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50화 (150/191)

< 판 좀 키워볼까? (1) >

화제가 되었던 디스전은 천마와 토비의 승리로 끝이 났다.

대중들의 반응부터, 노래의 총 스트리밍수까지.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물구나무를 서서 봐도.

이번 디스전의 승패는 명확했다.

하지만 개꿀잼 이벤트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타이슨과 천마&토비의 1차전이 끝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건만, 2차전이 예고되었다.

바로 정규 앨범의 동발이었다.

[천마&토비 - Don’t Kill the Rage / 6월 11일 발표]

[타이슨 - Who cares? / 6월 11일 발표]

이미 디스전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한껏 끌어올린 두 사람이다.

사람들은 2차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1차전에서 패배한 타이슨 팬들은 한껏 달아올랐다.

- 이번에는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

ㄴ 가즈아!!!!

ㄴ 나믿타믿!!

- 원래 타이슨은 디스곡이 아니라 정규앨범이 진또배기임

ㄴ 이거 맞다. 정규는 내기만 하면 빌보드였음

그리고 2차전 예고에 천마의 팬들도 한껏 달아올랐다.

공무원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퇴근하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공무원은 평소처럼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타이슨의 팬들이 이번 2차전에 대해 씨부리고 있는 글을 발견했다.

2차전은 다를 거라느니, 이번에는 이길 거라느니.

아주 헛소리를 싸지르고 있었다.

“뭐래. 디스전에서 진 놈들이 입만 살아서는.”

하지만 그녀는 이전처럼 분노하지 않았다.

아무렴 승자에게는 품격이라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패배한 어디 팬덤처럼 열폭하며 날뛸 필요는 없는 법이다.

대신 그녀는 아주 우아하게 댓글을 달았다.

- 타이슨이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ㄴ넹ㅋ

- 정규 앨범 배틀은 타이슨이 무조건 이김. 지금까지 판매량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지

ㄴㅋ

이 정도면 충분하지 뭐.

그렇게 타이슨의 팬들 속을 슬쩍슬쩍 뒤집어준 다음, 공무원은 기재개를 쭉 켰다.

“아오, 속 시원해. 역시 우리 천마가 최고지!”

디스전 이전에 타이슨 팬들과 싸울 때는 그렇게 열불이 났는데.

우리 가수가 이겨버렸네?

근데 이게 대리 만족이 되네?

1차전에서 승리를 맛보니 얼른 2차전도 승리해서 이런 기분을 누리고 싶었다.

그렇게 커뮤니티를 쭉 순회한 공무원은 문득 재미있는 상상이 떠올랐다.

‘두 사람이 직접 현피를 뜨면 어떨까?’

아, 여기서 현피는 천마와 타이슨이 진짜 주먹질을 하는 걸 말하는 건 아니다.

아티스트로서. 

두 사람이 직접 맞붙는 걸 보고 싶다는 것이다.

2차전을 낸다는 소식만으로도 이렇게 뜨거운데.

타이슨과 천마 두 사람이 직접 만나서,

같은 무대에서,

새로 낸 곡으로 배틀을 벌인다면.

“와, 이거 꿀잼이겠는데?”

혼자 상상을 하며 히히덕거리던 공무원은 며칠 뒤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

“뭐? 둘이 진짜로 같이 무대를 한다고?”

앨범 발매 당일 6월 11일.

두 사람이 같은 방송에 나와, 같은 무대에 선다는 소식을.

“...이건 꼭 간다!”

공무원은 올해 연차계획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

타이슨과 천마&토비의 2차전.

과연 두 사람이 2차전에서는 얼마나 대단한 앨범을 들고 올지 사람들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대감은 앨범의 사전 예약 판매량으로 환산되었다.

응원하는 아티스트를 위해, 혹은 곡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전 예약 판매는 가파르게 치솟았다.

사전 예약만으로도 지금껏 세웠던 초동 판매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였다.

이런 흐름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는 공무원과 비슷한 생각을 할 법했다.

- 둘을 한 무대에 세울 수 있다면 시청률은 무조건이지!

당연히 미국 유수의 음악 토크쇼에서도 두 사람을 모셔가려고 난리가 났고, 두 레이블을 향해 벌써 수십 개의 제안서가 쏟아졌다.

마침 레이블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 판을 좀 키워볼까?

이대로 두기만 해도 흥행은 확정이다. 

