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도 배틀입니다 (2) >
도시가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천산빌딩의 꼭대기.
그곳에서 차선우가 눈을 떴다.
“끄으으응. 몇 시지?”
시계를 보니 10시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고?”
어젯밤 10시쯤 기자 회견을 하고, 가볍게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다음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여 있던 모양이다.
평소에는 한두 시간 눈만 붙이고 운기를 하면 피로가 싹 풀리는데.
한국에 와서 그런지, 벌여놓은 일이 마무리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냥 아주 기절했다.
“이렇게 푹 잔 건 진짜 오랜만인데?”
하긴.
생각해보면 요 일년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코코넛과 경쟁 끝에 펄 엔터를 인수하고,
일본에 가서 게임을 만들고,
월드 투어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강호행을 떠나고,
빌보드에 올린 앨범도 두 장이나 냈다.
“.......”
아. 엄청 바빴구나.
피곤할 만 했네.
차선우는 오늘부터 며칠은 좀 쉬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침대에서 일어난 차선우는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쉬더라도 훈련은 빼먹을 수 없지.’
단전에서 시작된 내기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시원하게 내달렸다.
무협에서 돌아온 이후, 차선우는 내력 수련만큼은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
음공은 내공빨이니까.
일주천을 마친 차선우는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잡았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는지 볼까?”
세상 돌아가는 일이 궁금하다면 사회나 정치면을 보면 된다.
하지만 차선우가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하이버의 연예 뉴스란.
거기 대문짝만하게 차선우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어제 기자 회견에서 찍힌 사진이다.
“흠흠, 빌보드 1등이 뭐 대수라고.”
그렇게 말하는 차선우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차선우는 다움에도 한번 들어가 봤다.
역시.
다움 연예면도 차선우의 얼굴이 걸려있다.
“흠흠, 어흠!”
차선우의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간다.
무림에서도 그랬지만, 사람들의 칭찬은 언제나 짜릿하다.
포털사이트를 한 바퀴 순회한 차선우는 야무지게 댓글까지 확인했다.
대부분의 댓글이 차선우의 빌보드 1등을 축하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몇몇 팬들이 달아놓은 댓글들도 보였다.
- 한국 온건 좋은데, 이젠 본진도 좀 챙겨주십셔!
- 콘서트 없나요? 아니면 팬싸? 아니면 팬미팅? 아니면 뭐라도!
댓글을 읽던 차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한국 팬들을 안 본 지 좀 됐네.”
작년 투어 콘서트 이후 한국에서 활동하질 못했다.
뉴튜브로 계속 소통하기는 했다만, 그게 직접 얼굴 보고 노는 것만 하겠는가?
요즘 해외에 나갈 일이 부쩍 많아졌는데, 한국에 들어온 김에 ‘전국 팬미팅투어’를 열어야겠다.
“이건 전담팀에 말해두는걸로 하고.”
그리고 팬들을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
바로 천마의 음악방송이다.
이게 이름은 천마의 음악방송인데.
MC가 천마가 아니다.
잦은 해외 스케줄로 천마는 어쩔 수 없이 하차했고, 그 자리에 들어갔던 게.
“이승호였지.”
처음에는 꼭 좀 그 자리에 들어가고 싶다고, 시켜만 준다면 잘할 자신이 있다고 사정사정하길래 반신반의하며 시켜보았다.
그리고 이승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이돌 짬밥을 7년이나 먹은 이승호다.
이승호는 특유의 능구렁이 입담으로 천마의 빈자리를 빠르게 채웠다.
차선우가 하던 것과는 결이 많이 달랐지만.
“...그 정도면 나름대로 괜찮았지.”
다만 아쉽다.
이승호의 진행이 아쉽다는 게 아니라, 팬들을 주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사라진 것에 대한 게 아쉬웠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스페셜 MC로 참여해야겠군.”
앞으로도 해외 활동이 많을 만큼 고정으로 있지는 못하겠지만.
이 정도면 팬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오케이!”
이정도면 당분간의 계획은 정리되었다.
이제 슬슬 밖으로 나갈 때다.
쉬는 날이지만 세워놓은 계획이 많다.
오늘 가장 먼저 할 일은 구매한 부지를 보는 것이다.
차선우는 은잠술을 사용하고 부지가 있는 합정동으로 향했다.
‘이렇게 보니까 넓은데?’
사실 합정만으로는 넉넉하지 않아서 인근의 망원동까지 걸쳐서 부지를 매입했다.
지금까지 지도로만 보니 감이 잘 오지 않았었는데.
거대한 부지를 보고 있자니, 괜스레 무림에서의 천마신교가 떠올랐다.
차선우는 마음속으로 지금의 천마신교와 무림에 있었을 때의 천마신교를 비교해보았다.
‘이정도면 이제 내가 딱 교주가 되었을 때랑 비슷한 정도인가?’
자신도 경지에 오르고, 세력의 규모도 꽤 큰 편이지만.
