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님 힙합하신다 (2) >
차선우는 현대로 돌아와서 제대로 싸워본 적은 없었다.
말마따나 도시 한복판에서 드잡이질을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것도 칼을 들고서 하는 드잡이질이라면 평생 가야 할 일이 없겠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상황은 퍽 신박했다.
차선우는 눈앞에서 나이프를 빙글빙글 돌리는 갱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야. 우락부락한 놈들이 칼을 들고 위협하는 건, 강호 초출 때나 봤던 광경인데.’
괜히 감회가 새로워졌다.
음공천마의 독문 무공은 음공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말이 주먹질을 못 한다는 건 아니다.
오늘은 ‘손맛’을 좀 보고 싶었다.
차선우는 손을 풀며 말했다.
“요즘 애들은 칼도 귀여운 거 쓰네. 날이 그렇게 짧아서야 뭐 자르기라도 하겠어?”
“···뭐?”
갱스터들은 어이가 없었다.
비리비리하게 생겨서, 한주먹거리도 안 되어 보이는 놈이 뭐라고 지껄이는 건가?
차선우는 거기에 한술 더 떴다.
“총 가지고 있으면 미리 꺼내. 지금 안 꺼내면 쏠 틈도 없으니까.”
“진짜 미친놈인가? 하긴 제정신이 박혔으면 여기에 혼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대장은 차선우의 배짱 하나는 인정해주기로 했다.
그가 부하에게 지시했다.
“빨리 조져버려.”
갱스터들은 각자 무기를 들고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그리고 한 놈이 칼을 휘두르는 순간 차선우가 여유롭게 피했다.
“전쟁터에서 쉽게 죽는 놈들은 세 가지 특징이 있지.”
음산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첫째, 운이 없거나.”
뻐어억!
그저 주먹을 휘둘렀을 뿐인데 북 터지는 소리가 났다.
주먹질은 오랜만이라 힘 조절에 실패했다.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던 놈은 그대로 기절했다.
운이 없었다.
“둘째, 보는 눈이 없거나.”
“으와아아아아!”
한 놈이 당하자 나머지 놈들은 눈이 돌아가 떼거지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몇 명이 달려들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빠악 빡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네 사람이 쓰러졌다.
“셋째, 지휘관을 잘못 만났거나.”
순식간에 갱들이 바닥에 누웠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건 대장 하나뿐.
대장이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려고 했지만, 차선우가 그의 손목을 지그시 잡아 눌렀다.
뚝
그대로 손목이 부러졌다.
“으아아아아악!”
차선우는 대장을 바닥에 집어 던진 후, 발로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뻐억-꽥!
“어디서 총을 꺼내 들려고 하고 있어. 사람 위험하게. 쯧.”
대장은 의식이 흐릿해지던 와중에도 억울했다.
···니가 꺼내라며.
.
.
.
한편, 토비는 차선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온다는 애가 왜 아직도 연락이 없어?”
주소도 확실하게 찍어줬고, 출발한다는 문자도 받았다.
그 이후로 약 세 시간쯤 지났으니 진작 도착해서 식사를 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무슨 시비라도 붙은 건가.”
물론 이것도 영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컴튼에서 길거리를 지나다가 시비가 붙는 건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토비는 여기 토박이이고, 여기에 있는 힙합 레이블은 갱단과 두루두루 유착하고 지내서 비호를 받는다. 차선우가 자기 손님이라고 미리 말해뒀으니 별일이야 없을 거다.
그리고 갱스터도 생각이 있으면 차선우를 건드리지 않겠지.
‘생긴 건 곱상하게 생겨서 힘은 드럽게 센 놈이니까.’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토비는, 차선우가 ‘생긴 건 곱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터프한 야생의 사나이들이 가득한 컴튼.
거기서 연약해 보이는(?) 동양인 청년이 이곳 토박이의 눈에는 어떻게 다가올지 그제서야 떠올린 것이다.
토비는 자기 머리를 퍽퍽 치며 황급히 일어났다.
“어이구 이 멍청아. 아발론이랑 같이 지내더니 머리가 왜 돌이 됐냐.”
아니나 다를까.
나가려는 순간, 근처에서 왁자지껄한 싸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썅.”
불길한 예상은 틀리지 않는 법.
“씨발! 천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는데.”
토비는 그대로 달려 나갔다.
싸움이 벌어진 장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곳에 검은 형제들이 우글우글 모여서···.
“어라?”
···나란히 손을 들고 서 있었다.
