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선경기 (1) >
미국에 사는 어느 공무원.
그녀는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져있었다.
“흐으으음!”
중고 거래로 천마 앨범 한정판을 사느냐 (천마체 서예 굿즈가 들어있다. 거기에 미개봉이다!).
“흐으으으음!”
아니면 그 돈으로 천마 앨범 일반판 3가지 버전을 모두 사느냐 (버전별 포카를 모두 가질 수 있다).
“흐으으으으음···!”
진로를 선택할 때에도 이렇게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남아있는 계좌 잔액을 힐끗 확인해 본 공무원은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래. 밥 정도는 포기할 수 있지.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집에서는 대충 빵만 먹으면 돼,’
식사는 해결이 되었고, 이번 달 집세도 납부했고, 옷은 뭐··· 그냥 있는 거 입지 뭐.
의식주 문제는 해결 완료다.
‘흐흐흐. 그럼 나머지는 내 행복을 위해서!’
그래서 둘 다 질렀다.
“아주 합리적인 소비였어.”
결제를 마친 공무원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뉴튜브를 켰다.
그녀가 들어간 건 어김없이 천마의 채널.
[대환장천마] 컨텐츠는 머글과 덕후 사이를 걸쳐있던 여러 사람들에게 입덕 포인트를 제공해줬다.
원래 천마의 이미지는 음악에 진지한 아티스트이자, 그 천재성에 세계적인 거물들까지 러브콜을 보내는.
뭐랄까 아무래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미지였다.
그런데 뜯어보니 웬걸.
방탈출 카페에 가서는 상자를 박살 내질 않나, 짬뽕과 짜장 사이에서 고민하질 않나, 귀신의 집에 가서는 난데없이 물리 퇴마를 하고 오질 않나.
일상의 천마에게는 엉뚱한 반전 매력이 있었다.
- 그렇게 안 봤는데 참사람 헐렁헐렁하네요
- 손해배상 엔딩ㅋㅋㅋㅋㅋㅋㅋ
- 뭐야? 의외로 예능캐네?
덕분에 천마에게 친근한 매력이 덧붙여졌다.
사람들은 일상의 천마가 그들과 별다를 것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공무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건 너무 귀엽잖아! 글씨체도 귀엽고, 자세히 보니 얼굴도 살짝 귀염상이고, 누가 지었는지 이름도 참 귀엽고···.”
내 새끼 이름이 귀여워질 때는 이미 늦었다는데, 그런 점에서 공무원은 이미 중증이었다.
그렇게 공무원이 천마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던 와중 확인 사살을 할 새로운 컨텐츠가 떴다.
[스핑크술 EP01ㅣ흑역사를 남기고 가노라 (with 킹&토비)]
게스트를 본 공무원은 펄쩍 뛰었다.
“허얼러흐어얼럭 토비 무어랑 같이 술방을 했다고?”
토비 무어는 알려진 주당이었다.
술을 마셔서 자주 연예면을 오르내렸던 덕분에 연예계에서 꽤 소문난 주당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킹 음악 감독은 덩치만 봐도 술을 잘 마실 것처럼 생겼다.
‘저 사이에서 천마가 버틸 수 있을까?’
천마도 평균 성인 남성보다는 건장한 편이지만, 저 둘 사이에 끼워 놓으니 그렇게 비실해 보일 수 없다.
괜히 내 새끼가 술을 마시다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공무원은 천마에 대한 걱정과, 혹시 반전이 일어날까 약간의 기대를 담으며 1화를 클릭했다.
검은 화면에 궁서체로 된 붉은 자막이 나타났다.
- 아침에는 두 발, 점심에는 네 발, 저녁에는 기어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 그건 바로···.
- 너
···시작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
침을 꼴깍 삼킨 공무원은 본격적으로 시청했다.
초반은 나쁘지 않았다.
그녀가 걱정하던 장면은 없었으니까.
