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43화 (143/191)

< 자선경기 (2) >

영국의 유명 축구선수이자, 뛰어난 실력, 더 뛰어난 외모로 유명한 데이비드 베컴.

미국에서 아무리 축구가 비인기 종목이라고는 하지만, 베컴의 인기는 그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 데이비드 베컴!!! 잘생겼다!!

- 이쪽으로 인사 좀 해주세요!!

관객석에서 연신 그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베컴은 본격적으로 몸을 풀었다.

‘그럼 가볍게 몇 골만 넣어주고 가야겠군.’

환호를 보내는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적당히’ 두어 골만 멋지게 넣어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기본적으로 자선경기는 엔터테인의 성격이 강하다.

누가 몇 골을 넣고, 어떤 팀이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이런 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대신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얼마나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주냐가 관건이다.

베컴은 축구공으로 몇 가지 묘기를 보여주었다.

깔끔하게 발등으로 공을 받아내는 그의 순두부 트래핑에 관중들은 환호를 보냈다.

‘음, 이 열기. 역시 경기장이 최고지.’

은퇴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지만, 경기장의 분위기는 베컴을 한껏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엄청나게 날뛸 생각은 없었다.

오늘 경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수나 배우 등 연예인들.

즉, 축구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전 프로 축구 선수가 여기서 너무 날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민망하다.

‘애들 손목 비트는 것도 아니고.’

딱 패배하지 않을 정도로 골을 넣어주고, 관중들의 환호나 즐기면 되리라 생각했다.

워밍업 시간이 끝나고, 레프리가 동전을 던져 공격 순서를 정했다.

선축은 상대 팀.

오늘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베컴은 진형의 가운데서 상대방의 진형을 확인했다.

‘이거 다 아는 얼굴들이구만.’

앞을 보나, 뒤를 보나, 좌우를 보나. 

딱 보면 알 만큼 유명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여기 온 사람들의 실력도 얼추 들은 바가 있다.

‘상대팀에서는 그나마 킹 감독이 축구를 좀 했지.’

전직 미식축구 선수인 킹 감독은 일반 축구도 사랑하기로 유명했고, 그래서 그가 전면에 나설 줄 알았는데 웬걸.

축구의 꽃인 공격수.

선공을 위해 센터 써클 안에 있는 사람이···.

‘···천마?’

베컴도 천마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빌보드에 올라온 천마의 곡은 그도 종종 즐겨 듣는 노래니까.

‘천마가 활을 잘 쏜다는 얘기는 들어봤는데. 저 사람이 축구도 잘했나?’

심지어 천마는 이번 경기에서 최전방 공격수 포지션을 맡은 모양이었다.

그것도 킹 감독을 밀어내고.

‘보통 저 자리에 있으려면 실력이 받쳐줘야 하는데. 저 친구가 킹 감독보다 잘한다고?’

베컴은 의아해했지만 이내 털어냈다.

뭐,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상대가 누구든, 자신이 밀릴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전반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그의 상념을 일깨운다.

삑-

그리고, ‘적당히’ 즐기겠다는 베컴의 생각은 처음부터 틀어졌다.

킹의 패스를 받은 천마는 시작과 동시에 센터 써클에서 그대로 슈팅을 갈겼다.

꽝!

뭔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축구공.

“어, 어, 어!”

뒤쪽에서 들리는 불길한 신음소리.

공은 살짝 나와 있던 이쪽 골키퍼의 머리를 깔끔하게 넘기고.

철썩-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베컴이 턱을 툭 떨어뜨렸다.

“???”

경기 시작 5초.

천마의 첫 골이 나왔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엄청난 환호가 쏟아진다.

이야아으아아아아아아!!!!!!!!

- 천마! 천마!! 천마!!! 천마!!!! 천마!!!!!

- 방금 뭐야? 골 들어간거야?

- 시발 슈팅 지렸드아아아아아!

- 천마재림! 만마앙복!

팬클럽에서라도 온 건지 방금 이상한 구호를 들은 거 같긴 한데, 아무튼 베컴은 감탄했다.

‘···뭐지? 저 다리에서 저런 파워가 나올 수 있는 건가?’

보기에는 특별할 것이 없는 천마의 다리에서 나온 슈팅은, 무려 50M를 날아가 골대에 꽂혔다.

무공으로 만든 실전압축근육과 내공을 이용한 정밀한 조종 덕분이라는 건 영원히 알지 못하겠지만, 아무튼 천마의 슈팅은 엄청났다.

베컴은 천마를 은근슬쩍 곁눈질했다.

‘보기보다 축구 좀 하는데? 괜히 내세운 게 아니라는 건가?’

그래도 뭐, 아직 시작일 뿐이니까.

프로의 경기 조율 능력은 한 골 차이 따위는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다.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흐읍- 

심호흡을 하고.

