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만교인 양병설 (2) >
토비 무어.
2미터가 넘는 키에 엄청난 풍채를 자랑하는 이 친구는··· 뜻밖에 래퍼였다.
그것도 꽤 명성을 날리는 래퍼인 그는 최근 새로운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유명 힙합 프로듀서팀인 아발론과 함께.
아발론은 작년 썸머페스타에서 페이크 디제잉이 탄로 나고, 그의 관객들이 전부 천마에게 빼앗기는 등 개망신을 당하면서 활동을 중단한 전적이 있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 세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은 예전만큼 잘나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지지해줄 강한 팬덤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비 무어가 아발론에게 말했다.
“야, 그런데 세 번째 수록곡 말이야. 뭔가 밋밋하지 않아? 그거 하이포닉한테 피처링 부탁해볼까?”
아발론 중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포닉? 할 수만 있으면 아주 좋지. 요즘 아주 물이 올랐더만? 3곡이 모두 10위 안에 들었던데.”
“그치? 천마가 피처링해준 그 곡은 아직 1위 하고 있더라. 들어보니까 좋던데? 천마 걔도 진짜 쎄긴 쎄더라고. 하이포닉 노래 주도권을 그냥 가져가 버리네.”
토비 무어가 낄낄거리면서 천마를 언급하자, 천마에게 크게 데인 전적이 있는 아발론은 움찔했다.
‘아오, 저 새끼는 왜 천마 얘기를 꺼내고 지랄이야.’
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다시 주제를 제자리로 끌고 왔다.
“그런데 너 하이포닉한테 피처링 부탁할 수 있겠냐?”
“엉? 왜?”
“병신아 지난번에 네가 하이포닉 디스곡 낸 거는 까먹었어?”
“아아, 맞다. 그랬었지?”
정말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듯한 토비 무어의 태도에, 아발론은 한숨이 나왔다.
천마가 이슈가이라고 불리지만, 토비 무어에는 명함도 못 내밀 거다.
저 싸움개 같은 놈은 빈정이 상하기만 하면 상대가 누구든 일단 들이박고 본다.
종종 연예면이 아니라 사회면에서 이름을 볼 때는 이게 진짜 래퍼인가 싶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놈의 팬들도 정상이 아니어서 그런 모습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제 꼴리는 대로 사는 모습이 멋있다나?
어쨌든 토비 무어는 예전에 하이포닉과 사소한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고, 급발진해서 그대로 디스곡을 내고, 하이포닉도 빡쳐서 역 디스를 하고, 서로 SNS를 통해 치고받고···.
그런 일이 있었지만, 토비 무어는 그런 건 이제 상관없다는 듯 쿨하게 말했다.
“헹. 그게 언제적 일인데. 우리 만나서 술 먹고 다 풀었어. 그래서 하이포닉의 피처링 가격은 요즘 얼마쯤 하려나?”
토비 무어는 감정적인 편이고 쉽게 화를 낸다. 또 그만큼 쉽게 화를 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이 상대 역시 뒤끝이 없을 거라는 뜻은 아니다.
아발론은 하이포닉의 감정적 프리미엄까지 생각해서 계산기를 두들겼다.
“아마 네 노래라면··· 벌스에 40만 달러?”
“왓더퍽! 미친 거 아니야? 걔가 무슨 40만 달러씩이나 받아!”
“걔가 자기 멜로디 끼워 넣는 솜씨가 얼마나 좋은데. 지금 물이 올라서 피처링 받으려고 줄 서 있어. 네가 가서 무릎 꿇고 빌면 절반으로 깎아줄지도 모르겠다.”
“끄응.”
토비 무어는 고민했다.
비싸다. 너무 비싸다.
다른 사람은 없을까?
그때 천마가 이번에 피처링을 해준 게 생각이 났다.
“그럼 차라리 천마에게 피처링을 말해볼까? 피처링으로 빌보드 1위 했으면 실력은 증명됐고, 하이포닉보다도 저렴할 거 같은데.”
또다시 천마가 튀어나왔다.
결국 참고 있던 아발론이 뚱하게 말했다.
“나는 천마 싫어하는데.”
자신들이 만든 노래에 천마가 묻는 건 죽어도 싫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아발론이 천마를 싫어하든 말든 토비 무어는 손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쩌라고. 너니까 천마한테 관객을 빼앗긴 거고, 하이포닉이니까 천마에게서 곡의 주도권을 뺏긴 거지. 하지만 내가 천마한테 밀릴 리가 없잖아?”
