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류 열풍 (5) >
* 지난 화를 수정해서 스토리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일본에서 한 천마의 콘서트는 무대장치의 제약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레이저도 팡팡 쏘고, 드론 쇼도 하고, 웅장한 신전 세트를 갖다 박고, 증강현실도 보여줬겠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장치들이 준비되지 않았다.
대신, 천마는 음공과 기문진식을 풀로 사용했다.
천마는 <천마의 음악방송>에서 쓰이는 무대장치를 만드는 것부터, 잠마동의 특수진법까지 직접 손보며 현대의 음향 시스템에 기문진식을 활용하는 법을 터득했다.
천마는 그렇게 쌓은 경험을 가감 없이 발휘했다.
여기에 천마는 내공을 아끼지 않고 무공을 펼쳐 보였다.
진법에서 발생하는 특수효과에, 허공답보니 육합전성이니 하는 무공을 곁들이니, 잠시나마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무대 위의 천마는 말 그대로 관객들의 혼을 흔들어놓았다.
콘서트장에 있는 관객들이 단체 환각에 걸릴···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여러모로 잊지 못할 콘서트가 완성되었다.
콘서트가 끝나고 지하철역으로 돌아가는 길.
고교생은 반쯤 넋이 나간 모습으로 나가서 중얼거렸다.
“누나, 원래 콘서트는 다 이래?”
“...이러겠냐?”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천마는 노래만으로 사기였다.
보통 노래를 잘 부른 가수에게 ‘음원을 씹어먹는다’ 같은 수식어를 붙여준다.
그런데 천마는 그 정도가 아니다.
고교생은 오프닝을 떠올렸다.
태양이 천마의 화살에 거멓게 죽고,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던 목소리.
- 오 새벽의 종을 울려라
정말 동틀녘에 비치는 여명처럼, 천마는 허공에서 사뿐사뿐 내려왔다.
한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고교생이지만, 잘 모르는 단어의 의미가 언어를 초월해서 와닿았다.
새로운 시대를 보는 것처럼 벅차오르기도 하고.
군림하는 왕을 보는 것처럼 압도되기도 하고.
팬송을 들을 때는 그저 평화롭기도 하고.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볼 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감동이 요동치는 것처럼, 고교생의 마음도 천마를 따라 흘렀다.
그 노래를 현장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푯값으로 쓴 한 달 치 용돈이 아깝지 않았는데.
이번 콘서트에서 대단한 건 천마의 노래만이 아니었다.
관객들이 노래에서 헤어나오려 할 때쯤, 천마는 깜짝놀랄 퍼포먼스를 펼치며 집중도를 확 끌어올렸다.
옆에 있던 누나가 말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손에서 불이 나오는 그거, 어떻게 한 걸까?”
“그걸 몰라? 삼매진화잖아.”
“그건 또 뭔 참신한 개소리냐?”
“누나는 그 나이 먹도록 무협도 안 봤어?”
팬송을 부를 때는 손으로 불무리를 만들어 ‘작은 별’을 표현한다던가.
색색의 천들 사이로 물리법칙을 무시하며 유영한다던가.
천마가 몸으로 때우겠다는 말 그대로, 온갖 무공이 다 튀어나왔다.
그나마 한국 사람들에게는 천마의 이런 모습(?)이 조금 익숙했다.
방송을 하며 보여주는 천마의 기상천외한 모습들을 종종 접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에게는 그런 적응기가 없었다.
그들은 최근에서야 천마라는 신문물을 접했다.
음공과 기관진식으로 도배된 콘서트는 가히 문화 충격이었다.
그래서인지 콘서트 직캠 영상도 평소보다 빠르게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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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째서 천마콘을 하나만 예약한 것인가?
(삼매진화)
(허공답보)
(공중곡예)
(화살쇼)
(탑걸즈 게스트 영상)
토크 시간에 장난으로 게스트로 나온 탑걸즈랑 춤을 같이 췄는데
귀여워서 응원봉 부쉈음
이 요망한 것ㅠㅠㅠㅠ
내일은 게스트로 미니롱 나온다던데···. 나 극진 플탐만 300시간 넘는데 내일 취소 표 이제는 없겠지?ㅎ
이번 천마콘 일본에서만 유독 경쟁률 낮았다던데, 금토 같이 끊을 걸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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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영상 뭐야? 왜 손에서 불이 나와?
ㄴ우리는 그걸 삼매진화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 23:33 여기서 날아다니는 거 어떻게 한거냐? 허공에서 걷는데 왜 와이어가 없지?
ㄴ우리는 그걸 허공답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이제 팬들까지 컨셉충이냐. 지독하다. 왜, 허공섭물도 한다 그러지?
ㄴ진짜 했는데< (허공에 떠 있던 소품들을 끌어당기는 움짤.)
ㄴ이왜진?
