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류 열풍 (3) >
요즘 천마신교를 주축으로 한 새로운 한류 열풍이 불고 있었다.
극진 3로 뜨게 된 미니롱은 말할 것도 없고, ‘더 리벤지’라는 드라마가 넷플렉스 일본 콘텐츠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메인테마곡을 부른 건 천마신교의 이승호다.
천마는 그 흐름의 절정을 찍었다.
새로운 앨범을 전격 발매한 것이다.
세 번째 미니앨범은 「I」
둠둠둠은 세상에 던지는 출사표였고,
타임랩스에서는 무림에서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작은 별에서는 현대에서 만난 인연을 집대성했다면,
이번 앨범 「I」에서는 천마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미니 3집 앨범은 로페즈 뮤직 그룹이 유통을 맡아 미국과 한국,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동시 발매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국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던 곳은 다름 아닌 일본이었다.
일본의 한 고등학교.
일본인 고교생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주제라고 하면 당연히 게임.
최근 가장 인기 있다는 둠 스카이 4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니들 엔딩 영상 봤냐? 마지막에 천마는 왜 나타난거야?”
“내가 들었는데 그게 확장팩 떡밥이더라더라. 천마가 이제 NPC가 아니라 캐릭터로 나올 거라는데?”
“에엑 대박!!!! 나는 그럼 무조건 천마로 플레이해야지.”
주인공 캐릭터를 잠마동으로 안내해주는 천마 NPC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특유의 츤츤대는 말투, 플레이에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무력, NPC의 화려한 액션이 더해지며 별명까지 생길 정도였다.
이름하여 ‘츤마.’
일본인 고교생의 최애캐도 바로 천마였다.
고교생은 가방에서 앨범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나 이번에 천마 스킨 준다고 해서 앨범도 샀다. 어제 코드 썼는데 스킨 이펙트 개쩔더라.”
고교생의 자랑에 친구들도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역시나 나온 건 천마의 앨범이었다.
“나도 오늘 아침에 바로 샀다. 아직 코드는 안씀.”
“너두? 야 나두.”
천마 NPC의 인기에 힘입어, 이번 앨범은 게임 회사 측과 콜라보를 했다.
실물 앨범을 사면, 그 안에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특별스킨의 코드를 제공해 주는 식이었다.
일본은 원래 음반구매량이 많은 편인데, 콜라보까지 더해지자 실물 앨범 판매량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음반판매량 만큼은 한국보다 일본이 더 많을 정도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앨범을 샀으면 한 번쯤은 그 노래를 들어보게 된다.
앨범을 구매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천마의 노래를 들어보았고, 그걸로 상황은 끝이었다.
고교생은 생각했다.
‘후크송처럼 확 사로잡지는 않지만, 천마가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달까.’
귓가를 때리는 둔탁한 드럼 비트와 오묘하게 감정을 조여 오는 신스음.
여기에 백미는 감정을 세밀하게 담아내는 천마의 목소리였다.
퍼포먼스와 최신 유행하는 코드를 전부 뺐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담백하고 깔끔한 국밥 같달까.
생각난 김에 고교생은 핸드폰을 틀어 천마의 노래를 재생했다.
그가 들어간 것은 뉴튜브.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노래만 들을 수도 있지만, 이번 천마 노래의 백미는 영상으로 봐야 느낄 수 있었다.
고교생은 천마의 영상을 편하게 보기 위해, 몇 년 동안 참고 있던 뉴튜브 프리미엄 체험판에 결국 손을 댔다.
고교생이 튼 영상은 <천마의 음악방송>을 한 일본 뉴튜버가 편집한 것이었다.
무대 위 천마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번 앨범에서, 천마는 이례적으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존나 잘한다. 왜 지금까지 악기 연주는 안 했대?’
뉴튜브 방송에서는 천마가 종종 연주를 했었지만, 앨범에서 악기를 같이 다룬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게 미쳤다.
브릿지 파트에서 기타 솔로를 현란한 기교로 보여주다가, 클라이맥스로 이어지며 고음을 내지를 때는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였다.
