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34화 (134/191)

< 천마의 강호행 (3) >

명품 로고가 박혀 있는 스냅백에 번쩍번쩍한 액세서리를 착용한 남자.

하이포닉은 감회가 새롭다는 얼굴로 라이브하우스를 둘러보았다.

“세월도 참. 몇 년 전에는 여기에서 먹고 자면서 노래를 했었는데.”

돈이 없어 라이브하우스 주방에서 일하며 남은 음식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대단하게만 느껴지던 라이브하우스의 사장이 직접 자신을 마중 나왔다.

안내받은 곳은 특별 손님들을 위해 2층 한쪽에 따로 마련된 좌석인데,

자리에 앉자마자 레이블 관계자들이 앞다투어 인사를 하며 명함을 주고 갔다.

하이포닉은 격세지감을 느꼈다.

가난에 허덕이던 과거는 이제 까마득한 뒤편에 있었다.

받은 명함을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으며, 하이포닉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역시 사람은 잘나가고 봐야 해.’

하이포닉의 이런 대우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최근 연속된 성공으로 이 바닥에서 확고하게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하이포닉은 LA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 힙합 씬에서 음악을 시작했지만, 랩을 하진 않았다.

다만 그는 다른 래퍼의 힙합 비트 위에, 자신의 멜로디를 귀신같이 끼워 넣는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피처링 요청이 굉장히 많이 들어왔고, 한때는 피처링 셔틀이라고 불릴 정도로 닥치는 대로 받았다.

그렇게 인맥을 쌓고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한 이후, 하이포닉은 솔로 앨범을 냈고 그게 확 뜨면서 전국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때부터 하이포닉은 메인스트림에 올라왔다.

그리고 올해 초 발매한 앨범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Solution’이라는 EP인데, 평론가들은 서부 힙합과 알앤비를 대중성 있게 결합하였다며 극찬을 했다.

특히 서부 지역 사람들, 그중에서도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그를 LA를 대표하는 뮤지션이라며 추켜세웠다.

테이블 위에 가득 쌓인 명함을 보며 안토니오 로시가 말했다.

“올, 잘나가네? 올해 그래미 상 후보에 오를 거라는 얘기도 돌던데.”

“에이, 그건 그때 가봐야 알겠지.”

안토니오의 말에 하이포닉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다만 그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묻어나왔다.

빌보드 핫 100 7주 연속 1위.

앨범 스트리밍 횟수 15억 회.

앨범 판매량 200만 장.

하이포닉은 그래미 후보에 오르는 걸 넘어, 본상 수상까지 노리고 있었다.

적어도 알앤비 장르필드에서는 그를 넘어설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하이포닉에게도 큰 고민이 있었다.

“그것보다 요즘 곡이 안나와서 큰일이네.”

대성공에도 만족하지 않고, 하이포닉은 곧바로 새로운 앨범 준비에 들어갔다.

이번에 함께 작업에 들어간 안토니오 로시가 질린다는 듯 말했다.

“너도 참 부지런하게 산다. 내년에도 빌보드를 휩쓰려고?”

하이포닉은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기회가 있을 때 미리미리 움직여놔야지. 이래서 부유한 놈들은 헝그리 정신을 몰라요.”

안토니오 로시는 풍족한 환경에서 남부럽지 않을 커리어를 밟아오면서 지금의 명성을 쌓았지만, 하이포닉은 아니었다.

그는 밑바닥을 전전하면서 기어 올라왔고 그래서인지 성공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안토니오 로시가 생각했다.

‘저런 집착은 독이 될 텐데.’

집착은 조급함이 되고, 조급함은 몰입을 방해하고 잘못된 선택으로 이끌기도 한다.

아직까지 하이포닉에게 그런 낌새가 보이지는 않지만, 비슷한 이유로 몰락해버린 아티스트들을 안토니오는 여럿 알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일 얘기를 건너뛰고 머리를 식히러 왔으니, 무거운 주제를 꺼낼 필요는 없다.