본격적으로 콘서트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한 합동 콘서트도 종종 언급됐다.
- 천마 콘서트도 재밌었겠다! 그런데 오늘 합콘도 좋았어ㅎㅎ 내일 기대해도 좋을걸!
- 라인업도 좋구! 확실히 야외라 그런지 날도 좋아서 페스티벌 느낌이 나더라~
뭐, 이때까지만 해도 몇몇 어그로성 게시글 외에는 두 콘서트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글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다음날.
천마 콘서트와 합동 콘서트를 모두 다녀온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들은 후기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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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콘 VS 합콘
둘 다 가봤는데 한 줄 요약
천콘: 푯값 10배로 뛰어도 간다
합콘: 무료치고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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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를 후하게 했네. 내 귀가 이상한 거냐;;; 오늘 합콘 갔는데 귀 썩는 줄
ㄴ 그정도야?
- 남자친구한테 데이트할 겸 갔다 오자고 했는데 미안하더라ㅠㅠ 나는 쿄토에서 가서 거리가 있었거든. 그래도 근처에 살면 산책 겸 갔다 와도 괜찮을 거야!
- 오늘 하루토 왔는데, 걔 말고는 볼 게 없어···.
- 합콘 너무 급조한 티가 나
ㄴ 맞아 애들 합도 안맞고, 동선도 다 꼬이더라
- 나도 중간에 나와서 그냥 거리 버스킹 봤음ㅎㅎㅎ
- 모든 면에서 천마의 콘서트가 압승.
ㄴ 압승해야지. 돈 내고 보는 건데
‘무료치고 볼만하다’ ‘근처에 살면 한번 가봐라’ 같은 말이 돌고는 있지만, 적어도 그건 칭찬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결과는 명확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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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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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의 반응을 확인하고 있는 모리 프로덕션 대표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뭐지? 뭐가 문제인 거지?’
천마 콘서트의 무대 준비가 미비했다는 건 일찌감치 확인했다.
천마가 한국 콘서트에서 썼던 시그니처 장치는 일본을 통과하지 않고, 바로 미국으로 향했다.
그러면 일본에서는 현지 프로덕션 업체와 협력하든가, 아니면 기본적인 연출만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적어도 대표가 알고 있는 한 현지 업체는 천마를 돕지 않았으니, 당연히 퀄리티가 떨어진 채로 공연을 감행했을 거로 생각했는데···.
‘...저놈은 저기서 어떻게 날아다니고 있는 거지? 그리고 검이 한 100미터는 날아가네? 이건 어떻게 한 거야?’
둘째 날, 천마는 검을 던져서 경기장 반대쪽에 있는 태양을 꿰뚫는 오프닝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멋들어지게 날아간 검은 정확하게 태양의 정중앙을 꿰뚫고 천마의 검집에 다시 들어갔다.
만약 와이어 장치를 달았다면 그러려니 했다.
와이어쯤이야 연극에서도 종종 쓰이는 기본 장치니까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런데 화면이 뚫어져라 봐도 와이어는 보이질 않는다.
무슨 스텔스 기능이라도 쓴 하이테크놀로지인 것처럼.
‘해외에서 들여온 신종 와이어인 건가? 아니, 저런 장치가 개발된 적은 있긴 한가? 무슨 기술이지?’
무공이다.
그러나 그걸 짐작할 수도 없는 대표는, 그저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걸 느꼈다.
‘이게 아닌데.’
욕을 좀 들어먹더라도 일부러 같은 날, 같은 시간을 노렸다.
천마와 자신이 데리고 있는 아티스트를 비교당하게끔 하기 위해서다.
그 의도는 딱 절반만 적중했다.
그의 아티스트가 천마와 비교당하긴 했다.
안 좋은 쪽으로.
대표는 억지로 행복회로를 돌려보았다.
‘어쩔 수 없지. 내일이 마지막 날이고 라인업에 제일 힘줬으니, 그거라도 잘 챙겨서 만회해보자.’
하지만 이미 늦었다.
*
금요일, 토요일.
양일에 걸친 도쿄 콘서트는 성황리에 끝났다.
나는 텀블러에 담아온 영약 달인 물을 마셨다.
“힘들어 뒤지겠군.”
개 같은 일본 기획사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인 건지.
열심히 몸으로 때운 덕분에 퀄리티는 좋아졌지만,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강여름이 소파에 반쯤 널브러져 있던 나에게 다가왔다.
“고생하셨어요. 그런데 오프닝에서 어떻게 공중에서 걸어 다닌 거예요?”
“허공답보.”
“아 진짜! 또 이러신다. 아무튼 콘서트가 무사히 끝내서 정말 다행이에요. 무대가 비어 보일까 봐 걱정했는데 반응도 끝내주더라고요. 이번 합콘이랑 비교 글이 엄청 올라왔던데요?”
