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음공으로차트올킬-152화 (152/191)

< 판 좀 키워볼까? (3) >

천마의 팬인 [빛천마]

그녀는 여전히 고통받는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직장인은 신나는 마음으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룰룰루루-”

세상 어떤 직장인이 출근하는 걸 행복해하겠느냐마는.

분주한 손놀림으로 화장을 하는 직장인은 콧노래까지 부르는 중이었다.

아침의 2호선, 지옥에서 올라온 듯한 그 끔찍한 열차 안에서도 직장인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헿. 히힛!”

양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와중에도 직장인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직장인이 이러는 이유?

그러니까 한국 시각으로 새벽 3시에서 4시 무렵.

미국에서 날아온 소식이 그녀의 기분을 하늘 끝까지 끌어올렸다.

‘빌보드 1등이라니! 천마가 빌보드 일등이라니!’

빌보드 1등.

그것도 한국인 최초의 빌보드 1등.

사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천마에게 서운했었다.

‘맨날 미국에서만 활동하고. 한국 활동은 한 게 언제야?’

토비라는 래퍼와의 합작 앨범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요즘 천마가 너무 한국 활동을 해주지 않아서 섭섭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모든 서운함이 싹 날아갔다.

‘아니, 솔직히 빌보드 1등이 말이 되냐고! 우리 천마는 진짜 미쳤어!’

여기가 지하철만 아니라면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돈 다음에 브레이크 댄스까지 췄을 거다.

빌보드 차트를 보며 한참 실실거리던 그녀는, 이 기쁨을 나누기 위해 천마의 팬클럽인 십만교인에 들어가 보았다.

‘크으! 좋다 좋다. 요즘 십만교인 일 잘한다니까.’

천마의 빌보드 1위 소식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팬클럽 대문부터 배너까지.

모두 빌보드 1등을 축하하는 사진으로 바뀌어있었다.

천마가 자체 컨텐츠를 시작한 이후, 해외 팬들까지 빠르게 유입되었다.

그리고 소속사와 운영진에서는 성공적인 뉴비의 정착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튼.

십만교인은 가히 축제의 장이었다.

- 천마님이 미국에도 재림하셨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 토크쇼 무대 봤는데 음을 가지고 놀더라 개쩔ㅇ어··· 진짜 핫백 1위 아무나 하는 거 아님

- 동네사람들 이것봐요 내 새끼 좀 봐요

- 천마 선에서 기강정리 완.

한국인부터 외국인들까지.

모두 한마음이 되어 천마의 빌보드 1등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서 ‘토비가 아니였으면 1등 못 했다.’ ‘솔로곡 1위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않냐’ ‘돈으로 샀다’라며 각종 후려치기가 난무했지만, 십만교인은 흔들리지 않았다.

- 악개들이 천마 성적 잘나올까봐 날조하는거 반박하는중ㅋㅋㅋㅋ

- 정병들 오늘 배아파 쥭겠죠?^^

- 여기서 세일즈로 뭐라하는 애들은 라디오 하나로 상위권 찍는 팝가수들 한테도 뭐라하는 거 맞지?

어느새 한 몸이 되어 똘똘 뭉친 십만교인을 보고 있자니, 직장인은 감회가 새로워졌다.

‘내가 우리 천마를 응원한 게 언제였더라?’

처음 응원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자기 회사는커녕 뉴튜브나 하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런데 이제는 빌보드 1등을 하다니!

더 이상 나작천이 아니게 되었지만.

이제와서 그런 건 상관없다.

‘많은 사람이 우리 천마를 좋아해 주면 좋은 거지!’

뉴스도 벌써 천마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었다.

[한국인 최초의 빌보드 핫 100 1위··· K팝의 새 역사 쓰다!]

[빌보드 1위를 석권한 천마, 올라간 K팝의 위상]

[두유 노우 천마? 천마, 두유 노우 클럽 입성!]

기자들은 국뽕 요소들을 섞어주며 열심히 천마를 빨아주는 중이었다.

컴튼의 모습을 그린 천마의 이번 앨범이 K팝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끝내주네!’

오래전부터 응원하던 가수를.

이제는 전 국민이 인정해주고 있어서 직장인의 기분은 저기 성층권을 넘어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당연히 회사에서도 천마의 빌보드 1등이 화제였다.

점심시간.

동료들과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대화 주제는 단연 천마였다.

“다들 뉴스 봤어? 이번에 천마가 빌보드 1등을 했더라고. 그 사람 대단하네.”

으쓱!

“당연히 봤죠. 포털사이트마다 다 천마 기사밖에 없던데요?”

으쓱으쓱!

“천마가 난 놈이긴 난 놈이네요. 한국에서 빌보드 1등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으쓱으쓱으쓱!

동료들이 천마를 칭찬해 줄 때마다 직장인의 어깨는 미친듯이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묘하게 움찔거리는 직장인을 보며 팀장이 물었다.