하지만 콸콸 물이 들어오는데 노를 젓지 않는 건 바보다.

그래서 레이블에서는 판을 키우기로 결정했다.

이참에 판을 키워서 더 많은 사람이 보게 만들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큼 더 많은 이득이 떨어지니까!

아티스트들의 싸움은 싸움이고, 이득은 이득이다.

수지타산이 맞아떨어진 각 레이블은, 가장 좋은 제안서를 보낸 음악 토크쇼에 아티스트를 올리기로 합의까지 했다.

타이슨과 천마&토비가 같은 무대 위에 선다는 소식은 활활 타오르는 씬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 얔ㅋㅋ 이거 기획한 거 누구냐

ㄴ 개꿀잼 몰카인줄

- 이정도면 그냥 옥타곤 위에서 맞짱을 뜬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인데?

- 아 몰랑. 나는 무조건 보러 갈거임

판은 커졌고.

앨범 판매량은 더욱 가파르게 늘어났다.

방청 응모에도 엄청난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게 방송 당일.

대기실 복도를 지나던 타이슨은 저 멀리서 맘에 안 드는 얼굴을 만났다.

바로 토비 무어.

토비 무어도 타이슨을 발견했다.

타이슨과 토비 무어의 눈이 마주쳤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못 본 척 뒤를 돌아 각자의 대기실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를 고르지만.

우리의 토비는 뻔한 선택지를 고르는 사람이 아니다.

토비는 보무도 당당하게 타이슨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도발을 박았다.

“오, 이게 누구야? 개처발린 병신 타이슨 아니야?”

빠직-

타이슨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당연히 타이슨도 도발을 듣고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니다.

“오, 미친 개새끼. 진짜 너 때문에 이겼다고 생각해?”

“패배자 새끼가 말이 많네? 나 같으면 쪽팔려서 고개도 못 들고 다니겠다.”

“지랄. 지가 SNS에서 떠들어놓고. 샘플링 천마 아이디어였다며?”

두 사람은 보자마자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스닝 파티 때처럼 험악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뭔가 미묘하게 덜 자극적인 느낌?

아무리 봐도 전처럼 주먹다짐을 할 상황까지 갈 것 같지는 않았다.

공연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제는 토비가 그렇게 밉지는 않으니까.’

타이슨의 감정 변화가 가장 큰 이유였다.

이번 디스전을 계기로 타이슨은 토비에 대한 악감정이 희석되었다.

타이슨이 토비에게 화가 난 이유는 크게 보면 하나다.

바로 토비가 컴튼을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몇몇 래퍼들이 그렇듯, 컴튼을 그거 돈벌이 수단이나 자극적인 소재로만 소비할 거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지.’

이번 디스곡에서 알 수 있었다.

적어도 토비가 컴튼을 이용만 하려는 부류는 아니라는 것을.

디스곡의 가사만 보더라도 토비가 컴튼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했고, 진심으로 이 거리를 바꾸고 싶다고 하는 게 느껴졌다.

고로 지난번처럼 토비의 얼굴에 주먹을 날릴 생각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그게 토비가 마음에 든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까지 싸워온 관성이 있는데, 그게 한순간에 해소되는 건 어렵다.

그리고,

“응, 그래도 니가 진 게 팩트지 병신아. 컴튼 전봇대 같은 새끼.”

보자마자 저 지랄로 말을 하는데.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지.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으르렁거리려는 순간.

“둘이서 뭐하냐?”

천마가 복도 저 끝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진짜 실력자의 등장에 으르렁거리던 두 사람 사이에는 정적이 일었다.

“.......”

“.......”

타이슨은 리스닝 파티에서 본 천마의 모습이 떠올라서.

토비는 혹시라도 천마가 진짜 타이슨을 두들길까 봐.

말싸움을 멈추고 천마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두 사람이 우려하는 상황은 없었다. 천마는 혀를 차며 말했다.

“방송 시작이 코앞인데, 가서 준비나 하지.”

토비와 타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어. 맞아. 그래야지.”

“흠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두 사람이 그렇게 아무 일 없이, 평화롭게 해산하려던 순간이었다.

천마가 타이슨에게 물었다.

“근데, 내가 누구 똥구멍에 사는 기생충이라고?”

디스곡 가사를 대놓고 언급하는 천마.

갑자기 긴장감이 올랐다. 

타이슨은 천마를 마주 바라보았다.

꿀꺽

타이슨은 침을 삼켰다.