안토니오는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천마도 여기에 같이 왔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사실 이번에 LA에 왔다고 해서 너한테 소개해주려고 했거든.”

“천마?”

그러나 하이포닉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나는 그 사람··· 잘 모르겠던데.”

“왜? 이번 노래 안 들어봤어? 개쩐다구.”

“뭐, 빌보드에 올랐으니 노래는 들어봤지. 노래도 잘 부르고 멜로디도 잘 만들고.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퍼포먼스도 좋고. 천마가 미국에서 시작했다면 아마 빌보드에도 여러 번 들었을 거야.”

천마 팬을 자처하는 안토니오 로시는 하이포닉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치. 너도 천마 대단한 건 아는구나?”

“그런데 뭐랄까. 솔직히 천마가 하는 장르가 뭔지도 모르겠어. 특색이 없다고 해야 하나.”

이어지는 비판에 안토니오 로시는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서 반박도 해보았다.

“음악 스타일을 굳이 한 가지로 정해두지 않는 뮤지션도 많잖아.”

“하지만 그 사람들은 거장이고 음악에 깊이가 있잖아. 그런데 천마가 그런 스타일은 아니지. 이제 데뷔한 지 겨우 2년 지났나? 뭐, 지금까지 만든 음악을 봤을 때 트랩 사운드에만 치중하는 거 같은데, 하나같이 너무 가벼워. 소울이 없단 말이야, 쏘오오—울이!”

“······.”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안토니오 로시도 하이포닉이 뭘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 천마의 음악이 가볍기는 했지.’

미국 내에서 천마의 인기는 항상 이슈와 함께 생겨났다.

그래서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가볍고 휘발성이 강하다.

당장 음악평론가나 이쪽 씬의 뮤지션들은, 이렇게 일하는 천마를 얕보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천마가 이쪽의 인정을 받는 걸 그렇게 신경 쓸 것 같지는 않지만.

‘나도 그런 천마의 음악이 마음에 들고.’

어쨌든 안토니오 로시는 괜히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했다.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순간, 스테이지로 한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

강호행을 시작한 지 2주.

나는 그동안 LA를 열심히 돌아다녔다.

낮에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버스킹 공연을 보고, 밤에는 이곳 라이브 하우스를 포함하여 여러 무대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아직 현지에 섞여들어지는 못하고 여전히 휴양 온 관람객의 위치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LA를 보며 느낀 바가 있었다.

이 도시는 특별했다.

낮에는 휴양도시였다가, 밤에는 범죄도시로 변하고.

부드러운 리듬과 강한 갱스터랩이 충분히 섞일 수 있는 도시이다.

상반된 것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속에서, 나는 이 도시가 가진 특유의 매력을 느꼈다.

바로 여유로움.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도시만이 가지는 느긋함, 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관찰자의 위치에서 LA를 거닐던 와중, 공연일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강호행 첫 무대다 보니 선곡에 고민이 많기는 했는데···.’

결국 첫 번째 선곡은 하이포닉이 부른 ‘Solution’으로 했다.

그래도 이곳을 한번 이해해보려고 마음먹고 왔으니, ‘내가 이해한 너희들’을 보여주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 말이다.

하이포닉은 LA를 대표하는 뮤지션이고, 메가 히트곡 ‘Solution’은 서부 힙합과 알앤비를 완벽하게 녹여냈다는 평을 듣지만.

정작 LA가 가진 칠링한 무드는 없었기 때문이다.

‘좀 아쉬웠지.’

미완성된 그림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 노래 위에 내가 느낀 대로 덧칠해봤다.

과연 이 도시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

.

.

그리고, 라이브 하우스의 2층.

하이포닉은 들고 있던 맥주를 마시는 것조차 잊었다.

“......”

지금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공연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하이포닉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토니오는 이미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연에 푹 빠져 있었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외 없이 모두 힘을 쭉 뺀 채 저 청년의 노래를 편히 즐기고 있었다.

하이포닉은 당황스러웠다.

‘진짜 이게 내 노래라고?’

