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27화 (127/191)

< 천류 열풍 (2) >

둠스카이의 런칭 전.

나는 일본에서의 일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다.

사운드트랙이나, 시나리오, 모션 캡쳐 액션은 이미 다 완성이 됐고, 이제 개발진이 체험판 반응을 확인하면서 버그를 잡으면 끝난다.

‘런칭만 하면 로페즈 뮤직 그룹에 빌린 돈은 다 털어낼 수 있겠네.’

체험판의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며칠 만에 천만에 가까운 다운을 기록하며 흥행은 확실해 보였다.

3분기부터는 게임 매출액에 대한 인센티브와 로열티가 정산되고,

거기에 천마신교 & 펄 엔터가 재정비한 이후 생긴 수익까지 들어오면서 다시 통장이 넉넉해질 테다.

자고로 지갑이 빵빵하면 업그레이드에 대한 욕구가 치솟는 법.

그리하여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

나는 천산빌딩을 보며 생각했다.

‘회사 규모도 커졌는데 사옥을 지을까.’

천마신교 레코즈는 이미 국내에서 최대의 레이블이라고 불리며, 일본과 미국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당장은 천산빌딩을 임대해서 쓰고 있기는 하지만,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점점 수용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건 이전부터 회의에서도 몇 번 얘기가 나왔던 안건이기도 했다.

옥수진이 푸념했다.

“건물주가 또 임대료를 올리네요.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새로운 층을 임대하려는데, 천마신교가 잘 나간다며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렸던 것이다.

합정에서 살고 있는데, 임대료 수준만 보면 무슨 강남구 한복판 노른자 땅을 차지하고 있는 줄 알겠다.

옥수진의 보고를 듣고 난 후, 건물주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잘 해결하긴 했지만···.

“좀 짜증이 나는군.”

호구 잡힌 거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다.

대출금 상환도 멀지 않았고 돈 들어올 구석도 생겼겠다, 슬슬 내집마련의 꿈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느낌의 사옥을 짓고 싶은데.’

나는 천마신교 입구에 걸린 현판을 힐끗 보았다.

내가 직접 만든 현판은 어쩌다 보니 사람들이 방문할 때마다 인증샷을 남기는 게 유행이 돼서, 팬들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현판 인증샷’이라는 게시글을 종종 봤다.

천마신교 소속 아티스트의 음악적 역량이 집중되면서도, 팬들도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는 ‘천마 타운’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흠. 괜찮은데. 그럼 부지 매입부터 차근차근 알아봐야겠군.’

나는 현판 입구를 지나 작업실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으니 피로감이 엄습한다.

‘하긴. 그동안 열심히 돌아다니긴 했지.’

펄 엔터를 인수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일본에서의 표절 사건과 게임 개발까지.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근 6개월 동안 폭풍처럼 쏟아지는 일들을 해치우고 나니, 지금의 고요가 어색하다.

‘이제 뭘 하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음악.

회사 일에 치이다 보니, 막상 내 음악을 할 시간이 없었다.

뉴튜브 방송을 통해서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그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지만, 그걸 내 음악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말이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고민을 하나씩 벗어던지며, 나는 골몰하기 시작했다.

가장 본질적인 것만 남기기 위해서.

*

한편 일본.

한국이야 차트에서 천마신교 아티스트의 노래가 튀어나와 한바탕 휘젓고 지나가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지만, 일본은 달랐다.

오리콘 차트.

그리고 빌보드 재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들을 순서대로 나열해놓은 그 차트 맨 꼭대기에서, 낯선 언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1위. 미니롱 - prologue

극진 확장팩과, 표절 이슈가 겹쳐서 확 떠버린 미니롱의 곡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특히 일본 음악시장은 아직도 실물 앨범을 많이 사서 듣는다.

그리고 실물 앨범 특성상, 한번 노래를 들으면 수록곡까지 쭉 듣게 된다.

미니롱의 타이틀 곡을 들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앨범도 구매했고,

‘뭐야? 수록곡도 다 좋잖아?’

‘나는 타이틀보다 수록곡이 더 취향인데?’

미니롱의 앨범 수록곡도 모두 차트에 들어가는 기염을 토했다.

그뿐만 아니다.

차트의 10위.

TOP 10의 끝자리에는 또 다른 한국 가수가 이름을 올렸다.

역시나 이번에도 천마신교 소속이었다.

10위. 이승호 - Bravery (더 리벤지 OST)

바로 이승호가 부른 OST가 오리콘 차트에 올랐던 것이다.

