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20화 (120/191)

< 이번에는 일본행 (2) >

극진 시리즈를 만든 회사 ‘극진’

극진의 대표는 요즘 매일같이 기분이 좋았다.

“벌써 내수에서 200만 장, 글로벌 1,000만 장이라니.”

손익 분기점이 200만 장인 극진 3은 발매한 지 몇 주도 되지 않아 흑자로 전환한 것은 물론이고, 목표를 벌써 초과 달성했다.

특히 해외 유저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었다.

메타크리틱 스코어가 95점으로, 비록 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올해 최고의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는 중이었다.

“이정도면 GOTY도 노려볼 만하겠군.”

이번 극진 3이 잘 나가다 보니 발매를 준비하고 있는 확장팩에도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작에서 실패한 GOTY 타이틀을 이번에는 반드시 가져오고 싶었다.

극진 3을 출시한 이후부터, 대표는 개발자들을 갈아 넣어 확장팩 개발에 착수했다.

그 결과 본작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퀄리티의 확장팩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뭔가 아쉽군.”

본편에서 풀지 못했던 떡밥들을 모두 회수하고, 차기작에 대한 떡밥까지 깔끔하게 풀어놓았지만 부족했다.

감동.

감동이 없었다.

“감동을 주는 데는 또 노래만한 게 없지.”

엔딩씬이 나올 때 개쩌는 사운드트랙이 하나 딱 깔리면 죽여줄 텐데.

여러 작곡가와 스튜디오를 통해서 곡을 받아봤지만, 이거다! 하고 꽂히는 게 없었다.

그 순간, 극진 대표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천마한테 한번 의뢰해 볼까?"

이전부터 펄 엔터와 함께 작업을 하며 한국 작곡가들의 덕을 톡톡하게 본 전적이 있다.

천마는 지금 한국 최고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가수다.

무엇보다 천마의 이름이라면 전작에서 있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전 극진 2에서 사운드트랙 표절 논란이 있었다.

메인 사운드트랙이 한 무명 가수의 멜로디라인과 너무 비슷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었다.

“그러게, 돈 준다고 할 때 그냥 받을 것이지. 일을 귀찮게 만들고 있어.”

극진의 게임성과 적절한 이슈몰이로 어찌어찌 잘 넘겼지만, 표절이라는 꼬리표는 계속 붙어 다녔다.

“천마의 이름값은 요즘 최고지. 이번 사운드트랙을 천마가 만들었다고 하면, 신경 쓴 티가 좀 나겠지.”

대표는 천마의 노래가 들어갈 부분을 그려보았다.

최종장에서 주인공과 동료들은 모험을 마친다.

모험을 마친 그들의 일상이 짧게 떠오른다.

주인공은 진히로인과 맺어지며 해피엔딩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모든 이들이 행복한 일상을 그려 나가는 와중에 차기작에 대한 떡밥이 드러난다.

몽글몽글하면서도 아련한 분위기.

듣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기대감을 줄 수 있는 노래가 들어가면 딱 좋을 것 같았다.

마침 천마의 노래 중에서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몇 개 있었다.

고백송이던지, 백일몽, 작은 별, 아니면 작년에 페니 로페즈에게 만들어준 포크팝까지.

천마가 만든 곡들은 글로벌하게 히트칠 정도로 퀄리티도 확실했다.

마음을 정한 대표는 이전부터 교류가 있던 펄 엔터 측에 연락을 남겼다.

하지만 인수 이후 너무 바쁜 탓일까?

새 대표인 제이맨은 연락을 주겠다는 답만 남기고 며칠째 연락이 없었다.

참다못한 대표는 직접 천마의 방송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부하 직원이 귀띔해 준 바로는 천마의 방송에서 직접 의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대표가 몰랐던 건, 천마 방송에서 의뢰를 하기 위해서는 특정 금액 이상을 후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천마 방송에 대해서 오늘 처음 들어봤으니, 당연히 시가가 있다는 것도 알 턱이 없었다.

극진의 대표는, 안일하게도 1만 엔만을 후원하는 우를 저지르고 말았다.

[극진 님이 1만 엔을 후원했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천마님. 혹시 여기서 곡 의뢰를 할 수 있나요?

당연히 순조롭게 곡 의뢰가 진행될 거라고 생각한 대표는 뜻밖의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후원 금액을 비웃는 사람들의 조롱과 시큰둥한 천마의 표정.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이게 아닌가?”

그때였다.

[스카디 님이 60만 엔을 후원했습니다.]

- 극진 대표는 여기 시세도 모르고 왔나 보네요. 천마님, 극진 말고 이쪽이랑 하시죠.

스카디의 대표가 등장했다.

제대로 된 금액을 베팅하며.

*

다사다난했던 펄 엔터 인수가 끝이 났다지만···.

“어째 지금이 일이 더 많아진 것 같은데.”

차선우는 대표실에서 사람 키만큼 높게 쌓인 서류와 씨름하고 있었다.

천마라는 이름을 믿고 지지해준 사람들이 많고,

인수 이후에 어떤 성과를 낼지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다 보니 대표가 직접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재빠르게 서류 한 묶음을 처리한 차선우는 문득 무림에서 교주가 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내 이름을 보고 베팅한 놈들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게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지금은 딱히 그런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대신 느껴지는 건 즐거움.

