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전 (2) >
리스닝 파티.
수많은 셀럽이 모여있는 이곳에, 당연히 토비와 사이가 안좋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바로 타이슨이었다.
컴튼을 대표하는 걸 넘어 서부 힙합씬 전체를 아우르는 래퍼 타이슨.
그는 토비의 얼굴을 보며 역겹다는 듯 말했다.
“썅, 저 꼴보기 싫은 새끼는 왜 여기에 부른 거야?”
저 면상을 보고 있자니 술을 안마실 수가 없다.
타이슨은 옆에 놓여있는 와인을 원샷했다.
“토비 무어, 이 쓰레기 같은 놈.”
이 정도면 고작 사이가 안 좋다는 수준이 아니다.
타이슨은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토비를 싫어했다.
처음부터 둘의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었다.
타이슨은 컴튼 출신의 갱스터 래퍼이고, 한때는 나이가 비슷한 토비와도 절친한 친구였다.
한때는.
평생 컴튼에 남아 함께 음악을 할거라고 생각했던 토비는, 성공을 거두자마자 컴튼에서 도망갔다.
‘그래.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말마따나 컴튼이 빈말로도 살기 좋은 도시는 아니니까.
돈이 있으면 말리부 해변에 가서 여유로운 삶을 살 수도도 있다.
‘컴튼에서 배운 랩으로 승승장구하는 것까지도 이해하겠어.’
같은 아티스트로서 토비의 스타일을 존중했다.
몇 년 전, 그러니까 사이가 극단으로 치닫기 전.
말리부로 떠난 토비의 앨범을 샤라웃 해준 적도 있을 정도다.
“그런데 뭐? 컴튼이 싫다고 성공하자마자 도망간 놈이, 이제 와서 컴튼을 위해 노래를 만들겠다고?”
타이슨을 가장 화나게 하는 건 토비가 컴튼으로 돌아왔고, 감히 컴튼을 위한 노래를 만들겠다고 씨부려댄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같이 작업하는 놈은 차선우? 힙합이랑 전혀 관계도 없는 놈이랑 힙합을 한다고?”
힙합의 힙자도 모르는 놈이다.
그런 놈이 힙합을 하겠답시고, 토비를 따라 컴튼에 들어와서 제 앞마당처럼 설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
고작 지역 갱 몇 명과 안면을 트고 지낸다고 해서 컴튼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위선자 새끼들.”
정통 서부 힙합, 갱스터 랩 정신을 이어가는 래퍼인 타이슨.
언제나 컴튼을 떠나지 않고 지키던 기둥 타이슨.
그에게 그들의 행태는 위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성공을 좇아 컴튼을 버린 놈이 이제 와서 뭘 하겠다고 떠들어대는 건지.
당장 가서 욕을 박아주고 싶지만.
남의 파티인지라, 그것도 맥 로스웰의 파티인지라 꾹 참고 술이나 마시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취기가 슬슬 올라왔고, 마침 또 토비가 메인 홀에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타이슨은 옆에 있던 와인을 한잔 더 마시고는 토비를 따라 홀을 나섰다.
화장실을 가려는지 복도의 구석진 코너를 도는 토비.
타이슨은 그를 휙 돌려세우며 말했다.
“뭐야? 이거 퍼킹 도망자 새끼 아니야?”
*
토비 앞으로 성큼 다가가며 욕을 박는 타이슨.
온몸에 문신과 피어싱이 가득한 사람이 위협적으로 다가오니 웬만한 사람이라면 겁을 먹을 법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하지만 우리의 토비는 웬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욕을 듣고 가만히 있을 만한 위인은 더더욱 아니다.
“뭐? 도망자? 쓰레기 양아치 새끼가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도망자?”
토비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반격을 했다.
“다시 말해봐. 이 깡패 새끼야. 컴튼에서 양아치 대장 노릇한다고 대가리가 졸라게 자랐네?”
하지만 타이슨 역시 이 상황을 벼르고 있었다.
그는 되려 토비에게 한발짝 더 다가가며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왜? 이제 귓구녕도 병신이 되었나 보지? 다시 말해주지. 이 도망자 새끼야. 조금 떴다고 컴튼에서 도망가놓고. 이제와서 컴튼에 돌아와? 도망자가 아니라 변절자 새끼라고 해야 하나?”
박수도 짝이 맞아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싸울 의지가 충만한 두 사람이 만나자 욕설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변절자니, 깡패새끼같은 기본적인 욕설부터 시작해서, 어느새 소새끼와 말새끼까지 등장하더니, 이내 부모님의 안부까지 물어보기 시작한다.
점점 더 격해져 가는 두 사람의 싸움.
그 와중에 차선우는,
‘역시.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싸움 구경이지.’
옆에서 두 사람의 싸움을 직관하는 중이었다.
잠시 화장실을 가려고 나왔건만, 욕설을 하는 소리가 들려 와보니 두 사람이 싸우고 있었다.