“빛나 씨는 천마 팬이잖아. 이번에 빌보드 1등 해서 기분 좋겠네?”

“아하하하, 뭐. 기분은 좋네요.”

사실 기분이 좋은 정도가 아니다.

방금 동료들의 칭찬으로 기분이 세 바퀴쯤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때였다.

한 동료가 약간은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다음 주에는 떨어지는 거 아니에요? 보면 한국 가수들은 빌보드에서 버티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하긴. 그것도 그래. 전에 매그넘도 반짝 빌보드에 들었다가 소문도 없이 사라졌었잖아.”

“.......”

사실 직장인도 이 부분을 걱정하고 있었다.

최근 심상치 않은 십만 교인들의 기세와, 미국 내에서 확실한 화제 몰이를 하면서 빌보드 1등을 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다음 주에도 1등을 할 거라는 보장은 없지.’

보통 한국의 아티스트들은 팬덤형이다.

발매 당시에는 팬덤의 화력으로 높은 순위를 기록한다.

그 말인즉슨 지속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중성을 못 잡으면 순위 유지는 꽝이지.’

이후에도 그 순위를 유지하려면 미국 본토에서 꾸준히 천마의 노래를 소비해주어야만 순위를 유지할 수 있다.

‘최근 천마의 노래가 대중 픽이 되었다고는 하는데.’

빌보드 1등을 유지한다?

이건 또 다른 문제이다.

직장인은 그저 천마의 이름이 빌보드의 맨 꼭대기에서 오래오래 남아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직장인의 걱정은 기우였다.

그로부터 1주일 뒤.

“꺄야야야야야악!!!”

새벽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직장인의 방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홀리 쉿!! 빌보드 2주 연속 1위라니!!”

천마의 음원 판매량은 오히려 더 늘어나며, 앨범 차트와 싱글 차트 모두 1등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는 데 성공했다.

덤으로 직장인의 행복도 일주일 연장되었다.

*

토크쇼 출연 이후.

천마와 토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빌보드 1등을 한 대가를 치른다고 해야 하나?

각종 방송에서부터 콘서트까지 스케쥴이 빽빽하게 가득 차 버렸다.

그리고 타이슨과 토비, 그리고 천마의 인연도 마무리되었다.

어차피 컴튼에서 지내고 있는 세 사람이다.

상황이 마무리된 뒤 세 사람은 술자리를 가졌다.

“.......”

“흠흠······”

당연한 이야기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잡아먹을 듯 싸우던 두 사람의 사이가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았다.

“...둘 다 자칭 상남자라면서 하는 짓들은 왜 이렇게 좀생이냐.”

토비와 타이슨은 술을 앞에 두고 눈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천마는 피식 웃으며 두 사람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자, 일단 사진 한 장 찍으시고.”

두 사람이 싸운 이후로 컴튼의 분위기도 함께 흉흉해졌다.

팬들에게도 화해의 제스쳐를 보여주고, 과몰입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퍼포먼스가 필요하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천마는 두 사람의 잔에 가득 술을 따라주었다.

“그럼 이거 마시고 푸는 거다?”

타이슨은 들고 있던 잔을 내밀었다.

토비는 들고 있던 잔을 맞부딪혔다.

짠-

잔에 있던 술이 남김없이 목으로 넘어간다.

두 사람은 그렇게 남아 있는 앙금을 천천히 비워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근데 너는 여전히 술 못 마신다. 벌써 눈까리가 맛탱이가 갔는데?”

“...지랄한다. 천마 방송에서 술 마시다가 토한 새끼가 누구인데. 전에 술 마실 때도 취해서 도망갔잖아, 병신아.”

훈훈하던 분위기를 연출하던 토비와 타이슨은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보며 차선우는 생각했다.

어쩌면 둘이 싸운 건 컴튼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그냥 둘이 성향이 안 맞는 게 아닐까?

“내가 너보다 농구는 더 잘하지 존만한 새끼야. 초등학교 때 생각 안 나냐?”

“뭐?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이번 주말에 다시 붙어, 이 새끼야.”

그래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과열되었던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컴튼에 평화가 찾아왔다.

.

.

.

토비와 타이슨이 표면적으로(?)는 화해를 하고.

천마와 토비가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냈다고 해도.

컴튼이 확 바뀌진 않았다.

당연히 음악 하나만으로 도시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컴튼은 여전히 컴튼이었다.

갱들이 득세하고, 매일 같이 사고가 일어나고 있었다.

어젯밤에도 열심히 총성이 울렸던 걸 보면, 이 도시가 바뀌는 건 요원해 보인다.

그리고 그 증거가 차선우의 눈앞에 있었다.

“후······.”

차선우는 차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이 망할 새끼들은 왜 남의 차 옆에서 지랄을 한거야.”

차의 사이드미러 한쪽이 보기 좋게 접혀 있었다.