개소리에 가까운 막말이었다.
참지 못하고 아발론 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났다.
“뭐? 너 이 새끼가. 말 다했냐?”
“야, 참아 참아. 좀 제발!”
아발론은 씩씩거리다가 저들끼리 눈짓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저 성질머리를 참으면서 우리가 일 해야 해?’
‘인마. 커리어를 생각해. 페이크 디제잉 걸린 거 복구해야 할 거 아니야.’
토비 무어쯤 되는 래퍼의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해줄 기회는 흔치 않다.
아발론은 머리가 부글부글 끓었지만 가까스로 참고 말했다.
“그럼 천마한테 컨택하는 건 네가 알아서 해. 대신 우리는 천마랑 얼굴을 맞대고 일하지 않을 테니까, 네가 중간에서 조율을 잘 해야 할 거야.”
“눼눼.”
“이런 씨!”
토비 무어는 성질을 내는 아발론을 무시하며, 천마에게 컨택을 하는 방법을 찾아봤다.
‘분명 천마 채널에 가서 후원을 해야된댔지?’
하지만 그때 다른 방법이 생겼다.
선배이자 같이 종종 축구를 하는 킹 음악감독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토비, 천마랑 술 마실 건데 너도 낄래?”
*
십만교인 양성 프로젝트.
그 시작인 브이로그는 성공적이었다.
강여름이 우쭐거리며 말했다.
“어때요, 보셨죠? 이번에 ‘대환장천마’를 시작한 이후에 팬클럽 규모가 엄청 늘어났어요. 사람들이 천마님 밥 먹는 모습을 그렇게 좋아하네요.”
그래서 다음 컨텐츠는 노래도, 먹방도 아닌,
“방송에서 술을 마시라고요?”
“바로 그거죠! 요즘 대세는 바로 술방이라고요.”
“.......”
브이로그가 대성공을 거둔지라 천마는 차마 강여름의 주장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게스트는 무조건 빵빵하게! 천마님 인맥을 이참에 동원해보자구요.”
강력한 게스트를 섭외해오라는 강여름에 요청에 천마는 본격적으로 연락처를 뒤졌다.
가장 먼저 연락한 건 얼마 전 협업을 한 하이포닉.
- ···내가 다 잘하는데 술 마시는 건 자신이 없네. 맥주 한 잔이 끝이야.
하지만 뜻밖에 하이포닉은 술찌질이였다.
“안토니오는 몸 관리 때문에 술을 안 마신다고 하고. 페니 로페즈는 임팩트가 약하다고 하고.”
그렇다고 진짜 로페즈 회장을 등판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굴 불러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
천마의 눈에 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 결과,
“여 천마. 오랜만이야.”
촬영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오는 거대하고 시커먼 덩어리.
“오랜만이네. 우리 애프터 파티 이후에 처음인가?”
바로 킹 감독이었다.
펜텀 스틸러의 음악감독이자, 에보니 킹의 친오빠인 킹 감독은 여전히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며 악수를 건넸다.
“그래. 미국에 왔으면 좀 연락도 하고 그러지. 필요할 때만 부르니까 섭섭한데?”
분명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하는데, 전직 미식축구 선수인 킹 감독이 그렇게 말하니 농담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킹 감독과 악수를 한 천마는 물었다.
“그런데 소개해준다는 친구는 아직이야?”
“금방 들어올 거야. 잠깐 화장실 다녀온다던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킹 감독과 버금가는 덩치의 흑인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이번 술방을 위해 킹 감독이 특별히 초대한 사람.
토비 무어였다.
“자, 이쪽은 토비 무어. 내 후배라고 할 수 있지.”
천마는 토비 무어를 보았다.
킹 감독과 비슷한 체구지만 훨씬 젊어서 그런지, 근육이 더욱 탄력 넘쳐 보인다.
천마는 킹 감독의 전직을 떠올렸다.
“...후배? 그럼 미식축구 선수인가?”
토비는 웃으며 킹 음악감독을 퍽 후려쳤다.
“그렇게 말하니까 오해하잖아. 나는 래퍼라고. 그리고 미식축구는 내 취향이 아니야. 오히려 축구를 더 좋아하지. 천마 너, 축구는 할 줄 알아?”
축구는 할 줄 아냐고?
재수 없고 도발적인 말투에 천마는 피식 웃었다.
‘이 새끼가.’
“하,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이 강원도 메시였어.”
“그래?”
둘 사이에 약간의 신경전이 오간 후, 본격적으로 술판이 시작되었다.
