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일통 (4) >
펄 엔터의 대표는 초조한 표정으로 집무실을 서성였다.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힐끔힐끔 바라보면서.
그것도 잠시.
지이이잉-
진동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대표는 전화를 받았다.
“어, 그래. 자료는 잘 받았어요?”
- 네 대표님. 잘 받았습니다. 정리도 잘 되어있고 내부자 증언도 구체적이네요. 어떻게 이런 자료를 구하셨을까? 참 대단하셔.
“하하하, 다행이네. 그건 영업비밀이라고 해두지.”
- 그럼 바로 기사화하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이거 확실한 거 맞죠?
“그럼요. 나 못 믿어요? 걱정하지 말고 기사만 잘 써주세요.”
이후 기자들 몇 명과 통화한 대표는 그제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김 실장이 일을 잘하는구먼. 천마가 소속 아티스트를 차별한다는 기사가 뜨면, 우리 소속 가수들도 천마를 반대하겠지.’
그는 느긋하게 천마를 공격하는 기사를 구경했다.
[천마신교, 가수 차별 논란··· 걸그룹만 어화둥둥]
[인디에서 활발하던 미니롱, 천마신교에서는 고작 2년 동안 앨범 한 장?]
[천마신교 직원 A씨 양심선언 ‘천마신교에 길성진과 미니롱 매니지 팀도 없어’]
펄 엔터의 공격이 시작되자 코코넛 엔터도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다.
두 회사는 합심해서 여론을 선동했다.
커뮤니티에 댓글 부대를 동원하기도 했다.
- 천마 진짜 깬다···. 자기만 열심히 앨범 내네
- 미니롱 애들 진짜 불쌍하네··· 이럴거면 왜 데리고 간 거야?
- 히트메이커 역대 우승자 중 길성진이 제일 활동 뜸한 듯
ㄴ ㅇㅈㅇㅈ 준우승자가 더 잘나감ㅋㅋㅋ
- 진짜ㅂㅅ같은 소속사 사장 많구나ㅋㅋㅋㅋ 자기만 잘났고 나머지는 들러리야?
- 헐너무하다 팬분들 너무 속상했겠어요
- 차별은 진짜 하면 안되지···.
- 걸그룹한테 해주는 거 반만 해줘라 제발ㅠㅠㅠㅠㅠ
화력이 화끈한 게 돈을 먹인 티가 난다.
공교롭게도 미니롱과 길성진의 활동이 뜸했던 것이 사실이기도 해서, 바람잡이들이 설치니 잘 모르는 사람들은 휩쓸렸다.
이전에 펄 엔터에서 ‘20살 고졸 사장’이 무슨 경영을 하겠냐고 비판했던 것과 맞물리며, 사람들이 하나둘 천마를 까기 시작했다.
- 소속 가수도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면서 무슨 인수냐!
- 펄 엔터 인수하면 그쪽 가수들도 수납당할 듯
- 천마 능력 좋은 건 인정하는데, 아티스트 관리는 못하는 거 같다
여론의 흐름을 보고 있던 펄 대표도 한마디 적었다.
- 어린놈이 능력만 믿고 너무 설치네
그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이거지! 어딜 애송이가 내 회사에 손을 대려고 해?”
천마도 쫓아냈으니, 느긋하게 지분을 매입하며 판을 굳히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행복한 상상은 딱 한 시간만 지속됐다.
*
천마신교 측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기자회견을 열었다.
논란이 퍼진 지 한 시간 만에.
양은구 기자는 탑걸즈의 데뷔 쇼케이스에서 감명을 받고 기사를 정성들여 써준 적이 있었다.
덕분에 천마신교 연락을 받고 기자회견에 참석하러 천산빌딩에 들어왔다.
그는 이번에도 후배 기자를 만났다.
“어, 선배님도 오셨네요?”
“그러게 여기서 또 만나네.”
“아무래도 논란이 논란이다 보니까요. 그러고 보니 천마가 기자회견을 하는 건 처음 아닌가요?”
두 사람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천마를 기다렸다.
‘하긴. 천마가 이슈를 만들어낸 적은 있어도, 논란이 됐던 적은 없으니.’
