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23화 (123/191)

< 이번에는 일본행 (5) >

미니롱의 정체를 알게 된 극진의 대표는, 미니롱과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천마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미니롱도, 이전보다 더욱 열린 마인드로 대표와 논의를 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각자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미니롱은 이번 미팅을 통해 전 세계에 자신들의 노래를 알릴 기회를 잡게 되었다.

“이번 앨범에 타이틀곡을 넣기만 하면 되니까.”

“맞아 맞아. 우리도 쓰고, 남도 쓰는 건 상관없지. 자동으로 홍보도 되고 좋네.”

극진은 그토록 원하던 미니롱의 노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대신 곡을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이쪽에서 조금 편곡을 하기로 했다.

이미 만들어진 곡을 가져다가 쓰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문제 될 건 없다.

며칠 전까지 합의점을 찾기 어려웠던 두 사람은, 원만한 합의에 성공했다.

손을 마주 잡은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생각을 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 노래라면 엔딩까지 완벽하지. 올해의 GOTY는 우리꺼다.’

‘이렇게 되면 일본에서만큼은 우리가 천마님보다 앞서나가는 건가? 기분 좋은데?’

미니롱과 극진은 이참에 동시 발매를 하기로 약속했다.

이대로 모든 게 행복하게 끝나는 듯 싶었는데.

이 시각 일본.

한 밴드가 앨범을 발매했다.

킨초 - EPILOGUE

미니롱의 노래와 똑같은 멜로디를 가지고.

일주일 먼저.

*

킨초는 일본 인디에서 활동하는 4인조 밴드이다.

활동을 시작한 지 몇 년 정도 지난 그들은, 활발한 공연으로 탄탄한 코어 팬층을 확보해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미니롱과도 인연이 있었다.

킨초의 멤버들을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야, 그때 같이 공연했던 여자애들 기억나? 걔네 꽤 이쁘지 않았냐?”

“누구 말하는 건데?”

“그 한국에서 왔다는 애들. 이제 이름도 기억이 안나네.”

“아아, 누군지 알겠다. 그 키 차이 많이 나는 애들? 걔네 얼굴이 꽤 봐줄 만하기는 했지.”

“그럼 뭐하냐. 말이 안 통하는데.”

“뭐, 섹스할 때는 말이 통할 필요는 없잖아.”

낄낄거리며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그들의 눈동자는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발매될 새로운 앨범에 대한 기대감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한두 번 앨범을 내본 것도 아닌데, 이번만큼은 흥분과 함께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잘못된 일에 대한 공범이라는 인식이 그들을 더 긴장하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와중, 기타리스트 포지션을 맡은 멤버가 말했다.

“야, 근데 우리 걸리지는 않겠지?”

그 말에 방금까지 떠들던 멤버들이 모두 멈칫했다.

손에 술병을 든 리더가 욕설을 내뱉었다.

“아 시발. 갑자기 왜 재수 없는 소리를 해. 너 때문에 분위기 다 죽었잖아.”

“아니 그래도 쫄리는 걸 어떡해. 너는 걱정도 안 되냐?”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걸릴 일이 뭐가 있다고. 그년들 검색해봐도 아무것도 안나오더만.”

킨초는 우연히 미니롱이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걸 듣게 되었다.

마법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인상 깊은 훅 멜로디.

그걸 듣는 순간 킨초의 멤버들은 공연 준비도 잊고 홀린 듯이 미니롱의 공연을 감상했다.

이후 대화를 나누던 중 그게 미발매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욕심이 생겼다.

협연을 핑계로 미니롱을 공연장에 끌어들인 킨초는, 미니롱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악보를 촬영하는 걸로도 모자라 아예 노트북에 있는 음원을 통째로 복사해버렸다.

이후 그들의 밴드 스타일로 ‘조금’ 손본 다음 그대로 발매를 해버렸다.

“딱 봐도 한국에서 온 무명 가수인데. 이거 베낀다고 아무도 몰라.”

그들은 미니롱이 그냥 한국에서 일본으로 음악을 배우러 온 듀오라고만 생각했다.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진 리더는 적반하장으로 말했다.

“그리고 뭐. 발매는 우리가 먼저 한 거 아냐? 그럼 그쪽이 우리 노래 표절한 거지.”

어차피 인지도도 자신들이 더 높은데다 여기는 일본이다.

한국의 무명 가수가 뒤늦게 시비를 걸어봤자, 일본 대중은 당연히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거다.

“이미 다 끝난 일이야. 앨범은 제작이 끝났고, 유통사에는 음원도 넘겼는데. 이제 와서 다 엎을 거야?”

