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가 쏘아올린 존나 큰 공 (2) >
옥수진과 강여름.
덕업일치에 성공한 두 사람은 회사에서 일하는 모든 과정이 덕질이었다.
오늘도 둘은 대회의실에 있는 대형 화면으로 천마의 신곡 뮤비를 보고 있었다.
회의의 목적은 앞으로의 활동 방향성에 대해 의논하는 것이었지만, 빵빵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천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느새 덕질 소모임이 되어버렸다.
“이것까지만 보고 시작할까요?”
“응응. 딱 여기까지만 보자.”
그들은 이루어지지 않을 약속을 하며 뮤비를 다시 보았다.
지금 나오고 있는 뮤비는 팬송으로 만들어진 ‘작은 별’.
천마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함께 일하는 그들을 알고 있었다.
모든 곡을 뚝딱 만들어내는 천마가 이번 팬송만큼은 오랜 시간 고민했다는 걸.
팬들을 위해 만든 노래인 만큼 천마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듣고,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천마는 누구나 알법한 익숙한 멜로디로 샘플링을 했다.
바로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
도 도 솔 솔 라 라 솔 -
몽환적인 일렉 피아노 사운드가 익숙한 음계를 밟아 나간다.
하지만 너무 동요 같지는 않다.
오히려 생동감 있는 스트링이 더해지며 팝 같은 느낌을 준다.
[저기 작은 별이 있어]
천마는 팬을 작은 별에 비유했다.
[아직은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볼 수 있을거야
곧 피어날 멋지고 놀라운
작은 별]
아직은 서툴지만 진솔한 마음이 전해진다.
연필로 정성스레 눌러 쓴 손편지를 읽는 느낌이랄까.
강여름은 뮤비에 나오는 천마를 보며 게슴츠레한 웃음을 지었다
“으흐흐흐흫.”
어쩜 봐도 봐도 좋을까.
어두운 밤.
검은색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천마가 정자 위에 올라서서 별을 보고 있다.
노래에 남아있는 동화 같은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뮤비를 찍을 때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의 질감을 잡을 수 있도록 신경 썼는데, 그래서인지 마치 전래동화에나 나오는 선비를 보는 것 같다.
이번에 권동욱 실장이 합류하면서 천마신교의 세계관을 확실하게 정립했다.
그렇게 탄생한 세계관은 ‘조선 천마’.
조선 사이버펑크라는 퓨전 장르 착안해서 시대극과 무협을 섞어서, '조선에서 온 천마'라는 컨셉 만들어냈다. 뮤비에는 그 세계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을 비롯해서, 본격적으로 여러 가지 이스터에그를 심어 놓았다.
그런 떡밥을 하나하나 찾아 나가는 것도 덕질의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주고 있었다.
두 사람은 뮤비를 세 번쯤 더 돌려본 다음 아쉬운 마음으로 말했다.
“이제 다시 일 시작해볼까요?”
잠깐(?) 옆길로 샜지만, 그들이 모인 이유는 천마의 정규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먼저 강여름이 앨범 반응에 대해 모니터링한 내용을 말했다.
“국내 차트는 뭐, 올킬이지. ‘작은 별’이 차트 1등을 하고 있고 수록곡도 모두 차트에 들었어.”
“확실히 다른 노래들도 피처링 진이 화려해서 그런지 스트리밍 횟수가 장난이 아니네요.”
피처링이 원래 다른 가수의 팬덤을 끌어들이는 목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번에는 특히 각 팬덤에서 반응이 좋았다. 천마가 상대 가수의 특징을 정확히 잡아서 곡을 만든 덕분이었다.
그쪽 팬들은 '띵곡 좋다'라고 하면서도 '천마가 우리 애한테 이런 노래 하나 더 써줬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고 있다.
국내는 이제 순조롭다.
차트 1등을 하기 위해 예능에 나간다거나, 일부러 화제가 될 만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덕분에 옥수진과 강여름은 편안한 마음으로 국내 활동 스케줄을 정리했다.
옥수진이 말했다.
“오랜만에 국내 투어 콘서트 하기로 했었죠.”
“그리고 미국 콘서트도!”
이번에 해외 팬이 많아지면서 미국에도 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그 부분은 해외 유통을 전담하고 있는 로페즈 그룹과 상의해야 한다.
“로페즈에는 제가 말해 볼게요.”
“좋아. 그리고 미국 콘서트 하기 전에, 해외 활동도 하면 좋을 거 같은데. 일단 연락이 온 걸 보면···.”
강여름은 메일함을 새로고침했다.
그러자 상단에 2통의 메일이 갱신되었다.
강여름은 첫 번째 메일을 클릭했다.
“어? 메이슨 쇼? 여기서 연락이 왔는데?”
“메이슨 토크쇼 말하는 거예요?”