천마라는 이름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놀라운 것을 보여줄지 고민하는 건, 꽤 즐거운 일이었다.

딴생각도 잠시.

서류 위에 떠오르는 숫자의 향연에 차선우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이제 700억 남았네.”

로페즈에게 발행해 준 전환사채 1,000억.

그중에서 300억을 먼저 상환했다.

펄 엔터의 쓸데없는 자회사들을 매각해버리니 꽤 큰 금액이 떨어졌다.

이쪽에서 빠르게 돈을 갚은 걸 보고 로페즈는 인상을 찌푸리며 천천히 갚아도 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이 기세라면 몇 달 안에 남은 700억도 상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안건으로는 제일 중요한 아티스트 관리가 있었다.

이제 소속 가수들도 늘어났고, 자회사인 펄 엔터의 아티스트들까지 신경 쓰려니 골이 빠개지는 줄 알았다.

그래도 며칠 동안 머리를 굴리니 1년 치 스케줄은 얼추 정리가 되었다.

펜을 내려놓은 차선우는 말했다.

“우리 회사에 전문 경영인이 필요해.”

처음 천마신교를 만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수월했다.

미니롱과 길성진이 활동이 왕성한 스타일도 아니었고, 강호행을 떠난 순간부터는 현지 매니지먼트에 맡겨버리면 됐다.

옥수진과 함께 일을 나눠서 하면 충분했는데, 이제는 혼자서 케어하는 게 버거워진다.

“탑걸즈 런칭했을 때부터 간당간당하기는 했지.”

이참에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고, 자신은 아티스트에만 집중하겠노라 마음을 먹었다.

옥수진과 강여름을 비롯한 기존 멤버들은 따로 빼서 자기 전담팀에 넣을 생각이었다.

생각이 난 김에 차선우는 유명 헤드헌팅 회사에 의뢰를 했다.

“이제 얼추 끝난 건가?”

의뢰서까지 보내고 나니 마침내 깔끔해진 책상이 모습이 드러냈다.

오전 9시부터 업무를 처리했는데, 창밖을 보니 어둑어둑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이제 방송해야지.”

차선우는 신나는 손길로 방송 장비를 세팅했다.

솔직히 회사 일을 하는 건 재미 없다.

그것보다는 방송을 하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음악을 나누는 쪽이 훨씬 즐거웠다.

전문 경영인이 오면 웬만한 일은 다 그쪽에 넘기고, 하고 싶은 일만 실컷 하겠다고 다짐하며 뉴튜브에 접속했다.

음공천마 채널의 구독자는 이제 2,200만 명이 되었다.

동시 시청자도 백만 명이 넘을 때가 많았고, 시청자들의 국적도 다양해졌다.

덕분에 고민도 막장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았다.

- 제 여자친구가 알고 보니 제 여동생을 좋아해요···.

“.......”

여기에 시청자들이 워낙 많다 보니 채팅 올라가는 속도가 장난 아니었다.

후원을 해도 어지간한 금액으로는 이어지는 후원에 묻히기 십상이었다.

차선우도 내공을 이용해서 집중하지 않으면 채팅을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조금 전의 후원도 그랬다.

[극진 님이 1만 엔을 후원했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천마님. 혹시 여기서 곡 의뢰를 할 수 있나요?

엔화 후원은 상대적으로 드물기에 잠깐 시선이 가기는 했지만, 저 정도 금액의 후원을 본 것도 오늘만 30번이 넘었다.

곡을 써달라는 의뢰는 수천 번은 봤기도 했고.

적당히 넘기고 다음 고민으로 넘어가려는데, 그 와중에 후원자의 닉네임을 용케 확인한 시청자들이 있었다.

- 잠깐만. 방금 1만엔 후원한거 극진 시리즈 거기 아니냐?

- 에이 닉네임만 같은거겠지

- 설마 진짜 1만 엔으로 천마 노래를 먹으려고 했겠냐

- 방금 확인했는데 극진 공계 맞음ㅋㅋㅋㅋㅋㅋ

- 엌ㅋㅋㅋ 1만 엔이 뭐냐

-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1만 엔이요? 야 여기 소금 가져와라

채팅창에서 공통적으로 올라오는 ‘극진’이라는 이름에 차선우도 스크롤을 올려 확인했다.

“극진? 그 게임 회사?”

얼마 전 길성진의 추천으로 차선우도 한번 해봤던 게임이었다.

잠시 채팅에 반응을 해주려는데, 또 다른 후원이 터졌다.

엄청나게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스카디 님이 60만 엔을 후원했습니다.]

- 극진 대표는 여기 시세도 모르고 왔나 보네요. 천마님, 극진 말고 이쪽이랑 하시죠.

배틀의 냄새를 맡은 시청자들은 난리가 났다.

- 이제 천마가 엔화도 벌어 오네ㅋㅋㅋㅋㅋ

- ㄷㄷㄷ 시세가 왜 이렇게 올랐나

ㄴ천마방송 시그니처임 몰랐음?

