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46화 (146/191)

< 디스전 (1) >

보통 래퍼의 앨범은 볼륨이 큰 편이다. 스무 곡, 서른 곡씩 꽉꽉 채워서 발매하는 게 일반적이다.

토비 무어의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아발론과 몇 개월 동안 작업하며 수십 개의 곡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토비는 단호하게 그것들을 전량 폐기했다.

“이건 쓰레기야.”

토비가 이번 앨범에서 전하고 싶어 했던 메시지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피상적으로 대충 듣기 좋게만 포장해놓은 비트의 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렇게 폐기한 후, 토비 무어는 천마에게 말했다.

“이번 앨범은 나랑 같이하자.”

“좋지.”

천마 역시 토비와 협업 앨범을 내는 건 찬성이었다.

분노를 재료로 삼았을 때 어떤 앨범이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근데 너는 레이블 대표와도 얘기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뭔소리야.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는데.”

원래 이 앨범은 토비 무어가 정규앨범으로 내려고 했던 거다. 

그만큼 그의 커리어에서 중요했고, 그런 앨범을 다른 가수와 협업 앨범으로 돌리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일 수 있다.

하지만 토비 무어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그리고 천마가 유일하게 그걸 꿰뚫어 봤지.’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도 모르고 있던 걸 끄집어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만큼 천마를 빼놓고 작업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렇게 두 사람은 협업을 시작했다.

“토비. 너 곡 만들어 둔 거 있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스부터 전부 까보자.”

“내 드라이브 봐봐. 너는······왓더! 설마 이거 다 네가 작업한 거야?”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다 보니 갈 길이 구만리였지만 호흡은 척척 맞았다.

“이 트랙에서는 가스펠로 가고 싶단 말이야. 성스러운 느낌이 들도록.”

“오케스트라는 어때?”

“그런데 나는 현편곡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럼 킹 음악감독을 불러보자. 그 양반은 영화음악 하잖아.”

“오우. 그것도 좋겠군.”

차선우는 앨범 한 장의 플로우를 기획하고, 어떻게 하면 메시지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토비와 함께 끊임없이 고민했다.

작업은 즐거웠다.

덕분에 시간도 빠르게 흘렀다.

어느덧 작업을 한지도 훌쩍 지나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 두 달 사이, 차선우도 컴튼에 익숙해졌다.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길을 나섰는데 골목을 도는 순간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어? 저 새끼는?”

차량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한 남자.

지난번에 차선우에게 두들겨 맞은 갱단의 조직원이었다.

두 달 전에 신고식을 거하게 치른 이후, 차선우는 컴튼에 스며들었고 갱스터들과도 안면을 텄다.

원래 이쪽 힙합 레이블은 갱단과 인연이 깊었고, 마침 사달이 벌어진 갱단의 보스와 토비네 레이블 대표도 아는 사이였다.

당시 그 대표는 얼굴을 붉혔던 일을 잘 풀어보자며 술판을 벌였다.

- 하하하. 지구는 둥그니까 손에 손을 잡고 걸으면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차선우는 그날 술 몇 번 마시고 레슬링도 몇 번 해준 다음, 진짜로 모두와 친구가 되었다.

어쨌든.

저기서 차량을 유심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조직원 녀석과도 좀 친해졌다.

차선우는 다가가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빠악!

“어떤 새···보스!”

“니 보스 아니다. 뭐하냐?”

“아니, 다름이 아니라 차가 예쁘게 생겼잖아요. 주차도 잘해놨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그래서 훔치기에 딱 좋아 보인다?”

조직원이 헤헤 웃었다.

“저도 먹고살아야···악! 왜 때려요!”

차선우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훈계를 했다. 물론 손은 멈추지 않으면서.

“아이고 이 화상아.”

악!

“먹고 살려면”

악!

“차량 절도를 할 게 아니라”

악!

“차량 정비를 할 생각을 해야지.”

악!

토비 무어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말랑한 녀석이었다.

랩으로 사람들의 영감을 이끌어내고, 현실까지 바꿔보고 싶어 했지만.

차선우의 생각은 달랐다.

‘더 쉽고 빠른 방법이 있는데 왜?’

고대로부터 훈육(물리)은 최고의 교육법이었다.

만약에 그걸로도 안된다?

‘그럼 매가 부족한 거지.’

아무튼.

차선우는 갱스터가 보일 때마다 잡아서 가르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놈들이 하루아침에 변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직하게 일하는 것보다 약 팔아서 돈 버는 게 더 쉽고, 편한데. 

그 생활방식을 바꿀 이유가 없겠지.

그래도 이렇게 한 놈씩 차근차근 훈육하다 보면, 이들도 현실을 바라보고 뭔가를 깨달을 것이다.

당장 이놈을 봐라.

“아아아! 아파 아프다고! 기술 배울게요. 지금 가서 배울게요.”

