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도 배틀입니다 (3) >
김소현은 우아하고 지적인 사람이다.
취미로 클래식을 듣고, 원산지를 따지며 커피를 마시고, 야수파 화풍의 그림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
인터넷 방송 같은 건 본 적도 없고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그저 천마라는 사람이 보여준 예술적인 영감이 마음에 들어서.
그가 보여준 천재성에 반해서.
방송을 챙겨봤을 뿐이다.
그런데 방송을 보다 보니 후원이라는 게 있네?
직접 해보니까 재미까지 있네?
키보드를 두드리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혈액 순환이 쫙 되는 게···!
김소현은 채팅을 치면서 생각했다.
‘아무래도 체질인가?’
배틀이 벌어졌으니 이제 후원 금액을 올릴 차례다.
하지만 경쟁자들처럼 겨우 만원, 십만 원 단위로 올릴 수는 없다.
진성의 이름을 달고 나왔으면, 그 위용을 보여줘야 하는 법!
그녀의 책상 한쪽에는 오빠가 후원에서 사용하라고 준 법인카드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걸 쓰지는 않겠어.”
오롯이 내 힘으로 쟁취한다!
후원 금액을 입력하는 김소현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보통 경매에서 찔끔찔끔 금액을 올려가며 경쟁하면 오히려 낙찰 금액이 높아지는 경우가 일어나곤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번만 더 올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따라붙게 되는 게 사람의 심리다.
만약, 정말 만약.
그 금액이 확 올라버리면?
‘그러면 감히 따라붙을 엄두가 나지 않기 마련이지.’
2배.
[진성재단 김소현 님이 2000만 원 후원했습니다.]
- 그러지 말고 진성이랑 함께 하시죠. 최고는 최고랑 손잡는 법이죠.
3배.
[진성재단 김소현 님이 3000만 원 후원했습니다.]
- 진성은 천마 님은 최고로 대우해드릴 준비가 되었습니다. 천마 님의 첫 광고는 진성이 어울립니다.
더 많은 돈!
더 많은 후원!
이 한 수로 진성의 클라스를 보여준다!
김소현은 아무도 따라잡지 못할 금액을 후원해버렸다.
쏴버린 금액만 벌써 6000만 원.
결재를 받아야 하는 홍보팀에서는 감히 던질 수 없는 금액이다.
지금까지 천마의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팡파르가 화면을 물들인다.
- ······.
압도적인 돈찍누에 채팅창은 물론 천마까지 침묵으로 물들었다.
“휴!”
김소현은 잠시 숨을 내뱉고 그 반응을 즐겼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진성이라 할 수 없다.
김소현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다시 한번 빠르게 움직였다.
[진성재단 김소현 님이 4000만 원 후원했습니다.]
- 그리고 제가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많이 알고 있거든요. 프랭크 리 아시죠? 마침 이 사람이 제 전화번호부에 있네요?
여기에 천마라면 무조건 물 수밖에 없는 미끼를 던지며 총 후원 금액을 1억원에 맞춰버렸다.
- 빵빵라라바방!
더욱 화려해지는 팡파르.
감히 김소현 뒤에 채팅을 칠 수 있는 기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세 번의 채팅을 날린 뒤 김소현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방송 화면을 보았다.
화면 너머 저 천마에게 ‘어때? 이거면 못 배기겠지?’라는 눈빛을 보내주는 건 덤이다.
사실 김소현이 이 정도의 금액을 단순한 치기로 후원한 건 아니다.
이전에 진성 그룹에서는 천마 방송에서 후원 배틀이 만들어낸 홍보 효과에 대해 분석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가 일본 게임업체 사이에서 배틀이 일어났었던 때였지.’
당시 일본 모 게임업체가 후원가를 급격히 올려서, 이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김소현은 ‘과연 천마가 저만한 가치가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어서 경제연구소에 분석을 맡겼다.
그런데 웬걸.
그때 천마로 인해 일본 게임업체가 얻은 부가효과는 수십억 원.
