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도 배틀입니다 (1) >
이제는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된 천마신교.
그 천마신교가 있는 천산빌딩의 최상층.
천마 전담팀은 바빴다.
그것도 엄청 바빴다.
띠리리리링-
“아, 내일 스케쥴이 어떻게 되냐고요? 잠시만요···.”
“이거 천마님 콘서트에서 사용할 장비인데. 도안대로 제작되고 있는 거 맞죠? 중간 사진 좀 보내주세요.”
“경동일보시죠? 아, 네. 오늘 오후 8시 비행기로 귀국하십니다.”
불이라도 날 것 같이 울리는 전화기와, 정신없이 전화를 받는 직원.
서류를 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직원.
사무실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천마가 잘 나가는 만큼, 천마 전담팀에는 일거리가 말 그대로 쏟아지고 있었다.
천마와 토비의 공동 앨범은 1주 차에 핫 100 차트 1위를 하는 핫샷을 달성한 것도 모자라, 2주 차와 3주 차에도 연달아 1위를 했다.
더욱 긍정적인 것은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트리밍 수부터 에어플레이, 실제 앨범 판매량까지.
3주 차인데도 모든 지표가 유지 중이다.
천마 전담팀의 직원들은 내심 기대하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4주 연속 1등도 가능할지도?’
덕분에 야근은 기본이오, 특근은 필수 옵션이다.
저기 구석에는 라꾸라꾸의 모습까지 얼핏 보인다.
그 사이에서 옥수진과 강여름도 미친듯이 일을 하고 있었다.
푸석푸석한 피부와 붉어진 눈동자,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짙은 다크써클.
그럼에도 옥수진과 강여름은 나름 행복하게 일하는 중이었다.
옥수진은 회사 메일함을 열어 이번에 들어온 광고들을 확인했다.
“미래 자동차, KC 은행, ST 텔레콤, 캐슬타워 아파트······ 어? 진성 전자는 또 광고를 의뢰했네?”
그것 말고도 메일함에는 수십 개의 광고 의뢰가 쌓여 있었다.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A급 광고주들이, 제발 천마를 모델로 쓰게 해달라며 매일 같이 연락해온다.
기업들의 면면을 보고 있자니 괜히 옥수진의 어깨가 으쓱해진다.
“천마 님은 어차피 CF 안 하시는데. 그래도 괜찮은 건 체크해서 올려봐야겠다.”
옥수진은 광고 금액과 조건들은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한 뒤, 괜찮은 것들을 추려서 천마에게 상신했다.
그리고 강여름은 천마의 전반적인 스케줄을 관리하고 있었다.
“오늘 천마 님이 귀국하시는 날이었지. 새벽에 출발했다고 연락받았으니까. 이제 한 7시간 남았네.”
한국 최초이자 3주 연속으로 빌보드 1위를 한 아티스트가 위업을 이루고 귀국하는 길이다.
“당연히 그 역사적인 모습은 사진으로 남겨야 하는 법이지!”
천마가 돌아오는 대로 천산 빌딩의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었다.
강여름은 기자들에게 오늘 있을 기자회견 스케줄을 쫙 돌렸다.
본인의 대포 카메라 배터리를 다시 한번 체크하는 건 덤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닥친 업무들이 얼추 끝났다.
강여름과 옥수진은 시계를 봤다.
벌써 오후 3시.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여름 님. 같이 샌드위치나 먹으러 갈래요?”
“아주 좋아요!”
두 사람은 근처 카페로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사러 갔다.
샌드위치와 세트로 나온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킨 강여름이 말했다.
“크. 입에 뭐가 들어가니까 좀 살 것 같다. 이제 천마님 귀국하시면 당분간 특별한 활동은 없으시겠지?”
“어제 듣기로는 잠깐 휴식기를 가진다고 하셨어요. 아, 이번에 매입한 사옥 부지 보러 가신다는 말도 하셨어요.”
“아 그래? 마침 딱 지난주에 매입 끝났는데. 잘 끝나서 다행이다. 그지?”
“맞아요. 펄 엔터 제이맨님께 들었는데, 그쪽은 사옥 건설할 때 부지 매입만 4년이 걸렸다더라고요.”
“헐~ 미쳤다. 4년이나 걸렸어? 우리가 빠르게 잘 한거였네.”
조만간 천마신교의 사옥을 신축할 예정이다.
작년부터 진행해왔던 부지의 매입은 딱 지난주에 끝이 났다.
“근데 문제는 건축가죠.”
부지 매입은 순탄했다.
하지만 그 위에 올릴 건물을 설계해 줄 건축가가 통 수배되질 않고 있었다.