그때 후배 기자가 물었다.
“그런데 미니롱과 길성진이 컴백 주기가 긴 건 아니지 않나요?”
“그렇지. 얘네들은 아이돌이 아니니까.”
아이돌이야 일년에 몇 번씩 컴백한다지만, 음반 제작에 공을 들이는 솔로 아티스트는 앨범 하나 만드는데 최소 1~2년은 걸린다. 그리고 본인들이 직접 작사와 작곡을 하다 보니 작업이 더 늦어질 수밖에 없고.
“그런데 비교 대상이 천마잖아.”
천마 본인은 일년에 두 번씩 꼬박꼬박 앨범을 내면서, 정작 소속 가수는 각각 한 개의 앨범만 냈으니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다른 아티스트에게는 띵곡을 잘도 써주면서, 소속 가수에게는 왜 곡을 주지 않느냐는 말도 나오고 있었다.
“하필 인수전과 맞물려서 사람들이 예민해진 것도 있고.”
천마가 펄 엔터를 인수했는데, 정말로 논란이 터진 것처럼 펄 엔터 소속 가수를 수납시키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는 팬도 많았다.
“뭐, 어찌 됐든 천마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
양은구 기자는 강당에 모인 기자들을 훑어보았다.
기자들의 눈빛이 흉흉하다.
지금까지 추앙만 받던 천마를 어떻게든 물어뜯어 보려고 하는 게 보인다.
아무리 천마라도 이 상황을 쉽게 해결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양은구 기자는 대충 시나리오를 예상했다.
‘다른 연예인이 하듯이 사과나 박고 앞으로 개선하겠다는 식으로 흘러가겠지.’
그때 천마가 들어왔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터지는 플래시 사이를 걸어오는 천마는, 적어도 사과를 박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시종일관 여유롭고, 당당하다.
“...?”
양은구 기자는 그때부터 자신의 시나리오가 어긋났다는 걸 느꼈다.
천마가 단상 위에 서자마자 질문이 쏟아졌다.
“내부자의 폭로가 사실인가요?”
“진짜로 의도적으로 소속 가수를 차별해왔습니까?”
“미니롱은 왜 앨범을 한 장 밖에 내주지 않았나요?”
“해명해 보십시오!”
천마는 손을 들어 짧게 말했다.
“조용.”
정말 신기하게도, 하이에나처럼 천마를 물어뜯으려는 기자들이 순한 양처럼 입을 닫았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처음 보는 광경에 양은구 기자는 속으로 감탄하며 천마를 지켜봤다.
기자들의 입을 다물게 한 뒤, 천마는 입장을 발표했다.
“천마신교 내에서 소속 가수의 차별, 그런 건 없습니다.”
기자들이 당황했다.
해명해야 하는 사람치고 너무 담백하고 간단명료했기 때문이다.
꼭 해는 동쪽에서 뜬다고 말하는 사람 같았다.
“그, 그럼 그 내부자가 폭로한 건 뭡니까?”
“아, 그거요. 우리 매니저가 오해를 했던 거 같은데.”
“...매니저요?”
기자들이 어리둥절해서 서로를 쳐다봤다.
베테랑 기자들이 회견장에서 이렇게 얼타는 건 또 처음이다.
양은구 기자는 이 상황이 흥미진진했다.
천마가 하는 일은 항상 상식과 어긋난다.
이번 일도 자신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났다.
‘못 빠져나올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미 주도권을 잡고 있네?
천마가 여유롭게 웃음을 지었다.
“이 모든 일이 펄 엔터의 부추김과 매니저의 오해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다행히 매니저와는 진실한 대화를 통해 잘 해결했습니다.”
진실의 방에서 잘 해결했다.
“매니저는 오해가 불러일으킨 파장에 통감하며, 뒤늦게라도 바로잡고 싶다고 주장해서 직접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천마는 ‘고소당할래, 양심선언 다시 할래?’라는 내용으로 매니저를 부드럽게 타일렀고, 매니저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했다.
그렇게 매니저는 한시간에 한번 꼴로 양심선언을 하게 되었다.
