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49화 (149/191)

< 디스전 (4) >

컴튼의 어느 클럽.

밤이 되면 난잡한 파티가 벌어지는 곳이지만, 해가 중천에 뜬 지금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대신 클럽에는 일전 천마에게 두들겨 맞은 갱단의 조직원들이 모였다.

그리고 며칠 전 차량 절도를 하다가 천마에게 맞은 조직원도 여기에 있었다. 

조직원이 투덜거렸다.

“천마 그놈은 생긴 건 반반한 놈이 힘은 뭐 그렇게 쎄.”

이전에 천마가 헛짓거리하지 말라고 잘 교육했지만, 당연하게도 먹히지 않았다.

조직원은 여전히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 이유가 없었다.

약을 먹으면 더 뜨겁고 거칠게 사랑을 나눌 수 있고,

가게를 하나 털면 몇 주 먹고살 돈을 쉽게 벌 수 있다.

그러다가 경찰에 잡히면? 그래봐야 갈 곳이 빵밖에 더 있겠는가.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개죽음을 당하는 것만 피하면, 이정도면 꽤 살만한 인생이라고. 

그러니 다들 이렇게 사는 거 아니겠냐고 생각했다.

그래도 천마가 들어오고 나서는 몸을 좀 사리고 있었다. 

천마가 쥐잡듯이 범죄를 척결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범법행위를 하는 걸 보면 어디 한군데는 부러뜨려놨기 때문이다.

지난번 차량 절도에 실패한 이 조직원 역시 요즘에는 강제로 청렴한 삶을 지내고 있었다. 아니, 아예 천마 눈에 띌까봐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 조직원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계속 이러면 수입이 반토막까지 떨어지겠는데. 차라리 다른 구역으로 넘어갈까?”

사실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 다른 구역에 자리한 조직과 전쟁이다.

조직원은 제발 누가 이놈의 골칫덩이를 치워줬으면 빌고 있을 때, 그 ‘누군가’가 나타났다.

바로 타이슨.

그것도 몇 시간 전에, 타이슨이 천마&토비를 향한 디스곡을 낸 것이다.

물론 이 디스곡으로 천마를 물리적으로 치워버릴 수는 없겠지만.

조직원은 디스전에서 천마가 패배해서 쪽팔려서라도 컴튼이 아닌 다른 어디론가 떠나길 바라는··· 가냘픈 희망을 품었다.

그런고로 오늘 그들은 텅 빈 영업장에 모여서, 이 디스전의 향방이 어떻게 흐를지 떠들어댔다.

“타이슨 노래 들어봤냐?”

“당연하지. 시발 처음에 듣고 존나 소름 돋았잖아. 이게 정통이지.”

힙합은 그들 주변에 늘 있었고, 갱스터 중에서도 랩 하겠다고 설치는 놈들이 많았다. 또한 갱단 역시 레이블의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에 둘 사이는 떼려야 뗄 수 없다.

타이슨은 컴튼을 떠나지 않고 늘 그들 곁에 있었던 래퍼였고, 그런 만큼 그들은 타이슨의 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궁금했다.

과연 천마가 이 개쩌는 노래에 어떤 곡으로 대응할지.

“천마가 여기에 어떻게 반응할까?”

“몰라. 아까 SNS에 뭐라 씨부리긴 하던데.”

타이슨이 몇 시간 전 디스곡을 발표하자마자, 천마는 “in 3 hours”라고 한마디를 올렸다.

토비가 아니라 천마가 올린 게 의외이긴 했다.

천마는 래퍼가 아닌 보컬리스트였으니까.

‘보컬리스트가 디스곡을?’

이런 의아함이 잠깐 들기는 했지만, 조직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천마가 대표해서 올렸나 보지, 이 정도가 끝이었다.

하지만 이건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어? 떴다!”

천마가 약속한 대로 딱 3시간이 지난 시각.

천마 채널에 새로운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존버하고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몰려들었고 조회수가 분당 몇만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직원 역시 잽싸게 천마 채널에 들어갔다. 그리고 당황했다.

“···어?”

[BIG DAY]

타이슨이 3시간 전에 냈던 디스곡과 노래 제목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타이슨 채널에 잘못 들어온 줄 알았다.

