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힙합하신다 (1) >
유리창을 뚫고 밝은 아침 햇살이 들어온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햇빛이건만, 병실 안에 있는 두 사람은 아무래도 제대로 된 하루를 시작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
그걸 바탕으로
뉴앨범(천토)
공동이름
리스닝파티
사람들이 곡을 듣는데
단순히 힙합 앨범이 아님
힙합으로 치기에는 너무 멜로디컬함
하지만 힙합의 정신을 가지고 있음
사회 비판적임
힙합은 아니지만 힙합스러운
이 앨범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기대함
천마를 향해 태클을 날린 아발론.
그들은 그 여파를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상태는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먼저 양쪽 다리에 둘둘 감고 있는 통깁스.
골절 및 인대 파열이란다.
“야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한다고?”
“의사가 한 달은 가만히 있으란다. 완치까지는 두 달. 재활까지는 네 달.”
“...시발.”
적어도 한 달은 꼼짝없이 누워서 휴식을 취해야 할 판이다.
다리만 다친 것도 아니다.
“이봐 톰. 그쪽에 있는 음료수 하나만 주라.”
“나 오른손 박살 난 거 잊었냐?”
“아, 그랬었지. 쏘리.”
왠지는 모르겠지만 손에도 칭칭 붕대를 두른 채, 콩트를 찍고 있었다.
태클을 하다 깔린 것 치고는··· 조금 크게 다친 두 사람이었다.
팔과 다리가 이 모양 이 꼴인데.
당연히 음악은 물 건너갔다.
음악은커녕 혼자서는 밥도 못 먹는 처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멍하니 천장을 보며 푸념을 하는 와중, 아발론의 병실에 누군가 들어왔다.
병문안을 온 토비 무어였다.
“홀리! 이건 또 뭐야? 붕대는 왜 그렇게 칭칭 감고 있냐? 둘이 그러니까 아주 병신 세트 같은데?”
“뭐? 이 새끼가!!”
“야. 참아, 참으라고.”
아발론이 성질을 내든 말든, 토비는 자연스럽게 눈에 보이는 음료수를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크. 이거 맛있는데?”
‘...이거 하나 남은 건데. 나쁜 새끼.’
음료수를 노리고 있던 아발론은 눈으로 욕했지만, 토비 무어는 알아듣지 못했다.
음료수를 깔끔하게 비운 토비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너네 몸은 좀 어떠냐? 괜찮아?”
“...그래. 괜찮아.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온몸에 붕대를 감고 허공에 팔다리를 고정시켜놓은 사람이 그리 말하니 설득력이라고는 1만큼도 없었다.
토비는 음료수를 하나 더 까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 그러기엔 빌어먹을 미라 같아 보이는데?”
“.......”
아발론은 마음속으로 '참을 인' 자 하나를 새겼다.
‘이 시벌롬이. 그럼 왜 물어본 건데.’
그래도 병문안이랍시고 여기까지 와준 놈이다.
애초에 토비 무어에게 기대가 없었던 아발론은 애써 참아냈다.
그들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부상으로 인한 프로듀싱 작업의 지연.
아발론은 먼저 책임회피를 위한 떡밥부터 깔았다.
“이 황금 같은 시간에 병실에서 뭐하는 건지. 아무튼 천마 그 새끼가 끼면 되는 일이 없어.”
토비 무어는 떨떠름하게 되물었다.
“천마는 또 왜 나와?”
“왜긴. 이게 다 천마 때문이잖아. 솔직히 그놈 우리 태클 멀쩡하게 잘 피해놓고, 그런데 갑자기 우리 쪽으로 넘어진다고? 그게 말이 돼? 걔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다치지는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를 듣던 토비 무어는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이거 미친놈들인가?’
솔직히 아발론과 같은 팀이었던 토비가 보기에도 태클은 심한 구석이 있었다.
그딴 태클을 하면 쌍욕을 먹어 마땅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더군다나 그딴 태클을 날리고서도 상대의 부상 따위는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의, 스포츠맨십이 결여된 태도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토비 무어는 할 말은 하는 성격이다.
“야.”
“엉?”
“이봐, 태클 건 사람은 너희 아니냐? 사과는 니놈들이 천마한테 해야지.”