강여름은 번역된 현지 반응을 보여줬다.
- 무료라고 해도 그렇지 이건 좀···. 차라리 돈 내고 천마 콘서트 갈걸
- 천마랑 대놓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할 거면 잘하기라도 하던가
- 쿄짱을 불렀대서 기대했는데 한 곡 부르고 들어감ㅠㅠㅠ 시간 존나 아까워
이쯤 보면 됐다.
합동 콘서트는 가루가 되도록 까이며 장렬하게 침몰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가만히 있었으면 반이라도 갔지. 그러게 왜 사서 고생을 한대.”
덕분에 나까지 귀찮아지잖아.
이틀 무리를 해서 그런지 온몸이 뻐근하고 막 쉬고 싶어지지만, 선물을 받았으면 이쪽도 돌려줘야겠지.
“지난번에 말한 야외공연장은 섭외해놨죠?”
“네. 일단 허가는 받아놨어요. 설마···?”
미국에서는 나를 ‘피리 부는 사나이(Piper)’ 라고들 부르던데.
들어봤을랑가 모르겠네.
*
합동 콘서트의 마지막 날, 일요일.
고교생의 누나는 합동 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5월의 햇볕이 적당하게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가벼운 옷차림에 스탠딩 운동화를 장착한 고교생의 누나, 대학생은 홀로 지하철에 올랐다.
콘서트를 통해 오랜만에 동생과 친밀감을 쌓았다. 그래서 특별히 제안했지만,
‘같이 갈래?’
‘아 귀찮아.’
단칼에 거절당했다.
동생은 아침 일찍부터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뉴튜브를 보고 있었다.
당연히 천마 채널 정주행이다.
아버지가 주말인데 일찍 일어났다며 동생을 칭찬하길래, 빈정이 상한 그녀는 사실을 꼰질렀다.
‘저거 일찍 일어난 게 아니라 밤샌 거예요.’
‘야!!!!’
쌤통이다, 이놈아.
그렇게 생각하며 대학생은 뉴튜브를 틀었다.
그녀 역시 천마를 검색했다.
‘어제 콘서트가 얼마나 대단했길래 글이 그렇게 올라오는 거야?’
애용하는 커뮤니티를 눈팅했는데, 천마와 합동 콘서트 비교글이 엄청 올라왔다.
금요일에 직접 눈으로 보기는 했지만, 왠지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누가 해적판으로 실황을 중계했는지 첫 콘보다 훨씬 영상이 많았다.
화질이 구린 영상이었지만, 첫 콘 때 경험한 바가 있던지라 그때의 감동이 떠올랐다.
‘근데 라이브 진짜 잘한다. AR도 거의 안 깐 거 같은데. 어떻게 저 얇은 천에 몸을 의존하면서 흔들리지 않을 수가 있지?’
그녀는 라이브가 실력의 척도라고 믿었다.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라이브를 개쩔게 하면 뽕이 차지 않는가?
그렇게 이틀 전의 감동을 떠올리며 정신없이 보다 보니, 어느새 지하철은 역에 도착했다.
“앗!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겨우 하차한 대학생은 손으로 땀을 훔쳤다. 역은 승강장부터 사람으로 꽉꽉 차 있었다.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가. 이거 금요일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천마와 비교당하며 욕을 먹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합동 콘서트는 여전히 인기였다.
욕먹는 만큼 쉴드 쳐주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다.
- 몇만엔 주고 보는 콘서트랑 비교하면 안되지ㅋ
- 무료치고 괜찮음. 주말에 데이트 겸 가볼 만하네
특히 SNS에 올라온 공지에 오늘의 스페셜 게스트가 빵빵하다고 해서 그런가.
유난히 사람이 많은 느낌이다.
‘그래도 일찍 도착했으니 배라도 좀 채우고 줄 서야지.’
콘서트를 보러온 관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중간중간에는 버스킹을 하러 나온 버스커들도 있었다.
대학생은 최대한 사람이 없는 도시락 가게의 문을 열었다.
적당한 도시락 하나를 주문해서 천마의 영상을 보며 혼밥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도시락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기타를 든 남자였다.
볼캡을 눌러쓰고 마스크를 하고 있는지라 눈매밖에 안 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묘하게 시선이 간다.
대학생은 밥을 먹다말고 남자를 쳐다봤다.
그때, 남자가 말했다.
“이봐요.”
당당한 한국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방금 전까지 이어폰을 통해 넘어오던 목소리가 오버랩된다.
그 정체를 깨닫는 순간,
대학생은 젓가락을 떨어트렸다.
“헐?”
남자는 마스크를 잡아당겨 턱에 걸쳤다.
그 아래 숨어있던 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드러난다.
개구진 미소가 꼭 짓궂은 일을 저지르는 악동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노래 들어볼래요?”
천마였다.
< 천류 열풍 (5)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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