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38화 (138/191)

< 본캐와 부캐 사이 (3) >

알렌은 다시 음악을 시작했다.

일을 모두 그만둔 건 아니었다. 대신 알바를 몇 개 정리했다.

“허허, 오늘이 마지막이지? 지금까지 수고했구먼.”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알렌은 꾸벅 고개를 숙여 브랙퍼스트 카페의 사장에게 인사했다.

흰 머리가 지긋한 사장은 알렌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 사람 이거, 요즘 표정이 밝아졌어? 훨씬 보기 좋구만. 혹시 일을 그만둬서 그런 건 아니지?”

“에이 설마요. 요즘 좋은 일이 있어서 그래요. 다음에 한번 놀러 오겠습니다.”

일하는 동안 식사도 제공해주고, 이것저것 편의를 봐주신 좋은 분이다.

‘하지만 음악까지 하기엔 빠듯하니까.’

남은 알바는 버스킹 거리 카페와 라이브 하우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딱 이정도가 음악과 병행할 수 있는 리미트였다.

알렌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확실히 정했고다.

음악.

‘파이퍼같은 무대를 보여줘야지.’

좋은 노래를 넘어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이 담긴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확실히 갈피를 잡아서일까?

요즘에는 다시 작곡에도 손을 댔는데, 곡이 술술 써진다.

물론 곡이 잘 써지는 것과 명곡을 만드는 것은 다른 얘기지만, 아무튼 기분은 좋았다.

그저 흘러가기만 하던 삶이 조금 더 명확해진 느낌이랄까.

‘진작 음악을 다시 할 걸 그랬네.’

그렇다고 미친듯이 일만 했던 시기가 후회되는 건 아니다.

그 경험이 아니었으면 파이퍼가 부른 노래를 듣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겠지.

평소라면 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른 알바를 하러 갔겠지만, 알렌이 향한 곳은 한 카페였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흠. 조금 일찍 왔군.’

곡을 작업하기에도 애매한지라, 그냥 음료를 마시며 머리를 식히기로 했다.

잠시 눈을 감고 영감을 충전하던 알렌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이야, 알렌! 오랜만이다! 우리 밖에서 본 게 얼마만이냐.”

몇 달 전 라이브 하우스에서 만났던 디제이가 반갑게 인사했다.

음료를 주문한 뒤 테이블에 앉은 디제이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거야? 사람 궁금하게.”

알렌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나 음악 다시 시작했다.”

알렌의 말에 잠시 얼음이 되었던 디제이는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어봤다.

“호오올-리! 와우! 나 제대로 들은 거 맞지? 진짜? 다시 음악을 시작하는 거야?!”

“그래. 라이브카페 사장님이 스케줄 빌 때 공연자리도 만들어 주신대. 보컬 트레이닝도 다시 하고 있어.”

디제이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말했다.

“잘 생각했어, 브로! 기다리고 있었다고.”

음악을 그만둔 이후 표정도 어두워지고, 음악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자리를 피하던 친구가 안타까웠었는데.

다시 음악을 하겠다니, 희소식 중 희소식이었다.

그렇게 한참 난리법석을 떨다가 음료를 쭈욱 빨아먹으며 진정했다.

그때 카페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바로 얼마 전 하이포닉이 커버한 천마의 ‘song for A Man’.

괜히 반가워서 알렌은 미소를 지었다.

“와 여기서 이 노래를 틀어주네.”

“하이포닉이 커버했잖아. 요즘 SNS에서 핫하더라고. 천마가 처음 이 노래를 발매했을 때만 해도 숨듣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뜰 곡은 뜬다니까.”

자타공인 미국 1호 팬인 디제이는 은근히 천마에게 부심을 느끼며 자랑했다.

샌프란시스코 해변 공원에서 버스킹할 때만 해도 천마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알앤비 거물인 하이포닉이 커버를 해준다.

디제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물었다.

“너도 이 노래 들어봤나 보네? 케이팝에는 관심도 없던 놈이.”

“아마 내가 처음 들어봤을걸.”

“엉? 무슨 말이야?”

알렌은 몇 달 전 그날을 떠올렸다.

텅 빈 라이브 하우스, 고민하던 자신의 뒤에서 시작된 노래.

훨씬 풍성한 사운드를 가진 이 음원보다는 초라하지만, 골조밖에 없는 간단한 멜로디라인뿐이었지만.

그날의 분위기, 노래,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생생했다.

“이 노래를 듣고 결심했거든.”

알렌은 라이브 하우스에서 들은 파이퍼의 공연부터, 그가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러준 일.

그리고 파이퍼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에 대해 늘어놓았다.

“...그래서 나도 파이퍼 같은 가수가 되어보려고!”

평소 진중한 알렌이다.

하지만 파이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알렌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 높아져 있었다.

