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40화 (140/191)

< 십만교인 양병설 (1) >

십만교인 양성 프로젝트.

그 신박한 단어에 나는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십만교인 양성 프로젝트? 그게 뭔데요?”

“흐음. 뭐랄까, 십만양병설 같은 거죠.”

기다렸다는 듯 강여름의 본격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천마님 팬덤은 수에 비해서 결집력이 부족하거든요. 한국과 일본은 안 그런데 유독 영미권 팬덤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져요.”

한국 팬들은 언제나 든든하고, 일본 팬들은 구매력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흡족해진다.

이들 외에 내 노래는 즐겨 듣지만,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라이트 팬층을 공략해보자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무림을 떠올렸다. 교인들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외부의 적을 이용해야지요.”

나도 갓 마교의 교주가 되었던 시절, 무림맹 놈들을 쏠쏠하게 이용해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강여름이 원한 답은 이게 아니었는지, 다소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외부의 적이 좋기는 한데. 팬덤 싸움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아티스트를 들이박을 수는 없잖아요?”

그런가?

“그럼 어떻게 할 건데요?”

강여름은 양손을 옆구리에 올리고 당당하게 만들었다.

“팬들이 천마님에게 빠지지 않곤 못 배기도록!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거예요!”

“새로운 콘텐츠? 이미 주간곡소리랑 고민상담소, 컴백일지까지 하고 있잖아요.”

강여름이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으음으음. 그런 거 말고요. 그 컨텐츠는 다 음악이랑 관련이 되어있는 거잖아요.”

“가수는 음악을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거 아닌가요?”

“음악도 중요하지만, 팬들이 음악만 잘한다고 해서 덕질을 하는 건 아니거든요. 천마라는 사람 자체에 빠져들게 해야죠!”

“...그런가?”

“그럼요!”

강여름은 확신에 찬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덕질 전적이 화려한 강여름이 말하니 뭔가 신빙성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강여름은 이때다 싶어서 준비한 것들을 쏟아냈다.

“일단 브이로그부터 시작하죠. 천마님이 일상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팬들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여기에 방탈출이나 귀신의 집처럼 재미있는 액티비티를 하는 모습을 넣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다음으로는 천마님이 주인공인 웹 예능···.”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여름 씨가 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놉. 이건 절대로 대의를 위한 일이라고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강여름의 사심을 가득 담은 십만교인 양성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

.

.

새로운 콘텐츠의 시작은 브이로그였다.

강여름은 천마가 기상해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부터 시작해서, 휑한 옷장과 집안까지 빼놓지 않고 촬영했다.

이후에는 출근을 하는 모습과 전담팀과 회의를 하고 점심을 먹는 모습까지.

“이게 진짜 효과가 있다고?”

천마는 의문이 들었다.

브이로그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밥을 먹는 모습을 찍는 게, 팬들의 결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강여름은 확신했다.

“지금 천마님 먹는 거 보면 쌉가능이에요. 무슨 먹방 뉴튜버 보는 줄.”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되고 있다니 다행이군.

식사를 마치고 다음으로는 방탈출이라는 걸 할 차례였다.

이번에는 미니롱과 함께 자주 방탈출을 했던 옥수진이 함께했다.

옥수진은 간단하게 방탈출의 규칙을 설명해주었다.

생각보다 쉬웠다.

“그러니까 숨겨진 단서를 빠르게 찾아서 방을 나가면 되는 거라고?”

“많이 생략되긴 했지만 핵심은 그래요.”

“오케이. 이해했다.”

게임이 시작되고, 천마는 손마디를 풀며 생각했다.

‘무림에서 영약 찾던 실력을 보여주지.’

한때 천산의 영약 사냥꾼이라고 불렸던 천마다. 옆에서 옥수진이 ‘모르겠으면 힌트를 보세요’라고 조언했지만, 천마는 듣지 않았다.

‘힌트 따위는 필요 없어.’

천마는 날카로운 눈으로 방 안을 살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작은 상자였다.

딱 봐도 배경과 위화감이 느껴지는 상자.

“뻔하군. 저걸 열면 되는 거지?”

“어? 맞아요.”

옥수진은 예상외로 천마가 쉽게 발견하자 놀랐다.

‘상자는 찾기 쉬운 곳에 놓아뒀네. 이러면 안 되는데. 분량이 나오려면 천마님이 조금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천마가 상자를 열려고 했지만 덜컹거리기만 할 뿐 단단하게 잠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옥수진은 안도했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별 다섯 개짜리 난이도인 만큼, 상자를 여는 데까지 추리에 추리를 거듭해야겠지.’

