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류 열풍 (4) (수정재업) >
천마의 도쿄 콘서트.
천마의 콘서트는 이제 몇 달 남겨두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모리 프로덕션의 대표는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계획되어 있는 콘서트를 망칠 수 있으면 그쪽의 기세도 주춤할 겁니다.”
천마신교의 기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지만, 그걸 한번이라도 꺾는 게 중요하다.
원래 꺾인 기세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야심찬 말을 들은 나머지 두 대표는 조금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콘서트를 망쳐서 어쩌겠다는 겁니까?”
“저는 잘 모르겠네요. 그것만으로 천마를 막을 수 있을까요?”
모리 프로덕션의 대표는 속으로 두 대표를 욕했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구만. 무슨 답답한 소리를 하는 건지.’
마음 같아서는 혼자서 일을 벌이고 싶었지만, 그가 세운 계획에는 두 대표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그는 나머지 대표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럼 이대로 한국 놈들에게 눈뜨고 시장을 빼앗기기만 할 겁니까?”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지금 오리콘 차트가 몇 주째 한국 놈들에게 점령당했습니다. 천마를 시작으로 조만간 탑걸즈까지 넘어온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의 영향력은 더 줄어들 겁니다.”
모리 프로덕션이 강력하게 주장하자 나머지 대표들도 주춤했다.
그들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콘서트 하나 망친다고 상황이 달라지겠습니까?”
모리 프로덕션은 본격적으로 계획을 설명했다.
“알다시피 이번 천마 콘서트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 않습니까?”
천마 콘서트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압도적인 연출로 호평이 많았다.
지난 콘서트에서는 40톤 이상의 장비를 설치하기 위해서 공연장 하부 공사까지 추가로 했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래서 일본 팬들은 매번 레전드를 갱신하고 있는 천마의 콘서트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한국과 미국은 스타디움 급 무대이지만, 우리 일본만 아레나 급 무대이지요.”
스타디움 급 무대가 제일 크고, 아레나는 그것보다 두 단계 급이 낮다.
무대 규모가 다른 만큼, 쓰이는 무대장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쇼 퀄리티를 균일하게 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장치는 들고 다니지만, 아레나 급 규모에 맞게 몇몇 장치는 직접 제작해야 한다.
그것도 현지에서.
그런데 그걸 방해할 수 있다면?
“일본만 아레나 급이니, 이쪽 무대기획은 일본 현지와 조율해야겠지요. 그리고 일본 무대기획은 우리가 꽉 잡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일본 무대 규모가, 다른 나라 콘서트에 비해서 작은 아레나 급인데.
무대 퀄리티마저 떨어진다면?
팬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실망한 팬들은 천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요? 월드투어 콘서트를 일본에서만 개판을 치고 갔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면 어떨까요?”
의문이 가득하던 두 대표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모리 프로덕션 대표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린 까닭이었다.
“일본 팬들은 차별받는 기분을 느끼겠군요.”
아무리 그 이유가 불가피한 것일지라도, 몇 달 전부터 기대하던 팬들은 천마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슬슬 동의하는 듯하자, 모리 프로덕션은 분위기에 쐐기를 박았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
“천마가 콘서트를 진행하는 날. 동 시간대에 우리도 함께 합동 드림 콘서트를 열죠.”
모리 프로덕션 대표가 두 사람을 이렇게 공들여서 설득한 이유였다.
지금의 인기는 천마에게 밀리고 있다지만, 세 엔터의 아티스트들이 가진 팬덤을 전부 합하면 일본 최고 수준이다.
“드림 콘서트를요?”
“그렇죠. 이참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도록 무료로 진행하는 것도 좋겠네요.”
일본 최대 기획사 3사의 ‘무료’ ‘드림 콘서트.’
과연 일본 대중은 누구를 선택할까?
*
드림 콘서트의 발표.
일본 3사의 계략은 꽤나 잘 먹히는 중이었다.
연일 천마신교로 향하던 대중의 관심은 분산되었다.
특히 천마의 콘서트에 집중되고 있던 화제성은, 무료라는 단어를 앞세운 3사의 드림 콘서트로 향하기 시작했다.
천마의 찐팬들이야 돈과는 상관없이 천마의 공연을 보러 가겠지만, 모든 사람이 천마의 찐팬은 아니다.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 연예인 게시판에서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
나 고민이 생겼어
천마 콘서트가 금-토에 있고, 3사 드림콘서트가 금토일에 있잖아
토요일밖에 시간이 안 되는데 어디 가야하지?