남자 셋이서 귀엽게 술부심을 부리고 적당히 견제하며 마시기를 아주 잠깐, 갑자기 상황은 미쳐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토비 무어가 피처링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토비: 술 내기하는데 뭔가를 걸어야 하지 않겠냐?]
[천마: 뭐를?]
[토비: 이긴 사람의 노래에 피처링해주기! 어때?]
[천마: 딜!]
순식간에 천마와 토비의 대결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킹 음악 감독이 깍두기로 남았다.
천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천마: 두 사람이 한 팀해. 너 혼자서는 약할 거 같거든.]
[토비: (발끈) 하, 이거 또라이네.]
그렇게 우락부락한 덩어리 두 명이 한 팀을 이루고, 천마는 홀로 둘을 상대하게 됐다.
그 모습을 보며 공무원은 발을 동동 굴렀다.
“헐 어떡해? 저걸 어떻게 이겨?”
토비 하나라면 몰라도, 킹까지?
천마가 아니라 천마 아버지랑 천마 할아버지까지 와서 도와줘도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토비: 나는 아직 살아있다!]
[킹 음악감독: (탈탈 털림)]
곧 죽을 것 같은 두 사람 앞에서, 천마가 맑게 웃었다.
[천마: 살아있어? 잘 됐네. 마침 로페즈 회장님이 선물을 보내왔더라고.]
[토비: 선물?]
[킹 음악감독: (기대) 해독제인가?]
뭔가 기대하는 두 사람의 눈빛···은 이내 죽어버렸다.
눈앞에 그립감 좋은 술병이 나타났다.
가망이 없다는 걸 깨달은 킹 음악감독은 빠르게 손절했고, 토비만 남았다.
[토비: (덜덜덜) 나는 아직 사, 살아있다!]
[천마: 그래. 넌 곧 죽을 거 같으니까 잔은 작은 걸로 바꿔줄게.]
토비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만, 굳이 거절하지는 않았다.
토비는 작은 스트레이트잔에, 천마는 막걸리 대접에.
로페즈 회장의 선물을 사이좋게 원샷하는 두 사람.
천마가 맥주를 마시듯 꿀꺽꿀꺽 넘길 때마다, 단단한 하관과 목젖이 움직인다.
혼자서만 자체 보정되며 무슨 맥주 CF를 보는 듯했다.
공무원은 그 순간 살짝 넋이 나갔다.
“와···멋지다.”
이쯤에서 이미 승패는 갈렸다.
[토비: 씨-(삐이)-(삐이)! 난 안 죽어쒀···꼬르륵]
[천마: 됐고. 너는 나중에 내 노래에 피처링이나 해라.]
“···천마가 이겼네?”
두 덩어리는 천마 앞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천마는 그저 피식 웃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시 병나발을 불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공무원은, 뭔가···뭔가 새로운 면모를 언뜻 보게 된 듯했다.
‘세상에 토비 무어를 저렇게 박살 내?’
사실 토비 무어는 ‘통제불능 개’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맨날 술 먹고 사고 치고, 수틀리면 다 물어뜯어 버리고.
그런 망나니를 천마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꺾어버리다니!
처음에는 천재 음악가처럼 보였다가, 어제는 옆집 허당오빠가 같았다가, 이번에는···.
‘···완전 상남자네?’
뜻밖의 야성미가 느껴졌달까?
공무원의 마음이 콩콩 뛰었다.
그때 천마가 방점을 찍는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흥이 올랐다며 기타를 잡고 즉석에서 팬송을 만든 것이다.
[킹 음감: ···!]
[천마: 어때 좀 괜찮나?]
[킹 음감: 그, 그거. 나한테 팔래?]
[천마: 아니요? 이건 팬들 생각하며 만든 거라. 여러분 이거 이따가 싸클에 올릴 테니까 들어봐요.]
공무원의 눈이 돌아갔다.
근육남 사이에서 부어라마셔라죽어라 하던 내 새끼가 또 나한테는 스윗하다?
