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21화 (121/191)

< 이번에는 일본행 (3) >

미니롱.

두 사람은 작년에 휴식기를 선언했다.

사실 그들은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2년 전, 천마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편곡해준 ‘Sour Candy’로 한방에 차트에 들었다.

그해 겨울에 낸 ‘눈의 별자리.’

이것도 <히트 메이커>에서 천마가 리메이크해준 덕분에 예상외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그래서 부담스러웠던 건지도 모른다.

새로운 곡을 냈을 때, 이전과 같은 성적을 내지 못할까 봐.

작민지는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거품이 낀 걸지도 모르지.’

그래서 1년 동안 쉬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방향성을 다시 잡고 싶었다.

그렇게 미니롱이 정체되어있는 사이.

천마신교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천마도 잘 나가고, 길성진도 천마에게 특훈을 받더니 실력이 몰라볼 정도로 성장했고, 새로 만든 걸그룹인 탑걸즈는 국내 최고의 걸그룹이라고 불리었다.

모두가 잘 나가니 미니롱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만 잘 못 하는 것 같아. 이번 앨범은 이 정도로 충분할까?”

“아니. 부족해. 이런 걸 냈다가는 천마신교의 이름에 먹칠만 하게 될 거야.”

“힝···. 그럼 엎어야겠네.”

두 번 정도 앨범을 엎고도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 때, 두 사람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롱서아가 시무룩해서 말했다.

“천마님은 왜 우리랑 계약한 걸까.”

“나도 몰라. 그냥 정 때문에 해주신 게 아닐까?”

하필 그때 또 커뮤니티에 들어가 봤다가, 사람들이 욕하는 걸 봤다.

- 사실 천마 방송에서 인생 도박에 실패했으면 천마신교 들어가지도 못하는 수준이지ㅋㅋㅋ

- ㄹㅇ 천마신교에서 제일 수준 떨어짐

- 솔직히 곡도 그냥 그렇고 인기도 그냥 그럼. 왜 있는건지;;;

- 자기가 곡을 못 쓸거면 그냥 천마한테 해달라고 하지···. 얘네들이 천마신교 무패 전설에 흠집 낼까봐 조마조마해

ㄴ이건 좀;;;

ㄴ요새 천마 악성 갠팬 미친듯

ㄴ미니롱 인디에서부터 자기 음악 꾸준히 하는 애들인데 반응 왜이럼?

이대로 천마신교를 나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던 와중, 갑자기 천마가 미니롱을 불렀다.

“전에 너희가 얘기했던 잠마동 대신에 폐관수련을 생각해봤거든.”

“네? 폐관 수련이요?”

“그런데 폐관 수련보다는 강호행이 낫겠더라.”

“네? 강호행이요?”

“그러니까 길성진이랑 같이 나갔다 와.”

“네? 나가라고요?”

그렇게 그들은 갑작스럽게 강호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강호행이라는 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어정쩡하게 뜨는 바람에, 버스킹을 하더라도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마음 놓고 편하게 공연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두 사람이 뭘 하든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와, 이러고 있으니까 우리 옛날 생각난다.”

“그러게. 그때는 기타 하나 메고서 홍대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미니롱은 이번에도 기타 하나를 메고 미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뉴욕 광장에서 매일같이 공연을 하고, 온갖 클럽과 공연장은 다 방문해 보았다.

뉴욕을 일주하고 나서는 클럽 음악의 성지라는 뉴저지와 볼티모어를 거쳐 캘리포니아 남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두 사람은 6개월 동안 미국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고 곡을 만들었다.

“와, 한 달에 20번은 공연한 거 같은데.”

“6개월 동안 100번도 넘었어!”

그리고 함께 강호행을 떠난 길성진은 6개월 동안 엄청나게 성장했다.

정식으로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이, 공연 몇 번 해봤다고 벌써부터 자기 색깔을 찾고 곡을 써내기 시작했다.

길성진을 보며 미니롱은 재능 충이 뭔지 깨달았다.

“진짜 쟤는 사기캐 아니냐···.”

“부럽다 진짜.”

그럼에도 미니롱은 좌절하지 않았다.

길성진이 가지지 못한 장점을, 그들은 갖고 있었다.

바로 둘이라는 것.

한 사람이 느슨해질 때, 다른 한 사람이 당겨주었고.

한 사람이 허우적거릴 때, 다른 사람이 끌어주었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시간은 흐르고 길성진은 한국으로 떠났다.

이제 새로운 앨범을 낼 준비가 되었다고 했다.

미니롱은 고민했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아쉬웠다.

