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가 쏘아올린 존나 큰 공 (1) >
거칠게 부르는 소리에 차선우는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어이없다는 한숨을 쉬었다.
‘저 새끼는 왜 술 처먹고 여기 와서 진상을 부리는 거지?’
팬텀 스틸러의 남자 주인공 잭 포터.
그는 얼굴이 붉어진 채 뭐라 말을 내뱉었다.
“shalashalashalashala”
차선우는 몇 달 전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도 안 받던 과외까지 붙여가며 특히 회화를 집중적으로 배웠다.
하지만,
‘이 뭔 개소리야?’
포터의 말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파티장 안에서처럼 외국인과 일상적인 대화는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기는 했는데,
리스닝 공부를 하면서 취객의 발음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중간중간 도나가 어쩌고 하는 게 들리는 걸 보면 아무래도 도나를 찾는 거 같다.
차선우는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진상 부리지 말고 잠이나 자라.”
원래 취객은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손해다.
차선우가 적당히 무시하고 돌아서려는데, 얼굴이 더욱 붉어진 포터가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Fuck off chink! 영어도 못 하는 게 왜 남의 나라에서 얼쩡거리냐.”
차선우는 뒤돌아섰다.
아무리 술에 취한 발음이라도 욕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다.
차선우는 포터에게 다가갔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갑자기 달라진 기세에 포터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나다가 넘어졌다.
잔디밭을 구른 포터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려고 했지만,
"앉아"
쿵
다시 처박혔다.
이번에 잠마동을 건설하면서 차선우의 내공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성인 남성 정도는 간단하게 내공으로 찍어누를 수 있을 만큼.
포터는 다시 한번 일어나려고 했지만,
"으아아아 씨바아알!"
쿵
다시 한번 잔디밭을 굴렀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몇 번이나 구른 포터의 몸은 어느새 흙 범벅이 되어 있었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래?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겁먹은 개가 크게 짖는다고, 포터는 빽빽 고함을 질러 억지로 두려움을 떨쳐내 보았다.
아까부터 포터가 동네방네 고함을 질러댄 덕분에 파티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둘이 싸우는 것 같은데?”
“포터는 왜 저기 주저앉아 있는 거야?”
“술 취했나 본데? 적당히 마셨어야지.”
사람들이 몰려나와 흙범벅이 되어 주저앉은 포터를 보며 한마디씩 했다.
부끄러움에 포터의 얼굴이 화끈거려왔다.
결정타는 도나였다.
도나는 둘의 모습을 보더니 나름대로 상황을 해석했다.
술에 취한 포터가 차선우에게 진상을 부린 거라고.
도나는 차선우에게 먼저 다가갔다.
“천마, 괜찮아?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물론 도나의 해석은 정확했지만, 조금 전부터 수치 스택이 쌓여가고 있던 포터에게는 결정타나 다름없었다.
'내가 아니라 저 새끼를 선택한다고?'
지금까지 천마에게 쌓인 열등감.
잔디밭을 구르며 쌓인 분노.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수치스러움.
거기에 도나마저 차선우에게 다가가자 눈이 돌아갔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일어나 차선우에게 돌진했다.
“이 새끼가 도나에게서 안 떨어져?”
그가 갑자기 차선우에게 달려들자 주변에서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누가 가드 좀 불러!"
그러나 차선우는 가볍게 피한 뒤,
툭
발을 걸어버렸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포터는 그대로 달려 나가서
풍덩
분수대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전부터 이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연예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니는 사람들.
파파라치는 특종을 외치며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차선우를 부축하는 듯한 도나.
그걸 보고 눈이 돌아가서 달려들었다가 분수대에 빠진 포터.
세 사람의 묘한 삼각관계라니!
찰칵-
차선우는 오늘도 이슈메이커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
*
천마의 팬인 편의점 알바생은 오늘도 열심히 알바를 하고 있었다.
매대 정리를 마친 그녀는, 아까부터 보고 싶었던 기사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클릭했다.
[천마, 할리우드 여배우와 열애 중?]
평소에는 진상 손님 앞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그녀였지만, 천마의 열애설 앞에서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별일 아니었다.
<팬텀 스틸러> 애프터 파티에서 있었던 해프닝일 뿐이었다.
남자 주인공을 맡은 포터가 왠진 모르지만 천마에게 달려들다가 발을 헛디뎌서 분수대에 빠졌고, 마침 그때 천마의 옆에 여주인공인 도나가 있었던 것이다.