‘저걸 어떻게 하는 거지? 저 연주를 하면서 고음에서 감정선이 이어질 수 있나?’
게임만 잘 아는 고교생이 그럴진대, 음악을 좀 한다는 사람들은 얼마나 충격적일까.
고교생의 학교만 해도 천마의 기타 솔로는 화제가 되고 있었다.
특히 학교 밴드부에서는 천마를 따라 한답시고 맨날 기타를 뜯으며 목 놓아 천마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무튼.
고교생은 클라이막스만 몇 번 더 보다가, 댓글창에서 사람들의 주접을 훑어보았다.
역시나, 수천 개의 댓글이 천마를 찬양하고 있었다.
- 천마가 이런 감성이 있었구나. 새로운 앨범 나오고 나서 너무 좋아서 계속계속 듣게되네요. 반짝 차트 1위 노래가 아닌 꾸준히 롱런할 만큼 아련한 노래 같습니다
- he simply torn your heart to pieces
- 저는 일본사람인데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합니다··· 사실 제가 한국에 놀러간 적이 한번도 없어서 꼭 가보고 싶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 말이 이상하다면 죄송합니다)
ㄴ일본인인줄 몰랐어요. 한국어 잘하시네요~^^
- what a beautiful voice.
번역 기능을 사용하여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진 댓글을 읽던 와중, 고교생은 댓글 하나를 발견했다.
- 일본에서 콘서트 기대하고 있어wwwww 큐슈에도 와줘!
‘뭐? 콘서트를 한다고?’
고교생은 원래 한국 남자 가수의 콘서트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백번 양보해서 좋아하던 게임의 사운드트랙을 부른 가수가 버스킹을 한다면 지켜볼 마음이 있는 정도?
하지만 천마는 달랐다.
‘실제로 천마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게임 NPC로만, 아니면 뉴튜브 화면으로만 보던 천마를 직접 보고 싶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알아보니 이번 콘서트에는 미니롱과 탑걸즈도 게스트로 참여한다는 소식까지 있었다.
‘탑걸즈라면, 현실판 잠마동을 통과한 사람들 아닌가?’
그 토나오던 잠마동을 실제로 통과한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해진다.
무엇보다 탑걸즈 역시 다음 확장팩에서 동료로 등장한다는 말도 돌고 있었다.
‘이건 못참지!’
그러나 콘서트의 인기가 심상치 않았다.
조금 검색을 해보니 천마 콘서트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콘서트는 작년부터 준비를 해오던 대규모 투어 콘서트로,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과 미국으로 넘어가는 일정이라고 한다.
원래라면 일본 콘서트는 도쿄에서만 진행이 될 예정이었지만, 일본에서의 인기가 심상치 않아 급하게 투어 장소에 오사카를 추가했다고 한다.
고교생은 생각했다.
‘오사카는 불가능하고. 도쿄에서 열리는 걸 가야 할 거 같은데. 근데 티켓팅은 어떻게 하는 거지?’
살면서 콘서트라고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고교생은, 대학생인 누나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누나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종종 밴드나 아이돌의 콘서트 다녀오는 실력자였다.
하교를 한 고교생은 곧장 누나의 방에 들어갔다.
“누나, 나 콘서트 티켓팅 좀 해줘.”
하지만 누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왜?”
“좀 알려주라. 내가 지난번 누나 시험시간에 MINEZ 한정판 앨범 줄 대신 서서 사줬잖아. 내가 이번에도 대타 뛰어줄게.”
“나 이제 MINEZ에는 관심 없는데.”
최애를 자주 갈아타는 누나는 MINEZ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최애는 얼마 전 바뀌었다.
그래도 누나는 인심 쓴다는 듯 말했다.
“뭐, 그래도 지난번에 줄 서준 성의를 봐서 도와줄게. 그래서 누구 티켓팅 할 건데? 걸그룹이야? 콘서트는 언젠데?”
“아니. 천마라고 한국 남자 가수인데. 이번에 게임하다가 노래가 좋아서···.”
“잠깐만. 누구라고?”
고교생은 누나의 되물음에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야? 혹시 누군지 모르는 거야? 지금 오리콘 차트 1등인데.”
