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03화 (103/191)

< 천마가 쏘아올린 존나 큰 공 (3) >

얼마 전 정규 1집 앨범을 냈지만, 나는 평소 하던 대로 방송을 열었다.

오늘의 코너는 천마의 고민 상담소.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즉석에서 뽑은 노래로 위로해주는 코너지만··· 오늘은 그 의미가 조금 변질되었다.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신곡과 '조선 천마'라는 세계관에 대한 해석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조선천마 존나 신박하네ㅋㅋㅋㅋ

- 나도 원래 뮤비 같은거 잘 안보는데. 천마가 조선에서 왔다고? 이건 못참지

- 교주야 뮤비 해석 뜬 건데 이거 진짜냐?

ㄴ 링크[https://www.newtube.com/yeontaeryang1234]

- 나도 저거 봤는데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는 저게 제일 정확한 듯

- ㅇㅇㅇ마지막에 품속으로 별이 떨어지는 게 타임리프와 관련된 게 맞는 거 같아

“너네 고민 상담할 거 없냐?”

- 이게 오늘 내 고민이야. 빨리 상담 좀 해줘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나는 사건의 발단에 대해 생각했다.

시작은 권동욱 실장이 ‘조선 천마’에 대한 설정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무협 지식이 해박한 권 실장은 흥분한 얼굴로 떠들었다.

“무협 소설을 보면 음공이라는 기술이 있거든요.”

“......”

“이 음공이라는 게 내공을 이용해서 음악을 살상 기술로 바꾸어 내는 건데, 제가 여기에서 착안을 해봤습니다!”

나는 떨떠름한 눈빛으로 내 앞에서 신나게 음공에 대해 떠들어대는 권동욱 실장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요약하자면 이랬다.

조선 무림에 천마가 있었으며, 천마는 음공을 대성한 고수이다.

그 천마가 어떤 이유로 타임리프를 해서 현대로 온 게 바로 나.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한 설정에 나는 흥미를 느끼며 컨펌을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에 사람들이 이렇게 진지하게 심취할 줄은 몰랐지.

그래서 그냥 오늘 고민 상담은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뮤직비디오에 대한 토론을 시작해보려고 했다.

후원이 들어온 건 그때였다.

[미드나잇 쇼 님이 3,00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에보니 킹한테서 얘기 듣고 왔어.

[미드나잇 쇼 님이 3,001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당신을 섭외할 때는 후원을 하는 게 국룰이라며?

“오?”

아발론 이후 오랜만에 보는 큰 금액의 후원이다.

그새 금액이 1,000달러 더 올랐네?

뮤비 얘기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던 사람들의 관심이 단번에 후원으로 넘어갔다.

- 오오! 오랜만에 후원이네?

- 요즘 달러가 많이 들어오네 ㅋㅋㅋㅋ

- 근데 미드나잇 쇼? 여기는 어디야?

- 찾아보니까 미국 토크쇼 인가본데

한국 시청자들은 대부분 미드나잇 쇼가 뭔지 모른다는 눈치였다.

‘한국에서 인지도 있는 쇼가 아니니까.’

나도 섭외 연락이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토크쇼이다.

그래서 말했다.

“우리 시청자들을 위해서 자기소개 한번 갈까?”

[미드나잇 쇼 님이 3,003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땡큐! 한국 친구들이 잘 모르나 본데, 우리 쇼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와중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메이슨 쇼 님이 3,004달러를 후원했습니다.]

-ㅁㅣ;

[메이슨 쇼 님이 3,005달러를 후원했습니다.]

-ㅇ니 ㅁ;듯나잇

경쟁자인 메이슨 쇼의 등장이었다.

그런데 이놈 상태가 좀 이상하다.

‘이 새끼는 뭐하는 놈이냐?’

3,000달러를 후원하면서 오타를 날리다니.

지금까지 방송하면서 이렇게 얼타는 놈은 또 처음이다.

채팅창에서도 사람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

- 내 월급을 날리면서 오타를 치네

- 천마 어디 안가니까 심호흡하고 천천히 말하자

잠시 후, 메이슨이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된 채팅을 날리기 시작했다.

[메이슨 쇼 님이 3,006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미드나잇 쇼가 여기서 왜 나오는 거지? 천마는 이전부터 우리랑 출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미드나잇 쇼 님이 3,007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그쪽이 거절당했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 아닌가? 선착순도 아니고 웃기는 소리 하네

한마디씩 주고받은 두 사람.

