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31화 (131/191)

< 천류 열풍 (6) >

오로지 한국어로만 이루어진 노래가, 어느 한 일본 가게에 울려 퍼진다.

천마의 새 앨범 타이틀곡인 「I」.

가게 주인에게 낯선 노래는 아니었다.

그는 항상 가게에서 인기곡 순서대로 노래를 재생해왔고, 천마의 노래는 맨 처음으로 나오곤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들리는 노래가 낯설게 느껴지는 건, 오늘에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서일지도 모른다.

가게 주인은 마치 자기가 주인인 마냥 가게를 점거한 천마를 바라보았다.

‘이게 이런 노래였던가.’

가사를 잘 몰라도, 멜로디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직접 천마의 연주를 듣는 순간, 지금까지 그가 알고 있던 노래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 오 새벽의 종을 울려라

반주는 오직 기타 하나.

하지만 선율은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 위에 천마의 목소리가 얹힌다.

깊숙이 들어오는 저음은 단단했고, 그 순간 그가 알지 이해하지 못하던 단어가 펼쳐진다.

- 거기 누군가 있어 한없이 멀리

가게 주인은 문득 주변을 돌아보았다.

혼자서만 이펙트를 먹인 듯한 목소리는, 가게 내부를 꽉 채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밖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각자 저마다의 의도를 가지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곳에서.

모든 이가 발걸음을 멈추고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건.

퍽 신비로운 일이었다.

.

.

.

시부야 역 안쪽 거리에는 버스커들이 많다.

사람으로 북적이는 주말, 어느 버스커는 운이 없게도 외진 골목까지 흘러들어갔다.

무슨 합동 콘서트를 한답시고 수많은 버스커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버스커는 차별점을 주기 위해서, 가장 어렵고 가장 핫한 노래를 선곡했다.

- 아직 닿을 수는 없지만

저편에서는 바라보고 있어

오 새벽의 종을 울려라

고도의 기타 테크닉을 선보이면서도 깔끔하게 감정선을 유지하는 이 노래는, 버스커 사이에 한창 화제가 되었다.

아마 다들 한번쯤은 작업실에 숨어서 자신도 그런 연주를 할 수 있나 연습해봤을 것이다.

버스커도 수백 번 연습한 천마의 노래를 거리에 풀어놓았다.

그때.

외지고 좁고 치열한 거리에, 이변이 생겼다.

기타를 치며 열창하는 그의 목소리 위로, 한 목소리가 겹쳐졌다.

누가 더블링을 넣듯이.

연주에 심취해있던 버스커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를 쫓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버스커가 아는 사람이었다.

영상으로 수백 번 들었던 목소리였고, 수천 번 따라 하려 노력했던 목소리였으니까.

천마.

영상에서만 보던 그의 우상이, 그 모습 그대로 눈앞에 나타났다.

뒤로 사람들을 이끌고서.

버스커는 기타를 치던 손을 멈추고 그 대열에 합류했다.

거리의 소음은 잦아들었지만, 천마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거리의 모든 소리를 가져간 천마는 그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

.

.

참 이상한 일이다.

가끔 괜찮은 노래를 들으면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정말 좋은 노래라면, 멈춰서서 감상하게 된다.

하지만 목적을 바꿀 만큼 강렬한 노래를 만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고교생의 누나는 생각했다.

이건 참 이상한 일이라고.

오늘 합동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 어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화장하고 준비물을 챙겨 부지런히 나왔는데.

그녀는 지금 영 엉뚱한 곳에 있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가게를 하던 사람은 가게 문을 일찍 닫았고,

버스킹을 하던 사람은 기타를 내려놓고 관객이 되었으며,

합동 콘서트를 가려 했던 사람은 다른 공연장에 왔다.

천마가 마련한 어느 야외무대는 인파로 가득 찼다.

그녀가 사흘 전에 봤던 천마의 콘서트는 웅장했지만, 지금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일견 조촐해 보이는 무대와 플라스틱으로 된 간이의자들.