=================
- 나는 토욜에 천마콘 가고, 일욜에 드림콘 가려고 했는데···.
ㄴ 주말에 콘서트를 두 탕 뛴다고? 체력 무엇ㄷㄷㄷ
- 흐으으음 이건 좀 고민될듯
- 솔직히 3사가 이렇게 드림콘 하는 거 많이 없지 않나?
- 하루토x미네즈x요짱의 조합은 무적이라구! 드림콘 가즈아wwwwww
- 이번에 용돈모아서 천마콘 가려고 했는데, 드림콘이 무료라길래 고민중···.
ㄴ 나도. 돈없는 학생이라ㅠㅠㅠㅠ
ㄴ 드림콘 게스트도 빵빵해서 재미있을 것 같아
기존에 쌓아놓은 팬덤이 확실한 만큼, 3사의 드림 콘서트는 호의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3사에는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각각 있는데, 그들의 공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건 지금껏 거의 없던 일이었다.
굳이 꼽자면 연말에 있는 시상식 무대 정도?
하지만 시상식은 콘서트처럼 한 가수만을 위한 무대도 아니고, 사용하는 무대 장치도 제한적이다. 또한 다양한 팬덤들이 서로 견제하다 보니, 피곤하기도 하다.
거기에 이번 3사는 작정이라도 한 듯 합동 콘서트의 라인업을 제대로 준비했다.
금토일 3일 동안 무대를 하는데, 요일마다 특급 아티스트들을 다르게 배치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 나 MINEZ 팬인데, 얘가 토요일에만 나온대···. 천마콘갈까 아니면 드림콘 갈까?
ㄴ 이건 닥후지
ㄴ 그날 MINEZ말고도 게스트 쩔던데
ㄴ 공짜로 MINEZ 볼 기회는 많지 않다. 잘 생각해라.
ㄴ 천마는 내년에 또 오지 않을까?
일본 내에서 천마의 인기가 올라갔다지만, 상대가 너무 강했다.
특히 3사의 드림콘은 무료라는 점이 내적갈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천마의 기세를 꺾어버리겠다는 모리 프로덕션의 계획은 통하는 듯했다.
.
.
.
강여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일본의 티켓파워가 생각보다 너무 떨어지네요.”
한국이야 언제나 피켓팅이었고, 미국 또한 5분 만에 전석을 매진시켰다.
일본 역시 전석 매진되기는 했지만, 매진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3시간이었다.
바로 누군가의 노골적인 견제 때문이었다.
차선우가 혀를 찼다.
“별 지랄을 다 떨고있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무료 콘서트를 열어버린다니.
지랄도 그런 지랄이 없었다.
그런데 그게 통하네?
그래서 더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 콘서트 기획을 총괄하던 강여름이 말했다.
“일본 프로덕션 측에서 기획을 거부하네요. 일본만 무대가 아레나 급이라서 무대장치를 그대로 쓸 수가 없는데···.”
콘서트 규모는 일반적으로 스타디움 급이 제일 크고, 그 밑으로 돔급, 그 다음이 아레나이다.
한국과 미국은 이미 쌓인 인지도가 있어서 스타디움 급 무대를 대관했지만, 일본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천마가 스타디움을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스타디움도, 돔도 아닌 아레나 급으로 낮췄는데.
그게 문제였다.
스타디움에서 쓰는 커다란 무대장치는 그대로 아레나에서 쓸 수는 없기 때문에 따로 제작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규모에 맞게 따로 현지에서 세팅을 의뢰했는데, 그놈들이 전부 거절을 하네?
차선우는 굳이 파보지 않아도 누구 때문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어깃장을 놓는군. 일단 아레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장치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안되면.”
“안되면?”
“몸으로 때우지 뭐.”
“???”
어차피 일본 아레나 무대에 맞추기 위해서, 따로 제작하는 것도 이중 지출이다.
‘천마’ 차선우가 오랜만에 겸업을 결심했다.
*
콘서트 당일.
일본 고교생은 태어나서 처음 티켓팅이라는 걸 해봤다.
고교생은 서버 시간을 확인하고, 머릿속으로 결제 버튼 누르는 시뮬레이션까지 돌려봤다.
그리고 티켓팅이 시작하는 순간.
재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인 고교생은 티켓팅에 성공했다.
‘헹. 티켓팅 따위 별로 어렵지도 않네. 누나는 겨우 이런걸로 유세를 부린 거야?’
