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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으로차트올킬-126화 (126/191)

< 천류 열풍 (1) >

일본의 한 고교생.

올해 갓 입학한 그는 담임 선생님이 종례를 끝내자마자,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우다다 교실을 나왔다.

“오늘도 피시방 갈 거지?”

“아니. 오늘은 안돼.”

“뭐야? 무슨일 있어?”

고교생은 핸드폰을 들어 캘린더 화면을 친구에게 보여줬다.

“야. 오늘 둠 스카이 4 출시잖아.”

“헉, 그게 오늘이었어?”

“그럼 피시방은 다음 주에 가야지!”

평소였다면 당연히 피시방을 갔겠지만, 몇 달째 둠 스카이 4를 기다리던 친구들은 미련 없이 집으로 흩어졌다.

고교생도 빠르게 집에 들어왔다.

웬일로 피시방에 안 가고 집에 일찍 들어왔냐는 어머니의 말에 씩 웃어준 고교생은, 교복을 벗는 것도 미루고 콘솔부터 부팅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오래 걸리는 부팅을 기다리며, 재빠르게 환복을 마친 고교생은 뉴튜브에 들어갔다.

오전 11시에 오픈했는데 벌써 플레이 영상을 올려둔 사람들이 있었다.

“쩐다. 티저랑 인게임 모션이랑 별 차이가 없잖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부팅이 끝났다며 알람이 띠링띠링 울려왔다.

고교생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집어 던지고, 컨트롤러를 쥐어 들었다.

“그럼 한번 시작해 볼까.”

어제 미리 다운받아 놓은 둠 스카이4를 실행하자 순간 화면이 암전되었다.

엄청난 일이 펼쳐질 듯한 분위기와 함께 고대 벽화 같은 느낌의 영상이 흘러나온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영상과, 성가를 샘플링한 배경음악이 시선을 화면에 고정시킨다.

“1회차는 무조건 흑도지.”

얼마 전, 미니롱에게 빠진 고교생은 자연스럽게 천마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둠 스카이4의 흑도 시나리오에 천마가 개입했다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 시작은 흑도에서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렇게 흑도에서 캐릭터를 생성한 고교생은 본격적으로 플레이를 시작했다.

.

.

.

스타팅 포인트는 흑도의 허름한 마을이었다.

이런 콘솔 게임만 수십 개는 해본 고교생은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NPC를 향해 다가갔다.

‘일단 주변 탐문부터 해볼까?’

마을의 촌장은 고교생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듣고 나니 화면 한쪽이 반짝이며 퀘스트가 생성되었다.

[튜토리얼 : 기초 무공을 배워라!]

[하급 수련생 격파 0/5]

‘아하. 일단 무공부터 배우라는 거군.’

그때였다.

화면 한구석, 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이 잡혔다.

딱 봐도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사람은 바로 천마를 모티브로 한 NPC였다.

고교생 캐릭터를 잠시 지켜보던 천마 NPC는 소리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저건 또 뭐지? 설마 히든피스?’

부리나케 방금 전 천마가 있던 자리로 달려가 보았지만,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좋다 말았다고 생각한 고교생은 일단 무공을 배우기 위해 미니맵에 나온 수련장을 찾아냈다.

천마신교 성내에 있던 마을을 본따서 만든 흑도 마을은, 튜토리얼인데도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고교생은 마을 한 바퀴를 둘러본 후 수련장을 발견했다. 수련장에는 NPC들이 모여 훈련을 하고 있었다.

‘저놈이 하급 수련생인가?’

다소 험악하게 생긴 외형이었지만, 고교생은 당황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듯 초반에 등장하는 적은 약하니까.

고교생은 캐릭터를 조종하여 하급 수련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선빵.

하급 수련생은 주먹을 휘두르며 반항했지만, 금세 공격 패턴에 익숙해진 고교생은 깔끔하게 주먹을 피한 후 공격을 꽂아 넣었다.

‘오, 타격감 죽이는데? 그럼 이제 네 명 남은 건가?’

[하급 수련생 격파 1/5]

고교생이 두 번째 수련생에게 다가가 공격을 하는 순간, 수련생이 공격을 회피한 후 ‘발차기’를 날렸다.