- oh? the very "battle"? Really??

- (태국어) 짤로만 봤는데 실화냐ㅋㅋㅋㅋㅋㅋ

- 저 1엔만 주세요

스카디라면 차선우도 알고 있는 게임 회사였다.

“여기가 둠 스카이 만든 회사 아니었나?”

초등학교 시절, 남자라면 한 번쯤 해본 게임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차선우도 재미있게 해본 기억을 떠올리며 고민했다.

‘흠. 일본이라.’

마침 일본은 한번도 밟아보지 않은 땅이었다.

미국이 중원 본토라면, 일본은 새외같은 느낌이랄까.

‘게임 음악이라면 워밍업으로 딱 좋아보이네.’

.

.

.

한편, 차선우가 알은 채를 하자 스카디의 대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극진의 대표와는 다르게, 스카디의 대표는 천마의 방송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하고 들어왔다.

이전 사례를 충분히 연구했기에, 급작스럽게 발생한 배틀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승부욕에 불타올랐다.

“극진 대표라면 천마를 노릴 만한 이유가 있지.”

극진 2에서 있었던 사운드트랙 논란을 잠재우려는 모양이었다.

대강 의중을 짐작한 스카디 대표는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극진과 둠 스카이는 장르가 비슷한 게임이다.

수요층도 비슷하다 보니 이전부터 자주 비교의 대상이 되곤 했다.

언제나 2편과 3편을 말아먹은 스카디의 패배로 끝이 나곤 했지만.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스카디의 입장에서는 경쟁심이 불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 배틀에서만큼은 절대 밀리고 싶지 않았다.

“잘하면 이번 배틀을 이용해서 바이럴 홍보에 쓸 수 있겠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스카디는 천마 방송 예습을 잘 해왔다.

부부싸움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있었던 메이슨 쇼까지.

천마의 방송에서 배틀을 한 사람들은 전부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거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스카디는 머릿속으로 내일 나올 기사의 제목을 주르륵 떠올렸다.

[둠스카이, ‘극진’을 찍어눌러]

[방송에서 벌어진 배틀 “둠스카이 vs 극진,”...그 승자는?]

[유명 작곡가 천마, “나의 선택은 극진이 아닌 ‘둠스카이’”]

이런 자극적인 타이틀이 주는 마케팅 효과를 대표는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배틀의 승패를 가르는 건,

돈!

그리고 천마의 흥미!

“이럴 줄 알고 총알도 빵빵하게 준비했지.”

스카디는 마음속에 걸어둔 예산의 리미트를 해제했다.

여기에 천마의 흥미를 자극할 조건들을 미리 준비한 건 덤이다.

압도적으로, 확실하게 찍어누르는 거다!

[스카디 님이 70만 엔을 후원했습니다.]

- 저는 예전부터 천마 님을 모시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배틀의 금액을 100원이나, 1달러, 엔화로는 10엔 단위로 올라간다.

그런데 스카디는 통 크게 10만엔 단위로 높여버렸다.

[스카디 님이 80만 엔을 후원했습니다.]

- 천마님이 오시면 우리 게임에 천마님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도 넣어드리겠습니다.

돈을 화끈하게 쓰는데, 조건까지 좋다.

당연히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극진 대표는 갑작스런 공세에 놀랐는지 60만 엔을 찔끔 싸더니 그 이후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스카디 님이 90만 엔을 후원했습니다.]

- 또한 천마님께 확장팩과 다음 시리즈도 맡길 생각입니다.

거액 후원을 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접대비에 백만 엔씩 쓰는 사람도, 말 한마디에 백만 엔을 쓰라고 하면 쉽게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가치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로 준비된 자만이 돈지랄을 할 수 있다는 거지.”

[스카디 님이 100만 엔을 후원했습니다.]

- 그러니 저희 쪽과 같이하시죠.

스카디의 대표는 준비된 자다.

그는 채팅창을 보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화려한 채팅창을 보며 천마는 떨떠름하게 생각했다.

‘돈 써주는 건 좋은데, 왜 급발진을 하지?’

이후, 천마 방송 후원가가 100만엔, 1만 달러, 1,000만 원으로 높아지며 많은 사람의 원성을 산 건 덤이다.

*

한편, 배틀에 패배한 극진 대표는 얻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거 미친놈 아니야? 어떻게 그거 의뢰한다고 400만 엔을 쓰지?”

전체 홍보 예산에 비하면 400만 엔은 큰 금액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개인 방송에서 쓰기에는 과하다고 느껴졌다.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갔던 극진의 대표는, 남 좋은 일만 해주고 탈탈 털렸다.

신문에는 벌써 스카디와 극진을 자극적으로 비교하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를 구겨 쓰레기통에 처박은 그는 생각했다.

‘어디서 노래 하나 안 떨어지나.’

그때 그의 귓가로 들리는 멜로디.

일본어 가사는 아니지만, 멜로디 하나는 기가 막혔다.

딱 그가 원하는 노래였다.

대표는 저도 모르게 노래가 들려오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서, 키 차이가 나는 두 여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강호행을 하던 미니롱이었다.

< 이번에는 일본행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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