천마의 말이 끝나자 기자회견장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탑걸즈의 매니저였다.
술렁이던 기자들의 시선이 매니저에게 고정되었다.
진하고 달콤한 특종의 향기가 풍겼다.
곧바로 터지는 질문의 세례.
“어, 잠시만요. 천마신교에서 직책이 뭡니까!”
“양심선언은 왜 한 겁니까?”
“펄 엔터의 부추김은 무슨 뜻이죠?”
“펄 엔터가 이번 사태와 관련이 있습니까?”
“폭로자 본인이 맞습니까?”
하지만 굳은 표정의 매니저는 기자단의 모든 질문을 무시하고 단상에 올라갔다.
“먼저 저는 폭로자 본인이 맞습니다.”
매니저는 기자들에게 지난 양심선언 메일을 보낸 걸 인증한 뒤, 폭탄을 던졌다.
“사실 이번 폭로를 사주한 건 펄 엔터입니다. 코코넛 측의 인수를 돕기 위해, 제게 조작된 정보를 내부자 폭로처럼 꾸며 발표하기를 요구했습니다. 차별에 대한 얘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매니저는 종이에 얼굴을 박은 채 기계적인 말투로 미리 적어온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동시에 기자들에게 자료집이 배부되었고, 거기에는 매니저의 말을 증명하는 증거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질문 세례는 멈췄다.
회견장에 있는 모든 기자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옆 사람보다 빨리 이걸 송고해야 해!’
기자들은 경쟁적으로 기사를 써내려갔다.
회견장에는 타이핑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단상 위에 있는 천마는 그 모습을 여유롭게 바라보았다. 기사화할 시간도 넉넉히 줬다.
특종을 맛본 기자들의 시선은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천마는 그저 물어뜯을 대상인 줄 알았는데, 특종 자판기였네?
이제 천마가 어떤 소스를 던져줄지 기대하며 초롱초롱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천마를 보며 양은구 기자는 경외심까지 들 정도였다.
‘순식간에 여기 있는 기자들을 다 자기편으로 만들었군.’
기자들은 더 이상 날 선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혹시 길성진과 미니롱이 활동을 하지 못한 데에 어떤 사정이라도 있나요?”
“해외에 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정중하고 예의 바른 어투로, 천마신교의 입장을 생각하며 질문을 던졌다.
천마는 이제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길성진과 미니롱은 지금 미국에서 ‘강호행’을 하고 있습니다.”
“강호행이요?”
처음 듣는 단어에 기자석이 술렁거렸다.
다만 이번 술렁거림에서는 기대감이 묻어나왔다.
그때 기자들에게 두번째 자료집이 배부되었다.
“그냥 직접 보시죠.”
자료집에는 ‘강호행’이 뭔지 구체적인 설명이 있었다.
미국 현지 매니지먼트에게 매니징을 받으며, 음악적 견문을 넓히기 위해 어떤 지원을 받고 있는지 나와 있었다.
미국에서 몇 회의 공연을 했고,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대학에서 청강하며 이론을 다듬기도 하고, 천마의 인맥으로 다른 아티스트들과 교류를 하기도 했다.
“어? 이 사람 맥 로스웰 아니야?”
“이건 킹 음악감독인데?”
“로고 보니까 여기 뮤파이 연습실이잖아?”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두 아티스트는 정말로 잘 지내는 중이었다.
양은구 기자는 얼떨떨했다.
‘이 정도면 거의 유학 아닌가?’
차별받고 있는 줄 알았던 둘은, 천마의 철저한 맞춤 케어를 받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차별은 좀 억지스럽기는 했어.”
“차별이 아니라 특별 대우를 받고 있었네.”
"자료 보니까 올해 유통 일정도 다 잡혔구만. 미니롱과 길성진의 다음 앨범 퀄리티도 기대해볼 만한데?"
천마의 지론은 이랬다.
아티스트는 소모할 대상이 아니라, 같이 성장할 동반자이다.
천마신교는 장기적으로 아티스트의 발전을 위해 투자할 것이다.
그런 설명을 들으며 양은구 기자는 혀를 내둘렀다.