물론 이런저런 요소가 섞인 탓에 ‘순수한 배틀만의 효과’라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당시에도 그만한 경제적 가치를 지녔다.
그런데 얼마 전 천마가 빌보드에서 1등을 해버렸네?
덕분에 천마의 몸값은 수직으로 치솟았다.
1억?
이제 그 정도는 우습다.
심지어 이번 배틀로 글로벌 마케팅까지 가능하다.
‘이 방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시청자만 몇 명인데.’
최소의 최소로 잡아서, 총 시청자의 절반만 외국인으로 카운트를 해도 그 수가 수십만이다.
여기 있었던 일은 아마 내일 각국에서 기사화될 거다.
천마가 진성 전자의 광고를 하게 되었다는 타이틀과 함께.
“내가 이 금액을 후원한 건 다 이유가 있어서라고.”
물론 그 이유 중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사심 채우기였지만.
아무튼.
김소현은 화면 속의 천마를 응시했다.
총 1억 원의 베팅.
거기에 대한 천마의 대답은?
- 좋아요. 우리 이사장님 아주 통이 크시네.
천마는 피식 웃으며 승낙했다.
김소현은 순간 전율이 쫙 돋는 걸 느꼈다.
- 그러면 내일 연락드릴게요.
천마는 그러고는 바로 방송을 종료했다.
성공이다!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는 데 성공한 김소현은 기지개를 쭉 켰다.
돈으로 제대로된 플렉스를 했다.
이태리 장인이 만든 명품 백을 질렀을 때보다 더 큰 뽕이 차오른다.
“후! 이 맛에 배틀을 하는 거구나.”
이걸 배틀이라고 해야 할지는 의문이지만.
덕분에 천마의 방송은 오늘도 빵빵 터지고 있었다.
*
[천마, 그 첫 번째 광고는 진성과 함께!]
[최정상 아티스트의 위엄, 하루에 받은 후원 금액만 1억?]
[최고와 최고의 만남, 다음 시리즈에 사활을 건 진성 전자]
바로 다음 날이었다.
천마가 진성 전자와 광고를 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대문짝만하게 올라왔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광고를 받지 않고 있던 천마가, 처음으로 광고를 한다는 소식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법했다.
난리가 난 건 대중뿐만이 아니었다.
- 천마가 광고를 한다고? 이건 못참지!
- 처, 처, 천마 에디션 나오나?
ㄴ아 시발 안된다고 ㅠㅠㅠ나 한달전에 사과폰 샀다고
- 그래서 출시일이 언제라고?
- 와 천마가 광고도 하네
그리고 모든 사람의 관심 속에 차선우와 김소현이 만남을 가졌다.
차선우를 만나기 전.
김소현은 괜히 마음이 두근두근 거렸다.
‘천마의 광고를 따내다니.’
설렘이나 긴장감 따위의 감정은 아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성취감?
만족감?
국내 최고의 기업인 진성그룹이다.
지금껏 수많은 톱스타와 광고를 해왔고, 김소현도 그 과정에서 역할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스타도 천마와 같지는 않았다.
‘지금껏 광고 싫다는 사람은 없었는데.’
없어서 못 하지, 시켜주겠다는데도 거절하는 연예인은 없었다.
분명 쓸 수만 있으면 대박인데.
그 과정이 너무 어려운.
저기 나무 높은 곳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못 먹는 감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걸, 김소현이 따낸 것이다.
뭔가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빠인 김재범도 그 방송을 보고 있었는지, 배틀이 끝나자마자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여기에 뉴스에서도 난리니, 김소현은 마음속으로 괜히 뿌듯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궁금해졌다.
‘천마는 왜 지금까지 한번도 광고를 하지 않은 거지?’
대중가수로서 신념이 있나?
아니면 몸값을 높이기 위한 고도의 전략인가?
오늘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오늘 자리는 간단한 미팅이었다.