객석과 무대의 단차도 크지 않았다.

장비라고는 평범한 스피커 몇 개와 기타 앰프가 전부.

하다못해 배경으로 깔리는 VCR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했다.

‘여기에는 천마가 있으니까.’

*

스페에-셜한 게스트와 함께하는 합동 콘서트의 마지막 날

만석을 이루다 못해 인산인해를 이루어야 했을 콘서트장은,

“...휑하네?”

절반? 그 절반의 절반?

초라하다 못해 황량할 정도의 관객들이 모인 합동 콘서트장의 분위기는 어딘가 애처롭게까지 보일 정도였다.

한 줌도 안되는 관객들을 본 두 대표가 당황했다.

“모리 대표. 이게,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관객들이 이거밖에 없냐는 겁니다!”

하지만 방금 온 모리 프로덕션 대표 역시 어떻게 된 건지 알 리가 없었다.

“잠, 잠시만요.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어쩐지 텅 비어버린 공연장.

모리 프로덕션의 대표가 그 이유를 알아내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인별그램, 페이스책, 트위트 등.

온갖 SNS에서 ‘피리부는사나이’라는 태그를 단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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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나는어디 #피리부는천마 #후회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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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말도 없이 사진 몇 장만 달랑, 태그 몇 개만 달랑 올린 게시글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사진 속 천마는 인파에 둘러싸인 채 단출한 무대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천마가 노래하는 배경이 어딘가 낯익다?

합동 콘서트가 열리는 장소 바로 옆, 걸어서 20분이 걸릴까 말까 한 장소에 어제까지는 없던 야외 공연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저, 저, 저, 저 새끼가 왜 여기에 있어?”

합동 콘서트의 관객을 빼앗아 간 장본인은 다름 아닌 천마였다.

정확히는 이렇게 됐다.

천마는 아침 일찍부터 근처 거리를 휩쓸고 다녔고,

마침 합동 콘서트에 볼거리가 없어서 방황하던 사람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 게시글을 봤다.

- 신짱은 6시쯤 나올 거라는데 우리 그전까지 천마나 보고 올까?

- 그러자. 멀지도 않네!

그렇게 간 사람들은 그대로 천마 공연장에 눌러앉았다.

어느새부터인가 합동 콘서트 공연장에는 눈에 띌 정도로 관객들이 줄어들었고, 공연하던 가수들도 뭔가 잘못 돌아간다는 생각에 당황했다.

쇼 퀄리티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흐름이고, 끝까지 남아 의리를 지키려던 사람들도 손절했다.

- 내가 이딴거 계속 봐야하나. 옆에 천마가 있는데.

그 결과, 공연장은 휑뎅그렁한 풀밭으로 변했다.

아무튼 상황은 파악했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이틀 전부터 천마콘서트와 줄기차게 비교됐지만 ‘무료’의 장점을 내세워 버텼는데···.

오늘 확인 사살을 당했다.

제 꾀에 역으로 당한 대표들은 황망히 중얼거렸다.

“그럼 우리 콘서트는 어떡하라고?”

어떡하긴.

쫄딱 망한 거지.

.

.

.

천마의 콘서트가 끝난 일요일 밤.

일본의 커뮤니티는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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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합콘 퀄리티 구리다고 해서 갈까 말까 했는데

오늘 합동 콘서트 다녀오길 정말 잘했네요

거기서 천마를 볼줄이야!!!!!!!!!!!!!!!!!!!!!!!!!!!!!!!!!!!

(천마 공연사진)

(기타 치는 천마)

(「I」 현장 직캠 영상)

볼캡 쓰고 그냥 후드티 입고 있어서 처음에 누군지 못 알아볼 뻔했는데

노래 듣는 순간 걍 쓰러짐···.