“대박. 확인해보니까 맞는 거 같아!”
메이슨 쇼는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호스트인 메이슨이 아슬아슬하게 수위를 넘나들며 게스트를 농락하는 게 유명하다.
대신 그만큼 선을 넘을 때가 많아서 논란도 많다.
옥수진이 말했다.
"도나와 포터를 같이 부르는 걸 보면, 최근에 있었던 삼각관계 이슈를 다룰 거 같은데요. 두 번째는 어디에요?"
"이거는 미드나잇 쇼에서 왔어."
미드나잇 쇼는 먼저 연락이 온 메이슨 쇼와 비슷한 시간대에 하는 심야 토크쇼이다.
다만 두 프로그램은 결이 조금 달랐다.
메이슨 쇼가 마라 맛 토크쇼라면, 미드나잇 쇼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유쾌한 쇼이다.
“그쪽에서는 에보니 킹이랑 뮤파이 대표를 섭외했는데, 천마님이 꼭 오면 좋겠다고 하네요.”
몇달 전 배틀에서 레전드 부부싸움 영상을 남기고 간 두 사람이다.
그 부부싸움을 주최한 천마가 직접 와줬으면 좋겠다며 섭외 연락을 한 것이다.
옥수진과 강여름은 두 제안을 놓고 비교하였다.
“미드나잇 쇼에서는 이혼한 부부의 케미가 메인이다 보니, 천마님이 끼는 게 조금 애매해 보여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메이슨 쇼는 구설수가 너무 많아서 좀 그렇네.”
“애매하네요. 어떻게 하죠?”
“그냥 천마님께 선택을 맡기자.”
두 사람은 진행 상황과 섭외에 대해 보고했고, 메이슨 쇼와 미드나잇 쇼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이야기를 들은 차선우는 생각했다.
“메이슨 쇼? 지난번에 파티에서 사람들이 별로 안좋게 얘기하던데.”
그렇다면 굳이 나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미드나잇 쇼도 마찬가지이다.
두 사람이 말한 대로 거기 나가면 들러리 역할을 할 것 같다.
“아직 국내 스케줄 많이 남았으니까. 일단 여기에 집중하자.”
검토해보겠다는 말만 남기고, 차선우는 늘 그렇듯 평소 하던 대로 방송을 했다.
*
메이슨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천마가, 거절을 했다고?”
이건 메이슨의 계획에 없던 일이다.
동양인 새끼를 불러줬으면 고맙다고 고개 숙이고 튀어올 것이지.
“야, 가서 섭외 담당한 조연출 불러와.”
메이슨의 부름에 조연출은 기가 죽어서 방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악!”
그가 들어오자마자 종이 뭉치가 이마에 날아왔다.
"안 주워?"
"죄송합니다!"
조연출이 땅에 떨어진 종이를 줍고 있는데 머리 위로 쌍욕이 떨어졌다.
“너! 일을 이따위로 해? 어떻게 동양인 새끼 하나 섭외를 못 해서 내가 나서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하여간 피부색이 더러운 애들은 일을 제대로 못 한다니까. 게으른 것도 유전인가."
"제가 다시 연락해서 꼭 섭외해 오겠습니다."
“됐어. 넌 해고야.”
“뭐라고요?”
조연출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간 몇 년을 메이슨의 지랄을 묵묵하게 참으면서 일해왔는데.
갑자기 해고라니.
하지만 메이슨은 조연출이 빡치든 말든 옆에 있던 총괄 프로듀서에게 말했다.
“저 새끼 해고해버려.”
메이슨의 성질을 아는 총괄 프로듀서는 익숙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알았어. 그런데 저 사람 이름이 뭐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 밑에 있는 애잖아.”
“나는 백인 이름만 기억해서.”
메이슨은 피식 웃더니 손을 내저었다.
“그딴 건 네가 알아서 하고. 천마는 이제 어떻게 하지? 그냥 도나와 포터만으로 갈까?”
총괄 프로듀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너무 심심할 거 너도 뻔히 알잖아. 지금 천마만한 카드가 없어. 지난 화 시청률 박살 난 거 봤지?”
최근 메이슨이 여러 논란에 휩싸이면서 시청률이 하락세였다.
아슬아슬하게 선 위에 노는 게 메이슨의 특기라고는 하지만, 종종 그 선을 넘어버릴 때가 있다.
특히 ‘사생활 폭로 사건’은 메이슨에게 큰 타격이었다.
발단은 메이슨 쇼에 나온 한 여배우였다.
메이슨은 사전 미팅에서 했던 합의를 어기고 여배우의 사생활을 폭로했고,
분노한 여배우는 생방송 도중 메이슨에게 물을 뿌린 다음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메이슨은 대중의 알 권리를 위해 말한 것이라며 변명을 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 상황을 뒤집고 시청률에 반등을 주기 위해서는 천마 정도는 데리고 와야 할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포터는 섭외가 확정되었으니까. 천마를 데려오는 게 문제인데.”