너무 이른 안도였다.

천마는 거침없이 상자의 뚜껑을 잡았다.

역시, 예상대로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졌지만.

“훗. 이쯤이야.”

콰직-

상자 따위가 천마의 악력을 이겨낼 순 없었다.

“오, 이게 단서라는 건가?”

강제로 개봉한 상자 속에서 다음 스테이지로 안내해주는 단서를 찾은 천마는 웃었다.

그리고 옥수진이 얼어붙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배상액이 스쳐 지나갔다.

‘이게 아닌데?’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천마는 결국 최단 시간 방탈출에 성공했고,

“...기물 파손이 많네요.”

“죄송합니다. 수리비는 천마신교 앞으로 청구해주세요.”

방탈출 카페 역대 최대 배상액도 나왔다.

*

천마의 뉴튜브 구독자는 4,802만 명이다.

최근 ‘song for A Man’이 확 뜨고, 하이포닉에게 피처링을 해준 곡이 결국 빌보드 1위를 찍었다.

덕분에 해외, 그것도 주로 북미에서 유입이 많아져 5,000만 명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한 공무원도 천마의 팬이었다.

퇴근길, 공무원은 천마의 ‘song for A Man’을 재생했다.

- 자, 역풍이 불어오고 있어

차갑게 식어버린 땅일지라도

손을 뻗어 지금 뛰어넘어가는 거야

요즘에는 천마가 피처링한 ‘Unclear’가 더 높은 순위에 있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천마의 목소리로 가득 찬 이 노래를 더 좋아했다.

특히 퇴근길에 들을 때면, 민원인을 상대하며 쌓인 스트레스 수치가 내려가는 듯했다.

“어우~ 좋다.”

그녀는 뜨끈한 물에 몸을 담글 때 낼 법한 탄성을 뱉으며, 혼잡한 퇴근길을 뚫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천마의 노래를 듣던 그녀는, 간단하게 샐러드를 준비하며 생각했다.

“오랜만에 천마 영상이나 볼까.”

그녀가 처음 천마의 채널을 접한 건, 메이슨 쇼를 날려버리는 클립을 통해서였다.

그때 이후로 간간이 노래도 듣고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영상도 봤지만, 딱 그 정도랄까.

앨범을 사거나, 굿즈를 모으거나, 하다못해 채널에 올라오는 컨텐츠를 열성적으로 섭렵하지도 않았다.

타이밍이 맞으면 구독 목록에 올라오는 클립을 보는 정도였다.

‘천마 영상은 죄다 음악뿐이라서···.’

맨날 올라오는 건 [주간곡소리]에서 괴상한 노래를 만드는 거나, 아니면 [고민상담소]에서 고민을 듣고 노래를 불러주는 영상.

종종 배틀이 일어나는 건 재밌었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먹방이나 일상 예능을 좋아하는 그녀의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

뭘 보나 고민하며 천마의 채널을 뒤적이던 그녀의 눈에, 새로운 재생목록이 들어왔다.

[대환장천마]

“···음? 이건 뭐지?”

재생목록을 눌러봤지만, 업로드된 영상은 하나뿐이다.

[대환장천마 EP01ㅣ힘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한다 (feat.방탈출)]

심플한 제목이지만 그래서 구미가 당긴다.

가끔 천마는 상식 밖의 행동을 보여줄 때가 있어서 은근히 기대가 됐다.

‘그럼 한번 시청해 볼까?’

시작은 별거 없었다.

천마가 일어나서 출근하고 점심 메뉴를 고르는 내용이었다.

“흐응. 일상 브이로그인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장르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먹방으로.

[천마: 갑자기 짜장면이 먹고 싶네.]

[옥수진: 배달할까요?]

[천마: 그런데 짬뽕도 먹고 싶고.]

[옥수진: 그럼 짬짜면으로 먹으면 되죠.]

[천마: 탕수육도 먹고 싶고.]

[옥수진: 좋네요. 탕수육은 뒀다 먹어도 맛있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 천마가 말했다.

[천마: 그럼 다 시키자. 세트 할인되죠?]

옆에서 촬영하던 강여름이 반색했다.

[강여름: 와 감사합니다! 그럼 짬짜탕 세트 메뉴로 시킬게요!!!]

그러자 천마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천마: 무슨 소리예요?]

[강여름: 넹?]

[천마: 여름 씨는 안 시킬 거예요?]

[강여름: ???]

그렇게 잠시 후, 점심이라기엔 너무 푸짐한 한 상이 차려졌다.