조오-금 쫄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자신이 쓴 가사를 철회하거나 변명할 생각은 없다.

그저,

“......우리 아티스트답게 가사는 가사로만 보자고.”

목숨이 중요했을 뿐이다.

“나는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만.”

타이슨은 래퍼다운 정확한 딕션과 속도로 말하고는 뒤를 돌았다.

그리고 빠르게 자신의 대기실로 들어가 버렸다.

천마는 그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 보았다.

“...뭐야?”

*

미국에 사는 어느 공무원은 일명 ‘현피 이벤트’를 보자마자 신청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현피’라고 불리며, 공식적으로는 음악 방송이라 불리는 이번 무대는.

대놓고 천마와 타이슨의 배틀처럼 꾸며져서 화제가 됐다.

공무원은 미친 듯한 최종 경쟁률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거 기획한 사람은 아주 돈독이 올랐네.”

두 사람은 디스전에서부터 관심을 끌어모았다. 대놓고 동발을 한 것도 놀라운데, 거기에 두 사람을 한자리에 모으다니.

덕분에 발매 전부터 화제성이 절정을 찍었다.

‘아마 천마랑 타이슨 둘 다 초동량이 역대 최고가 되지 않을까.’

운 좋게 응모에 당첨된 공무원은 스튜디오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스튜디오.

아직 오후 2시였지만 벌써 대기줄이 있었고, 경찰과 시큐리티가 주변에 촘촘하게 깔렸다.

‘솔직히 걱정했는데. 보안에 엄청 신경 썼나 보네.’

이번 방송이 자극적이고 시청률 뽑기도 최고지만, 그만큼 논란이 터지기도 쉽다.

팬덤의 신경을 자극하는 만큼 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방에 광고까지 다 해놨는데, 싸움이라도 벌어진다?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해.’

여기에 온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과한 경쟁이 불러일으킨 대참사] 같은 기사를 쓸 것이다.

그럼 방송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래서인지 방송사에서는 보안에 굉장히 신경 썼다.

방송사 근처에는 지역 경찰이 동원됐고, 내부에도 시큐리티가 일반 녹화의 두 배쯤 깔렸다.

입장하기 전 소지품 검사를 철저하게 하고, 스튜디오 내부에서도 혹시라도 싸움이 일어나려고 하면 바로 끼어들어 제압했다.

그리고 각 팬클럽에서도 공지했다.

겉으로는 성숙한 팬 문화를 강조했지만, 속뜻은 ‘우리 아티스트가 오랜만에 앨범 냈는데 괜한 분란 만들어서 똥물 튀기지 말자’라는 거였다.

덕분에 의식적으로 자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은근히 있는 기싸움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공무원도 역시 전투의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아이템을 꺼냈다.

“흐흐흥. 싸움은 템빨이지!”

바로 천마신교의 횃불 응원봉!

타이슨 팬들은 이를 두고 ‘너무 케이팝스럽다’며 비난했지만 뭐 어떤가.

광량이 엄청난 횃불봉으로 기를 확 죽여버려야지!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횃불봉을 꺼내 드는데, 그때 마침 의자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혔다.

그리고 횃불봉이 손에서 툭 떨어지···.

툭-

“으헣으허걱!”

···려는 걸 겨우 잡아챘다. 공무원의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자동으로 참사를 일으킬 뻔한 상대에게도 짜증이 치솟았다.

“와씨 놀래라. 저기요. 좀 조심히···.”

그러나 상대를 확인한 순간, 따지려 했던 목소리가 소심해졌다.

상대가 굉장히 무섭게 생겼기 때문이다. 온몸에 가득한 문신과 우락부락한 근육 위로 새겨진 상처.

‘개, 갱스터인가? 그런데 왜 여길?’

갱스터같이 생긴 사람은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다가 횃불봉을 보고 멈칫했다.

“혹시 천마···님 팬분이신지?”

“그런데요?”

그 순간 상대는 바로 사과를 박았다.

“죄송합니다.”

“네? 아, 아니에요. 안 깨 먹었으면 됐죠.”

···생각보다 얌전한 사람이네? 생긴 게 다가 아닌가?

공무원은 고개를 갸웃했고, 상대는 뒤돌아서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와 이제는 천마 팬클럽 문양만 봐도 식은땀이 나네.’

그는 바로 천마에 의해 참교육이 잘된 조직원이었다.

< 판 좀 키워볼까? (1)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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