디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으셨구만. 파이퍼가 대단하기는 하네. 어떻게 사람 마음을 한순간에 그렇게 뒤집어놓냐.”

알렌은 그날의 감동을 떠올리며 말했다.

“대단한 사람이지. 이번에 천마 노래도 파이퍼 덕분에 확 좋아졌잖아.”

“...잠깐만.”

파이퍼가 대단한 건 인정.

이번 천마의 노래가 바뀐 것도 인정.

하지만 천마의 노래가 파이퍼 덕이라고?

이건 인정할 수 없다.

“이번 천마 노래가 바뀐 게 파이퍼 덕분은 아니지! 너 하이포닉 SNS 못봤어? 하이포닉도 천마를 인정했다고. 직접 커버해준 거 보면 모르겠냐?”

며칠 전 하이포닉이 SNS에 천마를 커버한 영상을 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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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곡.

그리고 더욱 인상 깊은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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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천마는 천재라고. 이번 곡에 파이퍼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메인은 당연히 천마지. 그 노래에서 느껴지는 깊이는 원곡자가 아니고서야 못 담아내.”

물론 알렌도 디제이의 말에 공감했다.

그 청년이 들려줬던 노래에서 느낀 감정의 여운이, 천마의 노래에서도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알렌도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건 네가 못 봐서 그래. 나 마감할 때 파이퍼가 먼저 원곡을 불러줬다니까? 와, 그걸 네가 들어봐야 아는데.”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잠시 팽팽한 말싸움을 벌이던 두 사람은,

“하하하, 뭐 그래! 그냥 천마도 대단하고 파이퍼도 쩌는 걸로 하자.”

“좋아 그럼 비긴 걸로 하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게 얼마만인지.

“너랑 이렇게 음악 이야기하니까 좋네. 이참에 라이브 하우스 가서 한잔 콜?”

“좋아. 오랜만에 내가 사도록 하지.”

사이좋게 카페를 나가는 두 사람은 생각했다.

‘헹, 그래도 천마가 짱이지.’

‘누가 뭐래도 최고는 파이퍼다.’

*

알렌의 친구이자, 페니의 남자친구인 디제이.

그는 친구와 밤새 술을 마시고 오후 느지막이 일어났다.

‘끄응. 일해야지.’

디제이는 숙취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직장으로 향했다.

그는 지역 라디오에서 한 코너를 맡고 있는데, 나름 LA 내에서는 꽤 많은 고정 청취자층을 가지고 있다.

일하러 가면서 디제이는 ‘song for A Man’의 가사를 흥얼거렸다. 하도 많이 듣다 보니 이제는 한국어가 입에 붙을 정도다.

천마는 대중적인 노래를 잘 만들어낸다.

귀에 착 달라붙는 비트와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로 인기를 끌었지만, 이번은 ‘대중적’이라는 것보다는.

‘보편적이지.’

단순히 유행해서 대중을 사로잡는 게 아니라, 사람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성을 건드리는 게 있다.

그래서인지 귀가 아니라 마음에 달라붙는다.

디제이는 천마의 노래를 흥얼거리다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코너에서 한번 선곡해볼까?’

그가 라디오 방송국의 한 프로그램을 맡아서 하지만, 사실 한국 노래는 잘 안 나온다.

아니, 사실 한번도 나온 적이 없다.

마침 하이포닉이 개사한 덕분에, 사람들에게도 천마의 노래가 익숙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심을 듬뿍 담았다.

디제이는 자신이 느꼈던 감동이, 자신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통했다.

LA의 어느 트럭 운전기사는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1,000km가 넘는 거리를 운송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있으며, 그건 지루하고 고된 작업이다.

그때마다 그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라디오를 듣는다.

그가 즐겨듣는 라디오 디제이가 밑밥을 깔았다.

- 요즘 하이포닉이 극찬한 뮤지션이 있지요. 하이포닉이 SNS에서 이 노래를 커버하며 극찬했는데요.

운전기사도 하이포닉이라면 잘 알고 있다.

LA를 대표하는 뮤지션이 아니던가.

SNS에서 일어난 일이 뭔지는 모르지만, 하이포닉이 극찬했다니 궁금해지긴 했다.

- 바로 천마의 ‘song for A Man’ 들어보시죠.

운전기사는 들려오는 낯선 언어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뿐이었다.

어떤 사람을 위한 노래를 들으며, 운전기사는 자신의 삶을 떠올렸다.

동부에서 서부를 가로지르며.

수십만 킬로를 달리면서 살아왔다.

단순하고 지루하게 느껴진 그 삶을 노래가 인정해준다.

그것만으로도 운전기사는 썩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천마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라디오는 보편적이다.

라디오를 듣는 사람 중에는 가정주부도 있었다.

전쟁 같은 아침을 치르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를 기다리던 그녀는, 잠깐의 티타임을 즐기며 라디오를 들었다.

