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 좀 키워볼까? (2) >
컴튼의 조직원.
사실 그는 방청에 오고 싶은 마음이 1만큼도 없었다.
지난번 천마의 디스전 노래를 들을 뒤 마음이 불편해진 까닭이었다.
하지만 천마가 그에게 강제로 PD 초청석을 쥐여줬다.
‘와라.’
‘그, 제가 요즘 차량 정비 기술을 배우고 있어서. 시간이···.’
‘와라.’
‘넵. 당연히 가야죠.’
···아무래도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직원은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이런 자리에 처음 와본 조직원은, 초청 지정석과 일반 방청석을 헷갈려서 길을 헤맸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지정석을 찾는 데 성공했다.
‘존나 어색하네. 좀 개겨볼 걸 그랬나?’
조직원은 어색함에 목을 벅벅 긁었다.
번쩍번쩍 빛이 나는 건물과 더럽지 않은 길바닥은, 아무리 봐도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조직원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필이면 자신이 앉은 자리를 기준으로 양쪽에 천마 팬과 타이슨 팬이 앉았다.
이들 사이로 흐르는 미묘한 신경전에 얼굴이 따끔따끔해질 정도이다.
‘살벌하네. 무슨 갱들 싸움하는 것도 아니고.’
그 순간 오른쪽에서 엄청난 광량이 터져 나왔다.
번쩍!
조직원은 놀라서 쳐다봤다.
리뉴얼된 횃불봉에서 터져 나온 빛이었다.
‘삐까뻔쩍하네. 헤드라이트인가?’
조직원은 그저 신기해했지만, 왼쪽에서는 빛을 보며 투덜거렸다.
“무슨 상향등 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진짜 천마 팬들은 적당히를 모른다니까.”
타이슨의 팬이었다.
그는 마치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조직원의 오른쪽에서도 고성이 터져 나왔다.
“꼬우면 가지고 오지 그랬어.”
“응, 너네 집에는 이런거 없지?”
“나였으면 타이슨 응원하는 거 쪽팔려서 여기 못 왔을 거 같은데.”
조직원을 사이에 두고 지들끼리 신경전을 펼쳤다.
말다툼이 격해지자 다행히 시큐리티가 달려와서 진정시켰다.
물론 그런다고 쉽게 진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의도치 않게 그 사이에 낀 조직원은 반쯤 영혼이 나간 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시발. 집에 가고 싶다.’
그렇게 시달리기를 한 시간. 드디어 음악 토크쇼가 시작되었다.
조직원은 멍하게 스크린에 있는 게스트 리스트를 보았다.
이 토크쇼는 원래 게스트를 많이 초대하는 편인데, 오늘은 특별전이라 그런지 천마, 토비 무어, 타이슨 이 셋밖에 없었다.
MC가 말했다.
“세 분을 모시겠습니다. 먼저 한국에서 온 천재 뮤지션 천마!”
와아아아아아!
우우우우우우!
천마 팬덤에서는 환호를, 타이슨 팬들이 보내는 야유가 뒤섞인다.
서로 지지 않으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사회자의 이름이 타이슨의 이름을 부르자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소리 끝에 게스트가 모두 나왔다.
기본적으로 화제의 인물들이 같은 자리에 있는 만큼 토크는 재미있었다.
토비와 타이슨의 사이가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것만큼 나빠 보이지도 않았고, MC도 두 사람의 관계성에 맞춰서 진행했다.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도 유쾌한 토크 타임이었다.
앨범 소개와 비하인드에 관한 내용이 나왔는데, 아무래도 세 사람 모두 컴튼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하다 보니 컴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MC의 질문에 게스트 중 누군가가 대답했다.
“컴튼은, 바뀔 필요가 있어요. 누군가는 이 악순환을 끊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조직원은 불쾌해졌다.
‘시발. 저들이 뭔데.’
컴튼을 바꾸겠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겠다.
의도는 좋다.
그런데 전혀 공감 가지 않았다.
토비와 타이슨이 아무리 컴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게토의 삶을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자랐다지만.
‘둘 다 지금은 성공해서 잘살고 있잖아?’
마약을 운반하고, 물건을 훔치고, 목숨을 걸고 상대 조직원과 총질을 하고.
이제 두 사람의 삶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작업실에 박혀서 만든 음악으로 수천만 달러씩 버는 놈들이, 뭐?’