기타+목소리만으로도 존재감 존나 확실하네

+그리고 합콘은 반성 좀 해야겠어요

같은 무료 콘서트인데 퀄리티 차이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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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합콘 다녀온 사람이 승리자다

ㄴ 여기 말만 듣고 합콘 안 간 나는 패배자다

ㄴ 왜 하필 오늘이냐ㅠㅠㅠ 나 어제 합콘 다녀왔는데

- 야외 무대인데 퀄리티 무엇?

ㄴ 장치도 별로 없었는데 다이렉트로 고막에 때려 박는 수준임

ㄴ 이정도면 걍 수준차이지

-같은 무료인데···. 음. 이건 아무리 신짱이라도 쉴드 불가

-나는 왜 천마콘에 안 갔던 것인가. 나새끼 죽어ㅠㅠㅜㅜㅜㅜㅜㅜ

-아직 미국콘 남아있잖아요? 거기는 규모도 더 크던데 취소표가 풀리려나요?

ㄴ그게 풀리겠니?

그나마 무료였다는 이유로 덜 까이고 있던 합동 콘서트였다.

급하게 시작한 콘서트인 만큼 기획사도, 아티스트들도 제대로 준비할 수 없었고, 무료 ‘치고는’ 좋은 정도였는데···.

천마도 무료로 공연을 했네?

그런데 천마의 공연은 무료인데도 퀄리티가 좋네?

합동 콘서트는 가루가 되도록 까이기 시작했다.

사실 대중들도 갑작스러운 합동 콘서트를, 그것도 무료로 기획한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동 시간대 천마의 콘서트장 근처에서 콘서트를 연만큼, 이번 행사가 천마를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걸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사실이다.

원래라면 강력한 3사의 팬덤이 비난받아 마땅한 그 행동을 막아주고 있어야 하는건데.

그 쉴드가 사라져버렸다.

- 저딴 식으로 견제하는 거 진짜 역겹다

- MINEZ 팬인데 기획사는 잘못 만난 듯

- 미네즈ㅠㅠㅠ 다음 재계약 때는 다른 기획사랑 하자!

- 천마 막아보려다가 역으로 털렸죠?

ㄴ (일요일 합콘 사진)

ㄴ 관객 없는 거 처량하네. 한짓이 있어서 불쌍하지는 않음.

그리고 천마는 홍보도 하지 않았다. 그냥 버스킹하듯 와서 휩쓸고 가버렸을 뿐이다.

그 점이 노골적으로 견제했던 3사 합동 콘서트와 비교되면서 호평을 받았다.

일본 내에서도 ‘이 정도면 인정해주자’라는 반응이 돌 정도다.

이런 분위기는 기존에 천마가 쌓아둔 인지도와 이번에 유입된 팬들과 합쳐져 시너지를 일으켰다.

천마의 콘서트에 참석한 4만 명의 팬들.

그리고 일요일 합동 콘서트에 참석했다가 천마의 노래를 들은 수만 명의 사람들.

이들은 내공을 듬뿍 담은 천마의 음공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천마에게 한번 빠지면 출구는 없다.

덕분에 천마는 일본 내에서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한편 한국.

천마 팬이든 아니든 한국인은 그에게 호의적인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상치 않았다.

상대가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엔터 3사에서 대놓고 견제했을 때는 불같이 화내던 사람들은,

이번에 천마가 맞불을 놓으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자 속 시원해 했다.

- 꺼—억!

- 잘키운 천마하나 열 가수 안 부럽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혼자 가서 일본 가수들 올킬하고 오네

- 달러도 벌어오더니 이제 엔화까지?!

홍보도 하지 않고, 평범한 복장으로 정체를 숨긴 채 거리로 나가서, 실력만으로 쓸어버리는 건.

솔직히 뽕이 좀 차긴 했다.

덕분에 한국 각 커뮤니티에서 천마를 찬양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었다.

- 천마 일본 콘서트 영상 봤냐? 얘네 현지화 안했음?