“우리 조금만 더 해볼까?”

“그러자. 이번엔 일본에 가보는 건 어때?”

미국에서는 이제 웬만한 곳은 다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음악시장이 두 번째로 큰 곳인 만큼 다음 강호행으로 좋아 보였다.

또 일본은 인디 음악이 발달한 까닭에, 미국에서보다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 사람은 다시 화이팅을 했다.

“우리가 성진이만큼 재능은 없어도, 꾸준히 하는 건 잘해왔잖아.”

“맞아. 길게 보자고. 10년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일본에서의 생활도 특별히 다를 건 없었다.

들리는 언어가 영어에서 일본어로 바뀌었다는 정도?

천마를 만나기 전 미니롱이 결성됐을 때부터 해왔던 것들을, 두 사람은 여전히 하고 있었다.

매일 일어나서 곡을 쓰고, 기타를 들고 나가 공연을 하고, 마음이 맞는 밴드와 즉석에서 합주를 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그들의 음악은 오래된 저택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된 저택을 청소할 때, 처음에는 바닥을 아무리 닦아봐도 계속해서 검은 때만 나온다.

오히려 곳곳에서 먼지가 쏟아져 집안 가득 뿌예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쓸려 나오는 검댕이 차차 줄어든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미니롱은 음악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10년까지 걸리지는 않았다.

아마 일본에 온 지 한 달쯤 됐을 때였다.

어느날 롱서아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른 걸 촬영해서 인별그램 비밀계정에 올렸다.

기록용으로 일기처럼 쓰는 계정인데, 맞팔 된 작민지가 마침 그 20초 남짓한 짧은 영상을 보았다.

‘이거 괜찮은데?’

그 영상에 나온 멜로디 위에, 작민지는 드럼 루프를 씌워봤다.

곡은 한층 더 괜찮아졌다.

처음으로 마음에 쏙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롱서아도 같은 생각을 했다.

‘어, 이거 진짜 괜찮은데?’

두 사람은 공연에 가는 것도 잊고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왜 내 곡은 항상 안 좋을까, 라고 생각했던 게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좋은 멜로디가 쏟아졌다.

속에 있는 모든 먼지를 다 털어내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어느 저택처럼.

미니롱은 자신의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막혔던 게 아주 오래전 일인 것처럼 손만 대면 완성도 있는 곡들이 만들어졌다.

비밀계정의 타이틀 곡부터 시작한 작업은, 미니 2집에 넣을 수록곡 3개를 만든 후에야 끝이 났다.

“이거 우리가 만든 거 맞지?”

“와··· 이건 내가 만들었는데 쩐다.”

천마가 최종적으로 어레인지를 해준 후 녹음만 하면 미니 2집이 완성된다.

“그럼 우리도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자.”

“천마님 말이 맞았어. 강호행 나오길 잘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은, 일본에서의 마지막 버스킹을 준비했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 버스킹을 했던 신주쿠역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앵콜 요청이 들어와, 새로운 타이틀곡의 클라이막스만 짧게 불러주고 떠나려고 했다.

그때 그들의 노래를 듣던 누군가가 미니롱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미니롱이 어리둥절해하자 남자는 명함을 건네주며 말했다.

“‘극진’게임 개발자이자 대표입니다.”

극진이라면 미니롱도 들어본 곳이었다.

“어? 이거 성진이가 열심히 하던 그거 아니야?”

두 사람은 게임은 잘 모르지만, 옆에 있던 길성진이 매일같이 추천해주는 통에 극진이라는 이름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미니롱은 어설픈 회화 실력으로 대답해줬다.

“[나 극진 알아요. 이거, 재미있데요.]”

극진 개발자는 미니롱이 게임을 재미있게 플레이했다고 착각했다.

마침 잘됐다고 생각한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 극진 3 확장팩을 준비 중입니다. 엔딩으로 방금 부르신 노래를 쓰고 싶은데, 혹시 판매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어, 저, 그게···.”

미니롱은 당황해서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그 모습을 본 대표는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분명 두 사람이 너무 좋은 제안에 당황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작민지의 입에서 영어가 튀어나왔다.

“[저희가 일본어를 잘 못 해서요. 그, 방금 뭐라고 하셨죠? 캔유 스피크 잉글리쉬?]”

“......”

어찌어찌 의사소통에 성공했다.

그리고 미니롱은 뜻밖의 제안에 놀랐다.

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고,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에 이런 제안을 받아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두 사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토론을 했다.

“어쩌지? 우리 이거 앨범 타이틀로 쓰려고 한 곡이잖아.”