들고 있던 음료를 시원하게 빤 차선우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토비와 타이슨의 욕설을 감상했다.
‘이야, 잘 싸우네. 미국에 저런 욕설도 있었구나.’
아무래도 싸움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음료수를 다 마신 차선우는 연회장에서 카나페라도 챙겨 나올 걸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
배신자니, 도망자니.
대충 들리는 말로는 케케묵은 감정이 쌓인 듯 싶었다.
‘이럴 때는 끼어들지 않는 게 상책이지.’
괜히 어설프게 끼이면 골치만 아프다.
적당히 구경하다가 싸움이 심해진다 싶으면 말릴 생각이었다.
메인 홀에서 벗어난 구석진 곳이라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놈들도 머리가 있다면 남의 파티에서 치고박고 싸우지는 않겠지.
하지만 차선우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이들은 머리만 큰 애새끼였다는 것이다.
싸움이 시작된 지 벌써 이십 분째.
욕설만 하던 놈들이 아예 주먹다짐을 시작했다.
시작은 타이슨의 선빵이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성공해서 콧대만 높아진 새끼 말을 우리가 들을 거 같아?”
퍼억!
토비도 지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컴튼에서 바꾼 게 있냐? 니 옆에는 약쟁이랑 창녀뿐이잖아!”
퍼억!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지 보니, 차선우도 대강의 사실을 파악했다.
‘내가 볼 때는 그놈이 그놈이구먼.’
둘 다 컴튼을 위해서 뭔가를 하려고 했던 모양인데, 서로가 마음에 안 들어서 싸움박질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대로 내버려 두면 파티를 연 맥 로스웰에게도 민폐다.
차선우는 중재하기 위해서 끼어들었다.
“자자, 적당히 싸우고···.”
“씨발 힙합도 모르는 새끼가 어딜 끼어들어!”
그 순간, 타이슨의 주먹이 천마를 향해 날아왔다.
“니 새끼도 마음에 안 들었어! 어딜 감히 컴튼에서 설치고 다녀?”
타악!
“.......”
바로 차선우에게 틀어막히긴 했지만 말이다.
본능적으로 타이슨의 주먹을 잡아낸 차선우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타이슨을 보았다.
“나 친 거냐?”
타이슨은 당황했다.
한 주먹이면 뻗어버릴 것 같은 차선우가, 당연하다는 듯 주먹을 잡아냈다. 차선우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차선우가 손을 옥죄기 시작하자 그대로 주먹이 으스러질 거 같다. 그 와중에 자존심은 또 지키겠답시고 비명도 못 지르고 얼굴만 시뻘게졌다.
‘씨발. 무슨 힘이 이렇게 쎄?’
용을 쓰다가 문득 차선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눈빛이 심상치 않다.
꿀꺽.
맹수를 눈앞에서 본 기분이랄까?
‘시발,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컴튼에서 갱들과 함께 생활해왔지만, 이런 눈빛은 처음이다.
본능적으로 이 자리를 빠져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차오른다.
그리고 당황한 건 토비도 마찬가지였다.
‘좆됐다···.’
평범해 보이지만, 총과 칼로 무장한 갱스터 20명을 그 자리에서 눕혀버리는 괴물이 바로 차선우다.
타이슨?
아무리 생각해도 차선우에게 뒤지도록 맞는 그림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아니, 차선우 성격이라면 타이슨을 죽일 수도 있어.’
타이슨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옛날에는 찐친이었다. 옛정이라는 게 남아 있다. 토비는 황급히 차선우를 말렸다.
“이봐, 천마. 진정하라고. 저 친구가 실수한 거야 실수.”
절대로 타이슨을 위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사람이 죽는 꼴을 볼 수는 없어서 그런 거지. 암, 그렇고말고.
토비는 필사적으로 차선우를 말렸다.
이성을 되찾은 타이슨도 꼬리를 내렸다.
흥분해서 잊고 있었지만, 차선우가 갱들을 맨손으로 때려눕힌 건 컴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음, 어. 맞아. 이건 내 실수야. 그러니까 미스테이크! 내가 사과할게.”
마지막으로 파티의 주최자인 맥 로스웰도 나타났다.
더벅머리에 굵은 테 안경을 쓴 그는, 세 사람이 자리에 없어 나왔다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
맥 로스웰은 사람 좋게 웃으며 중재했다.
“헤이, 친구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얼굴을 봐서라도 좀 참으라고. 응?”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나서자 차선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다시 한번 손맛을 보나 싶었는데.
여기서 더 이상 난동을 피울 수는 없는 노릇.
“...오케이. 너 운 좋은 줄 알아.”
싸움은 그렇게 끝이 났고, 모든 일이 마무리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세 사람이 싸우는 영상이 찍혀버렸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
*
천마의 팬이자, 미국의 한 공무원.
그녀는 최근 커뮤니티에서 가장 화제가 된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 ···오케이. 너 운 좋은 줄 알아.