차선우는 냅다 도망치는 조직원을 보며 혀를 찼다.

“아직 어린놈이 커서 뭐가 될른지.”

“···그래도 저놈이 너보다는 나이가 많은데.”

차선우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돌아보았다. 

오늘 만나기로 한 토비가 떨떠름한 얼굴로 차선우를 보고 있었다.

“···너 되게 적응 잘한다? 이제 거의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 같네.”

그 말에 차선우는 문득 천마신교가 떠올랐다.

이곳 사람들은 마인들과 비슷한 면모가 있다.

“더 험한 곳에서 구르다 보면 이런 애들은 귀여워 보이지.”

어떤 면에서는 차선우가 있었던 천마신교가 조금 더 험할지도.

“응?”

“아니다. 갈까?”

그렇게 그들이 향한 곳은 바로 미국의 동부.

그것도 뉴욕이었다.

*

요즘 차선우는 토비와 거의 붙어 살다시피 하고 있지만, 오늘 밖에서 이렇게 만난 건 따로 갈 곳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리스닝파티.

두 사람은 그곳에 초대받았다.

그것도 세계적인 팝스타인 맥 로스웰이 새로운 음반 발매를 앞두고 연 파티였다.

맥 로스웰은 제작 관계자와 몇몇 동료 가수들을 불러서 본인의 음악을 먼저 들려주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리스닝파티가 개최되는 곳은 맥 로스웰의 고향인 뉴욕 퀸즈.

그렇게 두 사람은 서부에서 동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리스닝파티가 열리는 건물 주변에는 벌써부터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뉴욕에 사는 모든 기자가 몰려온 건지, 엄청난 수의 기자들이 연신 플래시 세례를 퍼붓는다.

차선우는 익숙하게 포즈를 몇 번 잡고 사진을 찍은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1층 홀부터 앨범 컨셉에 맞게 꾸며놓았다.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듯한 검은색과 흰색의 회오리를 보며 차선우는 생각했다.

‘혹시 컨셉이 사차원인가?’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마천루의 꼭대기.

내리기 직전, 한껏 차려입은 토비가 말했다.

“이번 리스닝파티는 엄청 화려할 거야. 맥 로스웰이 이번에 작정하고 사람들을 불렀더라고.”

“그래?”

차선우도 당연히 맥 로스웰이 누군지는 알고 있다.

맥 로스웰은 페니 로페즈와 같은 소속사에 있는 가수였다.

페니 로페즈가 만날 때마다 소속사 최고의 아웃풋이라며 자랑하길래 이름을 들어봤는데, 마침 지난 자선경기에도 그가 참여했었다.

차선우와 같은 팀으로 뛰어서, 그는 맥 로스웰과 안면을 틀 수 있었다.

다만,

“맥 로스웰은 별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그 아저씨가 그렇기는 하지. 마침 저기 오네.”

엘리베이터 맞은편에서 맥 로스웰이 걸어오고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에 굵은 테 안경.

청바지에 티셔츠만 걸치고 있는 그는, 동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저씨 같았다.

명성과는 다르게 수더분한 너드남.

그게 바로 맥 로스웰이다.

맥 로스웰은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지난번에 경기하고 잘 들어갔어요?”

“네. 오늘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차선우는 지난 자선 축구 경기를 떠올렸다.

자선경기인 만큼 그날 보안은 일반 축구 경기보다 헐렁했다. 

그러다 보니 전반전이 끝나갈 무렵, 관객이 경기장에 난입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마침 시큐리티는 경기장 구석에, 맥 로스웰은 난입한 관객의 바로 정면에 있었다.

그리고,

‘온 김에 같이 셀카나 하나 찍고 가죠.’

맥 로스웰은 그대로 난입한 관객과 함께 사진을 찍은 후 돌려보냈다···.

참고로 그날 경기가 끝난 후, 맥 로스웰은 그를 알아본 팬이 같이 게임을 하자고 해서 팬의 집에 가서 게임까지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냥 소탈한 아저씨였지.’

그런 맥 로스웰이 벌이는 화려한 파티라니.

여러 의미에서 특별할 거란 생각이 든다.

*

리스닝파티가 열리는 꼭대기 층에는 뉴스에서나 보던 셀럽들이 있었다.

팝의 여왕인 에바 크리스틴부터 시작해서.

프랑스 출신 유명 프로듀서인 샤카 엑스, 동부 힙합을 대표하는 원달러, DJ이자 큐레이터로도 유명한 레널드 등등.

토비가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에 있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메인스트림이지.”

메인스트림.

그렇다.

여기가 바로 미국 음악의 주류였다.

이들 중 한 사람만 골라서 기사를 써도, 기자들의 한 달 먹거리가 나오는.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관록과 영향력을 갖춘 사람들이 모인 장소.

차선우가 마침내 이곳에 발을 디딘 것이다. 