몇 미터 뒤에서 달려온 베컴은 공을 걷어찼다. 공격수 앞에 신속 정확하게 배달되는 택배 크로스!

팡-

공격수의 발에 찰떡같이 붙은 공은, 호쾌한 소리와 함께 쭉쭉 뻗어나간 후.

아슬아슬하게 골키퍼의 손을 맞고 들어간다.

“그렇지!!!!!!!!”

베컴의 전매특허 크로스가 나오자 관객들은 베컴에게 환호를 보냈다.

- 역시 베컴이네! 킥은 명불허전이라니까!

- 오늘 경기 개꿀잼이네. 오길 잘했다

- 1분에 두 골 실화냐? 이대로면 90분에 180골 가는 거냐!

베컴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감각이 살아있군.’

환호를 즐기던 베컴은 천마를 흘깃 쳐다보았다.

마침 천마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던지라 시선이 마주쳤다. 천마의 입에 걸린 미소가 신경 쓰인다.

‘뭐야? 방금 나를 보고 웃은 거야?’

마치 도발하는 듯한 미소.

그 순간 베컴은 ‘간단히’ 즐기겠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한번 제대로 보여주지.’

킹 음악 감독의 패스로 시작된 천마 팀의 공격.

공을 받은 천마는 본격적으로 드리블을 하며 치고 나왔다.

뒤쪽에서 함께 달려온 킹과 원투패스를 주고받으며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그리고 센터 서클을 벗어났을 무렵,

“뭐야? 막아!”

“다 달라붙어!”

갑자기 속도를 높인 천마는 이쪽 진형을 제 맘대로 휘젓는다.

발놀림이 어찌나 절묘한지 빼앗았다 싶으면 재껴져있다. 

힘은 또 얼마나 쎈지 달려드는 족족 튕겨 나간다.

골문 앞에서 천마를 막으려고 하던 아발론은, 천마의 바디페인팅에 속아서 사이좋게 부둥켜안고 그라운드를 굴렀다.

골키퍼까지 제친 천마는 가볍게 골대 안으로 공을 밀어 넣었다.

베컴은 할 말을 잃었다.

“······.”

말이 되나?

저게 왜 가수야?

베컴이 프로 시절에도 저런 발놀림을 본 적은 없었는데.

마치······.

‘아니다, 이건 너무 갔지.’

베컴은 축구 하면 떠오르는 이름 하나를 머릿속에서 급하게 지웠다.

아무튼.

그것과는 별개로 천마의 저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승부욕이 불타오른다.

‘이대로는 못 참지!’ 

경기가 다시 시작되고, 베컴은 천마가 한 것처럼 개쩌는 드리블 묘기를 보여주며 골을 넣었다.

양팔을 들어 세레모니를 하고 천마와 아이컨택을 하는 베컴.

파지직!

불꽃이 튀어 오르는 것 같다.

경기 시작 5분.

스코어는 벌써 2 : 2.

자선경기가 터지고 있었다.

.

.

.

“헉, 헉, 헉.”

아발론의 톰과 제리는 죽을 듯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 가냐고?

“으아악 시발. 아직 30분이나 남았어?”

이제 막 후반전 시작했을 뿐이다.

톰은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보았다.

스코어는 20 : 18

“...이런 미친.”

아무리 자선경기라고는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다.

야구나 미식축구, 심지어 농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아니, 오늘 무슨 날이야?”

제리는 터져오는 호흡과 함께 빼액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 괴랄한 스코어를 만든 원흉인 두 사람은, 여전히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천마와 데이비드 베컴.

두 사람은 왠지 모를 경쟁심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오, 쌍. 지들만 즐겁지 아주.”

그중에서도 이 미친 짓거리를 시작한 천마.

아발론은 천마를 노려보았다.

“저 새끼는 우리한테 원수진 건가?”

공을 몰고 이쪽으로 올 때마다 아주 지랄도 풍년이다.

괜히 이쪽 다리 사이에 알을 까고,

개인기를 한답시고 농락하고,

공격한다는 놈이 몸싸움을 걸어서 땅을 구르기도 하고,

아까 천마가 찬 공에 맞은 엉덩이는 아직도 아프다.

“야, 근데 왜 우리만 이 꼴이냐?”

그러고 보니 두 사람만 묘하게 만신창이다.

유니폼이 흙투성이가 된 건 기본이요, 머리에는 흙과 잔디가 가득한 게 누가 보면 잔디 인형인 줄 알겠다. 

“...썅. 내가 오늘 죽더라도 천마는 잡고 간다.”

아발론은 마음속 깊이 다짐했다.

어떻게든 천마를 조지고야 말겠다고.

적어도 천마가 땅바닥에 구르는 꼴은 한번 봐야겠다고.