또한 브레이크타임에 식재료 손질을 하던 식당 주인도 있었고, 느긋하게 한낮을 보내던 할머니도 있었다.

천마의 신곡은 그렇게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

그리고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던 옥수진이 영혼 없이 미소지었다.

“그럼 그렇죠. 전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그 천마’가 곡을 냈는데 평화로울 리가 있나···.

조용한 발매?

평온한 티타임?

그런 건 진작 사라졌다.

미국에서 시작된 물은 콸콸 들어왔고, 천마 전담팀은 노 젓기에 바빴다.

미국 반응을 모니터링하던 강여름이 말했다.

“흐음. 팀장님. 이번에는 기세가 심상치 않은데요? 핫100 차트에도 들었어요.”

빌보드 메인 차트는 두 가지가 있다.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싱글 차트인 빌보드 HOT 100.

두 차트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앨범 차트는 팬덤과 인지도의 영향을 받는다면, 싱글 차트인 핫100은 대중성이 필요하다.

핫100 차트의 40위 안에만 들어도 미국 내에서 인기가 좋다고 보면 되고, 1-2위 정도 하려면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는 노래가 되어야 한다.

천마는 기본적으로 미국에도 팬덤이 있었고 대중적인 인지도도 있었다.

그 덕분에 빌보드 200 차트에는 종종 들었고, 이번에도 EP를 발매하자마자 이틀 치 성적만으로 155위에 올랐다.

그런데 핫100 차트에서 이 정도로 유의미한 성과를 낸 적은 없었다.

예전에 ‘작은 별 엔딩 밈’이 유행했을 때 66위를 기록했고,

그나마 뮤지컬영화 <팬텀스틸러>가 히트했을 때, 메인테마곡인 ‘Steal Your Heart’가 5위를 찍은 게 최고 성적이었다.

옥수진이 말했다.

“하이포닉이 커버를 해준 게 엄청 도움이 됐어요.”

확실히 하이포닉의 파급력은 남달랐다.

특히 영어 가사로 한번 바꿔서 부른 덕분에, 곡을 들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원곡에도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게 주효했다.

하이포닉의 커버를 들은 사람들은 원곡은 어떤지 기웃거렸고, 천마의 원곡을 듣는 순간 그대로 눌러앉았다.

원곡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깊이는, 커버와는 차원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발매 3주차.

천마는 HOT 100 차트에서 77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하이포닉이 쏘아 올린 상승세는 시작일 뿐이었다.

라디오에서도 천마의 노래가 본격적으로 송출되기 시작했다.

디제이가 생각보다 영향력이 있는건지, 사람들이 좋아해 줘서 그런 건지, 아니면 로페즈 뮤직그룹에서 라디오국에 찔러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 다른 라디오의 디제이들도 하이포닉을 언급하면서 천마의 노래도 한 번씩 틀기 시작했다.

거의 0에 수렴하던 라디오 성적이 반영되는 순간이었다.

발매 4주차.

빌보드 핫 100 싱글차트 48위.

물살도 탔는데, 뒤에서 순풍까지 분다.

명곡도 듣는 이가 없으면 조용히 묻힌다. 하지만 알려지는 순간, 퍼져나가는 건 순식간이다.

라디오를 시작으로 천마의 노래는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발매 5주차.

빌보드 핫 100 싱글차트 30위.

빌보드 200 앨범차트 7위.

두 사람은 그저 신기한 눈으로 이 기록을 바라봤다.

갑작스럽게 낸 앨범인데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도 몰랐던데다, 미국으로 강호행을 떠난 지도 얼마 안 됐는데도 이만한 성과를 냈다.

강호행이 끝날 때쯤에는 얼마나 바뀌어있을까?

옥수진이 중얼거렸다.

“천마님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되려나요.”

“며칠 전에 연락받기로는 하이포닉이랑 만날 거라고 하시던데.”

“네? 하이포닉이랑은 예전에 작업 끝내지 않으셨어요?”

천마는 하이포닉과 초반 작업을 끝내고, 그걸로 저작권 계약까지 했다.

“아 맞다! 그랬지!”

강여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나는 묘하게 두 사람이 닮아서 그런가 헷갈리네. 왜 그렇지? 분위기가 비슷해서 그런가?”

···덕후의 촉은 예리했다.

아무튼.

천마와 하이포닉의 작업은 끝났다.

사람들은 파이퍼와 하이포닉이 같이 작업하는 걸로 알고 있고, 천마신교 직원도 그렇게 알고 있고, 심지어 천마도 그런 줄 알았다.

.

.

.

천마가 부캐로 변장해서 같이 작업하던 와중, 하이포닉이 말했다.

“이 벌스는 천마한테 주는 게 어떨까?”

“······.”

이게 돌았나.

< 본캐와 부캐 사이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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