조직원이 멈칫한 순간,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성화를 부렸다.

“야 빨리 틀어, 빨리!”

“좀 기다려라, 좀!”

조직원은 마주 성질을 낸 다음 노래를 틀었다.

마침 그들이 있는 곳은 클럽이었다. 비록 낮이라 그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지만, 음향 장비는 완벽하게 세팅되어있는 곳이다.

꽤 빵빵한 스피커를 통해, 텅 빈 클럽에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

그리고 조직원은 두 번째로 당황했다.

“이거 힙합이 아닌 거 같은데?”

천마의 디스곡은 천마 보컬을 중심으로, 토비의 랩이 감초처럼 들어갔다.

어쩔 수 없다. 3시간 동안 타이슨 히트곡을 중심으로 샘플링을 하면서도 퀄리티를 챙기는 건 천마만이 할 수 있다. 여기서 토비는 그냥 랩메이킹 파트만 담당했을 뿐이다.

그런고로 랩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이걸 힙합 장르로 분류하기에는 애매한 감이 있었다.

그러면 이게 디스곡이 아니냐?

그건 또 아니다.

노래 제목부터 곡의 구성 방식과 가사까지, 전부 타이슨을 겨냥하고 있었다.

시작은 토비의 랩이었다.

“가볍네?”

가벼운 토비의 래핑이 날아와 귀에 쏙쏙 꽂힌다.

보통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랩은, 아무리 딕션이 좋아도 너무 빨라서 즉석에서 가사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곡은 달랐다.

[티끌을 비웃는 이 눈먼 자야, 네 눈의 들보(log)나 빼라

눈먼 자야 들보를 빼라. 눈먼 자야 들보를 빼라.

그날에야 BIG DAY가 오는 걸 볼 수 있으리]

어디서 들어본 듯한 성경구절을 인용한 가사는, 컴튼의 ‘구원자’를 암시하고 있었다.

또한 조직원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토비는 타이슨이 낸 디스곡의 엔딩 벌스를 거꾸로 뒤집은 후, 따온 부분의 BPM을 올려서 독특한 멜로디 루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루프를 마치 비트처럼 쓰면서 가지고 놀았다.

그러면서 토비는 자연스럽게 천마에게 이어지는 자리를 내어주었다.

토비는 거침없이 욕설을 쏟아내는 역할을 맡았지만, 천마는 타이슨에 대해 그 어떠한 도발도 하지 않았다.

대신 천마가 집중한 건, ‘컴튼’ 그 자체.

천마는 두 달이라는, 어찌 보면 어중간한 기간 동안 컴튼에서 살았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무림에서 그가 보아온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천마는 확실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너희들이 외면하는 게 뭔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듯한 이 도시가, 얼마나 끝없이 어두워질 수 있는지.

[아버지 선악과를 먹었어요.

오 그건 어른들이 먹는 사탕. (hiss hiss hiss)]

타이슨의 디스곡과 달리, 천마의 이 디스곡은 가볍고 편하다.

비관적인 가사와 달리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고, 그래서 더욱 멀리까지 뻗어나가도록 안배했기 때문이다.

한번 들으면 귀를 기울이게 되고, 몇 번 반복되는 멜로디는 금방 귀에 익어버린다.

[아버지 선악과를 먹었어요.

그저 사탕을 먹었을 뿐인데. (hiss hiss hiss)

그저 칼을 들었을 뿐인데. (hiss hiss hiss)

한번 두번 세번 네번. 사람은 왜 이렇게 쉽게 죽죠.]

그렇기에 이 음악을 듣는 조직원은 불편했다.

약에 취해야만 더 뜨거워질 수 있고, 자유로운 척하지만 결국 실패로만 끝나는 자신을 보는 듯해서.

외면하고 싶다.

약에 취한 듯한 목소리는, 분열된 듯한 감정은 너무나도 비관적이지만, 그걸 받치는 멜로디가 더없이 밝고 대중적이다.

그렇기에 더 귀를 뗄 수 없다.

쾌락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섬찟하게 들리던 브라스가 고조되고, 천마의 목소리도 한숨에 절정으로 올라간다.

[아아. 맞아.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었지.]