아발론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뭐? 다친 게 우리인데 왜 사과를 해. 그리고 너 병문안 온 사람 태도 맞냐? 아니, 병문안은 둘째치고 같이 작업도 하고, 경기도 같은 팀이었는데 편들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어. 존나 어렵네.”
“뭐? 야, 너 이 새끼···어억!”
“인마, 참아! 네가 참아.”
성질이 돋은 아발론 중 하나가 뒷목을 잡았고, 다른 하나가 그를 말렸다.
그렇게 겨우 소강상태가 되었지만, 당연히 분위기는 박살 났다.
아발론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용건이나 빨리 꺼내고 토비를 돌려보내는 게 심신 안정에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긴 떡밥을 깔고, 꾹 참고, 토비의 눈치까지 봤던 건.
바로 다음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아발론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말이야 토비. 보다시피 우리 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 아무래도 당장 작업을 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거든. 작업을 한 달 정도만 미룰 수는 없을까?”
토비는 아발론의 상태를 쓱 훑어보았다.
다리는 골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팔도 골절.
여기에 재활까지 받으면?
아무리 봐도 한 달 안에 음악을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은 꼬라지가 아니다.
토비가 물었다.
“야. 솔직히 말해봐. 니네 진짜 한 달 내로 음악 할 수 있겠어?”
“...못하지.”
“그럼 내 앨범 프로듀싱은 어떻게 할 건데?”
“...못하겠지?”
“이거 퍼킹 무책임한 놈들이네?”
한심하다는 듯한 토비의 눈빛에 그들은 모멸감을 느꼈지만, 그래도 두 번째 참을 인을 마음속에 새겼다.
하지만 토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쯧쯧쯧. 그러게 왜 천마한테 태클을 해서 이 꼴이 나냐. 그렇다고 천마를 제대로 막은 것도 아니잖아? 너네가 몇 번만 막았으면 우리가 이겨서 피처링도 받았을 거 아냐.”
“.......”
골절상을 입은 아발론을 토비가 팩트로 두드려 팼다.
이정도면 최소 복합골절이다.
누워있는 아발론의 머리에 핏대가 섰다.
···부글부글
천마.
천마.
그놈의 천마!
세 번째 '참을 인' 자를 새겨보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던 아발론은,
“그래 씨발 다 때려치우라고! 가서 천마랑 실컷 쎄쎄쎄나 해라, 이 개새끼야!”
눈이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날, 토비와 아발론의 사이도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
나는 흔들리는 차창 밖을 보며 얼마 전 토비 무어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 헤이 천마! 나 이번에 아발론이랑 대판 싸웠다.
“자랑이냐?”
- 하핫 그 새끼들 아주 소인배더라고.
“음. 그렇기는 하지. 그래서 뭐가 문제인데?”
- 아니 그게 말이야.
토비의 혓바닥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 아발론이 내 앨범 프로듀싱을 맡고 있었거든. 그래서 준비하던 앨범 작업이 멈춰버렸지 뭐야? 이번에는 방식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트랙마다 다른 프로듀서에게 맡기려고 했는데. 내가 공들이고 있는 트랙만큼은 직접 작업하는데 뭔가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답지않게 서론이 긴 우리의 토비.
- 그 저기, 그래서 트랙 작업에 참여해줄 수 있을까? 프로듀싱은 바라지도 않고, 딱 피처링만이라도. 하이포닉이 네 보컬 솜씨를 그렇게 극찬하더라고.
피처링이라.
“그런데 술 내기도, 축구 내기도 네가 다 진 거 아니야?”
- 아하하하하. 그건 뭐 그렇지만. 어떻게, 한번 해주면 안 될까? 내가 몸값은 최고로 쳐줄게.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마음이 기울기는 했다.
토비가 나를 만날 때마다 그놈의 피처링 이야기를 해댔던 것도 있고, 아발론이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서 괜히 토비의 앨범 작업에 지장이 생겼다는 말이 신경 쓰였다.
‘천근추는 조금 심했나?’
마우스 질은 할 수 있게 팔 정도는 살려줄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힙합이라.
‘내가 래퍼랑 협업을 한 적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다.
꽤 많은 가수들과 작업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힙합과는 인연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힙합이라는 장르와 연결고리를 만들어두는 것도 좋아 보였다.
고민은 짧았다.
“오케이. 그럼 해줄게.”