“너···. 티켓팅 하겠다는 게 천마 콘서트였어?”
“응. 왜?”
“그거 나도 갈건데.”
“???”
“나 티켓팅 하고 시간 남으면 너도 해줄게.”
티켓팅을 하고 남는 시간 따위는 없다.
그 정도는 고교생도 알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안 해준다는 말이었다.
“......”
“뭐, 왜!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고교생은 뻔뻔한 누나의 태도에 한마디 던졌다.
“이 배신자.”
원래 남매 사이에 우애 따위는 없는 법이다.
*
고급스러운 회의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쿨링 엔터.
톰스 사무소.
모리 프로덕션.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일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들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다만 그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대형 스크린에 나와 있는 오리콘 차트.
그 현황을 보며 그들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오리콘 차트의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한국의 가수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오리콘 차트는 요즘 맛이 갔다는 말이 많으니, 조금 더 공신력이 높은 빌보드 재팬을 한번 봤다.
물론 빌보드 재팬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1위. 천마 - I
2위. 미니롱 - prologue
3위. 천마 - dive into
.
5위. 천마 - 495번지
.
.
8위. 천마 - Round a clock
9위. 미니롱 - 그리고 그는 말했다
10위. 이승호 - Bravery (더 리벤지)
중간중간 벽을 뚫고 살아남은 일본 가수도 있었지만, 그 영향력은 하잘것없다고 볼 수 있었다.
한 대표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하다하다 별꼴을 다 보네.”
그들은 살면서 한국 가수가 수록곡까지 일본 차트에서 줄세우기 하는 건 처음 봤다.
그렇다고 차트에 오른 가수들의 소속이 다르냐?
그것도 아니었다.
차트에 오른 건 모두 천마신교 레코즈 소속의 가수들이다.
얼마 전 앨범을 낸 천마를 필두로, 미니롱과 이승호의 이름이 모두 차트에 있었다.
일본 차트 역사상 한 기획사의 가수들이 차트를 모조리 점령한 것도 흔치 않은데, 그게 한국의 기획사라는 게 더욱 짜증이 났다.
쿨링 엔터의 대표가 주먹으로 책상을 꽝 쳤다.
“망할 천마신교. 그놈들 때문에 우리 ‘MINEZ’가 TOP10 진입에 실패했단 말입니다!”
전통 음원 강자인 아이돌 MINEZ.
그들이 앨범 발매 이후 TOP10에 오르지 못한 건 처음이었다.
톰스 사무소의 대표도 이에 질세라 이를 갈며 말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하루토가 부른 OST는 그대로 묻혔어요. 그놈의 ‘더 리벤지’는 뭐가 재밌다고 넷플렉스에서 밀어주는지.”
잠자코 있던 모리 프로덕션의 대표도 한마디 던졌다.
“확실히 이대로는 안 되겠군요.”
참고로 모리 프로덕션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신인 가수도, 프로모션 빨을 받아 잠깐 차트에 들어갔다가 하루를 못 버티고 천마신교에 의해 튕겨 나왔다.
바야흐로, 천마신교의 일본 차트 강점기.
천마신교 레코즈는 이제 일본 엔터사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천마신교 놈들을 차트에서 쫓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겁니까?”
방법이 없었다.
천마신교가 차트를 장악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각각 천만 장이 넘게 팔린, '극진 3'와 '둠 스카이 4.'
일본 넷플렉스 1위를 하고 있는 드라마 더 리벤지.
천마신교의 노래는 다양한 콘텐츠들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문화 자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여기 모인 기획사들이 아무리 잘나간다고는 하지만, 천마신교의 흐름을 막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누군가 푸념하듯이 말했다.
“천마가 이번에 도쿄에서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은 다들 들으셨죠? 여기에 오사카까지 돌 거랍니다. 이러다가 음악뿐만 아니라 광고나 다른 영역까지 이놈들이 잡아먹겠어요.”
그때였다.
모리 프로덕션 대표의 머릿속에 괜찮은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그 도쿄에서 열린다는 천마의 콘서트. 우리가 망치는 건 어떨까요?”
< 천류 열풍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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