컴튼의 삶과는 멀어진, 성공한 놈이 떠드는 이야기는 위선으로만 느껴진다.
‘음악으로 컴튼을 바꾼다고?’
지나치게 순진하고,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그까짓 음악 몇 자락보다는, 당장 오늘 저녁으로 먹을 빵이 더 중요하다.
조직원은 괜히 불만스러운 십 대 같은, 반항적인 마음이 들어 아니꼬운 시선으로 무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천마와 눈이 마주쳤다.
“······!”
조직원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파블로프의 개 같은 반사작용이었다.
천마가 피식 웃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는 건 낭만적인 말이지요. 하지만 음악은 감정을 일으키고, 감정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곡 Don’t Kill the Rage 들려 드리겠습니다”
천마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사전에 촬영해둔 VCR이 방영되고, 그 사이에 모든 세팅이 준비되었다.
토비와 천마 두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시작은 바이올린 중심의 가벼운 왈츠 선율.
여기에 독백 같은 천마의 노래가 얹힌다.
아아- 아아- 아아- 아아-
이번 곡의 구성은 간단하다.
홀로 외롭게 거리를 거니는 미치광이의 절규 어린 독백이 곡의 테마이다.
그래서 이번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아-’ 라는 가사 없는 멜로디에, ‘절규’라는 감정을 담아내는 것인데.
천마는 그것을 완벽하게 해내었다.
아아- 아아- 아아- 아아-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미치광이가 무대 위에서 울부짖는다.
구슬프며, 처절하고, 광기마저 느껴지는 미치광이의 절규.
관객들은 압도적인 감정의 향연에 입을 다물었다.
야유를 퍼붓던 타이슨의 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
모두가 숨을 죽이고 단숨에 몰입한다.
감탄한 건 토비도 마찬가지였다.
옆에서 본인의 파트를 준비하던 토비의 팔에 쭈뼛 소름이 돋아 올랐다.
‘역시··· 대단하다.’
천마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같은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데도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이 움직인다.
‘이 무대라면.’
지금껏 품어왔던 분노를 풀어내기 딱 좋다.
그는 이 노래가 사람들 속에 있는 분노를 일으키기를 원했다.
이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았으면 했다.
가슴 속에서 시작된 토비의 분노는 목구멍을 거치고, ‘랩’이라는 행위가 되어 튀어나왔다.
천마의 노래와는 대비되는 날카로우면서도 딱딱 끊기는 발음의 랩은, 천마의 멜로디와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감정의 폭력을 행사한다.
공연은 계속된다.
무대를 시작한 바이올린은 이내 묵직한 트럼펫으로 바뀐다.
악기의 변화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비탄이라는 감정을 채워 넣는다.
아아- 아아- 아아- 아아-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압도감?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이 파도가 되어 관객들을 덮친다.
그리고 조직원도 그 흐름에 휩쓸리는 중이었다.
“.......”
조직원은 지난번의 디스곡을 떠올렸다.
한번 듣고 불편해서 그 이후로는 듣지 않았던 노래.
사실 왜 불편한 건지는 조직원도 알고 있다.
‘내 미래가 어떨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천마의 음악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어두운 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껏 피했다.
그런데 지금만큼은, 피할 수가 없었다.
아아- 아아- 아아- 아아-
분노라고 할까, 광기라고 할까.
천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조직원은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꼈다.
빵은 당장의 하루를 해결해주지만,
음악은 감정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감정의 변화는 삶에 영향을 미친다.
조직원은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는 도망만 치고 있었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 보았다.
*
이번 천마의 무대는 많은 걸 바꿔놓았다.
가장 먼저 바꿔놓은 건 타이슨의 팬들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타이슨의 팬들은 천마를 싫어한다.
싸움 동영상부터 디스전에서 진 것까지.
근 몇 달 동안 계속 얻어맞다 보니 천마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이번에 천마가 발매한 신곡?
당연히 들어보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타이슨 팬들은 공연장에 오기 전까지 천마의 노래를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천마가 공연을 하러 나올 때에는 야유를 날리기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천마의 무대를 보는 순간,
- 와,미미밈니쳤다!!!!!
그들이 내뱉을 수 있는 건 감탄뿐이었다.
무대가 끝나고 잠깐 쉬는 시간, 커뮤니티에는 짧은 감탄으로 도배되었다.