그럼 아주 끝장나는 거다.
댓글도 난리가 났다.
- 팬송에서 기절해서 지금 일어났습니다
- 싸클? 그게 뭐야? 어떻게 들어가는 거야? 스포티나인에 없는데? 그냥 음원으로 발매해주면 안 돼?
ㄴ진정하시고 아래 방법대로 들어가면 됩니다···(설명) (좋아요 6.1만 개)
ㄴ감사합니다!!!!!!!
- 극락이다! 극락이로다!
- 그래서 자선경기 티켓은 어떻게 사요?ㅠㅠ
그렇게 팬송을 다운받으려던 공무원은 마지막 댓글을 보고 멈칫했다.
“티켓? 이건 또 뭐야?”
그날 공무원은 지갑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었다.
*
자선경기.
유명인들을 초대해서 경기를 하고, 그 수익을 전액 기부하는 이벤트다.
이번에 킹 음악 감독이 제안한 자선경기는, 셀럽들을 모아서 축구 경기를 하고 티켓과 기타 수익을 전액 아동 복지를 위해 기부하는 그런 취지의 경기였다.
그리고 천마가 자선경기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들리는 순간.
천마의 팬들은 난리가 났다.
- 뭐라고? 천마가 축구를?!
- 축구도 개잘할거 같은데
ㄴ ㅇㅈㅇㅈ 100m 여유롭게 10초로 들어오는 거 보고 느낌이 딱 왔다
ㄴ 그럼 천마가 가레스 베일보다 빠른 거 아니냐?
ㄴ ···맞네. 달리기만 놓고 보면 천마가 빠르네
- 천마 3대도 700임 ㅋㅋㅋㅋㅋ
ㄴ 치이면 날아가는 거 아니냐?
ㄴ 근데 이쉑 열심히 한거 같지도 않던데
ㄴ ㄹㅇ뽀송뽀송하더라
- 그래서 경기는 언제 하죠?
- 방금 연차 내고 비행기 티켓팅 했다
ㄴ 저도 티켓팅 했습니다. 플래카드 챙겨갑니다
ㄴ 야 너만하냐 그러니까 어떻게 하냐고!!!
- 십만교인은 응원법 없나요?
ㄴ 천마재림! 만마앙복!
얼마 전 천마는 컨텐츠의 일환으로 스포츠 도장 깨기를 한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한 것은 육상과 헬스.
그리고,
[천마 : 기록 어떻게 나왔어요?]
[강여름 : 와 미쳤다! 10초 98이에요!]
육상에서 천마는 100m를 10초대 후반에 들어오는, 프로선수급의 스프린트를 선보였으며.
[천마 : 그래서 3개 합치면 몇이죠?]
[강여름 : ···님 가수 맞아요? 물리엔진 오류인가? 왜 3대 700이 넘었지?]
헬스에서는 3대 700을 넘겨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상할 정도로 운동에 재능이 있는 천마가,
과연 축구장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팬들은 기대를 가득 담아 기다리고 있었다.
관전 포인트는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 근데 거기 아발론도 나오던데
ㄴ 엌ㅋㅋㅋㅋㅋ 둘이 사이 안좋은 거 아니냐
ㄴ 둘이 붙는 것만 봐도 꿀잼 보장이지
공개된 라인업에 들어있는 아발론의 이름까지.
여러모로 천마의 팬들은 이번 자선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한편, 아발론에게는 재앙이 닥쳤다.
아발론은 지금 토비의 앨범을 프로듀싱해주고 있어서 웬만하면 붙어 다니며 작업하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토비 무어가 천마의 술방에 다녀왔을 때.
천마와 대작을 벌인 토비 무어는 엄청 흥분한 채로 돌아왔다.
“천마 이 미친새끼! 이건 뭐하는 놈이야 진짜!”
꼭 화난 사람처럼 얼굴이 벌게진 채 씩씩거린다. 아발론은 은근히 기대하며 그를 쳐다봤다.