발차기에 얻어맞은 캐릭터는 볼썽사납게 땅을 굴렀다.

‘뭐야? 갑자기 발차기를 한다고?’

초반 NPC이기에 당연히 모두 똑같은 패턴을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차선우가 무림 시절을 떠올리며, 초보 수련생이 초식을 익힐 수 있도록 NPC를 배치해놨다.

이후에는 캐릭터가 배운 초식(패턴)을 이용해서, 연계 기술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게임을 시작한 지 이틀 후.

흑도 마을을 졸업한 고교생은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갔다.

그사이 뉴튜브에서는 공략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둠린이라면 꼭 봐야 할 팁]

[흑도 초반부에서 이건 필수로 (꿀팁방출, 스포x)]

특정 루트를 타면 쉽다, 이건 필수템이다 라는 팁들이 있었지만.

고교생은 낭만을 아는 사람이었다.

“남자라면 몸으로 굴러야지.”

그는 곧장 빙하지대로 갔다.

티저에 나온 빙공이 마음에 쏙 든 까닭이었다.

얇은 옷을 입은 탓에 한번 동사한 후, 고교생 캐릭터는 결국 빙하지대의 추위에 적응했다. 친밀도를 쌓은 NPC에게 빙공을 배우며 고교생은 생각했다.

‘대박이다. NPC 무공이 이렇게 다양할 줄은 몰랐는데.’

세력마다 가지고 있는 무공이 전혀 다른 것은 기본이고, 같은 세력 내에서도 장로 따위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놈은 같은 무공에 응용 동작을 섞기도 하였다.

“진짜 게임 속에 들어온 것 같잖아!”

사실, 차선우는 현대로 돌아와서 이렇게까지 무림 지식을 활용한 건 처음이었다.

흥이 돋은 차선우는 개발자들이 갈려 나갈 정도로 무공의 디테일을 추가했다.

덕분에 아직 초반부임에도 등장한 무공의 종류만 수십 가지였다.

커뮤니티에서 ‘한 우물만 파면 후반부에 이득본다’는 소문을 접한 고교생은, 검술과 권각술을 메인으로 나름대로 스킬 트리를 짰다.

“오케이. 장남의 복수를 해주고 검술을 강화하면 빙하지대는 끝나는군.”

그렇게 일주일 후.

고교생은 빙하지대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후 평범함을 거부하는 고교생은 용암지대로 가서, 극양 무공을 익히기 시작했다.

용암지대의 가문이 말했다.

- 반란 세력을 진압하면 우리 가문의 호흡법을 알려주겠소.

그래서 반란 세력을 진압하려고 했지만, 고교생은 이번에도 알 수 없는 반항심이 올라왔다.

둠 스카이 4가 엄청난 자유도를 보장하는 만큼, NPC가 퀘스트를 준 대로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 이 미친놈. 반란을 진압하라고 했더니 반란군과 손을 잡아?

반란군과 손을 잡고 퀘스트를 준 NPC를 쓱싹했다.

강제로 용암 가문의 호흡법을 빼앗아 극양 호흡법을 익히기 시작했는데···.

“뭐, 뭐야. 왜 체력 바가 닳아? 상태 이상인가?”

캐릭터의 체력바가 점점 0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포션을 먹어도 줄어드는 걸 멈추지 않는 체력바.

심지어 조작 버튼을 눌러도 경고음이 뜨며 캐릭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 안돼. 보스 잡고 세이브포인트도 없었는데.”

그때였다.

처음 흑도 마을에서 본 이후,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천마가 등장하였다.

- 이건 병신인가?

“뭐?”

진심으로 한심하게 여기는 듯한 보이스가 흘러나오자, 고교생은 게임인데도 발끈했다.

그러든 말든 천마는 고교생 캐릭터를 건드렸고, 동시에 상태 이상이 해제되며 캐릭터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껏 고생고생해서 배운 극음의 무공과 극양의 무공 아이콘 위로, 시뻘겋게 사용금지 표시가 떠올라있었다.

고교생이 기겁했다.