아직 일통까지는 갈 길이 많이 남아있는 그런 수준?
이제 규모가 커진 만큼,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있다면 천마신교로 데리고 와서 점차 일통까지 달려볼 생각이다.
‘슬슬 지부도 세우면 좋겠군.’
일본과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천마신교의 지부를 세우는 것이다.
차선우의 머릿속에 앞으로의 청사진이 쫙 그려졌다.
다만 아쉬운 건 건축가다.
‘땅도 있고, 돈도 있는데.’
건물을 세워줄 사람이 없네.
국내에서 찾는 건 포기했다.
옥수진을 통해 국내 유명 건축사무소에 의뢰를 맡겨봤지만, 차선우의 마음에 들게 건축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해외에서도 몇몇 건축가들을 만나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짜 유명한 곳은 예약이 밀려서 최소 5년을 지나야지 그때야 설계를 시작할 수 있다더라.
앞으로 천마신교를 대표할 중요한 공사인 만큼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인데.
‘왜 <조선천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무림의 천마신교가 가지고 있던 특유의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 양식에, 천마신교 레코즈가 밀고 있는 <조선천마>의 건축 양식을 섞는다.
한국 전통의 기와 및 처마, 기둥 양식 등을 이용한 건축을.
‘무림에 있을 때는 대충 말해놓으면 알아서 잘해놓던데.’
물론 그 뒤에는 추상같은 교주님의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 수십 명의 장인들이 갈려 나갔다는 걸 차선우는 몰랐다.
‘그래도 시급을 다투는 일은 아니니까.’
이 고민은 접어두고.
오늘의 두 번째 할 일.
바로 강원도 원주의 본가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
차선우는 원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부모님을 마지막으로 뵌 게 언제였던가?
‘맞아. 올해 봄에 가족여행으로 일본으로 갔었지.’
강여름이 ‘십만교인 양병설’을 주창할 때쯤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이후로도 중간중간 전화나 영상통화로 안부를 물었지만, 직접 뵌 건 벌써 시간이 꽤 지났다.
다행히 두 분은 잘 지내시는 모양이다.
얼마 전 통화를 했을 때는 밝은 목소리로,
- 장사? 아이고, 걱정하지 마. 우리는 하나도 안 바빠! 그냥 요즘 ‘조금’ 손님이 많아졌네.
조금 장사가 잘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
쩌억.
부모님의 가게 근처에 도착한 차선우는 입을 벌렸다.
원래 이렇게 장사가 잘됐었나?
분명 ‘조금’ 손님이 많아졌다고 했었는데.
‘이게 조금이라고?’
어림잡아도 수십 명은 줄을 서고 있었다.
뭐, 이전에도 나름대로 장사가 잘되기는 했었다.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서 건물을 올리실 정도였으니까.
‘근데 이건 그 정도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여기 낭만포차 맞아?’
부모님 손맛이 좋기는 한데··· 이 정도라고?
맛집이니, 핫플레이스니 따위의 단어로 이걸 표현할 수는 없다.
그래!
생각났다.
‘이 정도면 관광지에 온 것 같은데?’
꼭 네버랜드로 단체관광을 온 사람들 같다.
줄을 서지 않더라도 주변의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다던가.
심지어 중간중간에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일이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의문을 가지고 가게 앞에 다가간 차선우는.
금방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여기가 바로 그 집!]
가게 벽 곳곳에는 차선우의 어릴 적 사진들이, 그것도 연도별로 정리되어 깔끔하게 코팅되어 붙어있었다.
심지어 건물 앞 대형 디스플레이에는 차선우의 최근 활동을 담은 VCR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중에는 빌보드 1등 기념 기자 회견 영상도 있었다.
“.......”
빌보드 1등이 이렇게 수치스러울 줄이야.
차선우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는, 인파를 뚫고 일단 재빠르게 2층에 있는 집으로 올라갔다.
어머니께 연락을 넣자 주방에 계시던 어머니가 바로 올라오셨다.
“아이고! 우리 빌보드 1등 가수가 왔네! 배 안 고파?”
배?
고프다.
오늘 아점으로 샐러드 먹은 거 말고 뱃속에 들어간 게 없다.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 엄마! 건물 앞에 저, 저, 저···흉측한 저거 뭐예요! 나도 초상권이 있다고!”
“어머, 네가 초상권이 어딨니. 그리고 저 영상 너희 회사에서 홍보에 쓰라고 주신 거야.”
“어···?”
차선우는 순간 불길한 직감과 함께 한 사람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셨다.
“내가 무슨 재주로 영상을 만들겠어. 여름 씨던가? 그분이 편하게 쓰라고 하면서 매달 업데이트도 해주더라. 참한 아가씨야.”
강여름!!!!!!!!
그렇게 얘기하다 보니 동생 얘기도 나왔다.