넷플렉스에서 히트한 ‘대한의 검성’의 연출을 맡았던 PD는,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새로운 드라마를 제작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그놈의 메인테마곡으로 골머리를 앓던 와중, 그는 OST 해결사 천마를 찾았다.

‘천마님. 이번에도 같이 작업하시죠? 시나리오도 잘 빠졌고, 넷플렉스에서 하는 거라 어느 정도 흥행은 보장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천마는 펄 엔터 인수 작업을 마무리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PD의 요청을 거절했다.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 힘들 것 같네요. 대신 저희 회사 작곡팀이랑 얘기해보실래요?’

천마는 소속 가수가 프로듀싱을 자신에게만 의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작곡진 풀을 넓혔고 그들이 OST 작업에 합류했다.

그렇게 만든 메인테마곡을 부른 건 이승호.

이승호는 이전에 천마가 만든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그는 소원하던 천마신교에 들어갔지만, 다른 아티스트의 컴백으로 일정이 밀려 빈둥대던 와중 OST를 불렀다.

이승호는 주인공이 복수를 완성하며 쾌감을 느끼는 한편,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걸 모두 잃어버린 이중적인 마음을 절절한 목소리로 표현해냈다.

드라마 ‘더 리벤지’는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일본에서도 열풍을 일으켰다.

덕분에 이승호의 노래 또한 잘 나가는 중이었다.

아이돌 출신답게 잘생긴 외모와 한껏 물이 오른 보컬이 호평을 받으며,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렇듯 세상은 천마신교로 시끌벅적해졌지만,

천마는 천산빌딩 안에서 조용히 지냈다.

나는 지금까지 작곡한 노래를 들어보았다.

뉴튜브에 올린 건 너무 많으니 제외하고, 앨범으로 냈던 걸 위주로.

하나씩 듣고 있자니, 내 음악이 가진 특징이 명확해졌다.

미니 1집인 둠둠둠은 무게감 있는 비트로 강하게 후킹하는 스타일이었고,

미니 2집인 타임랩스는 ‘live my life live my time’ 단순한 멜로디가 루프되며 반복적인 리듬감을 형성했다.

그리고 정규 1집의 타이틀인 ‘작은 별’은 모차르트 작은 별 변주곡을 샘플링해서, 팬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후크송 느낌이 강한 대중적인 스타일이네.’

대중적이고 쉬운 노래였던 만큼, 모든 노래가 하나같이 히트를 치긴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새로운 분위기로 가볼까.

나는 본능적으로 벽에 걸려있는 기타를 집어 들었다.

기타 줄의 매끈한 촉감을 느끼며 천천히 줄을 잡아 뜯었다.

망각하고 있던 예전의 것을 되짚는 듯이.

조금씩, 조금씩.

연주는 빨라지기 시작한다.

해방감과 함께 날카로운 빠르기로 기타 리프가 질주했고,

이리저리 튀는 자유분방한 멜로디를 유려하게 이어 붙인다.

‘그래. 이거지!’

머릿속에 있는 걸 풀어내는 걸 넘어서, 마음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욕망을 모조리 쏟아내듯이.

나는 이 순간에 집중했다.

.

.

.

한편, 옥수진은 천마의 새로운 앨범에 관한 사항을 검토했다.

‘이번 앨범은 둠스카이 게임 런칭일 기준으로 한 달 후로 잡는 게 딱 좋을 거 같네.’

옥수진은 길성진이 체험판을 플레이하며 극찬하는 걸 봤다.

게임을 잘 모르지만, 기사를 찾아보니 유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천마가 그 게임에 전격적으로 참여했던 만큼, 비슷한 시기에 앨범을 런칭하면 시너지가 있을 것이다.

‘마침 둠스카이에서도 ‘조선 천마 스킨’ 콜라보 제의도 들어왔고.’

지금까지 정리된 사항을 보고하기 위해 천마가 있는 층에 올라왔다.

그때, 기타 소리가 그녀의 발걸음을 붙들었다.

묵직한 내공이 선사하는 해방감에, 옥수진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이번에 낼 신곡인가. 옛날에 들어본 기타록 같은데? 천마님이 이런 장르를 해본 적이 있었나?’

기타 리프가 비트 위에서 공간감을 주며 진행되고, 영롱한 신스라인이 붙으며 세련되게 느껴졌다.