- tlqkf
- 이건 진짜 ㄹㅈㄷ
- 천마 진짜···와 이건 진짜···.
후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답답해했다.
- 왜? 뭔데?
- 천마 새끼가 무슨 일 했음??
- 사람을 빡치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 아오 시바! 말을 좀 끝까지 해
이후 몇 시간 정도가 지나고.
그러니까 방청이 마무리되고 사람들이 제대로 된 글을 남길 정도의 정신을 차렸을 때.
후기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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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방청 후기
(방청 인증)
(타이슨 팬 인증)
나도 타이슨 찐팬이고 오늘 공연 보기 전까지는 천마? 으음? 이랬는데
이 새끼는 찐이다
(뉴튜브링크)
다들 욕할 거 아는데
여기 공연 영상 링크 올렸으니까 다들 꼭 봐라.
두번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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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마를 빤다고? 이쉑 미쳤나?
ㄴ저거 링크 뭐냐? 설마 저거 클릭하는 병신 새끼는 없겠지?
ㄴ 미안. 나 방금 링크 클릭했음. 진짜 천마 미쳤음
ㄴ ···사실 나도 클릭했음. 영상 보고 병신 하는 게 이득임
처음에는 천마 팬이 어그로를 끌려고 왔나보다 생각했는데 영상을 보는 순간 다들 생각이 바뀌었다.
- 아···.
- 와ㅋㅋㅋㅋ 무슨 말을 못 하겠네
- 몰입이 어마어마하다 이거 현장에서 본 사람들 ㅈㄴ 부럽네
ㄴ 저 현장에 있었는데 영상이 현장에 10%도 못 담아요ㅜㅜ
- 와 영상보고 울고 싶은 건 처음이네. 여운이 진짜···.
타이슨 팬들의 분위기가 이럴진대.
천마의 팬들을 말할 것도 없었다.
내 새끼가 개쩌는 무대를 보여주는데 신이 안 날 리가 없지.
천마 팬클럽은 흡사 축제의 장이었다.
- 천마재림! 만마앙복!
- 처음으로 방청 당첨됐는데 그게 우리 천마 무대라니! 곧 후기 남길게!
ㄴ 오 시발 부럽다!!
ㄴ 후기 기다릴게! 미리 고마워!
- 아아-아아- 하는 이 부분, 극락이다 진짜 ㅠㅠㅠ 그냥 음색의 변화로 감정 흐름을 다 담아냈네···. 뭐라고 길게 표현은 못 하겠고 개 멋있다 진짜 나 이런 천재 좋아했구나!
- 덕질하면서 이렇게 뿌듯한 거 처음이야ㅠㅠㅠ 다들 여기 링크 들어가봐(링크)
ㄴ 와.. 저기 타이슨 팬 커뮤 맞아? 왜 다 천마 이야기야?
ㄴ 디스전 하기 전에는 조금 피곤했는데, 지금은 비타민 100개 먹은 기분이야!
얼마 전까지 치고박고 하던 타이슨의 팬들까지 천마를 인정해주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건 시작이었다.
애초에 이전부터 관심을 있는대로 끌어모은 천마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거리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잔치에는 즐길 거리가 너무 많았다.
이번 특별편성으로 땡잡은 토크쇼는 빠르게 편집본을 내놓았고, 일반 대중도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 컨셔스한(conscious) 앨범이라 노잼일 줄 알았는데, 이 집 좀 맛있네?
전달하는 메시지가 무거워서 마니악할 거라는 예상도 있었다.
그러나 메시지가 무거울지라도 사람들 사이로 멀리 뻗어나갔다.
그렇게 이번 신곡은 대중성을 잡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그 까다롭다는 평론가마저 호평을 쏟아냈다.
[갱, 마약, 총이 아니라도 멋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전통 힙합 vs 얼터 힙합의 대결. 자연스럽게 풀어놓은 시대에 대한 고뇌와 고민은, 거칠기만 한 자기 과시보다 훨씬 의미 있었다.]
[천마. 비극이던 컴튼을, 승리로 바꿀 선구자이다.]
앨범을 발매한 후 1주일 사이, 천마는 라이벌 팬덤을 사로잡고, 평론가도 잡고, 대중도 잡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잡고 1주일 뒤,
빌보드 성적이 집계되었다.
< 판 좀 키워볼까?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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