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뱀심 폭발 (2) >
폭로글이 올라온 시점은, 데뷔를 딱 3주 앞두고서였다.
탑걸즈는 누구보다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매일매일 강도 높은 보컬과 안무 트레이닝 레슨이 있었다.
근력운동과 외국어 교육은 이틀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진행된다.
주말에는 심리 상담과 재활 도수 치료도 있다.
얼마전에는 단체 안무 트레이닝과 직캠 연습까지 추가되었다.
이것만 해도 바쁜데, 티저와 콘셉트 트레일러를 발표하면서 데뷔 전 분위기를 최고조로 올리는 중이었다.
여기에 뮤비 촬영은 덤이다.
그리고 오늘.
바로 대망의 타이틀곡을 녹음하는 날이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네 사람은 좀비 무리를 연상시켰다.
다크써클이 광대까지 내려온 윤은지가 중얼거렸다.
“···잠마동에 있을 때가 행복한 거였어.”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벤에 오르기가 무섭게 모두 기절하듯 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들을 태운 차량은 녹음 스튜디오로 향했다.
얼마 자지도 않은 것 같은데, 새로 뽑힌 매니저가 탑걸즈를 깨웠다.
“얘들아 일어나라. 스튜디오 도착했다.”
“니에에에에···.”
네 사람은 비척비척 일어나서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미리 스튜디오에 와있던 차선우는 좀비처럼 걸어오는 아이들을 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자, 여기 와서 한 명씩 누워라.”
“안돼애애액.”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가장 먼저 녹음할 신예리가 익숙한 자세로 매트에 누웠다.
이윽고 차선우의 추궁과혈이 시작되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손은, 전신의 막힌 기혈을 자극하고 뭉친 근육을 풀어주어 육체를 최고의 컨디션으로 만들어준다.
강제로.
“어때, 정신이 좀 들어?”
“네···.”
신예리는 힘없이 대답했다.
머리는 당장 휴식이 필요하다고 외치는데, 몸은 팔팔해지니 죽을 맛이었다.
‘으··· 진짜 죽겠다.’
추궁과혈을 받아서 몸은 쌩쌩해졌지만 정신적 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특히 어제 본 악플 때문에 잠을 설친 탓에 더 힘들었다.
어제 잠마동 에피소드가 5화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마지막이라서 평소보다 더 많은 댓글이 달렸고, 최근 생긴 별호를 불러주며 응원하는 댓글들을 구경하는 와중 보고 말았다.
- 저년 또 남자 꼬시려고 짧은 옷 입었네ㅋ이제 또 꼬리칠 준비 하셔야지?
- 어디서 쓰레기 냄새 나지 않아?
- 그냥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말도 안 되는, 근거라고는 없는 무지성 악플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악의만으로 똘똘 뭉친 댓글은 충격적이었다.
‘짜증나 진짜. 왜 저런 말을 하는거야.’
악플은 가성비가 좋다.
수백 개의 선플을 읽어도 악플 하나에 마음이 무너지니까.
푹 자고 쉬면 나아지겠지만, 데뷔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억지로라도 화이팅을 해야한다.
‘특히 이번 타이틀곡은 역대급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잘 뽑혔지.’
데뷔만 한다면 성공은 보장이다!
신예리는 양 볼을 찹찹 때리며 부스 안으로 입장···하다가 테이블에 부딪혔다.
쿵-억!
"......."
차선우는 떨떠름하게 그 모습을 보았다.
‘저쯤 되면 유전자 단계에서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다행히 신예리는 녹음할 때만큼은 덜렁거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쉬웠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디렉팅하는 사람이 바로 차선우였으니까.
“여기서 훅 다운되기는 하는데, 너도 같이 다운되면 안돼. 기본적으로 리듬이 강한 노래잖아. 아예 리듬을 타볼래?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지 말고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 할 때 그 느낌을 생각해 봐.”
“감정은 좋았어. 그런데 마지막 발음에서, ‘는’이 아니라 ‘느-은.’ 음을 둘로 나눠보자.”
“예리야. 이거 완전 너 파트거든? 내가 너 느낌 생각하면서 만들었단 말이야. 그냥 너대로 하면 돼.”
차선우는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캐치하며 신예리의 보컬을 다듬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차선우가 말했다.
“잠깐 쉬었다 가자.”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신예리는 주눅 든 상태로 나갔다.
밖에 있던 차선우가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어? 컨디션이 너무 안 좋은데?”
댓글을 보느라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신예리가 머뭇거리자 뒤에 있던 쌍둥이가 고자질했다.
“어제 언니 악플 때문에 잠을 못 잤어요!”
“맨날 밤늦게까지 댓글 봐요.”
“악플?”
차선우도 요즘 악플이 유독 심하게 달린다는 보고를 들었고, 회사 법무팀에 악플러를 싹 다 고소하라고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그래도 악플을 피할 수 없으니, 각자가 자신만의 대처법을 가지고 있는 게 좋다.