잠시의 정적이 흐른 후, 두 사람은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와다다다 채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메이슨 쇼 : 미드나잇 쇼는 한가한가 보군. 여기 와서 방송이나 보고 있다니

- 미드나잇 쇼 : 아, 그러고 보니 자네를 보면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 메이슨 쇼 : 뭐?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며 나도 궁금해졌다.

둘 사이에 고마워할 일이 있나?

- 미드나잇 쇼 : 우리한테 시청자를 넘겨준 덕분에 시청률이 많이 늘었거든

- 미드나잇 쇼 : 앞으로도 잘 부탁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미쿡놈들이 잘 멕이네

- 잽 날렸다가 훅 맞았냐

- 딜교 실패

- 와씨ㅋㅋㅋㅋㅋ나 배틀 직관 처음인데 이래서 천마 방송 필수품이 팝콘이라고 하는구나

- 제발 오래오래 싸워줘

한국인이고 미국인이고 할 것 없이 한마음으로 싸움을 응원하고 있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동서양의 대화합 아닌가.

분위기는 달아오르고, 두 사람은 조금 더 본격적으로 서로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 메이슨 쇼 : 요새 반짝 잘 나간다고 아주 의기양양하군. 평소에 워낙 노잼이니 이런 화제성이라도 받아먹기는 해야겠군

- 미드나잇 쇼 : 화제 좋지. 근데 너네 방송은 그냥 화재가 난 것 같던데?

나도 옆에 놔둔 오징어를 씹어먹으면서 두 사람의 배틀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확실히 토크쇼의 호스트들이라 그런지 말빨이 좋다.

두 사람이 내 방송을 캐리해주는 사이, 나도 고민에 빠졌다.

‘토크쇼 한 곳 정도는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다만 나가는 목적이 신곡 홍보를 위해서인데, 두 쇼가 모두 고만고만해 보인다.

그러니까 어디를 선택해도 확실한 메리트가 없어 보인다는 말이었다.

그때 개인 채팅이 왔다며 알람이 떴다.

- 도나 : 천마, 나 지금 방송 보고 있는데

얼마 전 만난 <팬텀 스틸러>의 여주인공 도나였다.

최근 애프터 파티에서 말도 안 되는 열애설이 나돌아 종종 연락을 했었다.

그녀는 가끔 내 방송을 챙겨보면서 후원을 날리기도 하는데, 오늘은 개인 채팅을 보냈다.

- 도나 : 메이슨 쇼, 거기 나가지 마.

- 도나 : 나도 섭외되고서 알았는데, 메이슨이 포터와 작당해서 너 엿먹이려고 하는 모양이야

"흐음"

나는 시선을 돌려 화려한 이펙트가 터지는 화면을 보았다.

[메이슨 쇼 님이 3,012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우리 쇼에 나오면 너의 신곡을 그날 엔딩송으로 쓸게

[메이슨 쇼 님이 3,013달러를 후원했습니다.]

- 그리고 우리 코너 재밌는 거 알지? 너도 즐기고 갈 수 있을 거야

나를 섭외하겠답시고 조건을 남발하는 놈이, 그딴 꿍꿍이를 감추고 있었다는 말이지?

간만에 흥미가 생긴다.

나를 이용해서 화제를 만들려고 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바라고 있으니 원하는 대로 해 줘야지.

나는 이례적으로 이 자리에서 배틀의 승리자를 발표하기로 했다.

내 미소를 본 모양인지 도나가 식겁해서 채팅을 날렸다.

- 도나 : 메이슨이 프로그램을 살려보겠다고 작정한 모양···야, 너 설마?

"좋아. 내 선택은."

- 도나 : 헤이, 잠깐, 스탑, 그거 멈춰!

"메이슨이다."

나는 기뻐 날뛰는 메이슨을 보며 생각했다.

‘차트를 박살 내본 적은 있어도, 프로그램을 박살 낸 적은 없었는데.’

신곡을 알리기에는 최적의 기회인 듯했다.

*

천마의 방송 시청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인 팬과 외국인 팬.

같은 시청자들이지만 성격이 조금 다르다.

한국인 팬들은 대부분 오래전부터 천마의 방송을 봐왔다.

따지자면 고인물이랄까?

그들은 이제 후원 배틀에 익숙해졌다.

1년 동안 천마의 방송에서 있었던 배틀이 몇 번이던가.

지난번 로페즈 회장이 만 달러라는 거금을 쾌척하는 정도에나 놀라지, 3,000달러 정도의 금액에는 내성이 생겨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 후원 배틀? 천마가 원래 하던 거 한 건데 뭘

- 요즘에는 미국에서도 자주 찾는 모양이네

딱 이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썸머 페스타 이후에 유입된 해외 팬들에게 후원 배틀은 신박함 그 자체였다.