“그런데 극진이라면 엄청 유명한 게임 아니야? 그런 게임 엔딩으로 나온다면 전 세계에 우리 노래를 알릴 수 있는건데.”

한참을 고민하던 미니롱은 말했다.

“저희는···.”

*

나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스카디와 작업을 하기로 결정한 그날, 스카디의 대표는 곧바로 일본행 비즈니스 티켓을 끊어 주었다.

-죄송합니다. 한국-일본 항공은 일등석이 없더군요.

"괜찮습니다. 얼마 걸리지도 않는데."

-일본에 오시면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그 말은 진짜였다.

의전에나 볼법한 리무진 에스코트부터,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온천에서 몸을 녹인 다음, 스위트룸에서 푹 쉬고 다음 날.

진짜 미팅을 하러 스카디 본사에 도착한 나를, 대표가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천마님.”

“어? 한국말을 할 줄 아세요?”

그는 멋쩍게 웃으며 옆에 있는 통역에게 일본어로 말했다.

“사실 천마 님이 온다고 인사말 정도는 배워뒀습니다.”

"예. 그럼 저도 곤니치와 입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개발진과 인사를 나눈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만들어야 할 사운드트랙은, 이번 둠스카이 4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대표의 설명으로는 최종 보스를 처치하기 직전, 마침내 이야기의 끝이 다가온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웅장하고도 기대감 넘치는 곡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둠스카이 4가 어떤지 직접 플레이 해봐야 했다.

나는 대표의 안내에 따라서 콘솔이 있는 방에 들어갔다.

다행히 내가 사용하던 기종이라서 어려움 없이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분명 재미있을 겁니다.”

게임을 세팅해 준 스카디의 대표는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나는 그대로 게임에 빠져들었다.

“저, 천마님. 물이라도 좀 드시면서 하세요.”

“네?”

그리고 직원이 물을 갖다줬을 때는 이미 3시간이 지난 상황이었다.

‘이거 물건인데.’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해본 건 오랜만이다.

길성진이 극진 3을 추천해줬을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스카디 대표가 자신감을 내비칠 만했다.

특히 인상 깊은 건 디테일이었다.

오래전 즐겼던 둠 스카이 1에서는 캐릭터의 스타팅을 백도 세력에서만 할 수 있었다.

이번 작에서는 세력을 선택해서 플레이를 할 수 있었는데, 내가 선택한 흑도 파트는 지금까지 해본 게임 중 가장 완성도가 높았다.

NPC와 플레이어 상호작용도 생동감 넘쳤고, 자유도 넘치는 NPC들은··· 진짜 마교에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묘하게 싸가지 없는 대사부터, 으슥한 골목만 지나가면 뒤통수를 친다거나, 주인공 캐릭터가 조금 약해 보이면 다짜고짜 무시하기도 하고.

그런데 또 무력이 점점 강해질수록 애들이 공손해지고, 은근 의리도 있는 게···.

‘흑도가 딱 우리 천마신교를 컨셉으로 한 거 같은데.’

아무튼 익숙한 향기가 나서 반가웠다.

물론 고칠 부분도 조금 보이긴 했다.

아무래도 전문 분야라서 그런지 캐릭터의 액션에서 눈에 걸리는 게 많았다.

‘지나치게 현실 고증을 한 거 같기도 하고.’

내공이 없는 일반인들이 무술을 쓰는 거라면 모를까, 게임 속에서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이 무기를 휘두르면 저런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백도나 흑도의 세력들이 천편일률적인 무술을 펼치는 것도 아쉬웠다.

같은 무기를 쓰더라도 방파마다 특징이 다른 법인데 말이다.

‘이펙트를 다르게 해서 그런 디테일을 살려도 좋을 텐데.’

명작의 향기가 솔솔 나다 보니 괜히 눈에 밟혔다.

‘여기서 마상전 할 때도···. 아니다. 됐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개가 아니라서 그냥 집어치웠다.

어쨌든 내가 의뢰받은 건 노래니까.

그런 부분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마지막으로 게임에서 내 노래가 들어갈 부분을 플레이하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더니, 한 남자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보게 천마!”

“???”

남자는 내 손을 잡더니 반갑게 흔들었다.

뮤지컬 영화 <팬텀 스틸러> 촬영장에서 만났던 홍콩인 무술 감독이었다.

"어이쿠 이런 ‘우연’이! 여기서 또 보는구먼!"

···잠깐만.

이거 어디서 많이 봤던 광경인데.

< 이번에는 일본행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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