‘이게 알려지면 펄 엔터 가수들은 전부 천마신교에 가고 싶어 하겠군.’
모든 논란은 해결되었다.
양은구 기자는 생각했다.
‘이제 천마의 펄 엔터 인수를 막을 장애물은 없겠는데?’
그는 당연히 천마가 펄 엔터를 인수할 거라고 생각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앞으로 펄 엔터 인수는 어떻게 진행하실 건가요?”
“잘 물어보셨습니다. 천마신교는 펄 엔터가 벌인 치졸한 행위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천마가 퍽 즐거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천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기자들을 향해 핵폭탄을 쐈다.
“오늘부로 펄 엔터 인수는 전면 재검토 하겠습니다. 상호신뢰가 깨진 상황에서 인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네요.”
*
천마의 기자회견 이후, 여론은 180도 뒤집혔다.
기자회견을 통해 소속 가수 차별에 대한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오히려 천마신교의 아티스트 관리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매니저의 폭로 뒤에 펄 엔터가 있었다는 건 이번 기자회견의 백미였다.
[거짓으로 얼룩진 인수 전···펄 엔터의 비열한 방해 공작]
[천마 “상호 신뢰 훼손···인수를 전면에서 재검토” 이대로 인수 포기하나?]
[코코넛 엔터 ‘우리는 전혀 몰랐던 일’, 이번에도 거짓 해명?]
한쪽 말만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사람들은 ‘그러면 그렇지’ 했다.
- 기자야 쓸 거면 제대로 알아보고 쓰던가
- 이래서 한쪽 말만 들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 매니저는 양심이 두 개인가 보네요
- 이러니까 기레기 소리 듣지. 혹시 펄 엔터에서 월급 주니?
- 오너 리스크는 천마가 아니라 이쪽에 있었네
- 코코넛ㅋㅋㅋㅋ 몰랐던 일 이지랄ㅋㅋㅋㅋㅋ
- 응 코코넛이랑 펄 대표랑 사이좋게 손잡고 꺼지자
코코넛과 펄 엔터에 대한 민심이 나락으로 떨어진 건 당연한 수순이다.
모든 일이 다 까발려지고 나니, 천마신교 만한 인수자가 없었다.
특히 천마는 논란이 터지자마자 1시간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서 빠르게 수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천마의 관리 역량을 문제 삼으려고 했던 것이, 역으로 역량을 증명하는 기회가 됐다.
하지만 문제라면 천마가 ‘인수를 전면 재검토’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천마의 인수 참여가 불확실해지면서, 올라간 주가는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 천마야 제발 다시 돌아와라ㅠㅠㅠㅠ
- 펄 엔터 대표 죽이고 싶다
ㄴ 코코넛도 같이 죽이고 싶다
- 그래도 우리 펄 엔터 화이팅입니다!!
ㄴ 몇층이신가요?
ㄴ 17층입니다
ㄴ 시벌롬아 그러니까 화이팅 소리가 나오지
- 다들 평온한 마음으로 기다려봅시다. 작년 펄 엔터 주식 산 사람들, 요 몇 달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가정을 돌아보고 일상을 돌아보고 존버합시다.
ㄴ 여물어라
- 익절 못한 호구 없지?
ㄴ 개새끼야. 왜 혼자서만 쳐 빼냐. 말이라도 좀 해주지
세상에서 내 주식 건드리는 놈이 제일 미운 법이다.
모든 펄 엔터의 주주들은 대표와 코코넛을 욕했다.
하지만 코코넛 엔터 입장에서는 나쁠 건 없었다.
코코넛 엔터 대표가 생각했다.
‘오히려 좋아.’
이번 조작 사건은 펄 엔터에서 독단적으로 벌인 거라 잡아뗀다.
여기에 천마가 인수를 포기한다고 하니 단독 입찰로 펄 엔터를 먹으면 된다.
어차피 이런 사건 따위, 대중들을 쉽게 잊어버리니까.
하지만 천마를 건드린 대가는 단순히 욕을 먹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컸다.
- 천마가 펄 엔터에 안 온다고? 그러면 우리가 가야지!
펄 엔터 아티스트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 국내 일통 (4)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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