물론 다른 스트리머의 방송에서도 이런 종류의 배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빈도가 잦지는 않다.

무엇보다 채팅 한마디를 할 때마다, 직장인의 한 달 월급이 왔다 갔다 하는 건 짜릿한 경험이었다.

- 한국의 방송 문화는 신기하군

- 짤로만 보던 걸 직관하다니

- 아니 메이슨이랑 미드나잇이 여기 왜 나와

- tv에서만 보던 호스트들이 개인 방송에도 찾아오네

- 한국은 음식만 매운 줄 알았는데, 방송도 매운맛이네.

이번에 배틀을 벌인 사람이 미국의 쇼호스트 이다 보니, 이번 배틀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 커뮤니티에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메이슨 쇼에 관심을 가졌다.

- 이번 메이슨 쇼는 기대해봐도 되는 거겠지?

- 이렇게까지 했는데 제작진에서 신경 좀 쓰겠지

- 나오면 몇 화에 나온다는 거야?

- 826회네

그렇게 메이슨 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동안,

또 다른 게스트인 포터는 사전 미팅을 위해서 방송국에 도착했다.

포터는 지난 애프터 파티에서 천마에게 제대로 쪽을 당했다. 그는 이를 갈면서 생각했다.

‘그때 술만 취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기는 건데.’

이상한 스캔들을 냈다며 도나에게 원망을 들은 포터였다.

다행히 메이슨의 방송에 같이 섭외되면서 지난번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생겼다.

‘메이슨이 나를 밀어주겠다고 했으니까.’

천마를 짓뭉갠 다음 도나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이 바로 그 구체적인 얘기를 하는 날이다.

포터는 이전에도 메이슨의 방송에 몇 번 나간 적이 있어서, 두 사람은 편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포터였다.

“메이슨. 또 불러줘서 고마워.”

“와줘서 내가 더 고맙지. 어떻게, 도나랑은 잘 되고 있어?”

“모르겠어. 네가 많이 도와줘야 해.”

“걱정하지 마. 나만 믿으라고.”

포터는 메이슨의 말을 듣고 히죽 웃었고, 메이슨도 마주 웃어주었다.

게스트인 포터가 적극적으로 나오니 호스트 입장에서는 방송을 짜기 좋다.

‘모처럼 의욕적이니 수위를 더 높여도 되겠는데?’

메이슨 쇼에는 <어떻게든> 이라는 코너가 있다.

고난도의 상황 속에서 주어진 미션을 어떻게든 해내는 컨셉이다.

이번에는 상황을 극한으로 높여서 방송의 재미를 극대화할 예정이다.

메이슨이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어떻게든> 코너에서 분수대 사건을 재연해보려고 하는데.”

분수대에 트라우마가 생긴 포터가 움찔했다.

“...분수?”

“그래. 지난번에는 네가 빠졌으니 이번에는 천마를 빠뜨려봐야지.”

메이슨은 기획한 코너를 설명했다.

“수영장 위에 있는 외나무다리에서 너랑 천마가 노래를 부르는 거야. 여기서 방청객 투표에 따라서 못 부른 사람의 다리가 점점 짧아지고, 결국 패자는 물속에 빠지는 거지.”

포터는 그 말을 듣고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내가 투표를 못 받으면 어떡해?”

“에이, 천마 그놈은 그냥 이슈메이커야. 혼자 힘으로는 빌보드에 얼씬도 하지 못할 놈이라고. 너는 지금도 빌보드에 이름을 올린 가수고.”

메이슨의 말에 포터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건 맞는 말이지.”

그래도 포터가 안심하지 못하자 메이슨은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번에 내가 방청객들을 매수할 예정이거든. 네가 빠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포터는 이 말에 홀랑 넘어가 버렸다.

“좋아. 그럼 그 수영장이라는 거, 해보자고.”

메이슨은 최대한 자극적인 방송을 뽑아먹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포터는 쪽팔림을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에 웃음 지었다.

.

.

.

차선우는 도나에게 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전해 들었다.

알면서도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건 바보다.

차선우는 메이슨 쇼에 대한 정보와 소문들을 모았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쪽이 천마이신가요?”

얼마 전 억울하게 해고당한 조연출.

그가 천마와 만나고 있었다.

< 천마가 쏘아올린 존나 큰 공 (3) > 끝

ⓒ 연태량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