강여름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강여름: 진짜 이걸 다 먹는다고요?]

[천마: 그럼?]

[강여름: 그러다 배탈날텐데.]

천마는 그저 코웃음 칠 뿐이었다.

[천마: 아이고. 나한테 탕수육이나 달라고 하지 말아요]

그리고, 먹방이 펼쳐졌다.

유니짜장 곱빼기, 삼선짬뽕 곱빼기, 탕수육 대자.

화려한 젓가락 신공과 함께 천마는 음식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입에는 하나도 묻히지 않은 게 묘기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밑에 자막이 달렸다.

[천마신교는 언제나 PPL에 열려있습니다^^ -직원일동-]

“맛있겠다.”

한입 가득 탕수육을 집어삼키는 모습이라든지.

와앙 하고 짜장면을 한 젓가락 크게 베어 무는 모습이라든지.

“츄르릅.”

공무원은 흘러나오는 침을 닦았다.

마침 퇴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식욕이 폭발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샐러드가··· 오늘따라 유난히 맛없어 보인다.

공무원은 샐러드를 옆으로 치우고 중얼거렸다.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고민하던 공무원은 결국 볶음밥을 시켰다.

그녀가 주문을 하는 사이에 천마는 밥을 다 먹고 방탈출을 하러 갔다.

마침 지난 주말에 공무원도 방탈출 게임을 해서 더 반가웠다.

‘프리즌 브레이크를 모티브로 한 게임이었는데, 난도가 꽤 높았지.’

그래도 최소 힌트로 최단 시간 탈출을 기록했다. 엣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공무원은 한국의 방탈출은 어떤지 보았다.

‘한국은 좀 다르려나?’

다르긴 했다.

“???”

많이 다른 의미로 말이다.

[우지끈]

뜯겨나가는 상자를 보며, 공무원은 혼란에 빠졌다.

.

.

.

강여름이 자신한 대로 팬들 사이에 큰 반응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tlqkfzzzzzzzzzzzz

- 아니 이런 걸 왜 숨기고 있어?

- 방탈출 (물리)

-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머리가 안 좋아서 방탈출에 실패한 줄 알았는데, 몸이 안 좋아서였군요.

- 여기서 킬포는 천마만 혼자서 존나 진지하다는 것

영상을 완주한 공무원도 댓글을 보면서 낄낄거렸다.

“이야 천마가 천마했네.”

그녀는 예전에 천마가 메이슨 쇼를 날려버리는 걸 보고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했는데.

천마는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특히 천마가 상자를 뜯어내는 장면은 3274번째 돌려보고 있었다.

상자의 뚜껑이 처참하게 박살 나는 모습과, 단서를 들고 의기양양한 천마, 그리고 직원들의 뜨악한 표정과 자막이 조화를 이루며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으흐흐크킄 이건 봐도 봐도 재밌냐.”

그녀는 찔끔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천마에 대해 조금 더 검색하다가 어느 커뮤니티에서 움짤을 발견했다.

팬이라고는 하지만 머글에 가까운 공무원은 살면서 처음으로 움짤을 저장하고 친구한테 공유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천마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하던 와중, 알림 팝업이 떴다.

[대환장천마 EP02 예고편ㅣ귀신의 집 (물리 퇴치)]

“어?”

다음편?

귀신의 집에서 물리로 퇴치를 한다고?

이건 못참지!

*

천마는 ‘이게 통할까?’ 했지만, 통했다.

사람들은 천마가 일상을 보내는 모습도 좋아했다.

정확히는 천마의 심상치 않은 사고방식과 언행에 열광했다···.

컨텐츠 장인인 강여름은 눈을 빛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

천마는 저 맑은 눈이 부담스러웠다.

“이쯤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무슨 소리에욧! 사람들이 이런 천마 님의 모습을 더 보고 싶어 할텐데!”

네가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강여름은 각종 기획을 쏟아냈다.

“지난 먹방도 좋더라구요. 근데 요즘 먹방은 흔하니까 술방은 어때요? 요즘 하이포닉이 디엠을 자주 보내던데 섭외해보는 것도 좋구요.”

“아니면 천마님이 피지컬이 좋으니까 스포츠를 하나씩 섭렵해볼까요? 축구가 좋아요, 야구가 좋아요?”

천마의 ‘음악,’ ‘노래’만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조금씩 천마라는 사람 자체에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스며드는 애정이 쌓이고 쌓여, 필요한 순간에 단단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마침 그 결집을 강하게 해줄 외부의 적까지 등장하고 있었다.

< 십만교인 양병설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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