차선우는 네 명을 불러 놓고 말했다.
“악플이 보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먼저 쌍둥이가 대답했다.
“그냥 보지 말아요.”
“아니면 무시해요.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악플 대처의 교과서 같은 방법이다.
하지만 차선우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
그저 정신 승리밖에 되지 않으니까.
차선우가 자신의 방법을 공유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좋은 교보재가 있었다.
뉴튜브에 들어가 보니 최신 동영상에 누군가 댓글을 달아놨다.
- 천마는 무슨. 컨셉에 잡아먹힌 새끼를 뭐가 좋다고 빨아주는지 모르겠네
“아직도 이거 가지고 지랄하는 병신이 있네. 언제적 컨셉 떡밥이야. 다 쉰 거 먹으면 탈난다는 거···.”
“!”
걸쭉하게 쏟아지는 말을 들으니 탑걸즈는 자신들의 속이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날 그들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
천마신교 레코즈에 이상한 전통이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
이후, 타이틀곡 녹음은 무사히 마쳤다.
차선우가 폭로글 문제를 인식한 건 그 다음 날이었다.
옥수진이 출근하자마자 급하게 대표실로 들어왔다.
“천마 님. 이거 한번 읽어보세요.”
옥수진이 가지고 온 것은 폭로글이었다.
올린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글이었지만, 조회수도 높고 수많은 댓글이 달려있었다.
폭로글을 읽어본 차선우는 작성자를 바로 특정할 수 있었다.
잠마동 6층을 통과한 사람이면서, 과거 아크 엔터 소속이라면 딱 한 사람밖에 없다.
“얘, 이연진이지?”
“그런 것 같아요.”
폭로글은 무지성 악플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구체적인 인증, 그럴듯한 근거가 있으니 신뢰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신나서 퍼다 날랐고, 온갖 곳에서 탑걸즈를 욕하는 댓글이 터져 나왔다.
옥수진이 걱정하며 말했다.
"데뷔가 얼마 안 남았는데 악재가 터졌네요."
"일단 회사 입장문부터 밝히고, 기자들에게도···."
차선우가 말을 하고 있는 도중, 강여름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천마 님!!!! 이거 좀!!!!! 커뮤니티에!!!!!"
···또 뭐가 터졌나?
강여름이 들고 온 건, 그녀가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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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캔걸즈 홈마 비계에서 찾은 건데 충격이다
이거 보니까 ㅌㄱㅈ 인성 바닥인듯ㅋㅋㅋㅋㅋ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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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이건 빼박이네
- 폭로글에도 중립기어 박았는데 이젠 기어 풀겠습니다
- 선배를 저런식으로 노려보는 건 아니지 않나···?
- 태도 보소ㅋㅋㅋ 곧 있으면 한대 치겠네ㅋㅋㅋㅋ
- 데뷔 전에도 이모양인데, 데뷔 하면 걍 미쳐 날뛸듯
- 이거 그냥 얘기하는 거 아닌가? 너무 억까 아니야?ㅠㅠㅠㅠ
ㄴ ㅋㅋㅋㅋ탑걸즈 팬들 ㅈㄴ 부들부들하네
ㄴ 응 느그돌
ㄴ 팬질도 인성 봐가면서 하세요 좀
인성 논란에 쐐기를 박는 사진이었다.
하필이면 탑걸즈 네 사람이, 선배를 둘러싸며 위협하듯이 찍혔다.
여론은 이제 탑걸즈를 인성이 박살 난 그룹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꼭 악재라고 볼 수는 없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강여름이 무언가를 발견한 덕분이다.
“잠깐만요. 이 사진 찍은 홈마, 어디서 본 사람인데.”
“왜요? 아는 사람이에요?”
“계정명 보니까 위캔걸즈 쪽 탑시드 홈마네요. 이 사람 아크 엔터 내부자 소리까지 듣던 사람이었거든요. 잠시만요. 제가 알아볼게요.”
강여름은 전직 홈마였고,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홈마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들 사이에서는, 그 홈마가 아크 엔터에서 큰 돈을 받고 사진을 풀었다는 얘기가 암암리에 돌았다고 한다.
차선우는 사진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때 강여름도 왔지 않았나?’
일일매니저 겸 VJ로 강여름이 따라왔었다.
혹시나 이때 추가로 찍힌 사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여름의 카메라는 어디에나 있으니 킹능성이 있긴 한데.
차선우가 물었다.
"여름 씨. 혹시 이때 찍힌 거 없어요?"
"어? 그러게요. 잠시만요. 구도가 좀 익숙한데?"
강여름은 확인하러 뛰쳐나갔다가 다시 태블릿을 들고 호도독 뛰어 들어왔다.
"있어요 있어!!!!!! 도시락 사러 갔다 오다가 찍었어요!"
“...도시락을 사는데 왜 촬영을?”
“에이, 당연히 인서트를 따야죠.”