ㄴ 응 천마는 그런거 안해ㅋㅋㅋㅋ

ㄴ 펄 럭-

- 내가 도쿄 콘서트에서 도포 자락 휘날리는 걸 볼줄은 몰랐네

ㄴ 조선천마 모르냐ㅋㅋㅋㅋ

- 가사도 전부 한국어ㄷㄷㄷ 멋지다 천마야!

보통 해외 진출을 한다고 하면 현지화 과정을 거친다.

현지 언어로 가사를 바꾸든, 컨셉을 현지 문화에 맞게 바꾸든, 아니면 적어도 현지 멤버를 끼워넣든.

뭐라도 해야 통하는데, 천마는 그 상식을 박살 내버렸다.

- 현지화? 일본이 천마화된 거 같은데.

도쿄 한복판에서, 조선 천마라는 한국틱한 세계관으로, 한국의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한글로 된 가사를 부른다.

일본인들이 그런 천마에게 환호를 보내는 건.

치사량의 국뽕을 맞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일본에서의 천류열풍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는 않았다.

.

.

.

번외로, 우리의 고교생을 한번 보자.

고교생은 오늘도 콘솔을 붙잡고 둠 스카이 4를 플레이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확장팩이다!

“와. 여기 벽화에도 다 의미가 있었구나.”

잠마동에는 오프닝에 나오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남자가 태양을 향해 활을 쏘는 벽화는, 천마의 신곡 뮤비에 나온 한 장면이기도 했다.

세계관을 탐독한 고교생은 이제 조선천마가 태양을 쏘며 타임리프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아무튼.

확장팩을 플레이하던 고교생은 한가지 목표가 생겼다.

“이번 달 내로 잠마동 추가 에피소드 끝내고 탑걸즈 멤버를 모두 모아야겠어.”

확장팩이 나오면서 추가된 잠마동 콘텐츠는 더욱 괴랄한 난이도를 보여주는 가운데, 클리어하면 탑걸즈를 동료로 만들 기회를 제공하여 게이머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잠마동을 클리어하며 나온 탑걸즈 전용 아이템을 장착시켜주면?

‘흑도제일미’나 ‘무림제일화’ 같은 타이틀도 얻을 수 있다.

‘이건 못참지!’

고교생은 탑걸즈를 올컬랙해서 무림사화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야물딱지게 세웠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고교생은 원래 공략 같은 걸 보지 않는 상남자지만···.

나만의 드림팀, 무림사화 결성하기 위해서 밤늦게까지 공략을 섭렵했다.

“후후후. 일단 윤은지부터 이번 회차 흑도제일미로 만든다.”

보통 유저들은 정석 미인인 신예리를 제일 좋아했지만, 고교생은 달랐다.

예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

나찰녀 윤은지에게 묘하게 끌린달까.

그렇게 플레이를 시작하고 몇 시간 뒤.

‘은지 짱!’

공략을 보고 겨우 클리어 한 고교생은, 나찰녀 윤은지를 첫 번째 동료로 맞이할 수 있었다.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윤은지에게 상호작용을 걸어본 고교생.

하지만,

‘뭐하냐?’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는 눈빛.

얼굴만 윤은지인 천마를 보는 듯한 건··· 착각이겠지?

*

미니롱을 필두로, 이승호가 꼽사리 끼고, 천마가 절정을 찍은 후, 탑걸즈에게 바통을 넘겨주었다.

천마신교는 이제 일본에서 음악뿐만 아니라, 게임과 드라마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문화 전반에 침투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일본에서의 성과를 돌아보며 차선우는 생각했다.

‘미국은 여기까지 오지는 못했지.’

미국에서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아직 그뿐이다.

앨범을 냈다 하면 빌보드 1위는 따놓은 당상이고, 시상식을 휩쓰는 단계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그래서 욕심이 생긴다.

세계에서 제일 큰 음악시장 미국.

천하일통의 가장 큰 관문이었다.

< 천류 열풍 (6)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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