그 순간, 클라이맥스를 찍고 순식간에 떨어진다.

쾌락 속에 숨어있던 외로움이 발가벗겨진다.

조직원은 클럽을 둘러보았다.

난잡한 파티를 벌이며 약과 함께 신나게 놀다가, 아침 해가 뜨는 순간 사라지고 텅 빈 곳으로 되는 그 순간.

화려함과 허무함이 교차하는 그 순간.

[BIG BIG DAY]

노래는 마음에 남았다.

조직원은 처음으로 음악을 들은 후, 마음이 불편해졌다.

*

타이슨의 [BIG DAY]

천마의 [BIG DAY]

같은 이름의 두 곡이 3시간 차이를 두고 올라왔다. 처음에 천마가 ‘in 3 hours’라고 썼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당황해했다.

타이슨의 ‘빅데이’는 정규 앨범에 넣어도 될 만큼 좋은데, 천마가 정말 3시간 만에 이 노래를 뒤집을 만한 디스곡을 낼 수 있을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 일단 패기는 지렸고요

- 퀄 떨어질 거 뻔하네ㅋㅋㅋㅋㅋ

- 빡쳐서 3시간 이지랄 했다가 지금 현실 자각하고 피똥싸고 있겠네

- 빅데이? 응~ 천마 터지는 날이야~

당연히 부정적인 여론이 대다수였다.

타이슨의 ‘빅데이’는 임팩트 있었고, 여기에 대응하는 퀄리티를 내려면 최소 며칠 작업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시간 후.

여론은 뒤집혔다.

시작은 어떤 타이슨 팬이 샘플링 파트를 찾아낸 것이었다.

- ???잠깐만 뱀이 쉭쉭(hiss hiss)거리는 이 부분 타이슨 ‘mad night’ 샘플링한 거 같은데?

타이슨의 ‘mad night’는 그가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노래였다.

피치를 극도로 높인 후 압축시켜 몇 겹으로 중첩해놓은 탓에 원곡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형됐지만, 그래도 타이슨의 찐팬은 이를 발견했다.

- 엥?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천마의 디스곡을 뜯고 맛보고 즐기기 시작했다.

역시나였다.

- 시발 이거 타이슨 ‘Your Majesty’도 샘플링 했네.

- 타이슨 ‘nail it’도 샘플링한 거 같은데?

결론은 명확했다.

- 천마 돌았냐 타이슨 히트곡을 전부 갖다 썼네.

- 그것도 존나 대중적으로 뽑았음

심지어 원곡을 그대로 갖다 쓰는 통 샘플링도 아니었다. 매니아 중의 매니아, 팬 중의 찐팬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형을 했다.

각 히트곡의 루프를 자르고 이어 붙여서 새로운 루프를 만들고, 어떤 파트는 피치를 극도로 높인다던가, 특정 루프에는 시퀀싱을 덧붙여서 변형시킨다던가.

이쯤 되면 재창조 수준이다. 천마가 얼마나 감각적인지 보여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특히 천마는 일방적인 비난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이 모든 일의 원인과 목적을 명확히 했다.

- 너희들 지금 싸우는 게 ‘컴튼을 위해서’라고? 그런데 좆밥들아. 나만큼 실력 안되면 아가리 싸물고 할 일이나 제대로 해.

제대로 된 실력 인증.

욕설이 난무하는 피로한 디스전이 아니라, 씬의 품격을 끌어올리는 메시지를 던지는 천마의 디스곡.

이 모든 요소가 모여서 리스너들은 호평을 쏟아냈다.

- 이게 사람이야? 3시간 만에 이 퀄리티를 만들었다고?

- 디스에 품위가 느껴진다···.

- 사실은 타이슨 팬이었던 게 아닐까? 원래 타이슨 노래를 즐겨들었던 거지. 그게 아니고서야 3시간 만에 히트곡을 전부 분석해서 곡을 만들고 녹음까지 할 수 있나?

ㄴ이게 정설임ㅇㅇ

- 다른 걸 다 떠나서 노래 내 취저임ㅠㅠㅠㅠ제발 정식발매해줘

원래 주먹질 동영상이 퍼질 때부터 천마는 주목을 받았고, 타이슨이 디스곡을 낼 때 관심이 폭발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쏠려있었기에 천마의 디스곡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 만큼 당연히 불편러와 어그로도 있는 법.