두 사람이 도나를 두고 싸워야지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지는데.
어떻게 하면 천마를 데려올 수 있을지 두 사람은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두 사람은 천마가 유명해진 이유가 떠올랐다.
미국에서 천마의 이름이 퍼진 건 부부 후원 배틀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천마의 방송에 직접 등장해서 후원을 날려야겠군.”
동양인의 방송에 나가서 쇼를 하며 후원을 날리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다.
마침 천마가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만만해하며 방송에 입장했다.
“내가 나서기만 하면 그런 놈 따위를 섭외하는 건 일도 아니지.”
그런데.
[미드나잇 쇼 님이 3,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에보니 킹한테서 얘기 듣고 왔어.
[미드나잇 쇼 님이 3,001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당신을 섭외할 때는 후원을 하는 게 국룰이라며?
먼저 천마의 방송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은 사람이 있었다.
동 시간대에 하는 심야 토크쇼로, 최근 메이슨의 부진 때문에 저쪽으로 시청자가 많이 넘어갔다.
그 꼴을 보자 메이슨의 눈이 돌아버렸다.
[메이슨 쇼 님이 3,002달러를 후원했습니다.]
-ㅁㅣ;
눈이 돌아가 버린 나머지 오타를 냈다.
"에잇 시발!"
*
미드나잇 쇼의 호스트가 말했다.
“메이슨은 포터와 도나를 섭외했다던데.”
<팬텀 스틸러>의 성공으로 워낙 핫한 두 사람이고, 무엇보다 요즘 삼각관계니 뭐니 하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어 이슈를 뽑아내기 좋아 보인다.
다분히 메이슨다운 게스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리 쪽 게스트가 꿀리지는 않지.”
미드나잇 쇼에서는 다음 게스트로 에보니 킹과 뮤파이의 대표를 섭외할 수 있었다.
최근 다시 열애를 인정한 두 사람은 전처럼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챙겨주며 뜻밖의 심쿵 모먼트를 보여줬다.
현실판 부부로 밈화되어서 훌륭한 케미를 뽐낼 것 같다.
마침 에보니 킹이 새로운 앨범을 발매해서 홍보차 부르는 것도 좋아 보였다.
“여기에 추가로 천마까지 나오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 계기는 누가 뭐래도 천마였으니까.
부부가 티격태격 다툴 때 천마가 중간중간 끼어들어 한마디 얹는 식으로 콩트를 해도 재미있을 거 같다.
그래서 호스트는 천마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왜 아직까지 답장이 없는 거지?”
검토하겠다는 말 이후 천마신교에서는 묵묵부답이다.
그게 벌써 닷새 전이다.
아무래도 이번 토크쇼의 메인은 부부싸움이니, 곁다리인 천마를 꼭 섭외할 필요는 없었지만, 없으면 또 아쉬운 그런 존재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호스트는 한가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바로 경쟁 토크쇼의 호스트인 메이슨이 천마를 향해 러브콜을 날렸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쪽도 천마가 들어가면 재미있어지는 조합이군.”
마침 그는 메이슨이 요즘 죽을 쑤고 있어서 반사이익을 얻는 참이었다.
이대로 계속 망해주면 좋겠는데, 천마를 잡고 기어오를 낌새를 보이네?
이왕 천마를 섭외하기로 마음먹은 거, 메이슨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하기로 했다.
그는 제작진과 상의 후 천마의 방송에 후원하는 걸 컨펌받았다.
“비싸기는 비싸군. 한번 채팅을 날리는 데 3,000달러라니.”
지난 아발론 후원 이후 금액이 무섭게 치솟은 모양이었다.
서브 게스트를 섭외하기에는 큰 비용이지만, 메이슨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으니 해볼 만했다.
그는 제작진이 정해준 예산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적당히 채팅 몇 번으로 끝내야겠어.'
마침 천마의 라이브 방송은 진행 중이었기에, 그는 후원을 날렸다.
[미드나잇 쇼 님이 3,001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당신을 섭외할 때는 후원을 하는 게 국룰이라며?
"미드나잇? 그렇지 않아도 오늘 회의 때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다행히 천마도 흥미를 보이고 있다.
‘좋아, 이대로면 무난하게 천마를 데리고 올 수 있겠군. 대충 2만 달러면 되려나?’
하지만 희망찬 계획은 상상으로 끝났다.
[메이슨 쇼 님이 3,002달러를 후원했습니다.]
-ㅁㅣ;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메이슨 쇼 님이 3,003달러를 후원했습니다.]
-ㅇ니 ㅁ;듯나잇
그런데 그놈 상태가 좀 이상하다.
< 천마가 쏘아올린 존나 큰 공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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