전반적으로 경쾌하고 스피디한 노래인데, 또 천마의 목소리는 감미로웠다.

옥수진은 하려던 일도 잊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감상했다.

천마의 음악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가만히 멈춰서서 귀 기울이게 하는, 그런 힘이 있었다.

최근 정신없이 달리느라 꽉 조여진 마음이 풀어지는 듯했다.

‘이게 덕업일치지!’

옥수진은 천마의 신곡을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오늘도 기뻐했다.

*

오랜만에 곡 작업을 한 차선우는 무서운 기세로 몰두했다.

그동안 얻은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영감을 받은 건지, 아니면 그동안 잠재웠던 욕구를 폭발시키려는 건지.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 차선우는 음악만을 탐닉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둠스카이 4는 정식으로 출시를 해서 큰 화제를 얻었고, 차선우 역시 미니 3집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었다.

이번 앨범은 악기와 사운드메이킹에 공을 들인 만큼, 최고의 엔지니어에게 마무리 작업을 맡겼다.

대강의 일을 끝낸 차선우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던 와중,

지이잉-

핸드폰이 울렸다.

둠스카이 제작을 총괄한 대표였다.

- 대박입니다! 이번에 만든 천마님 NPC 반응이 엄청나네요.

"당연히 그래야죠."

- 츤츤대면서 도와줄 건 다 도와준다고 유저들이 ‘츤마’라고 부르고 있어요.

“.......”

좋은 거겠지?

아무튼 대표는 굉장히 흡족한 눈치였다. 그는 어떤 요소가 인기 있었는지 떠들어댔다.

- 특히 이번에 넣은 잠마동은 최고였습니다!

이번 둠 스카이 4를 만드는 데 있어서 차선우는 잠마동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현실판 잠마동은 솔직히 아쉬운 게 많았지.’

탑걸즈가 들어간 잠마동에서는 안전 때문에 넣지 못한 요소들이 많았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차선우는 마교에 있었던 기관진식들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모조리 때려 박았다.

발동되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피할 수 없는 기관이라든지.

한번 발을 들이면 백이면 백, 백치가 되어 나오는 진법이라든지.

온갖 악랄한 기관진식이 잠마동을 가득 채워나갔다.

덕분에 잠마동은 둠 스카이 4에서 손에 꼽히는 어려운 콘텐츠가 되어버렸다.

‘대신 그만큼 보상도 확실하니까.’

잠마동에서만 얻을 수 있는 고급 소모품과 장비들을 얻을 수 있는 건 기본이고, 클리어하면 캐릭터도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여기에 ‘고인물’ 플레이어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한 건 덤이다.

둠 스카이 4 커뮤니티에서는 잠마동 클리어 타임은 곧 실력의 척도가 되었다.

누가 더 빠르게, 임팩트 있게 잠마동을 클리어하는지 챌린지까지 있을 정도.

며칠 전에는 한 유저가 팬티 바람으로 잠마동을 클리어 해 뉴튜브 인기 콘텐츠에 올라온 적도 있었다.

어쨌든.

잠마동 뽕을 맛본 대표는 차선우가 확장팩에도 참여하기를 바랐다.

- 그래서 말인데, 다음 시나리오도 천마신교의 세계관에 있는 것들을 좀 넣었으면 합니다.

대표가 먼저 말을 꺼내자, 탑걸즈를 밀어주려고 계획하고 있었던 차선우가 말했다.

“그럼 탑걸즈는 어떤가요?”

- 현실판 잠마동을 통과한 그분들 말하시는 거죠? 저야 당연히 환영입니다.

탑걸즈는 현실판 잠마동을 통과했다는 개연성이 있다.

이번 확장팩에서 ‘잠마동을 먼저 클리어한 선배’라는 설정으로 등장시키면 괜찮을 듯싶었다.

‘그리고 동료로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거지. 이름은··· 적당히 바꿔서 흑도사화로 할까?’

강호행 중 우연히 만나게 된 미녀와 동료가 되어 여행을 떠난다.

이건 무협지의 단골 레퍼토리다.

여기에 탑걸즈의 능력치를 좋게 만들어주고, 멤버들이 직접 모션 캡처와 보이스 녹음까지 하면?

이게 바로 낭만이지.

차선우는 본격적으로 탑걸즈를 둠 스카이 4에 출연시킬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천마신교는 조금씩 일본을 잠식하고 있었다.

.

.

.

하지만 천마신교의 행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그들은 천마신교가 장악한 차트를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천류 열풍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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