강여름이 찍은 영상의 외곽에 겨우 걸리듯이 나왔지만, 초점도 잘 잡혔고 누군지도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더 재미있는 건.
“이런 게 찍혔네요?”
조아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천마의 모습이 카메라에 적나라하게 찍힌 것이다.
선배티를 내는 조아람과, 그 앞에 고개를 숙이는 한 회사의 대표.
논란이 되기 딱 좋은 그림이다.
그 뒤에 조아람이 기겁하면서 천마를 말리는 모습도 찍혔지만, 그것까지는 알 바 아니고.
차선우는 미소지었다.
“그쪽이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까.”
아크 엔터에서 먼저 공격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사진을 쓸 일도 없다.
응당 마교의 교인이라면 원수는 10배로 갚아주는 게 원칙이다.
그렇게 강여름은 아크 엔터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헤헤, 이런 건 또 제가 전문이죠.”
그날, 커뮤니티에는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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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ㅇㅋㄱㅈ 천마한테도 선배질하는데?
(사진1)
(사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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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신예리만을 향하던 폭로글은, 아크 엔터의 수작으로 탑걸즈 전체를 향한 인성 논란으로 번지는 중이었다. 두 사건이 확실하게 엮이면서 시너지를 낸 것이다.
다만 그 말은 엮여있는 한 사건을 흔들어놓으면, 다른 사건의 주장도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여름이 커뮤니티에 올린 글은, 주장의 신뢰성을 제대로 저격했다.
천마가 조아람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반박할 여지가 없을 만큼 명확하게 찍혔다.
사람들은 쉽게 설득당했다.
- 이래서 한사람 말만 믿으면 안된다니까
- 또 시작이구나 이제 놀랍지도 않다^^
- 컴백할 때마다 타돌 까는 짓 좀 그만해라 누구든
- 걍 저 사진 자체가 아크에서 작업한 듯
- 폭로글 터졌다고 아크에서 바로 작업 들어가네 ㄷㄷㄷ 무섭다
ㄴ 이러니까 폭로글도 존나 의심스러운데
ㄴ 이것도 누가 탑걸즈 작업하는 거 아니냐?
- 소속사 대표한테도 저렇게 갑질을 하는데 신인한테는 얼마나 ㅈㄹ했을까?
천마가 선배질을 당한 게, 탑걸즈가 인성이 좋다는 반증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까고 보니 아니네?’ 하는 의구심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때 능력자 한 명이 분석글을 올렸다.
아크 엔터에서 사주한 사진에 대한 조작 의혹을 표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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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사진 ㅈㅈ한듯. 눈매쪽 픽셀 뭉개짐
(사진)
복구 프로그램 돌려봤는데 포토샵 한 거 맞음
(사진1) (사진2)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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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 진짜네?
ㄴ이거 사진 각도도 어색한데?
ㄴ설마??
- 다시 중립기어로 바꿨습니다
- 야씨ㅋㅋㅋㅋㅋ 원글 작성자 글삭하고 튐ㅋㅋㅋㅋㅋㅋ
사주를 받았던 작성자는 글을 삭제하고 도망갔다.
여론은 금방 돌아섰다.
이제 탑걸즈를 때리던 여론은 아크 엔터를 까기 시작했다.
본부장의 개수작이 제대로 역풍을 맞는 순간이었다.
*
나는 생각했다.
‘분위기를 바꾸는 데는 성공했군.’
강여름의 사진 덕분에 낼 수 있었던 성과였다.
하나는 해결했다지만, 아직 문제는 남아있었다.
이연진이 올린 폭로글은 아직도 남아서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 변호사에게 연락이 왔다.
“이전에 악플 고소한 것에 대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이쪽에서도 빨리 처리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악플러 중에서 한 사람이 조금 유별나더군요.”
수화기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나더니 변호사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a 사이트에서 241개, b 사이트에서는 89개, c 사이트에서는 124개··· 온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악플만 몇백 개씩 썼네요.”
“혹시 그 사람 이름도 알고 있습니까?”
“이연진이라고 합니다. 마침 오늘 경찰서에 출석 예정이랍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씩 웃었다.
‘가짜 폭로글은 아무래도 본인에게 직접 해명하라고 하는 게 좋겠지.’
나는 그 즉시 경찰서로 출발했다.
모자를 쓰고 은잠술까지 쓰니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경찰서에 들어가려는 순간, 골목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골목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 몰라 시발. 나 악플 쓴 거 걸렸어. 지금 경위서 쓰러 왔는데, 그냥 아니라고 잡아뗄까?"
이연진이었다.
나는 가까이 가서 그녀를 툭툭 쳤다.
“야.”
“아씨 뭐야 또···헉!”
이연진은 나를 보더니 담배를 툭 떨어뜨렸다.
나는 쌈빡하게 웃어주었다.
“안녕 연진아?”
내 말에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도망갔다.
나는 그 뒤를 여유롭게 쫓으며 생각했다.
이거 잘 ‘타일러야’겠다고.
< 뱀심 폭발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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