‘술 처먹고 천마와 대거리를 했나?’
아마 토비의 성격으로 짐작건대 술 마시고 천마에게 꼬장을 부렸을 게 분명했다.
술을 처먹지 않아도 지랄 같은 놈인데, 술을 마시면 지랄이 최소 3배쯤 늘어난다.
그리고 천마의 성격으로 보건데 그런 토비와 정면으로 맞붙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랬으면 개꿀인데.’
앞으로 이 새끼가 천마에게 피처링을 부탁한다느니 하는 개소리를 지껄이지는 않겠지.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발론의 예상은 모조리 틀려버렸다.
토비 무어의 입에서 나온 건.
“천마 이 자식 완전 상남자잖아!”
천마에 대한 찬양이었다.
“.......”
어쩐 일인지 토비 무어는 천마에게 홀딱 빠지고 돌아왔다.
“내가 그 자식 노래에 피처링 해주기로 했어. 내가 인정한 놈이니 암, 당연히 해줘야지.”
···그 반대를 부탁하러 간 거 아니었나?
아무튼 아발론은 저 자식이 천마에게 피처링을 해주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건, 그 반대.
그러니까 천마가 토비의 곡에 피처링을 해주느냐이다.
아발론이 앨범 프로듀서인 만큼, 천마가 피처링해준답시고 끼어들면 얼굴을 붉힐 게 뻔하다.
그래서 아발론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물었다.
“그럼··· 천마는 네 노래에 피처링을 해준다던?”
“아니?”
“하하! 그래? 다행···.”
아발론이 급 화색을 띠었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법이다.
그게 토비 무어의 말이라면 더더욱.
토비 무어가 말을 이었다.
“대신 이번 축구 경기에서 내가 이기면 피처링을 공짜로 해준대.”
“···뭐?”
“내가 이리저리 알아봤는데, 걔가 공격수로 나온다더라고. 너네가 수비수잖아. 잘 막을 수 있겠냐? 내 피처링이 걸려있다고.”
아발론은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토비 무어는 눈치채지 못하고 해맑게 말을 이었다.
“설마 이번에도 천마한테 개털리는 거 아니겠지? 제발 한 번만 좀 이겨···”
“야 이 개새끼야!!!!!!!”
.
.
.
그리고 어느덧 친선 경기 당일.
데이비드 베컴이 있는 라커룸.
이곳에는 우리의 개새끼 토비 무어와 아발론도 함께 있었다.
톰과 제리로 구성된 팀 아발론은 빡친 표정으로 라커룸 의자에 앉아있었다.
물론 아발론은 원래 자선경기에 참여가 예정되어있었다.
아무래도 토비와 같이 작업을 하고 있었던 만큼, 이쪽을 통해 킹 감독이 제안을 넣었던 것이다.
마침 아발론 또한 나락 간 평판을 만회할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고, 이 자리에는 유명한 가수, 배우, 감독, 피디 등이 여럿 참여했다.
‘경기 후 애프터파티에서 맥 로스웰에게도 접근해봐야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아발론에게, 천마의 참가는 마른 하늘에 벼락이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 아발론은 다시금 혈압이 올랐다.
그들은 뒷골을 잡고 심호흡을 했다.
“후욱 후욱. 피처링이고 자시고는 나중 문제야. 일단 이번에 무조건 천마를 이긴다.”
“그래. 토비 그 새끼한테 ‘또 천마한테 졌다’라는 말을 들을 수는 없지. 그리고 우리 쪽에 베컴도 있다고. 이길 수 있을 거야.”
친목이니, 평판이니.
그런 것들은 후순위로 미뤘다.
지금 중요한 건 천마를 막는 것.
축구만큼은 천마에게 승리하는 것.
두 사람은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삐익-
공이 골망을 갈랐다.
철썩 -
“.......”
천마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 자선경기 (1) > 끝
ⓒ 연태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