그것도 돌아가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타이어에 펑크가 난다거나, 유리창이 총에 맞아 박살이 났다거나,

아니면 차 자체가 없어져 버린 건 아니라서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는 건가?

차선우는 보닛을 향해 접혀 있던 사이드미러를 원상태로 돌려보았다.

“이건 또 왜 안 돌아가?”

힘을 써봐도 사이드미러는 다시 원상 복귀가 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내공까지 사용해서 힘을 주던 차선우는,

빠직-

“.......”

겨우 붙어있던 사이드미러의 호흡기를 떼고 관뚜껑마저 못으로 박아주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사이드미러를 보며 차선우는 중얼거렸다.

“......근처에 있는 정비소에 가야겠는데.”

사이드미러 한쪽이 저 꼬라지를 해서는 운전을 할 수 없다.

차선우는 지도를 보고 가장 가까운 정비소에 급하게 갔다.

그리고,

“어서 오십셔! 어떻게, 컴튼 최고의 정비소ㅇ···.”

그곳에서 조직원을 만났다.

“어? 너 여기서 일하고 있었냐?”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사이드미러가 완전 박살 나버려서 말이야. 근데 너 어제 내 차 근처에서 지랄한 새끼들 누군지 아냐?”

“...저는 어젯밤 늦게까지 정비 일을 배우느라고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 진짜 몰라?”

차선우는 조직원의 모습을 보았다.

옷은 검댕이 묻어서 꼬질꼬질하다.

얼굴에는 엔진 오일이 군데군데 묻어있는 걸 보면, 정비 쪽으로 전향했다는 게 영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전에 정비일을 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진심으로 하고 있나 보네.’

어쨌든.

“이거 사이드미러 고칠 수 있겠냐?”

오늘도 뒤통수를 맞을까 봐 저 멀찍이 서 있던 조직원은 그제서야 사이드미러를 확인했다.

“흠.”

잠시 사이드미러를 요리조리 보던 조직원은 견적을 냈다.

“이야, 이거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네요. 부순 놈이 작정하고 한 거 같던데요? 사이드미러를 젖힌 다음에, 그걸 힘을 줘서 완전히 뽑아 버렸네요.”

“.......”

“그냥 앞쪽으로 접힌 거는 대충 분해해서 수리하면 되는데. 사고 난 것도 아니고, 이 모델 사이드미러만 이렇게 뽑힌 건 또 처음 보네요. 이게 튼튼한 모델이라서 사람 힘으로 이렇게 하기는 힘든데. 연장으로 때려 박은 건 또 아닌 것 같고. 혹시 컴튼에서 원한 관계라도 사셨어요?”

“그래서, 고칠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차선우가 손마디를 꺾으며 물었다.

“아하하하, 고칠 수 있죠. 잠시만 기다리십쇼!”

그리고 잠시 뒤.

“오래 기다리셨죠? 말끔하게 복구 완료했습니다.”

덜렁덜렁 애처롭게 매달려 있던 사이드미러는 깔끔하게 원상복구 되어 있었다.

차선우는 손을 들어 올렸다.

조직원은 그 모습을 보고 움찔했다.

몇 달 동안 차선우에게 뒤통수를 맞은 게 수십 번이다.

저 호리호리한 몸에서 나오는 손맛이 어찌나 매운지, 한 대 맞으면 골이 다 울린다.

물론 차선우가 이유 없이 때린 건 아니었지만, 수도 없이 나쁜 짓을 했던 조직원은 본능적으로 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차선우의 손은 뒤통수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부드럽게 조직원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고생했다. 실력 좋은데?”

차선우는 조직원에게 정비료를 지불하고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 순간.

조직원이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운전석으로 다가왔다.

“그, 이번 앨범 있잖아요.”

“?”

“진짜 좋았어요. 잘 듣고 있어요. 앞으로도 응원할게요.”

그리고는,

“큼큼. 아 그러보고니 사장님이 끝내놓으라는 일이 있었지.”

후다닥 정비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차선우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잘 지내라.”

액셀을 밟은 차선우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차창 밖으로 컴튼을 보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보았던 컴튼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조직원은 바뀌었다.

그의 삶이 언제까지 바뀌어있을지는 모른다.

멀지 않은 미래에 자동차 정비에 질려서 다시 조직 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바뀌었지.’

그는 더 이상 마약 운반을 하지 않는다.

차량 절도도 하지 않을 거고.

이 넓은 컴튼에서 고작 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조직원에게는 온 세상이 바뀌는 경험이리라.

그의 노래가 남긴 씨앗을 보며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차선우는 기꺼운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

차선우는 한국에 돌아왔다.

“역시. 한국 공기가 최고지.”

빌보드 1등도 했고.

잠시 휴식기를 가지며, 당분간 여유롭게 방송이나 할까 생각하던 차선우였다.

하지만 빌보드 1등의 여파는 그의 생각보다 컸다.

세상은 차선우를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천마의 방송에 거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진성그룹이었다.

< 판 좀 키워볼까? (3)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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