하지만 영 낯설지만은 않았다.

“아는 얼굴들이 많군.”

차선우는 가장 먼저 그에게 다가오는 여자와 악수를 나눴다.

바로 맥 로스웰과 같은 소속사인 페니 로페즈.

“천마! 제 남자친구가 당신 팬인데 나중에 소개해줘도 돼요?”

“물론이지. 아버님은 잘 지내셔?”

페니 로페즈는 로페즈 뮤직그룹 회장의 딸이다.

어릴 때 아빠랑 싸우고 가출했다가 최근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는데, 사이는 좋아졌는지 궁금했다.

페니 로페즈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우리 아빠는 여전하죠. 제가 앨범 낼 때마다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하는데, 이번에는 제 남자친구도 건드리더라고요.”

“남자친구는 왜?”

“몰라요. 저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마음에 안 든대요. 그래서 대판 싸우고 집 나왔어요. 지금은 호텔에서 지내고 있어요.”

“.......”

차선우는 페니 로페즈와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렇게 적당히 이야기한 후, 혼자서 한숨 돌리는데 또 아는 얼굴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다.

바로 페니가 소속된 뮤파이 레이블의 대표. 

그리고 그와 재결합한 부인 에보니 킹.

천마의 방송에서 부부싸움을 해대던 두 사람은, 일년 전 공식적으로 다시 혼인 신고를 올렸다.

오랜만에 보니 에보니 킹의 배가 눈에 띄게 부풀어 있었다.

차선우가 그들에게 축하를 건넸다.

“축하해요. 출산이 언제라고 했죠?”

“이제 3개월 남았어.”

“오. 태명은 있어요?”

“천마라고 지었어. 강해 보이잖아?”

“켁”

“농담이야. 왜 그렇게 놀라?”

차선우는 오늘은 오지 않은 킹 음악감독에 대한 소식도 전해 들었다. 

최근에 디즈니에 합류해서 바쁘다고 하더라.

그들은 죽치고 얘기를 나눴다. 이번에는 주로 레이블 관계자 위주로 소개받았다.

이후 다시 혼자가 되어 여유를 찾은 차선우는 샴페인을 홀짝였다.

‘뭔가···바쁘다?’

생각보다 아는 사람이 많았다.

차선우는 자신이 메인스트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한 걸음씩 걷다 보니 어느새 이들 사이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도 봐라.

두 사람이 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아는 얼굴 한 명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하이포닉.

하이포닉은 LA 라이브하우스에서 인연이 되어 같이 작업을 했다.

1인 2역을 하며 피처링을 한답시고 고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래도 결과가 좋아서 그 피처링 곡은 빌보드 핫백 차트 1위를 5주 동안 차지했다.

하이포닉은 다가와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혹시 파이퍼는 아직도 아픈가?”

“어. 이제 곧 죽을 거라더라.”

“···지, 진짜?”

서로 안부를 물은 후, 대화의 주제는 이번 천마의 앨범으로 넘어갔다.

하이포닉이 말했다.

“네가 토비랑 같이 합작 앨범을 낼 줄은 몰랐는데.”

“왜?”

“알다시피 걔가 좀···. 성격이 그렇잖아? 너는 토비를 컨트롤하는 모양이다만, 보통 사람에게는 그게 좀 쉽지 않거든.”

음.

차마 부정은 못 하겠다.

실제로 하이포닉도 예전에 토비와 한바탕 한 이후 디스전까지 벌였던 전적이 있다. 

이후에는 술 마시고 풀었다고는 하지만, 그게 하이포닉이 토비를 좋게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이포닉은 신랄하게 말했다.

“아발론도 못 버티고 갈라섰잖아. 사실 토비의 정규앨범이 너와의 합작 앨범으로 변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말들이 오갔어.”

이례적인 일인 만큼 지켜보는 시선이 많았다.

과연 앨범을 무사히 낼 수 있을 건지.

그리고 두 사람이 어떤 스타일의 앨범을 낼 것인지.

그게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 건지.

그게 썩 고운 시선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너는 이곳에서 완전히 환영받지만은 않고 있거든.”

차선우는 분명히 메인스트림에 들어섰다. 

하지만 정상으로 오르다 보면 적도 생기는 법.

공식적으로 차선우와 사이가 안 좋은 팀 아발론은 아직 병원에 누워있지만, 그와 친분이 있는 아티스트들은 차선우를 곱게 보지 않았다.

거기에 여전히 차선우를 이방인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네 옆에 있는 사람이 토비 무어고.”

이방인과 반항아의 조합은 유쾌하지 않다.

그러니 조심하라는 솔직한 경고를 하이포닉이 건넸다.

차선우는 으쓱했다.

“주의하도록 하지. 그래도 설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하지만, 그 설마가 사람 잡았다.

시작은 작은 말다툼에서였다.

< 디스전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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