물론 초짜 티케터인 고교생도 쉽게 성공할 만큼, 경쟁률이 낮은 까닭이었다.
그렇게 천마의 콘서트 당일.
고교생은 누나와 함께 천마 콘서트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시부야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건 인파의 물결이었다.
역에서 올라가는 계단부터 시작해서, 콘서트장으로 향하는 거리까지.
온통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스탠딩 운동화와 가벼운 복장을 보아하니 전부 공연을 보러 가는 듯했다.
그 웅장한 광경을 보며 고교생이 감탄했다.
“대박이다. 천마 콘서트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가는 거야?”
하지만 옆에 있던 누나는 시큰둥하게 콧방귀를 끼었다.
“뭔소리야. 대부분은 드림 콘서트를 보러 가는 사람들일걸?”
“엉? 드림 콘서트?”
“몰랐어? 천마 콘서트장 근처에서 드림콘 하잖아. 3사에서 무료로 개최한다고 해서 난리였는데. 나도 이번 주 일요일에 보러 갈 거야.”
고교생의 누나는 금요일에 천마콘을 뛴 다음, 토요일에 휴식을 취하며 심기일전한 후, 일요일에 드림콘을 보겠다는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어쨌든.
남매는 인파를 뚫고 도쿄 체육관에 무사히 도착했다.
체육관 근처까지 오니 드림콘으로 향하는 인파가 빠져서 상대적으로 한산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이 많기는 했지만.
고교생은 체육관 앞 가판대에서 둠스카이 4와 콜라보 한 굿즈를 몇 개 구매한 후, 응원봉까지 살까 말까 고민했다.
게임 스킨을 사는 데 쓰는 돈은 아깝지 않지만, 아티스트의 굿즈를 사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고교생은, 눈을 딱 감고 응원봉을 구매한 후 콘서트장으로 들어갔다.
고교생은 살짝 들떠서 주절거렸다.
“와. 진짜 멋지다.”
천마의 응원봉을 들고 있는 수만 명의 사람들.
응원봉이 흔들릴 때마다 횃불이 일렁이는 듯해 장관이었다.
콘서트를 오기 전날.
뉴튜브 프리미엄을 해지하지 못한 고교생은 천마의 이전 콘서트 영상들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냥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걸로만 알았던 고교생의 생각과는 다르게, 콘서트라는 건 엄청났다.
특히 천마의 공연은 게임 시네마틱 영상이라도 보는 것처럼 화려했다.
이동 스킬을 쓰는 것처럼 사뿐하게 허공에서 내려오는 천마.
무공 스킬을 펼칠 때 나오는 듯한 화려한 이펙트.
게임 속에서 본 듯한 멋들어진 복장까지.
고교생이 기대하던 요소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듯했다.
잔뜩 설레하던 고교생이 응원봉을 만지작거리던 와중, 무대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희미하게 일렁이는 응원봉의 불빛만 남겨둔 채.
그 가운데에 경기장 한가운데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오 새벽의 종을 울려라
아무런 반주 없이,
태양이 떠오르는 가운데 천마의 목소리만 울려퍼지는 건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태양의 반대편에서 천마가 등장했다.
어깨에는 검은색 각궁을 걸치고 있었는데, 반쯤 어둠에 잠겨서 그런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고교생은 각궁보다는 다른 곳에 집중했다.
“대박! 천마가 허공에 떠 있어!”
“와이어겠지.”
사실 천마가 진짜 떠 있는 게 맞았다.
천마는 흔들림 없는 자세로 화살에 시위를 걸었다. 검은 화살이 직선으로 쏘아져 태양을 맞춘다.
“와 저걸 맞추네? 궁수인가?”
“퍼포먼스지. 증강현실 모르냐?”
사실 이번에도 진짜 화살을 쏜 게 맞았다.
화살이 태양 한가운데에 명중하는 것과 동시에, 태양의 불빛이 꺼진다.
꺼진 태양의 빛을 흡수하듯 오로지 천마만이 빛을 받았다.
천마는 그대로 허공을 밟고 내려오면서 노래를 시작했다.
고교생이 기겁했다.
“허공을 밟고 내려오는데?”
이번에는 누나도 부인하지 못했다. 조금 전에는 어둠에 가려있었지만, 지금은 천마에게 빛이 집중되어 있었다.
천마는 리프트나 와이어 같은 무대장치 없이 허공을 밟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진짜네?”
< 천류 열풍 (4) (수정재업) > 끝
ⓒ 연태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