“뭐, 그건 아니지.”

리더가 피식 웃었다.

“새끼. 너도 그럴 거면서 양심 있는 척하기는. ‘우리’가 만든 이번 신곡. 개쩔잖아. 그냥 즐기자고. 야야, 건배해 건배!”

한 시간 후면 그들의 신곡은 발매가 될 것이고, 그저 이 노래를 통해서 밴드 활동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바람은 딱 절반만 이루어졌다.

*

나는 본격적으로 스카디와 계약을 했다.

“사운드 디렉팅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및 설정 작업, 그리고 액션 수정까지. 제가 해야 할 일이 많네요.”

스카디 대표가 멋쩍은 듯 웃었다.

“그만큼 넉넉히 챙겨드리잖습니까.”

기본 계약금만 수억 엔이다.

천마 캐릭터를 쓰고, 음악 저작권에 대한 로열티.

여기에 내가 직접 만든 액션에 대한 비용도 있다.

이런 자잘한 건 차치하고, 가장 중요한 건 매출에 따라 퍼센트로 인센티브를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로페즈 그룹에 갚을 700억도 빠르게 털어버릴 수도 있겠는데.’

자고로 마이너스 통장은 일을 열심히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나는 스카디에서 잡아준 호텔에 장기 투숙을 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시나리오나 모션 캡처쪽은 스무스하게 진행이 되고 있지만, 사운드트랙이 문제였다.

“아, 바빠 죽겠는데. 말까지 안 통하네.”

나는 ‘공동’ 음악감독이었다.

또 다른 음악감독, 그러니까 기존에 스카디에서 사운드트랙을 만들던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는 작정이라도 한 듯 사사건건 태클을 걸고 있었다.

오늘도 보스전에 들어갈 곡을 정하는 과정에서 한바탕 설전을 벌이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것도 통역사를 끼고.

나는 스카디에서 제공한 차에 올라탄 후, 블루투스 스피커를 틀었다.

요즘 일본에 있다 보니 제이팝이나 록 밴드 위주로 듣고 있어서 그런지, 알고리즘이 관련 노래를 추천해주었다.

시원한 락을 들으며 답답한 마음을 씻어내었다.

밤이라 그런지 뻥 뚫린 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게···어?

어딘가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끼이이익.

나는 급하게 차를 멈춰 세웠다.

“시발. 이거 뭐야.”

절대로 지금 들려서는 안 되는 노래.

얼마 전 미니롱이 보내온 타이틀곡과 유사한 곡이 스피커를 타고 나오는 중이었다.

록 밴드 스타일로 편곡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음정과 피치, 코드 진행까지 전부 똑같이 베낀 수준이다.

나는 황급하게 핸드폰을 열어 아티스트의 이름을 확인해보았다.

“킨초? 이건 또 뭐하는 놈들이야?”

미니롱의 앨범 발매 1주일 전에 생긴 일이었다.

.

.

.

차선우는 미니롱과 극진 대표에게 곧바로 연락을 때렸다.

미니롱은 한국에서 일을 정리하는 대로 이쪽으로 넘어오기로 했고,

늦은 밤 차선우는 극진 대표부터 먼저 만났다.

소식을 듣자마자 튀어온 극진 대표는, 연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전작에서 있었던 표절 트라우마가 제대로 터진 까닭이었다.

‘돌아버리겠네. 다른 것도 아니고, 또 표절이라고? 지금 와서?’

초범은 그나마 용서가 쉽다.

이미 전작에서 표절 프레임이 씌워진 상황에서, 또 표절 문제가 터지면 이건 빼도 박도 못한다.

킨초라는 듣도보도 못한 인디밴드의 노래는, 공연장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는 중이고 벌써 스포티나인과 에이플뮤직 싱글 차트에도 슬슬 반응이 오고 있었다.

인디밴드치고 심상치 않은 인기였다.

그래서 더 미치겠다.

전작에서도 ‘대기업 음악감독이 무명 가수의 노래를 훔쳤다’라고 더 세게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다.

마치 누가 짜기라도 한 것처럼 전작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극진 대표는 PTSD가 와버렸다.

‘무슨 마가 낀 건가? 그래도 이번에는 발매 전에 발견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지 원.’

이런 개 같은 상황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마음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극진 대표는 차선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논란될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기존의 프로젝트를 강행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그냥 손절할까?’

“손절하시게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극진 대표가 흠칫 놀라 쳐다보았다. 통역사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라고 차선우 님이 물으시네요.”