- 우와아아악 홀리 쉿! 잘 생각했어. 일단 내 작업실에서 얘기할까? 여기가 어디냐면···.
그런 연유로 지금 나는 차를 타고 토비의 스튜디오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침 토비의 스튜디오가 있는 곳은 내게도 익숙한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그중에서도 바로 ‘컴튼’에 있었다.
콤프턴이라고 발음했다가 토비가 난리를 치는 통에 확실히 기억했다.
컴튼.
힙합의 본고장인 미국 내에서도 힙합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다.
‘힙합의 성지라니. 기대가 되는군.’
컴튼 출신의 유명 래퍼들도 한가득이라고 한다.
그들의 정기를 가득 가지고 있는 곳이라니.
‘정도 무림으로 치자면 소림이나 다름없으려나? 아니면 천마신교의 비밀을 담고 있는 천화전?’
그게 뭐든 분명 대단할 것이다.
그런데.
‘이거 성지 맞아?’
성지라고 하기에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좀···.
일단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블록마다 보이는 폴리스 라인.
주차된 차에는 무언가 관통하고 지나간 흔적까지 보이는데.
타앙-
‘...방금 그건 총소리인가?’
슬럼이라는 단어를 시각적으로 풀어놓으면 딱 이럴까?
무림으로 치면··· 산속의 화적떼나 장강수로채를 보는 듯했다.
내가 창밖을 보며 황망해하자 운전기사가 말을 걸었다.
“이 동네는 처음인가 봐요.”
“뭐, 그렇죠.”
운전기사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적지는 이 근처 확실하죠?”
“네 컴튼 맞아요. 왜요?”
“걱정이 되서 그렇지요. 여긴 청년 혼자서 오기는 위험한 곳인데···.”
딱 봐도 안전해 보이는 동네는 아니다. 나는 그냥 웃으며 택시비와 함께 팁을 주었다.
꼭 대로로만 다니라는 기사의 걱정을 뒤로하고 나는 차에서 내렸다.
목적지의 주소는 확실히 머릿속에 들어있다.
핸드폰 지도 어플에도 야무지게 목적지를 입력해놓았다.
이제 토비의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로 들어가기만 하면 끝인데.
“···그런데 여기는 어디지?”
한국과는 다르게 지도를 보고 주소를 찾아가는 게 쉽지 않다.
도로는 개판이고, 표지판은 정돈이 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몇몇 골목에는 그놈의 폴리스 라인이 길을 막고 있다.
“...나 설마 길을 잃은 건가?”
일단 대충 지도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걸음을 따라, 주변에서 따라붙은 시선들이 느껴진다.
컴튼에 거주하는 사람들.
이방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대부분 입에 담배 한 개비 정도는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손에 술병을 든 놈들도 부지기수다.
‘저건 마약인가?’
역한 냄새가 나는 마약을 피우면서 허리춤에 총을 과시하듯 드러내는 놈들도 있었다.
행동력 좋은 몇몇 놈들은 벌써 뒤를 따라오기까지 했다.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빨리 토비의 스튜디오로 들어가면 되니까.’
라고 생각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어딘지 모를 곳에 와버렸다.
코너를 돌자 눈앞에 보이는 건 막다른 골목길.
‘토비한테 전화라도 해야 하나.’
바로 그때, 뒤쪽에서 기다렸다는 듯 갱스터들이 나타났다.
마침 잘됐네.
“야, 토비의 스튜디오는 어디로 가면 되냐?”
“뭐 토비?”
그 질문이 퍽이나 재밌었는지 저들끼리 히히덕거렸다.
“토오오비?”
“낄낄낄낄. 야 들었어? 저 동양인이 토비랑 작업하러 왔다는데?”
“여기 오는 새끼들은 맨날 토비만 찾더라.”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침을 찍 뱉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뭔 동양인이 토비를 만나려고. 토비가 너 같은 새끼랑 음악을 왜 하냐. 그러지 말고 여기서 우리랑 놀자. 응? 재미있게 해줄게.”
“진짜? 재미있게 해줄 거야?”
“당연하지. 대신 돈은 네가 내는 거다? 팬티까지 한번 털어볼까?”
놈들이 위협적으로 둘러싸기 시작했다. 나는 빙긋 웃었다.
그래. 오늘 재미 좀 보자.
< 천마님 힙합하신다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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