정말 우연히 삼각관계처럼 찍힌 사진이었다.
“에이, 이놈의 기레기 새끼들.”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다.
국내에서는 천마만큼 핫한 사람이 없기에 기자들은 마구잡이로 기사를 갈겨댔고, 해외에서는 해외대로 라이징 스타들의 구설수에 열광했다.
“천마는 미국에만 갔다 오면 일을 만들어서 오네.”
천마가 해외 활동을 열심히 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른 가수들처럼 각 잡고 해외 활동을 하는 것도 아데, 하는 일마다 이슈가 되어서 더 많아 보이는 느낌이다.
“그래도 천마는 한국 팬들을 소홀히 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보통 가수들이 해외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 국내 팬들은 소홀히 하는 면이 있어서 섭섭해질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천마는 그런 건 일절 없었다.
바쁜 와중에도 단 한 번도 뉴튜브 방송을 빼먹지 않았고, 알바생이 꼬박꼬박 시청하는 <천마의 음악 방송>같은 경우에는 해외 일정 와중에 귀국해서 촬영하고 다시 돌아갈 정도였다.
미국 썸머 페스타에 다녀온 이후에는 따로 팬미팅을 열어서, 당시 불렀던 미발매곡인 ‘holy’까지 불러주었다.
이번 팬미팅에 참석할 수 있었던 알바생은 썸머 페스타를 보며 외치던 홀리몰리 홀리쉿을 직접 부를 수 있어서 소원을 성취한 기분이었다.
“히히,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정규 1집도 나오네.”
천마의 정규 1집에는 다양한 가수들이 피처링에 참여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천마와 인연이 있던 가수들이 총출동해서 함께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들리는 바로는 타이틀곡이 팬송이라서 더욱 기대를 하는 중이었다.
알바생은 정규 1집 앨범이 언제쯤 나오는지 확인을 할 겸 공식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천마신교 레코즈의 메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었다.
[천마 정규 1집 앨범 ‘흔적’ 사전 예약 중! 한정판 굿즈 증정]
“헐 뭐야. 사전 예약 떴잖아!!”
보통 사전 예약은 판매하는 사이트마다 특전으로 들어가는 굿즈가 다르다.
이번 공식 사이트에서는 천마가 붓글씨로 쓴 가사집 노트를 준다고 적혀 있었다.
“천마의 붓글씨? 이건 못 참지.”
물론 알바생은 붓글씨가 아니어도 참지 않았을 거지만, 천마의 붓글씨는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최근 천마가 붓글씨를 잘 쓴다는 게 알려져 팬카페에서는 그 필체를 딴 ‘천마체’같은 폰트를 팬들이 만들어서 뿌리기도 했다.
마침 지난달 알바비가 남아있던 알바생은 들어간 김에 바로 사전 예약을 완료했다.
“얼른 앨범이 나왔으면 좋겠다.”
.
.
.
한국에 돌아온 나는 가장 먼저 잠마동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탈락자가 생각보다 많이 발생했는데? 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1층에서는 단순히 기본기만 보려고 했던 건데.
여기에서 무려 20명이나 떨어지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빠르게 관문을 통과한 녀석들은 벌써 3층까지 올라가 있었다는 거다.
슬슬 피똥을 쌀 구간인데.
“이정도면 잘 되가고 있군.”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만족스러운 건 잠마동뿐만이 아니었다.
애프터 파티 이후, 나는 정규 1집 앨범을 마무리했다.
이번 앨범의 제목은 ‘흔적’.
내가 남긴 흔적들이나, 혹은 나에게 흔적을 남기고 간 사람들에 대해 풀어냈다.
타이틀 곡은 팬송으로 만들었다.
나에게 가장 큰 흔적을 남긴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음악을 좋아해 주는 팬이니까.
그렇게 녹음을 마무리할 때쯤, 한태영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한태영이 다짜고짜 물었다.
- 야! 나한테는 왜 피처링 얘기 안 해?
“아니, 형 지금 군대에 있잖아.”
- ···그럼 너 왜 면회는 안 오냐?
“......”
까먹었다.
전역이 지금 다섯 달 정도 남았다고 했나.
전역하기 전 후다닥 다녀와야겠다.
여기에 이승호도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천마님, 저랑도 인연이 있으신데.”
그건 맞지.