“야야, 온다.”

마침 타이밍 좋게 천마가 이쪽 진형을 향해 드리블하고 있었다.

아발론의 톰과 제리.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천마를 향해 태클을 날렸다.

높게 발을 들고 들어오는 위험한 태클.

자선경기에서는, 아니 일반 경기에서도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위험한 장면이 펼쳐졌다.

하지만 태클을 하는 아발론에게 그딴 건 상관이 없었다.

‘천마가 부상을 입든 말든.’

일단 저놈이 땅에 구르는 꼴부터 봐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일이 항상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폴짝하고 두 사람의 태클은 피해버린 천마는,

“어이쿠, 태클에 걸려 넘어져 버렸네.”

태클한 두 사람의 위로 사뿐하게 굴러줬다. 천근추를 쓴 건 덤이다.

“으아아아!”

“끄으으으!”

그리고 그날.

아발론은 들것에 실려 경기장 밖을 빠져나갔다.

*

자선경기가 끝난 후.

당연히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천마였다.

자선경기라지만 25골 4어시스트라는 정신 나간 기록은 세운 건 유례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시작한 지 5초 만에 넣은 초장거리 골부터, 현란한 드리블로 8명을 제끼는 장면은 벌써 짤로 재생산되어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본 한국 축구팬들은 눈이 돌아갔다.

- 천마는 왜 축구 안해요?

- 축구 국대 넣어주라 제발!

- 천마만 있으면 월드컵도 멱살 잡고 갈듯

- 흠. 잘 모르겠네요. 자선경기라 잘해 보이는 거 아닌가? (싫어요 30,008개)

ㄴ 니 눈깔은 삐었냐

- 축구계가 또 음악계에게 인재를 빼앗겼네요ㅠㅠ

함께 경기를 한 사람들도 인터뷰에서 천마의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오늘 18골 4어시스트를 한 베컴도.

“천마는 음악 말고 축구를 했어야 합니다. 분명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재능이에요. 만약 제가 몇 년만 천마를 일찍 알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마에게 축구를 시켰을 겁니다. 다음 제 자선경기에 무조건 천마를 초대해서 친구들에게 이런 재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네요.”

4골을 넣은 토비도.

“졌잘싸!”

“???네???”

“아 한국어 몰라요?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인데. 솔직히 천마 저 미친놈을 상대로 이정도 했으면 잘한 거지.”

인터뷰를 하는 모든 사람이 천마를 극찬했다.

천마에게 묻히는 감이 있었지만, 아발론의 부상도 역시 큰 화제가 되었다.

[팀 아발론, 자선경기 도중 부상 당해··· 전치 16주]

[자선 경기 중 일어난 아찔한 태클··· 팀 아발론 ‘우리가 다친 건 모두 천마 탓’]

[아발론의 위험한 태클··· 토비 ‘아발론의 태클은 미친 짓’]

자선경기에서 부상을 당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보통 부상을 피하기 위해 슬렁슬렁 뛰니까.

더군다나 자선경기에서 그따위의 위험한 태클을 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아발론의 잘못이 분명한 사고였다.

하지만 아발론의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 전치 16주?

- 헐 씨 미쳤나봐ㅠㅠㅠㅠ

- 자선경기에서 이런 부상 나오는 거 처음 봄;;;;

특히 부상을 입힌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천마였다.

천마는 예전에 페스티벌에서 아발론의 관객을 모두 데려간 전적이 있기에, 두 팬덤 사이에 감정은 썩 좋지 않았다.

- 사람이 다쳤는데 저쪽은 짤파티하고 난리났네

- 느그 새끼 골 많이 넣어서 좋겠어요ㅋ

- 관객 뺏어가는 가수 수준. 팬들도 똑같은 듯

아발론 팬덤 측에서 시비를 걸자, 천마 팬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번에도 아발론이 먼저 페스티벌 내팽개치고 튀었고, 이번에도 아발론이 먼저 태클을 걸었다.

- 말은 바로 하자. 자기가 먼저 태클걸고 자기가 자빠졌더만

- 겨우 그걸로 전치 16주? 저쪽은 지나가다 뺨맞으면 전치 8주쯤 나오나보네ㅋㅋㅋㅋ

- 솔직히 스치듯 굴렀는데 전치 16주는 에바 아닌가?;;;;

- 쪽팔리면 짜져있던가 왜 여기까지 와서 지랄이야 지랄이

표면에서는 두 집단간의 갈등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각종 커뮤니티 및 SNS 음지에서는 물밑 싸움이 치열하게 번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일이 터져버렸다.

토비의 앨범을 프로듀싱하기로 한 아발론이 소리쳤다.

“아 씨발 다 때려치우라고!”

< 자선경기 (2) > 끝

ⓒ 연태량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