의 가장 중요한 넘버를 같이 만들었어요.
한 개의 질문에 제각기 다른 세 개의 대답.
사회자는 당황했다.
- ···그래서 천마가 한 일이 정확히 뭡니까?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천마 분신술 썼냐
- 대체 미국가서 뭘 하고 다닌거야
- 왜 말이 다 다르냐고
짧은 영상이 돌아다니면서 팬텀 스틸러는 국내에서 자동으로 홍보가 되었다.
사이먼 감독이 이를 간만큼 영화도 재미있었고.
중간중간 긴박함이 느껴지면서도 뮤지컬적인 요소도 잘 배치해 놓았다고 한다.
그때 동료가 물어봤다.
“빛나 씨는 영화 봤어요? 천마가 작곡한 노래가 그렇게 좋다던데.”
직장인의 어깨가 또 한 번 으쓱해졌다.
영화 노래의 작곡가가 알려지는 경우가 드문데, 사람들은 천마의 곡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애초에 천마 때문에 입소문이 난 덕분이다.
사람들은 천마가 블록버스터 노래를 작곡했다는 소문을 접하고 어떤 노래인지 궁금해서 찾아 들었고, 그 결과 ‘steal your heart’는 국내 차트에서는 이미 최상위권에 올라 있었다.
직장인도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OST는 계속 돌려 듣는 중이었다.
“네. 저도 오늘 저녁에 보러 가려구요.”
마음 같아서는 개봉 당일에 가고 싶었지만, 그놈의 일이 바빠서 오늘 저녁에야 겨우 예매를 할 수 있었다.
“강추야 강추. 마지막에 팬텀이 가보를 되찾고 나올 때 여자친구가···.”
직장인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스포 하지 마세요!”
겨우 스포를 막아낸 직장인은 칼퇴를 하고 영화관에 도착했다.
표에 써있는 상영관에 갔더니,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뭐야?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아무래도 팬텀 스틸러의 인기는 오래 갈 모양이었다.
*
팬텀 스틸러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히트를 쳤다.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괴도 스토리’.
복수에서 나오는 긴장감과 카타르시스.
원수의 딸과 이어지는 러브스토리와 뮤지컬적인 요소들까지.
균형이 기가 막히게 잘 잡혀 있어서 연신 박스오피스 뮤지컬 부문 기록을 갈아치웠다.
팬텀 스틸러가 히트를 치면서 덩달아 OST도 인기를 얻었다.
팬텀 스틸러 OST 앨범은 2주 만에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9위를 차지했고, 프로덕션 넘버인 ‘steal your heart’는 개봉 30일 차에 빌보드 핫100 25위에 진입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잘 나가는 곡의 작곡가가 누군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대중의 기억 속에 남는 건 주연 배우나 감독 정도.
하지만 업계 사람들은 천마를 주목했다.
그들은 ‘steal your heart’라는 명곡 뒤에는 천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특히 헌트 뮤직의 대표는 누구보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잘 알았다.
팬텀 스틸러의 제작사가 헌트 픽처스니까.
“이 사람은 왜 까도까도 계속 뭔가가 나오는 거지?”
2주 전에 수정된 제안서를 보냈는데, 그때도 천마는 검토하겠다는 말만 하고 확실한 답변을 주지 않았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영화가 흥행하고, 자신의 몸값이 더 오르리라는 것을.
헌트의 귀에 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쓰시죠?’
이미 사천만 달러를 제안했는데 거절당했다.
원래 한국 시장에 투자하려고 했던 총금액 절반에 해당하는 돈이다.
“이 정도로 투자할 생각은 없었는데.”
상황이 변했고, 천마도 변했다.
그는 짧은 기간 동안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을 입증했고, 성급한 말이지만 천마가 만든 OST는 주제가상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봐야겠는데.”
원래는 그도 로페즈처럼 아크 엔터에 집중하고 천마신교에는 일부 금액만 투자하려고 했다.
하지만 애매하게 양다리를 걸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올인.”
헌트는 천마의 커리어하이는 아직이라고 생각했다.
천마는 이제 21살. 만으로 딱 20살이다.
그의 포텐셜이 만개했을 때, 과연 얼마만큼의 이익을 가져다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문제라면 로페즈의 회장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
.
한편, 천마신교로 날아온 제안서를 본 옥수진은 기겁했다.
“이,이,이,이···!”
나는 생각했다.
이제야 좀 마음에 드는 제안이 들어왔다고.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것은 로페즈였다.
두 기업의 조건은 비슷했지만, 제안서에 나타난 두 기업의 성향은 상이했다.
헌트는 후발주자인 만큼 성과를 빨리 낼 수 있는 결과물을 원했다.
그쪽에서는 내가 빠른 속도로 여러 앨범을 내길 바라는 모양이다.
내건 조건은 3년 계약에 6,000만 달러 투자.
대신 내 앨범에 한정해서 유통 수수료는 15%까지 낮춘다.
하지만 로페즈는 내가 가진 잠재력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려는 모양이었다.
단순히 뛰어난 가수 천마가 아니라, 프로듀싱과 확장성을 고려한 느낌이 묻어나는 제안서였다.
조건은 7,000만 달러에 5년 계약.
대신 천마신교에서 나오는 음원에는 모두 20%의 수수료로 유통해준다.
나는 로페즈와의 계약서에 사인했고, 로페즈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좋은 선택이군. 올해 말까지 5,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이후 매출에 따라 2,000만 달러를 추가로 지급하지요.”
“든든하네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5년짜리 계약이지만 그 사이 우리 회사에서 활약할 아티스트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어쩌면 다음 해에 7,000만 달러의 매출을 모두 상계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떠올렸다.
“이제 현금이 빵빵하게 들어왔으니 바로 진행하면 되겠다.”
이번 미국행에서 해외진출을 위한 길은 닦아놓고 왔다.
이제 한국 시장을 확실하게 정리할 때다.
천마신교 레코즈는 4대 기획사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그런 소리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해주지.”
시작은 각 기획사의 간판 가수를 박살내는 걸로 해볼까.
물론 내가 아니라 우리 애들이.
< 조금 더 쓰시죠? (2) > 끝
ⓒ 연태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