“제가 국내 유명 사무소에 의뢰를 해봤는데, 저부터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하긴. 이번에 펄 엔터 사옥이랑 엮어서 천마 타운을 만드실 생각이라면서. 규모가 장난 아니겠다.”
천마는 이번에 매입한 부지에 천마 타운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사옥을 아티스트와 직원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천마신교를 찾은 팬들이 놀러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었다.
특히 천마신교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용사비등한 필체로 쓴 현판을 타운 맨 앞에 걸어놓아 모든 팬들이 볼 수 있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천마 타운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옥수진이 아까 봤던 진성 전자의 광고 의뢰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이번에 진성 전자에서 광고가 왔던데요?”
“오! 대박대박! 이번엔 무슨 광고야?”
“새로 나오는 스마트폰이요. 천마 님을 메인 모델로 쓰겠다고 했어요!”
“헐! 이번에 출시 예정인 J25? 와··· 그건 진짜 천마님이 꼭 하면 좋겠다!”
전 세계의 지하철부터 버스, 옥외 광고판을 모조리 채운 천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각국의 팝업 스토어마다 천마의 등신대가 놓이고, TV 광고에는 천마가 나온다.
강여름이 흥분했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개쩔잖아!’
괜히 그 모습을 상상하던 강여름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천마님은 왜 광고를 하지 않으시는 거지?”
이상하게 지금까지 단 한번도 광고를 하지 않았다.
딱 잘라서 광고를 하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는데, 그렇다고 광고를 받질 않으니 뭔가 있나 싶기도 하고.
“글쎄요. 무슨 기준이라도 있으신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어깨를 으쓱한 두 여자는, 의문을 뒤로하고 다시 천산빌딩에 올랐다.
*
진성 그룹의 모든 계열사가 모인 강남의 사옥.
그곳에서 진성 그룹의 실적 보고 회의가 있었다.
진성 문화 재단의 이사장인 김소현도 회의에 참석했다.
“그럼 이것으로 정기 회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진성 그룹의 총수인 김재범의 말과 함께 회의가 끝났다.
계열사의 사장단은 개별 보고를 하곤 회의실을 나갔고, 김소현은 밖에서 오빠인 김재범을 기다렸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 이 정도 가지고 뭘.”
두 사람은 장소를 옮기며 오랜만에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애초부터 후계 구도가 확실했던 진성 그룹은 형제들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서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하다보니 오히려 다른 재벌 그룹에 비해 사이가 꽤 좋은 편이었다.
김소현은 최근 자신이 듣고 있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부터, 문화적인 동향이 어떤지 미주알고주알 얘기했다.
김소현의 이야기를 듣던 김재범이 물었다.
“그래서, 요즘 추천해줄 만한 클래식은 뭐야?”
하지만 김소현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나 요즘 힙합 듣잖아.”
“힙합?”
이번 천마가 힙합으로 빌보드에 오르면서 김소현도 처음 힙합이라는 장르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듣다 보니 신선하고 좋았다.
뭐, 천마가 만든 노래라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천마로 넘어갔다.
“천마는 진짜 대단한 것 같아. 나는 적어도 10년은 우리나라에서 빌보드 1등이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거든.”
천마가 빌보드 1등을 하면서 김소현도 은근히 수혜를 받고 있었다.
매주 진성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천마의 음악방송’은 이제 진성 아트 센터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버렸다.
심지어 외국 팬들에게는 진성 문화 센터 관람이 천마 투어 코스의 하나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방청도 치열한 것 같던데. 이참에 더 큰 무대를 줘야 하나?’
한참 이야기를 하던 김소현은 문득 너무 자기 이야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근 김재범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새로운 핸드폰은 잘 되고 있어?”
김소현의 물음에 김재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 시리즈는 잘 나왔다. 성능도 괜찮고, 디자인도 이쁘고.”
몇 번의 시리즈마다 돌아오는, 소위 역대급이라고 불리는 작품이 나왔다.
그래서 이번 작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번만큼은.
‘에이플(A+)의 사과 폰을 이길 수 있으면 좋겠군.’
김기범의 말을 들은 김소현은 박수를 쳤다.
“잘됐네. 오늘 실적 발표 들어보니까 우리 스마트폰이 일본에서도 선방했다던데.”
이번 분기, 진성은 전통적으로 일본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던 사과폰과의 격차를 크게 좁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천마신교가 있었다.
“이번에 천마신교의 탑걸즈에게 광고를 맡긴 게 주효했지.”
진성 전자는 과감하게 기존의 모델과 계약을 해지했다.
대신 일본에서 돌풍을 일으킨 탑걸즈와 계약했다.