김소현이 어제 말했던 건축가를 연결해주고, 이후에 실무진과 전반적인 사항에 관한 이야기가 오갈 것이다.
김소현은 어느덧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진성그룹 소유의 호텔.
천마가 좋아하는 올블랙 대리석 인테리어가 깔린 VIP 라운지.
차선우는 걸어오는 김소현을 발견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그러게요. 지난번 전시회 이후 처음이죠?”
차선우는 김소현과의 인연을 떠올렸다.
‘이 사람과도 많은 일이 있었네.’
<천마의 음악방송>을 위한 장소 대관부터, 국제갤러리 전시회를 위한 사운드트랙 작곡에 이어, 이번에는 배틀에도 뛰어들 줄이야.
솔직히 어제 1억은 조금 놀랐다.
두 사람 모두에게 1억이 큰돈은 아니지만, 방송에서 쉽게 투척할 수 있는 돈도 아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어제 방송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김소현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정말 사적인 질문 하나만 해도 괜찮을까요?”
“네, 뭐. 물어보시죠.”
차선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1억이나 준 사람인데.
웬만한 건 대답해줄 수 있지.
“광고를 할 때 뭐, 대중가수로서 뭔가 특별한 신념이라도 있나요?”
“......네?”
이건 또 뭔소리야?
차선우의 시선에 김소현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니, 그냥. 궁금하잖아요. 지금까지 모든 광고를 거절했으니까 말이에요.”
차선우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지금까지 광고를 안 한 이유?
‘그런 이유가 있었나?’
없다.
두번 생각해도 없다.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아무 이유 없는데요?”
“......네?”
“그냥 음악 하랴, 여기저기 다니랴. 바빠서 못했던 거죠.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요?”
“.......”
못 먹는 감이 아니라,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감이었던 건가···?
김소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김소현은 헛기침을 하며 커피잔을 들었다. 잠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두번째 용건.
어제 조건으로 제시한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흠흠, 요즘 신사옥 때문에 건축가를 구하신다고 들었어요.”
“아, 맞아요. 이게 건축가 구하는 게 진짜 어렵더라고요.”
차선우는 건축이라는 게 그냥 말만 해놓으면 알아서 멋들어진 건물이 뚝딱뚝딱 올라가는 거로만 알고 있었다.
무림에서는 분명 그랬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쉽지 않네?’
이제 국내는 포기하고 해외 건축사무소로 컨택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꼭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말씀드린 프랭크 리 님은 어떠신가요?”
김소현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올 줄이야!
프랭크 리.
한국계 영국인 2세로 현대적인 건축에 한국적인 미를 잘 어우러지게 만들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차선우도 아는 이름이다.
‘와, 그쪽에 의뢰를 하려면 5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었는데.’
김소현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사실 건축가를 찾으신다는 말에 프랭크 리 님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군요. 신사옥에 조선천마의 스타일이 들어가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다리를 놔 드릴게요.”
역시 대기업은 달라도 다른가 보다.
재벌이 나서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차선우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프랭크 리 님이 작업해준다면 땡큐죠.”
차선우는 김소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여자.
‘생각보다 잘 아는데?’
처음부터 프랭크 리를 추천한 거 보면 조선 천마 세계관에 대해서 묘하게 잘 아는 느낌이다.
‘아니면 이게 대기업의 힘인가?’
미리 뮤비를 분석하고 이쪽의 취향까지 모두 파악한 후에 이런 제안을 한 건가?
진실은 김소현만 알고 있겠지만.
그렇게 천마의 첫 광고 계약이 성립되었다.
*
앨범 발매 3주 차.
차선우는 여전히 잘나가는 중이었다.
스트리밍 횟수와 앨범 판매량은 꾸준하게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고, 라디오에서도 차선우의 노래는 여전히 잘 나왔다.
모든 사람이 이 기세라면 4주 차 1등도 당연히 천마가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빌보드 차트에서 모두가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 재벌도 배틀입니다 (3) > 끝
ⓒ 연태량
=======================================