심지어 보통 싸움이 나면 숨기 바쁜 꼬맹이들도 구경하러 나왔다.
“우와 아저씨들 벌선다 벌서!”
“저 형 댑따 쎄다. 저도 가르쳐주세요!”
그리고 걱정하던 차선우는, 모든 이의 시선을 받으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야이 새끼들아. 사람한테 총을 쏘면 아프잖아. 너네가 이런 거 들고 다니면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니.”
입으로는 훈육을 하면서 손은 착실하게 한 명 한 명을 후려갈기고 있었다.
뻐억-켁!
“내가”
뻐억-켁!
“토비 손님으로!”
뻐어억-케엑!
“왔다고 했냐 안 했냐!”
그 광경을 지켜보던 토비는 잠시 묵념했다.
세상에 게토를 휩쓸던 갱스터들이 불쌍하게 보일 줄이야.
이러다가 친구들 대가리가 깨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토비는 개입했다.
“이봐 차선우.”
차선우가 피 묻은 주먹을 들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제서야 토비를 발견한 차선우가 미소지었다.
“어? 이제 왔어?”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
방금 차선우에게 제압당한 사람의 수는 스무 명가량 되었다.
시작은 일곱 명이었지만, 싸움이 늘 그렇듯 도망친 놈이 자기 무리를 더 불러왔고.
오랜만에 느끼는 손맛에 신난 차선우는 지원군까지 모조리 때려눕혔다.
아무래도 싸움의 규모가 커진 덕분에 경찰까지 왔다.
그리고 현장을 목격한 경찰은 할 말을 잃었다.
“정말로 당신 혼자서 이들을···?”
토비 무어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정당방위에요.”
총과 칼을 든 스무 명이, 무고한 시민 한 명을 담그려고 했으면 정당방위가 맞다.
그 시민이 보통 시민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의 발단이었지만 아무튼 정당방위는 확실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컴튼은 원래 사건사고가 많은지라, 총기 발사도 없는 이런 주먹 다툼까지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피곤하다.
심지어 차선우는 외국인 출신의 유명 아티스트라 국제분쟁으로 이어지면 더더욱 피곤하다.
거기에 피해자(?) 역시 ‘아무 일 없었습니다!’를 외치며 합의를 원했다.
덕분에 경찰이 적당히 훈계하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토비는 사건에 휘말릴 뻔한 차선우를 무사히 작업실로 데려왔다.
“아이고. 이놈의 컴튼은 뭐 하나 조용히 지나가는 법이 없네.”
토비 무어는 우는 소리를 했지만, 사실 차선우라서 이 정도 해프닝으로 끝났지, 잘못했으면 유혈사태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우는 소리로 끝나지 않고 그냥 울고 있겠지.
‘내가 손님을 초대했으면 잘 살폈어야 했는데.’
이건 토비 자신의 실수가 맞았다.
토비 무어는 다혈질에 성격파탄자이지만, 잘못은 바로 인정하는 편이다. 그는 차선우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내가 좀 더 신경 썼어야 하는 건데.”
“어? 간만에 몸 좀 풀고 좋았는데 뭘.”
차선우는 정말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토비에게는 그 모습이···.
‘...시발 존나 쿨하잖아!’
멋있어 보였다.
술도 잘 마셔, 축구도 잘해, 싸움도 개잘해, 성격도 쿨해.
토비 무어는 차선우가 점점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차선우는 토비의 스튜디오에 도착한 차선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스튜디오라기보다는 골방에 가깝다.
옛날에 쓰던 잡동사니 사이로 최신식 장비가 부조화하게 놓여있다.
마치 이사하다가 만 느낌이랄까.
차선우는 고개를 기우뚱했다.
“너 여기에 살고있는 거 맞냐?”
“아, 그게. 나도 여기 돌아온 지 얼마 안 됐거든. 한 2주 됐나? 원래는 말리부 쪽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이번에 옮기느라 힘 좀 뺐지.”
말리부 해안은 아름다운 해양 절벽으로 유명한 부촌이다.
수많은 셀럽의 저택이 있고 매일 같이 파티가 벌어진다. 어느 날에는 해양 절벽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작업할 수도 있을 테고, 그건 분명 죽여주는 일이겠지.
그래서 차선우는 궁금해졌다.
말리부가 토비 무어와 더없이 어울리는 곳처럼 보이는데, 컴튼으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왜 컴튼으로 돌아온 건데? 작업하기에는 거기가 더 편할 텐데.”
“말이라고 해? 편한 정도가 아니라 끝내주지!”