이승호는 내가 귀환하자마자 부딪힌 놈이다.
지금이야 다 풀렸으니 인연이라 하면 할 수 있겠네.
하지만 이승호에게는 뭔가 곱게 해주기가 싫단 말이지.
“꺼져라.”
“아,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저 올해 말에 계약이 끝납니다.”
“뭐야? 아직 안갔어?”
“쳇···.”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본격적으로 앨범 사전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헐헐헐. 대박이에요! 사흘 만에 선주문이 70만 장 들어왔어요!”
강여름이 호들갑을 떨며 말을 이었다.
“최근에 터졌던 이슈 때문인가?”
“미국에서 터진 그거?”
무슨 삼각관계니 뭐니 하면서 말도 안 되는 기사들이 나오긴 했었다.
그때 내 방송 시청자들이 폭증해서 처음으로 스트리밍하면서 렉이 걸렸다.
온갖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나와 도나가 사귀는 게 맞냐고 물어보는데, 강여름 혼자만으로는 교통정리가 되지 않아서 직원이 세 명이나 더 달라붙었다.
어쨌든. 분석에 따르면 이랬다.
미국에서의 내 팬덤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이 확 붙고, 그게 사그라지면 빠지는 라이트한 팬덤으로 형성되었다.
이번에도 이슈가 생겨서 그 버프를 제대로 받은 모양이었다.
앨범 선주문량이 그 증거이다.
옥수진이 말했다.
“앞으로 4일 더 남아있으니까 선주문 만으로도 100만 장은 충분히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좋다.
앨범 판매 상황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 주에 정식 발매가 되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야 하는데.
오랜만에 국내 활동도 있고, 해외 스케줄도 있었다.
그때, 내 스케줄을 확인하고 있던 옥수진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천마님, 메이슨 쇼에서 같이 녹화를 하자는데요?
아무래도 이슈 버프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모양이다.
*
메이슨 데이븐포트.
그는 메이슨 쇼의 호스트이다.
메이슨은 지금 게스트 섭외로 고민하고 있었다.
제작진은 천마를 데리고 오자고 주장했지만,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쇼에 또 동양인을 데리고 와야해? 온 천지에 마늘 냄새가 진동하겠군.”
인종차별이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은 메이슨은 동양인이 자신의 쇼에 오는 게 꺼려졌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어 보였다.
천마의 인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3대 토크쇼에서도 천마를 게스트로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
- 네가 안 하겠다면 다른 곳에서 천마를 가지고 갈걸?
메이슨에게는 이게 은연중에 압박으로 작용했다.
그렇지 않아도 메이슨 쇼는 요즘 3대 토크쇼에게 크게 밀리고 있었다.
작년부터 메이슨이 각종 논란에 휩싸이면서 호스트를 교체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와중이다.
“천마가 이슈 메이커이긴 하지. 항상 화제의 중심에 있는군.”
이번에 애프터 파티에서 파파라치에게 찍힌 모습은 메이슨이 보기에도 흥미로웠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포터와 도나.
두 사람과 엮인 천마를 데려오면 논란 때문에 위태로운 자신의 자리도 보전할 수 있다.
탐탁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대신 메이슨은 여기에 게스트를 두 명 더 추가하기로 했다.
“포터와 도나까지 같이 부르면 더 재미있겠군.”
세 사람의 미묘한 관계와, 메이슨의 특기인 짓궂은 질문들을 조합하면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메이슨은 조연출을 불렀다.
“이봐, 너 천마 알지? 걔 좀 섭외해 와.”
조연출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메이스의 눈치를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천마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있어서 발언을 조심···.”
"야"
"네?"
메이슨은 들고있던 대본을 조연출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누가 나한테 말 걸어도 된다고 했어."
"...죄송합니다."
“어디서 훈수질이야. 닥치고 가서 섭외나 똑바로 해!”
꾸벅 인사를 하고 떠나는 조연출의 뒤에서, 메이슨은 본격적으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천마를 골탕 먹일 계획을.
“그 둘 앞에서 천마를 망신 주면 재미있겠군.”
멍청한 동양인을 제물로 시청률을 쪽쪽 빨아먹을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다.
하지만 세상이 항상 뜻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천마는 메이슨의 제안을 듣고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거기를 왜 나가?”
메이슨의 계획이 시작부터 삐그덕대기 시작했다.
< 천마가 쏘아올린 존나 큰 공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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