먼저 샘플링을 할 때마다 따라오는 표절 시비도 있었으며,

- 무단 도용하는 거 표절 아님? 샘플링 나만 불편해?ㅠ

ㄴ불편하면 자세를 고쳐앉아

ㄴ원곡의 리듬과 코드를 모두 고려한 후 재정립하고 하나의 곡으로 통일시킨다? 차라리 새로 곡을 쓰는 게 낫지, 이건 원곡자인 타이슨이 와도 못하는 일이에요.

몇몇 타이슨 팬은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이를 부득부득 갈기도 했다.

- 근데 천마가 낸 장르는 힙합이 아니잖아. 디스전하는데 다른 장르를 들고오는 건 반칙 아니냐?

ㄴ혹시 무뇌아세요? 앗 그렇다면 죄송합니다ㅋ

ㄴ폴 메카트니와 존 레논의 디스전은 들어보셨는지. 디스전은 힙합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제발 알고나 말하세요.

하지만 그들은 모두 두들겨 맞았다.

이쯤 되니 디스전은 천마의 압승으로 굳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슬슬 궁금해졌다.

한 방 먹은 타이슨이 뭐라고 생각할까?

이쯤에서 끝낼까, 아니면 이 싸움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까.

그리고 컴튼의 어느 작업실, 타이슨은 천마가 낸 디스곡을 들으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한 방 먹었군.”

놀라웠다. 분노를 쏟아냈던 자신과 달리, 천마는 본질을 짚어냈다.

그러면서 자신의 히트곡을 수준급으로 샘플링하며 도발했다.

너는 이렇게 할 수 있어?

타이슨은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원곡자인 나도 이렇게 못해.’

천마가 발표한 디스곡은 힙합은 아니었지만, 힙합 정신만큼은 살아있었다.

생생한 현실 묘사.

금단의 열매라는 걸 알면서도 안주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책임을 쉭쉭 대는 뱀 탓으로 전가한다.

또 그걸 그려내는 보컬과 사운드.

성경에 비유한 가사와 밝은 사운드는 성스럽게 들리지만, 약에 취한 듯이 옅게 흔들리는 저음이 반전으로 다가온다.

타이슨이 만약에 현장에 있었다면 기립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토비 새끼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들지만···. 천마는 인정할 수밖에 없군.’

오히려 실력에 비해서 천마가 저평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쯤 되면 토비가 천마에게 왜 매달리는지 알 것만도 같다.

이 정도 실력을 갖춘 친구라면, 자신 역시 짐 싸 들고 한국까지 달려가서 천마신교 앞에서 죽치고 앉아있을 의향이 있다.

그런 이유로, 타이슨은 지금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오씨. 이거를 어떻게 하지?”

토비와 타이슨의 공통점이라면, 그들은 대판 싸우고 나서라도 인정할만한 상대는 쿨하게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천마는 이 곡 하나로 타이슨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타이슨은 두꺼운 손으로 휴대폰을 잡고 SNS에 올릴 글을 썼다 지웠다 했다.

“더 이상 여기에 신경 쓰지 않겠다···아니야. 이거는 너무 쿨한 거 같고. 좋은 노래였다···아니야. 이거는 너무 물러서는 거 같잖아.”

그때 타이슨의 고민을 날려버리는 소식이 등장했다.

[천마&토비 - Don’t Kill the Rage / 6월 11일 발표]

“어?”

타이슨은 잠깐 뇌정지가 왔다.

“잠깐만. 6월 11일이라면···.”

···내가 앨범 발매하기로 한 날짜인데?

천마는 이렇게 물렁하게 디스전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역으로 도발했다.

이대로 끝낼거야?

정규앨범으로 한번 맞짱 뜨자.

이를 본 타이슨의 반응은 어땠냐?

타이슨은 투지를 활활 불태우며 씩 웃었다.

“이거 봐라. 완전 컴튼 가이잖아?”

이놈도 보통 돌은 자가 아니었다.

“그 도발. 받아주지.”

천마와 타이슨의 동발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디스전 (4)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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