토비 무어는 말리부가 얼마나 향락적이고 개쩌는지 설명하면서,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차선우는 미국 냉장고에서 나오는 맑은이슬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게 왜 거기 있냐?”
“아 이거? 니가 지난번에 만들어 준 한국식 칵테일이 맛있더라고! 이번에 방한 갔다 온 친구 통해서 쟁여놨어.”
“······.”
그렇게 두 사람은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며 그들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술이 들어간 토비 무어는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토비 무어는 원래 컴튼에서 나고 자랐다.
어린 나이에 성공해서 이곳을 탈출했고 거물들과 어울리며 화려한 삶을 이어 나갔지만.
“그러다 보니 음악이 밋밋해지더라고. 사실 아발론과 작업하는 내내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이었어. 내가 담아내고 싶은 게 점점 피상적으로 되는 기분이랄까. 아발론이 부상당해서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내 쪽에서 먼저 손절 쳤을걸. 아무튼 그래서 컴튼으로 돌아왔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럼 컴튼에는 네가 담고 싶은 게 있다는 건가?”
“몰라. 그걸 이제부터 알아보려고.”
“···한결같이 대책 없네.”
차선우는 어쩌면 이 일이 트랙 하나를 피처링해주는 데서 끝나지 않을 거라는···강한 예감을 받았다.
토비 무어와 대화를 하다보니, 차선우는 첫 강호행 때 라이브하우스에서 알렌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어떤 면에서는 두 사람이 비슷한 거 같기도 한데.’
물론 알렌은 진중하고, 토비 무어는 경망스럽기 짝이 없는 놈이지만.
알렌에게서 끈질긴 열정을 보았던 그 당시처럼,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토비 무어 역시 깊은 속에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차선우는 그게 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차선우는 자신 역시 함께 불타오를 수 있을 걸 느꼈고,
무언가를 위해 뜨거울 수 있다는 건 늘 기꺼웠다.
이번에도 술이 많이 들어갔고, 촬영하는 카메라도 없었기에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벌써 혀가 꼬부라진 토비 무어가 떠들어댔다.
“여기 게토에 있는 놈들은 일반적이지 않지. 오늘 네가 겪은 일만 해도 봐봐.”
차선우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태도를 떠올렸다.
그가 이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보여준 건, 상냥한 인사가 아니라 무시와 빈정거림, 그리고 약탈이었다.
차선우는 토비 무어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알 듯했다.
“폭력부터 저지르고 보지.”
토비 무어의 표정이 경멸적으로 변했다.
“맞아. 여기서는 폭력을 학습하고, 자라나면 갱스터가 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하여간 병신같은 새끼들.”
토비 무어는 폭력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긋지긋한 곳을 싫어했고, 성공하자마자 탈출했다.
하지만 병신같은 새끼라며 욕하면서도 이곳에 돌아온 것은 왜일까.
차선우는 확인하고 싶었던 ‘무언가’의 흔적을 언뜻 발견한 듯했다.
“사실 이놈들도 이건 아니라는 걸 알아. 그런데 보고 자란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거야. 그러니 바뀌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지. 병신 같은 새끼들···.”
열을 내며 외치던 토비 무어의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흐려졌다.
차선우는 그 속에서 고민을 읽고, 슬픔을 읽고, 옅게 깔린 분노를 읽었다.
차선우가 보고 싶었던 건, 토비 무어가 찾고 싶었던 원동력은.
바로 분노였다.
“솔직히 갱스터보다 래퍼가 더 멋있지 않냐? 시발. 하여간 멍청한 새끼들! 내가 눈앞에서 랩을 하는데도 왜 갱짓만 처하고 자빠지냐고.”
차선우가 토비 무어를 볼 때마다, 그는 항상 화가 나 있었다.
어쩌면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분노를 가장 잘 폭발시킬 수 있는 곳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울분에 가득 차서 쏟아내고 싶은 게 있기 때문에.
이번 작업의 방향성이 잡혔다.
토비의 마음속에 막연하게 자리하던 분노를 찾아낸 게 차선우였으니, 그 분노를 키워주는 것도 그의 몫이겠지.
차선우의 역할이 피처링에서 음반 공동작업으로 커지는 순간이었다.
차선우가 미소지었다.
“너 빡쳤구나?”
거나하게 취한 토비 무어가 마주 씩 웃었다.
“어. 존나게.”
그럼 그 분노를 죽이지 마라.
Don’t Kill the Rage.
미국을 불타오르게 만들 두 사람의 앨범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천마님 힙합하신다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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