“흐, 눈빛 좀 봐.”
천마가 타이슨을 눈빛만으로 제압하는 모습은 카리스마가 넘쳤다.
당사자인 타이슨은 과연 그 눈빛에서 카리스마를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공무원은 동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이번에는 천마가 타이슨의 주먹을 받아내는 부분이었다.
타악!
- 나 친 거냐?
“꺄악! 이러니까 뻑이 안가고 배겨?”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공무원은 아예 사진을 캡처해서 보정한 다음 핸드폰 배경 화면으로 저장했다.
게시글을 밑으로 내려 댓글을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 영상에 천마의 안티들이 붙은 것이다.
요즘 천마가 서서히 흐름을 타기 시작하면서, 그만큼 악플러도 많이 생겨났다. 천마를 이방인처럼 여기면서 씬의 중심으로 들어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 천마는 뭔데 여기 끼어드냐? 낄끼빠빠 모르나?
- 백퍼 타이슨 이용해서 이슈나 빨아먹으려고 한 거잖아. 전적이 보통 화려해야지
- 동영상 퍼뜨린 것도 천마 본인일듯ㅋㅋㅋㅋ뻔하지
어찌 됐든 도를 넘는 악플은 눈살을 찌푸리게끔 만들었다.
“이 새끼들은 할 일도 없나? 커뮤니티마다 돌아다니면서 지랄이네. 아니, 지들도 영상을 봤으면 알 거 아니야. 누가 잘못했는지 모르나?”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공무원은 댓글 하나하나 신고 버튼을 눌렀다.
‘하여간 잉여새끼들. 이 정도면 됐겠지?’
그렇지 않았다.
다음날 사건은 더욱 불이 붙었다.
원래 이 싸움의 주된 원인은 타이슨과 토비의 악연이고, 그쪽 팬덤도 가수들의 영향을 받아 저들끼리 미친듯이 물어뜯고 있었다.
먼저 타이슨의 팬덤에서 토비를 공격하고.
- 뭐래 도망자가ㅋ
- 겨우 앨범 하나 뜬걸로···얘가 타이슨이랑 비교할 급인가?
- 타이슨이야말로 정통이지.
토비의 팬덤에서도 타이슨을 공격하고.
- 그래서 오늘 래핑하는데 삐긋했나봐 위대한 타이슨께서ㅋ 형편없더만
ㄴㅅㅂ년아 그건 오늘 타이슨이 컨디션이 안좋았다구
ㄴ네~ 다음 타순이~
그쪽은 거의 현피까지 뜰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다.
그러다보니 천마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토비와 천마가 같이 협업 앨범을 낸다는 소식이 대두되면서부터였다.
또한, 천마의 팬덤도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인 것도 한몫했다.
- 얘가 토비랑 같이 한다는 동양인? 둘이 힘을 합치면 타이슨을 이길 줄 알았나보지ㅋㅋ 진짜 생각 한번 기발하다
하지만, 천마의 팬덤은 생각만큼 물렁하지 않았다.
팬은 가수를 따라간다는 말이 맞을까?
악플을 발견한 공무원은 전투적으로 두 손을 걷어붙였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악개들은 족쳐야 제맛이지.”
공무원은 본격적으로 커뮤니티에 있는 천마를 까는 글에 반박을 하기 시작했다.
- 타이슨 랩이랑 천마 보컬이랑 뜨면 타이슨이 이김
ㄴ랩퍼랑 보컬이랑 비교하는 거부터가 빡대가리아닌가..?? ㅋㅋㅋㅋㅋㅋ 오랜만에 웃엇네
- 천마? 걔는 팬덤빨로 순위조작하잖아ㅠ 나는 빌보드 차트 개편되야한다고 생각해
ㄴ개 웃기네 언제부터 천마가 실력으로 까임 ㅋㅋㅋ
ㄴ누가 보면 그냥 천마는 인기만 겁나 많은 가수로 생각하겠네...
강여름의 십만교인 양병설은 통했다.
공무원 말고도 천마를 위해 싸우는 십만 교인들은 많았다.
천마신교 팬클럽 ‘십만교인’은 으쌰으쌰 하면서 악개를 처단했다. 공무원은 반박 댓글을 하나하나 달면서 그동안 민원인을 상대하며 받은 스트레스까지 날아가는 걸 느꼈다.
“어휴, 이제 좀 속이 시원하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이 싸움은 언제 끝나려나.”
팬덤끼리 싸우는 걸로는 상황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서로 내가 낫니, 네가 낫니 싸워봐야 결론이 나지 않는다.
차라리,
“우리 천마가 음악으로 타이슨을 박살 내주면 참 좋겠는데.”
속 시원하게 음악으로 배틀이라도 한판 떠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공무원의 바람은 곧 현실이 되었다.
타이슨이 먼저 모두 까기를 시전하는 디스곡을 발표한 것이다.
< 디스전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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