원곡은 강렬하고 호소력이 짙다.

저항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게 바로 하이포닉의 스타일이니까.

하지만 저항에는 대상이 있고, 청자들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말인 즉슨, 마냥 여유롭게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노래는 그런 분위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같은 ‘Solution’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청년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LA의 시원한 해변을 드라이브하는 것처럼 느긋하고 칠(Chill)한 느낌이 든다.

특히 동양인 청년의 보컬과 라이브하우스의 분위기는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었다.

이곳에는 휴식을 취할 겸 편안하게 노래를 들으러 온 사람이 대다수이다.

그래서인지 여유롭고 멜로디컬한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했다.

하이포닉은 자기도 모르게 생각했다.

‘가지고 싶다.’

LA를 대표하는 뮤지션이라고도 불리는 하이포닉이다.

그러나 그가 진짜로 담고 싶었던 LA의 정수는, 저 청년의 노래에 있었다.

분명 어릴 때,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뮤지션이 되기 전 자신도 저것과 닮아 있었는데.

너무 빠르게 메인스트림에 들어서고 급하게 성공을 쫓다 보니, 그때 가지고 있던 감성이 곡에서 점점 사라졌다.

그런데 오늘 지금.

천마의 노래를 듣다 보니 영감이 떠오른다.

마치 마구잡이로 채널을 돌리다가, 나에게 딱 맞는 라디오 주파수를 잡은 기분.

이 멜로디의 자락으로도 다음 앨범을 훨씬 풍성하게 바꿀 수 있을 것만 같다.

너무 집중한 탓일까?

무대는 금세 끝이 났다.

하이포닉은 옆에 있는 안토니오를 불렀다.

“...안토니오. 저 사람 이름이 뭐라고 했지?”

“...어? 아, 이름?”

멍하니 공연에 잠겨있던 안토니오는 들고 있던 팸플릿을 확인해보았다.

“여기 파이퍼라고 적혀있네. 오, 그 친구 별명과 비슷한데?”

안토니오가 말하는 ‘그 친구’는 천마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하지만 하이포닉은 코웃음을 쳤다.

‘천마와는 차원이 다르지. 저 노래에는 소울이 있다고!’

LA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무드가 그대로 담겨있다.

하이포닉은 그대로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 뒤편으로 이어진 계단으로 향했다.

‘무조건 영입해야 해.’

인재였다.

이 자와 함께라면 분명 엄청난 작업물을 만들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하이포닉은 혹시라도 이 천재적인 뮤지션이 떠났을까봐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행히도 그는 막 무대에서 내려오는 천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천마에게 다가간 하이포닉은 다짜고짜 말했다.

“잠시만요. 우리 함께 일할래요?”

하이포닉의 갑작스런 말에 천마는 뚱하게 쳐다봤다.

“누구신지?”

하이포닉은 당황했다. 자신의 노래를 부른 사람이, 자신을 모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품속에서 명함을 꺼냈다.

“하이포닉이라고 합니다. 앨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당신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요. 이건 그쪽에게도 큰 기회가 될 겁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하이포닉은 자신의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해서, 이 친구에게 한번 제대로 기회를 주고 싶었다.

어쩌면 이 라이브하우스에서 ‘제 2의 하이포닉’이 나올 수도 있는 거고.

하이포닉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동양인 무명 가수가 이 바닥에서 뜨기란 쉽지 않아요. 아, 요즘 천마라는 사람이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한데 그 사람은 썩···깊이가 없단 말이야. 아무튼 제가 보기에는 당신이 천마보다 훨씬 나아요. 잘 다듬으면 나중에 천마보다 더 대단한 가수가 될 가능성도 보이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랑 같이 작업해보는 게 어때요?”

길고 긴 구애를 듣는 천마의 표정은, 어딘가 미묘해졌다.

‘이건 뭔 개소리야?’

나를 다듬으면 나보다 더 대단해질 거라고?

천마는 귀찮은 듯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안 삽니다.”

< 천마의 강호행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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