위스키, 꼬냑, 브랜디, 와인.
여기에 소주, 맥주, 막걸리.
고량주와 사케까지.
마치 세계 술 전시회를 펼쳐놓은 듯한 모습.
“.......”
“...오늘 이거를 다 마시자는 거지?”
토비의 어이없다는 물음에 천마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이 정도쯤이야. 다들 이정도는 마시잖아.”
도발하듯이 가볍게 던진 천마의 말에, 토비가 바로 넘어왔다.
“하, 이봐 천마. 술 좀 마시나 봐?”
“그냥 남부럽지 않게 먹지. 너는 잘 마셔?”
한 번 더 토비를 자극하는 천마.
남자가 모이면 빠질 수 없는 술부심의 막이 올랐다.
토비는 약간 고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주량을 몰라. 그런 건 재본 적이 없거든.”
“그으래?”
“그래. 술 먹다가 죽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들어보니까 한국에서는 소주로 주량을 센다지?”
“일반적으로 그런 셈이지.”
“나는 최소 궤짝? 정도는 가져다 놔야 술 마시는 기분이 날 것 같은데.”
천마가 씩 웃었다.
“좋아. 다 들어와. 먹고서 토하지나 말라고.”
천마는 숟가락을 들어 먼저 맥주를 땄다. 잔에 3분의 1가량 맥주를 따르고,
졸졸졸-
나머지 3분의 2는 소주로 채운 소맥을 한 잔 말았다.
그걸 지켜보던 두 사람은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왜 색깔이 투명하지? 저게 맞나?’
이미 늦었다.
천마가 투명한 소맥처럼 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처음이니까 ‘가볍게’ 소맥 한 잔만 걸고 술게임, 콜?”
역시나 토비는 이번에도 넘어왔다.
“겨우 한 잔? 남자라면 세 잔이지.”
“그래? 이게 보기보다 도수가 높은데. 괜찮겠어? 잘못 하다가 너 취할 수도 있어.”
토비의 눈에 스파크가 튀었다.
‘천마 녀석. 겨우 술 한잔 가지고 호들갑은. 별거 없잖아?’
토비는 당당하게 말했다.
“세 잔. 가자.”
.
.
.
방송 시작 30분 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쭉쭉쭉쭉!”
“아위 고러니까아! 이, 아, 안 취했다고!”
“더 마실 수 있으허···꼬르륵.”
결국 토비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장렬하게 전사했고, 그걸 지켜보던 강여름은 입을 틀어막았다.
“어머, 어떡해!”
천마는 틀어막은 손 뒤로 강여름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는 데 위스키 한 병을 걸 수 있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킹 감독과 천마는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팬텀 스틸러 비하인드 씬에서부터, 전에 천마의 방송에서 배틀을 벌인 뮤파이의 대표와 에보니의 연애사까지.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썰을 풀어주던 킹 감독은 문득 천마에게 제안을 했다.
“이봐 천마. 혹시 축구 좀 할 줄 알아?”
“축구? 뭐 그냥저냥 하는데.”
천마도 무림에서 축구 비슷한 걸 몇 번 했었다.
공중을 날아다니며 드리블하고, 시속 300km가 넘는 슛을 쏴대는 걸 축구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킹 감독은 잘 됐다는 듯 제안했다.
“그럼 혹시 조만간 자선 축구 경기를 할 건데, 혹시 같이할래?”
“오? 자선경기? 어떤 건데?”
“별거 아니고, 은퇴한 선수들에 연예인을 초청해서 경기하는 건데. 국적은 상관없어. 이번에 ‘인터 마이애미’의 구단주도 오기로 했다고.”
구단주?
혹시 그럼 ‘데이비드 베컴’?
이건 못참지.
마침 다음 컨텐츠로 강여름이 스포츠 종목별 도장 깨기를 하자고 한 참이다.
저기 카메라를 보니 강여름은 벌써부터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천마가 알았다고 하려는 순간.
옆에서 죽어있던 토비가 벌떡 일어나서 급발진을 하더니,
“축구? 야, 축구는 내가 이길 수 있··· 꾸에엑!”
괴성과 함께 입을 틀어막고는 재빠르게 화장실로 튀어갔다.
웩 웨엑 웨에에엑
저 멀리서 귀를 닫고 싶은 소리가 들려왔다.
“.......”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첫 술방이 끝났다.
그리고 이날 가장 행복해한 사람은 강여름이었다.
< 십만교인 양병설 (2) > 끝
ⓒ 연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