“내 무공! 왜 갑자기 못쓴다는 건데.”

천마가 혀를 찼다.

- 극음의 무공을 배우고 다짜고짜 극양의 무공을 배우다니. 멍청하기는.

“.......”

하다하다 NPC에게까지 무시당하네?

NPC라지만 몇 대 팰까 고민하던 고교생은 들려오는 말에,

- 그거 다시 쓰고 싶냐?

즉시 공손해졌다.

“회복 가능할까요?”

- 그럼 잠마동으로 오든가.

“?”

.

.

.

놀란 고교생은 콘솔을 집어던지고 검색을 시작했다.

“잠마동은 또 뭔데.”

일본 최대의 게임 커뮤니티에 잠마동이란 단어를 검색하자, 수천 개의 게시물들이 나왔다.

- 야 혹시 잠마동 뜸?

- ㅇㅇ 주화입마 걸렸는데 어떤 남자가 나와서 해결해주고 잠마동 들어가라던데

ㄴ 나는 복면인에게 뒤질 뻔한거 살려주고 잠마동 가서 수련하라던데

ㄴ 그래서 잠마동이 뭐야??? 어떻게 들어가는 거야?

- 잠마동? 한국에서 탑걸즈가 들어간 그거 아니냐?

ㄴ 탑걸즈는 또 누군데?

ㄴ 넷플렉스에 있음. 한번 봐봐

마침 고교생은 둠 스카이4를 플레이하기 전, 미니롱 덕질을 하고 있었다.

미니롱에서 시작되어 탑걸즈, 천마로 이어지는 유니버스를 두루두루 체험해봤던지라, 그는 잠마동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맞다. 넷플렉스에 잠마동 시리즈가 있었지.’

전혀 다른 장르라 이 잠마동과, 그 잠마동을 연관시키지 못했다.

고교생은 이번에는 검색어를 다르게 쳤다.

[잠마동 천마]

그러니까 이전보다 명확한 게시물이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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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마동 NPC가 천마 아닐까?

흑도 마을에서 등장했다가 사라져서 까먹고 있었거든

그런데 천마랑 비슷하게 생긴 거 같은데?

(게임 천마) 비교 (현실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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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커뮤니티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극진’을 플레이해봤다.

당연히 표절 사건도 알고, 미니롱도 알고, 거기에서 더 깊게 파고든 사람들은 천마신교에 대해서도 안다.

여기서 둠 스카이까지 연달아서 히트를 하자, 사람들은 천마의 이름을 확실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 근데 이 사람은 뭔데 이렇게 캐릭터로까지 나오냐

ㄴ 런칭 행사에서 인터뷰한 거 보니까 천마가 음악, 시나리오, 액션 전부 디렉팅했던데?

ㄴ (기사전문링크)

- 말 존나 싸가지 없게 해서 패고싶었는데 창조주셨군요

- 방금 둠스카이 확인하고 왔는데, 조선천마 특별 스킨 나온대 [갓+도포] 버전이야wwwwww

게시글을 다 읽은 고교생은 감탄을 내뱉었다.

“와 대박. 단순히 게임 캐릭터인 줄만 알았는데.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했네?”

게임 속에서 떡밥을 던지는 인물이, 실존 인물이라는 건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심지어 잠마동도 현실에 존재하는 콘텐츠다.

게임 속 이야기가 게임에서 끝나지 않고, 현실로 이어지자 고교생은 급격히 흥미가 생겼다.

원래 고교생은 미니롱에만 관심이 있었다.

한국 남자 따위, 내가 알아야 하나?...같은 마인드였지만, 천마만큼은 달랐다.

잠시 머리도 식힐 겸, 고교생은 천마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시작은 천마 배틀 영상으로, 이후에는 천마가 만든 음악으로 넘어갔다.

고교생은 미니롱처럼 어쿠스틱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좋아했고, 천마의 정규 1집 ‘작은 별’은 그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홀린 듯이 뮤비를 튼 고교생은 선비 복장을 한 천마를 볼 수 있었다.

“이거 천마 NPC가 입은 거랑 너무 비슷한데? 간지 죽이네.”