덕분에 젊은 층에서 진성 전자의 스마트폰이 점유율이 확 높아졌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문제는 에이플에서도 이를 갈고 있다더군.”
에이플에서도 진성과 비슷한 시기에 신제품 출시를 예고하며, 본격적으로 한판 붙어보자는 선전포고를 해버렸다.
텃밭이라고 불리는 일본 시장에서 기습을 당한 에이플이다.
차기 모델은 대대적으로 광고를 해서 진성 측에 빼앗긴 점유율을 가져올 게 분명하다.
당연히 미국에서도 엄청난 광고를 할 예정이고, 전통적으로 진성이 가지고 있는 한국 시장까지 노린다는 예상이 있었다.
‘아마 이번 대결이 추후 스마트폰 시장의 점유율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겠지.’
그 상황에서 진성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이럴 때일수록 확실한 한방이 필요한데.
김재범의 마음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천마에게 광고를 맡길 수 있다면 좋겠는데.’
기본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티스트 중 하나다.
쌓아놓은 팬덤의 규모와 충성심은 아마 세계에서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겠지.
특히 이번에 힙합으로 빌보드 1등을 차지하면서 힙하고, 쿨한 이미지까지 자리 잡았다.
‘여기에 천마신교의 아티스트들과 콜라보까지 할 수 있으면?’
김재범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천마에게 광고를 맡길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데 아쉬운 건.
천마는 광고를 받질 않는다.
조건의 문제는 아닌 게 분명하다.
분명 조건은 국내 최고였는데······.
“그 사람은 왜 광고를 하질 않는 거지?”
지금까지 한 것이라고는 ‘둠 스카이4’에서 캐릭터로 등장한 게 끝.
광고를 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생각할수록 아쉬웠다.
그때였다.
김재범의 말을 들은 김소현이 뭔가 고민하더니 말했다.
“오빠. 잘하면 내가 천마에게 광고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아.”
“뭐? 그게 진짜야?”
김재범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김소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김재범의 가장 큰 고민중 하나가 해결되는 셈이다.
김재범은 어서 그 방법을 말해보라는 듯 김소현을 바라보았다.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은 김소현은 그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천마신교에서 사옥을 짓는다고 하더라고. 이미 합정동 쪽에 부지 매입까지 끝냈어. 규모를 봐서는 랜드마크가 될만한 정도의 건물을 올리려는 모양이야.”
하지만 어디 그런 건축물을 쉽게 올릴 수 있겠는가.
“아직 마음에 드는 건축가를 구하지 못한 모양이야. 알다시피 내가 이쪽으로는 인맥이 좀 있잖아.”
진성 문화 재단을 운영하면서 문화 예술 쪽 거장들과 자주 만남을 가지며 안면을 텄다.
김소현의 인맥 중에서는 세계적인 건축가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건축가를 구해준다는 조건으로 광고를 맡기는 건 어떨까?”
김소현의 아이디어에 김재범은 무릎을 쳤다.
“오! 좋은 생각인데? 소현이 네 말대로 오늘 밤 당장 천마 방송에 들어가 봐야겠어. 마침 얼마 전 한국에 들어온 모양인데 잘됐군.”
비서실과 홍보팀에 연락을 돌리던 김재범을 김소현이 잡았다.
“잠깐만!”
“음?”
그리고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후원. 내가 할게.”
“.......”
“내가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
천마 방송을 즐겨보는 김소현이다.
다른 사람들이 후원을 날리며 천마랑 노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워 보였다.
‘나도 후원이라는 거 해보고 싶었다고!’
이전에는 김소현이 가지고 있는 체면과 위신이라는 게 있어서 함부로 후원을 날리지 못했다.
천마 방송에서 괜히 후원이라고 날렸다가는, 재벌이 쓸데없이 돈지랄한다고 당장에 기사가 났을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명분이 있으니까.’
광고 의뢰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다.
마침내 소원을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에 김소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머릿속으로 방송에 들어가서 어떤 멘트를 날려야 재미있을지 고민하던 김소현은, 문득 천마 방송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이벤트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 배틀! 배틀도 너무 재미있어 보였는데. 이참에 배틀도 한 번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들리는 바로는 천마에게 광고를 의뢰한 기업들만 수십 개라고 한다.
아마 이쪽에서 광고 후원을 날리면 다른 기업에서도 붙을 게 뻔하다.
하지만 김소현에게는 자신이 있었다.
‘돈찍누 메타를 보여주지!’
무슨 일이 있어도 배틀에서 승리할 자신이.
대한민국 최대 재벌가에서, 천마의 방송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 재벌도 배틀입니다 (1) > 끝
ⓒ 연태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