“소미 좀 봐라. 얘는 얼마전에도 친구랑 같이 와서 엄마 일 도와주고 갔어.”
동생이 집에 다녀간 모양이었다.
하지만 차선우는 다른 단어에 집중했다.
“친구요?”
“그래. 왜 너네 소속사에 있잖아. 탑걸즈의 예리라고.”
아.
신예리가 다녀간 모양이다.
요즘 일본과 한국을 왔다갔다 하며 활동을 하느라 바쁠 텐데.
소미를 따라서 여기까지 와줬다니 괜히 고마웠다.
그런데 잠시만.
“그, 신예리가 가게 일을 도와줬다고요?”
“.......”
어머니는 말이 없으셨다.
“...그릇 몇 개 깬 거 말고는 애가 아주 야무지더라.”
“그릇 몇 개요?”
“.......”
아무튼 차선우는 가게에 온 김에 팬들에게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는 등 비공식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저녁까지 먹고 올라온 차선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슬슬 방송을 할 시간이 되었다.
벌써 방송 짬밥만 3년이다.
차선우는 강여름이 없어도 능숙하게 카메라 및 스트리밍 세팅을 했다.
마침 오늘은 편안한 고민상담소다.
차선우는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방송을 켰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여유? 편안?
천마의 방송에 그런 건 없었다.
*
김소현은 천마의 방송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좋아. 총알은 넉넉하고.”
후원에서 날릴 멘트도 한 번 더 점검해보았다.
그리고 정확한 시간에, 천마의 방송이 시작되었다.
김소현은 차분한 마음으로 방송에 입장했다.
수만 명의 시청자들이 몰려들며 순식간에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지금은 후원을 날릴 타이밍이 아니다.
“처음부터 후원을 날리는 건 하수지.”
천마의 방송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는 김소현이다.
그녀의 경험상, 이런 후원은 분위기가 가장 무르익었을 때 날리는 게 최고다.
오늘은 마침 고민상담소가 있는 날이다.
주간곡소리를 하는 날이면 곡이 완성되는 대로 천마가 도망을 가버리기 때문에 후원을 날릴 타이밍이 마땅치 않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밍도 꽤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김소현은 기다렸다.
차가운 마음으로, 예의주시하면서.
‘분명히 다른 경쟁자도 몰렸을 거야. 천마의 가치는 이미 증명됐으니까.’
후원가 10,000,000원.
그것도 계약금도 아닌 섭외비용의 시작 가격이다.
일본의 모 업체가 저 가격으로 올린 후, 사람들은 천마의 방송에서 후원하는 걸 꺼렸다.
순수하게 섭외비용으로만 수억은 쓰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보드 1등을 찍고 난 후, 이야기는 달라졌다.
천마가 몸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몇억? 그 정도는 우습다.
‘그리고 지금은 빌보드 1위 한 후의 첫 방송이지. 사람들이 모두 주목하고 있을 거야.’
김소현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천마와 시청자들이 놀고 있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분명, 그녀와 같이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라이벌들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못 미치겠지만.’
김소현은 우아하게 에스프레소 잔을 내려놓았다.
이제 시작이다.
마침 방송의 분위기는 최고로 치달았고, 그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진성재단 김소현 님이 1,000만 원 후원했습니다.]
- 혹시 광고 하나 할 생각 없어요? 우리 오빠가 맡기고 싶다던데
김소현은 후원을 날렸다.
그녀의 예상대로 사람들의 시선이 후원으로 집중되었다.
- 밈니미미친ㅊ
- 운아ㅏㅏㅏㅏㅏㄱ
- 왘ㅋㅋㅋ진성? 진짜 진성이라고?
- 잠깐만. 김소현 오빠면 진성그룹 총수 아님???
- 천마야. 이건 못먹어도 고다!
- 시발ㅋㅋㅋ이제 재벌도 오네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천마도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 어? 김소현 이사장님? 오랜만이네. 어떤 광고예요?
“좋았어!”
계획대로였다.
이제 몇 번 채팅을 더 치고, 확실하게 광고를 따내면 되는 상황인데.
역시나, 천마를 노리고 있는 경쟁자들이 있었다.
천마가 광고에 관심을 가지는 걸 본 놈들은 피라냐 떼처럼 달라붙었다.
[미래 자동차 님이 1,001만 원 후원했습니다.]
- 이런 김소현 이사장님이 오실 줄이야. 그런데 우리도 광고를 좀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KC 은행 님이 1,002만 원 후원했습니다.]
- 저희는 업계 최고로 대우해드리겠습니다!
[ST 텔레콤 님이 1,003만 원 후원했습니다.]
- 저희는 CM송과 CF모델 기용을 함께 논의해보고자 합니다만.
하지만 김소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모든 기업에서 천마를 노린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당연히 배틀이 벌어질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좋아!”
왜 진성이 국내 최고인지 보여주지!
< 재벌도 배틀입니다 (2) > 끝
ⓒ 연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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