거기까지 오자, 뉴튜브는 어느새 ‘조선 천마’라는 세계관을 소개하는 영상을 추천해주고 있었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발만 살짝 담그려고 했던 고교생은.

어느새 천마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기적의 알고리즘 덕분이랄까.

모든 영상을 본 고교생은, 결국 둠 스카이4 타이틀을 사고 남은 용돈을 모조리 털어 [갓+도포] 버전으로 나온 특별스킨까지 사서 캐릭터에 씌워주었다.

“덕중의 덕은 룩덕이지. 암.”

고교생은 만족하며 잠마동에 들어갔다.

한편, 고교생의 아버지는 집에 들어왔다.

문화청에서 일하는 고위관료인 그는 밤늦게까지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한 참이었다.

그런데 요 며칠 새벽임에도 아들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가끔 한국어로 된 노래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거 풀어놨더니 공부는 안 하고 뭘 하는거야.”

아버지는 고교생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아들은 한국 전통 옷을 입은 캐릭터로 열심히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못마땅한 시선에 고교생은 급히 변명을 했다.

“아, 아빠. 이번 판만 하고 자려고 했는데···.”

“당장 불 끄고 자라.”

아버지는 한 번 더 화면 속 조선천마를 본 후, 혀를 차며 방문을 꽝 닫았다.

*

둠 스카이4는 히트를 했다.

그러지 않는 게 이상할 노릇이었다.

평론가들은 호평을 쏟아냈다.

- 전설이 돌아왔다!

- 둠스는 게임이 아니다. 이건 인생이다

- 콘솔이 없다고? 둠 스카이4 하나만으로도 40만원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유저들의 반응도 좋았다.

- 발매 1주일, 플탐 140시간 찍었습니다

- 게임 안에서 집 짓고 살고 싶네요

- 액션 무슨일이냐? 나 존나 무술 고수 된줄ㅋㅋㅋㅋ

둠스카이 대표는 신이 났다.

“좋아! 이 기세를 몰아서 확장팩까지 가자.”

스카디에서는 곧바로 확장팩의 개발에 들어갔다.

이번 확장팩에서는 본격적으로 천마를 이용한 시나리오를 활용할 생각이었다.

이전까지는 대놓고 천마와 관련된 내용을 넣자니 걸리는 게 많아, 적당히 이스터에그를 숨겨놓는 식으로 천마신교에 관한 걸 배치하였다.

예컨대 비밀훈련소의 이름을 잠마동으로 짓는 정도.

그런데, 천마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네?

흥미로운 떡밥을 뿌리는 천마 NPC는 얼마 전 캐릭터 인기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빨리 천마님께 말씀드려야겠군. 확장팩에서는 천마신교 스토리를 좀 더 넣어야겠어.”

대표는 얼마 전 한국에 돌아간 천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대표의 이야기를 들은 차선우는 고민했다.

로페즈 뮤직그룹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그 이상의 효과를 내고 있었다.

천마신교 소속가수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이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정규 1집 타이틀이었던 ‘작은 별’은 오리콘차트에 이름을 올렸고,

특히 이번 분기에 일본에서 음반 판매량이 80% 늘 거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참에 우리 회사에 있는 여자 캐릭터도 한번 넣어볼까? 흑도 제일미도 괜찮고.”

차선우는 걸그룹의 이름을 무림사화, 마교 걸즈 등으로 짓고 싶었지만 동생의 반대로 숙원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 펄 엔터를 인수하며 걸그룹이 두 팀이나 있으니,

백도에는 에이클라스를, 흑도에는 탑걸즈를 넣으면 딱 좋을 거 같다.

‘미니롱이랑 에이클라스는 이미 인지도를 쌓았고, 나도 이번 기회에 기반을 구축했으니 다음에는 탑걸즈를 밀어줘야지.’

차선우는 사심을 채울 계획을 세우며 피식 웃었다.

어쨌든.

천마와 천마신교는 일본 내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인기에 쐐기를 박는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천마의 새로운 앨범이, 일본 차트를 점령할 예정이었다.

바야흐로, ‘천류 열풍’의 시작이었다.

< 천류 열풍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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