극진 대표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거 제 생각에 너무 빠져있었군요. 경황이 없어서요. 그나저나 말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진짜 미니롱이 표절한 겁니까?”

너무 당황한 탓일까?

말하는 대표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대표는 민망한 표정으로 차선우를 보았다.

차선우의 표정은 느긋해 보이기도 하고, 조금 화가 나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안에 걱정하는 기색은 전혀 없어 보인다.

차선우는 담백하게 말했다.

“미니롱은 표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손절을 한다면 그쪽 손해일 겁니다. 차분하게 생각해보시죠.”

희한하게도, 극진 대표의 마음이 진짜로 차분해졌다.

덕분에 대표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이 정리되는 건 아니다. 상황이 이쪽에 불리하다는 건 바뀌지 않았다.

차선우의 말마따나 미니롱이 표절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건 다른 이야기이다.

킨초라는 밴드가 먼저 곡을 발매하기도 했고, 표절을 했다는 증거를 찾기도 어렵다.

심지어 논란이 생긴 대상이 한국 가수면 일본의 대중은 킨초의 편을 들어줄 게 뻔했다.

만약 극진이 나서서 언플이라도 한다?

그러면 더 처맞는다. 대기업이 인디밴드를 죽인다니, 또 돈으로 사람 입막음을 할 거라느니 라는 말이 나올 게 뻔했다.

극진의 대표는 답답한 마음에 천마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천마신교 쪽 주장이 중요한 게 아니지요. 킨초가 표절을 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그때 차선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미니롱이었다.

“잠시만요. 지금 그 증거가 온 모양이네요.”

전화를 받은 차선우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롱서아의 말이 와다다다 쏟아졌다.

- 있잖아요. 저희가 너무 많은 밴드랑 공연을 해서 킨초가 누군지는 기억이 잘 안 났거든요. 그래도 비공개 계정에 꼬박꼬박 영상을 올렸는데, 타이틀 곡을 완성한 날짜 기준으로 찾아보니까 뭐가 있기는 하더라고요···.

롱서아의 횡설수설에 작민지가 핸드폰을 빼앗았다.

- 서아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 제가 설명해드릴게요.

차선우는 작게 한숨을 쉬고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극진의 대표는 궁금한 것들을 삼키고 거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찾아냈다고?”

미니롱은 컴백일지에서 사용하기 위해 강호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영상으로 촬영해놓았다. 강여름에게 촬영 노하우를 배운 두 사람은 어디서나 카메라를 켜놓는 걸 잊지 않았다.

차선우는 그 영상에 뭔가 있는지부터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렸었다.

- 기록용으로 쓰는 비밀 계정에 서아가 처음 악상을 떠올리고 작업을 한 게 있어요. 그리고 컴백일지에 쓰려고 찍어놓은 영상에도 킨초와 협연을 했던 게 있더라고요. 그 영상 지금 바로 보내드릴게요.

작민지의 말을 들은 차선우가 극진의 대표를 보았다.

“들으셨죠?”

이제서야 극진 대표의 안색이 조금 밝아지기 시작했다.

극진 2에 이어서 이번에도 논란이 생길 게 분명하지만, 미니롱이 표절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 또한 분명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엔딩곡을 버려야 하나 하고 있었는데, 희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대표는 조심스레 말했다.

“표절이라는 게 증거 몇 개로 판가름 나는 것도 아니고. 제일 중요한 건 여론인데, 우리가 불리할 게 뻔해요. 한국 아티스트와 일본 아티스트들이 싸우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누구 편을 들어주겠어요.”

“일본 아티스트 편을 들어주겠죠.”

차선우가 거들어주자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 걱정거리들을 쏟아냈다.

“내 말이 그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보도자료 돌리고, 입장 발표하고, 기자들에게 돈 좀 쥐여줘도. 사람들은 대기업이 돈 써서 여론 덮으려고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특히 지난번 일도 있으니 더 신나서 물어뜯겠네요.”

대표의 말을 모두 들은 차선우는 피식 웃었다.

“기사도 좋죠. 정석적이고. 그런데 요즘은 언플도 트렌드를 따라가야죠.”

“네?”

“아니, MZ 몰라요? 이제 대세는 소셜미디어지.”

“...?”

당황한 극진 대표를 뒤로하고, 차선우는 연락처를 뒤적였다.

시작을 누구로 할까.

고민하던 시선이 제이맨에게 닿았다.

아무렴. 펄 엔터를 인수한 돈값은 해야지.

< 이번에는 일본행 (5)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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